토끼 드롭스 4
우니타 유미 지음, 양수현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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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이 살아가는 넋
 [만화책 즐겨읽기 152] 우니타 유미, 《토끼 드롭스 (4)》

 


  하루 스물네 시간 갓난쟁이하고 붙어서 보내는 삶을 헤아리자면, ‘아이를 낳아’야 합니다. 때로는 스스로 아이를 낳지 않더라도 ‘다른 이가 낳은 아이를 맡아서 돌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물건이 아닙니다. 사람은 목숨입니다. 사람은 귀염둥이짐승이 아닙니다. 물과 먹이를 차려 놓고 휭 하고 집을 나선 다음 슬그머니 돌아와도 안 죽고 스스로 끼니를 챙겨먹는 집짐승과 같지 않아요.


  갓난쟁이도 아직 많이 어린 아이도 ‘어버이’ 노릇을 할 어른 한 사람이 늘 곁에 붙어야 합니다. 아이가 밥을 먹을 때이든, 아이가 잠을 잘 때이든, 아이가 똥오줌을 눌 때이든, 아이가 뛰놀 때이든, 아이가 노래할 때이든, 아이가 옷을 갈아입을 때이든, 곁에서 어버이 노릇 하는 어른 한 사람 스물네 시간 꼼짝없이 붙어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 “여기 희한하네. 처음 왔는데도 할아버지 집 같아.” “대체 무슨 일이야? 일요일에 (아이) 책가방까지 다 챙겨 오고!” “아, 미안.” (17쪽)
- “레이나를 생각해 봐도, 그리고 내 생활력을 봐도, 그걸 실행에 옮기는 건 절대 만만하지 않을 테니까. 결국에는 그냥 지금 이대로가 그나마 나은 것 같아. 난 취직하자마자 바로 결혼했으니까, 젊을 때는 좋은 아내가 되는 것만 생각하고 살았어.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레이나를 지킬 방법도 그것밖에. 아, 그래도 오늘 아무것도 안 하고 느긋하게 지냈더니 기분이 좀 나아졌어.” (62∼63쪽)

 

 


  대통령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나이 일흔 넘은 할아버지라고 다르지 않아요. 사람들한테서 독재자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어떤 사람들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이들 모두 갓난쟁이였을 적, 당신 어머니나 아버지한테서 깜찍하게 사랑받으며 살았어요. 당신 어버이가 하루 스물네 시간 꼬박 붙어서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놀리고 하면서 사랑으로 돌보았어요.


  오늘날 도시 물질문명 사회에서는 ‘아줌마’를 참 나쁘거나 얄궂은 모습으로 그립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거의 몽땅 도시에 몰려들어 살아가기에, 이 도시 물질문명 사회가 엉터리로 그리는 ‘아줌마’ 모습에 쉬 길듭니다.


  시골에서 지내는 아줌마와 도시에서 지내는 아줌마는 아주 달라요. 게다가 ‘도시 아줌마’라 하더라도 이 아줌마들은 ‘누군가한테 어머니’입니다. 이 아줌마들은 내 어머니일 수 있고, 내 이웃이나 동무 어머님일 수 있어요. 모두 누군가 ‘어른이 된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고 돌본 어버이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늘 이 대목을 놓치거나 잊거나 젖힙니다. 아줌마라 하는 자리는 아무나 들어설 수 없는 줄 살피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나라에서 아줌마라는 자리에 서는 여자가 맡는 몫을 ‘아저씨’ 자리에 서는 남자가 옳고 사랑스레 나누어 맡지 않을 뿐더러, 아줌마와 아저씨가 낳아 사랑으로 돌본 딸아들 또한 스스로 즐거이 나누어 맡지 않아요.


