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제비 책읽기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이 남긴 작품 가운데에는 나라밖 동화책 번역이 꽤 많다. 이 가운데 하나로 《미운 새끼 오리》가 있다. 나는 아마도 어릴 적 이 책을 학교 학급문고에서 빌려 읽었을 텐데, 책이름이 ‘오리 새끼’ 아닌 ‘새끼 오리’인 줄 참 늦게 깨달았다. 어른이 되어 헌책방에서 낡은 동화책 하나 찾아서 다시 읽기 앞서까지 으레 “미운 오리 새끼”라는 이름이 내 혀와 입과 귀에 익숙했다.


  더없이 마땅한 노릇인데, 한국말로 옳고 바르고 알맞으며 살가이 이야기하자면 “새끼 아무개”이다. “아무개 새끼”라 하지 않는다. “아무개 새끼”처럼 읊는 말은 모조리 막말이다. “새끼 아무개”라 하면서 귀엽거나 사랑스럽거나 좋거나 아름다운 무언가를 가리킨다. “소새끼 말새끼 닭새끼 개새끼”처럼 읊는 말은 몽땅 막말이다. 소도 말도 닭도 개도 사람한테 깎아내리는 말을 들을 까닭이 없지만, 사람 스스로 못난 바보가 되면서 이런 막말을 일삼는다. 곧, 한겨레는 한겨레 스스로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살아가며 여느 말을 보드라이 읊을 때에 “새끼 사람, 새끼 소, 새끼 말, 새끼 닭, 새끼 개”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이 나라밖 동화책을 한국말로 옮기며 붙인 《미운 새끼 오리》라는 이름 하나만 올바르다.


  할머니들은, 또 할아버지들은, 요즈음 도시에서는 듣기 어렵다 할는지라도 시골에서는 아주 홀가분하면서 넉넉하게 으레 듣는데, “아유, 귀여운 내 새끼, 왔니?” 하고 말한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귀여운 내 새끼”이다. 왜냐하면 “새끼 사람”이니까.


  사람도 짐승도 ‘새끼’와 ‘어미’가 있다. “어미 소, 어미 닭, 어미 개”이듯 “새끼 소, 새끼 닭, 새끼 개”이다.


  조금만 생각한다면, 조금만 사랑을 들여 생각한다면, 조금만 사랑을 들여 착하게 생각한다면, 한국사람 누구나 한국말을 슬기롭게 할 수 있다. 조금조차 생각하지 않고, 조금조차 사랑을 들이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사람은 거의 모두 엉터리로 한국말을 망가뜨리거나 무너뜨린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다섯 시 앞뒤로 우리 집 처마 제비들 노랫소리를 듣는다. 알에서 깬 새끼 제비들은 어미 제비가 바지런히 물어다 주는 먹이를 먹으며 무럭무럭 자랐고, 이제 둥지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 만큼 컸다. 제비들이 놀랄까 봐, 또 우리 식구 고흥 시골마을로 옮긴 지 첫 해인만큼, 섣불리 제비집 안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올해가 가고 이듬해를 맞이하며 다시 새해를 맞아들이고 나면, 이제 제비들도 우리 식구하고 낯을 트고 한결 살가이 지낼 테니까, 그때에는 제비집 둥지를 살그머니 들여다보며 제비알도 보고 새끼 제비도 볼 수 있을까 하고 꿈꾼다.


  새벽 다섯 시 반, 첫째 아이가 쉬 마렵다며 일어나기에 손을 잡고 섬돌에 놓은 오줌그릇으로 내려와 오줌을 누인다. 오줌을 누이며 제비집 새끼 제비들 노랫소리를 듣는다. 좋은 새벽이고 좋은 하루이다. 좋은 새날이고 좋은 아침이다. 쉬를 눈 아이를 자리에 다시 눕혀 재운다. 둘째 아이는 자꾸 뒤척여 무릎에 누여 토닥인다. (4345.6.4.달.ㅎㄲㅅㄱ)

 

 

 

 

.. 먹이 주는 제비 모습 사진으로 잘 보셨으면 추천 눌러 주셔요~~~ ㅋㅋㅋ ..

.. 요새 이런 모습 어디서 '돈 주고도 볼 수 없'어요~~~ ^^ ..

 

 

.. 새끼들 밥먹는 동안

   다른 어미 제비는 코앞 전깃줄에 앉아 지켜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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