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름빛 책읽기

 


  올여름에도 첫째 아이 이름이 된 ‘사름’을 맞이한다. 우리 집에는 논이 없으나 이웃 집에는 모두 논이 있으니, 날이면 날마다 모내기를 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먼저 모내기를 마친 논에는 반짝반짝 눈부신 논물이 푸른 숲 멧자락을 비춘다. 새벽과 아침과 낮과 저녁에 걸쳐 논물은 새삼스레 바뀌는 그림을 끝없이 그린다. 옮겨심은 모가 뿌리를 튼튼히 내린 논을 들여다보면 볏모 빛깔이 그지없이 푸르다. 그런데, 아직 옮겨심지 않은 모도 모판에 꽂힌 모습을 바라보면 가없이 푸르다. 마을 이장님 댁 모판을 나르는데, 모판 한복판에 참개구리 한 마리 떡하니 앉아 골골 노래를 부르던걸.


  다섯 살 첫째 아이 사름벼리는 제 이름 넉 자 가운데 첫 두 글자가 비롯한 ‘사름’을 날마다 마주한다. 날마다 마주하면서 아직 ‘낱말과 이름’을 서로 맞대어 헤아리지는 못한다. 한 해를 더 살고 또 한 해를 새로 살면 시나브로 알아채며 즐길 수 있겠지.


  모 심는 기계에 모판을 실을 때에 일손을 살짝 거들며 어린 볏모가 얼마나 보드라운가를 새삼스레 느낀다. 이 보드라운 볏모가 보드라운 논흙에 뿌리를 내리고 보드라운 햇살을 먹는 한편 보드라운 바람을 누리면서 보드라운 꽃을 피우고 보드라운 열매를 맺는다. 여름빛은 사름빛이다. (4345.6.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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