- “말은 이렇게 해도, 남편도 날 안 봐 주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보람이 없어. 누구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면서 사는 건지.” (36쪽)
- “나는 항상, 결혼하고 나서부터 계속, 내 마음을 닫고서 살아왔단 말야! 가끔 내 맘대로 하면 안 돼? 그 사람들(시집 식구) 조금은 괴롭히면 안 돼?” (40쪽)

 

 


  집안일을 반씩 갈라 맡는대서 남녀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남자가 설거지와 청소와 빨래쯤 한대서 여남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집 등기나 은행계좌를 반씩 가르거나 공동명의를 한대서 절대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평등은 금긋기나 편가르기는 아니거든요. 평등은 돈이나 재산이나 보배나 숫자로 따지지 않거든요.


  오직 사랑으로만 살피는 평등입니다. 오직 사랑일 때에만 이야기할 수 있는 평화입니다. 오직 사랑으로 빛내는 자유이고 민주입니다.


  자유나 민주는 참말 자유나 민주가 되려면 반드시 ‘사랑’을 품어야 합니다. 사랑 없이 펼치려는 자유나 민주는 껍데기 자유나 겉치레 민주입니다.


  흔히들 ‘언론 자유’를 외치는데, 언론 자유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글 한 줄을 쓰거나 기사 한 꼭지 쓰거나 사진 한 장 찍으며 스스로 사랑을 담지 않을’ 때에는 누군가를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리거나 해코지하는 언론이 되고 맙니다. 이럴 때에는 ‘언론 자유’가 아닌 ‘언론 폭력’이 돼요.


  정당 이름에 ‘진보’라는 낱말을 넣어야 진보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정당 이름에 ‘민주’라는 낱말을 넣기에 민주가 이루어지던가요? 아닙니다. 진보도 민주도 스스로 ‘사랑’을 나누거나 펼치거나 빚으려는 매무새가 아닐 때에는 으레 껍데기일 뿐이에요. 무엇을 하려는 진보일까요. 무엇이 되려는 민주일까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뽑는 자리에서만 진보나 민주라 한다면, 얼마나 부질없거나 덧없을까요. 삶에서 사랑을 누리지 않는 사람들이 이루려는 진보나 민주가 참으로 진보나 민주다울 수 있을까요. 삶에서 사랑스러운 글과 말을 빚지 않는 사람들이 언론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 ‘당연한 일이지만, 보호자의 나이며 직업, 출신이 전부 제각각이고, 할아버지 할머니에 큰 형제들도, 어린애들도 있고, 취직했을 땐 세상이 넓어진 기분이 들었는데, 어떻게 보면 여기(학교)가 더 넓을지도 몰라.’ (85쪽)
- ‘아아 그런가. 나도 마찬가지인가. 작년 겨울에 린도 감기에 걸리긴 했지만, 하루이틀 사이에 나아서 회사도 그렇게 오래 쉴 필요 없었다. 하지만 가령 그게 독감이었다면? 회사는 어떻게 했을까? 게다가 나도 옮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끔찍! 솔직히 작년에는 둘이서 사는 데 익숙해지기 바빠서 그런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지.’ (96∼97쪽)

 

 


  즐거이 살아가는 넋을 생각합니다. 즐거이 살아가자면 이때에도 반드시 사랑을 품어야 합니다. 사랑 없는 삶이라면 즐겁지 않습니다. 사랑 있는 삶이라야 즐겁습니다. 곧, 남녀평등이든 여남평등이든 무슨무슨 평등이든 평화이든, 바로 사랑을 담아야 즐겁고 오롯하며 빛납니다.


  남녘과 북녘은 서로서로 끔찍한 전쟁무기를 비무장지대에 잔뜩 갖다 놓고 두 나라 젊은이를 왕창 몰아 놓습니다. 전쟁무기를 서로한테 들이대면서 평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더구나 사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총알을 재고 머리통을 겨누면서 ‘나는 평화를 바라요’ 하고 말한대서 평화이지 않아요. 총알도 총부리도 모두 녹여 호미나 낫이나 가래나 쟁기로 바꾸어 즐겁게 흙을 일구어야 비로소 평화예요. 전투기도 잠수함도 구축함도 전차도 모조리 없애야 바야흐로 평화예요. 군대도 군인도 모두 사라져야 시나브로 평화예요.


  그런데, 전쟁무기가 사라졌어도 학력이 남으면 평화란 찾아오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제도권교육을 밀어붙이면 평화는 깃들지 못합니다. 교과서로 아이들을 옭아매고 입시지옥으로 아이들을 괴롭힌다면 평화를 누리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시골 흙일꾼이 되자며 입시지옥에서 다투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도시에서 돈을 더 많이 벌고, 아파트 평수 더 넓은 집을 차지하며, 더 비싸고 커다랗고 새까만 자가용을 몰고 싶어 입시지옥에서 머리 터지게 다툽니다. 아이들은 오로지 돈 때문에 입시지옥 싸움을 벌이는데, 어른들은 아이들이 이런 불구덩이에서 헤매도록 밀어붙입니다.


- “다이키치 씨, 이럴 때는 허둥거리면 안 돼요. 어른부터 침착해야죠. 괜찮다고 말해 줘야죠.” “글쎄, 그게요, 린의 저런 모습은 처음 보는 거라.” “그렇지 않아요. 할 수 있어요! 문화제 다녀오는 길에 린은 다이키치 씨한테 계속 매달려 있었어요. 아이는 고열이 나기 전에 남한테 달라붙거나 어리광을 부리거든요.” (116∼117쪽)
- ‘린의 체력은 열 때문에 눈 깜짝할 사이에 소진됐다. 왜 린에게 이런 일이. 왜 내가 아닌 걸까? 나라면 이런 감기는 아무것도 아닌데. 이 안타까움은 뭘까. 젠장 젠장 젠장.’ (120∼121쪽)

 


  우니타 유미 님 만화책 《토끼 드롭스》(애니북스,2010) 넷째 권을 읽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다이키치’는 여자친구도 애인도 없이 살아가는 ‘아저씨’입니다. 짝꿍이 될 ‘아줌마’가 없으면서도 아이를 맡아 돌봅니다. 아이를 맡아 돌보는 아저씨 삶을 일구면서 회사 일거리를 바꾸었습니다. 살아가는 흐름도 바꾸고, 집안살림도 바꿉니다. 사귀는 동무가 바뀌고, 스스로 찾는 이야기를 바꿉니다. 낳은 아이가 아니지만 스스로 사랑으로 맡아 돌보는 아이입니다. 아저씨인 다이키치는 스스로 아저씨 삶을 좋아합니다. 아저씨로 살아가며 둘레 아줌마가 어떤 사람인가를 찬찬히 헤아리며 깨닫습니다. 아저씨이자 아버지로 당신 삶과 꿈과 사랑을 맑게 빛냅니다.


- “아이랑 있는 시간도 자기 시간이니까.” “남의 부모라고 딱히 특별한 건 없지 않을까.” “나가서 둘러보면, 사방에 엄마 아빠들인걸.” “아아, 그래. 그렇구나!” (204∼205쪽)


  책을 덮으며 곰곰이 돌이킵니다. 나는 두 아이와 살아가는 아버지 자리에 있기는 있는데, 막상 아버지 자리를 얼마나 잘 헤아리는지 스스로 궁금합니다. 아버지 노릇, 아버지 삶, 아버지 사랑, 아버지 꿈, 아버지 이야기, …… 들이란 무엇일까요.


  우리 집 처마에서 함께 살아가는 제비들은 바지런히 새끼들을 먹이며 돌봅니다. 이제 날갯짓을 가르치며 서로서로 파란하늘 마음껏 휘저으리라 봅니다.


  내가 아이들한테 물려줄 날갯짓이란 무엇일까요. 내가 스스로 누리는 날갯짓은 어떤 사랑일까요. 내가 즐거이 빛내면서 아이와 함께 어여삐 돌볼 삶은 어떤 그림일까요. 즐거이 살아가는 넋을 나부터 어떤 무늬와 결로 아로새기는가를 천천히 되새깁니다. (4345.6.4.달.ㅎㄲㅅㄱ)

 


― 토끼 드롭스 4 (우니타 유미 글·그림,양수현 옮김,애니북스 펴냄,2010.7.16./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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