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순이 책읽기

 


  이웃 할머니한테서 푸른콩을 얻었다. 오직 우리 집 아이들이 예쁘기 때문에 얻은 콩이다. 그런데 나는 살짝 달리 생각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나와 옆지기는 우리 마을 어르신들한테는 ‘막내아들’이나 ‘막내딸’ 뻘이기에, 당신 아들딸을 아끼는 마음으로 우리 식구를 아껴 주시기도 한다고 느낀다.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서 주말을 맞이하면 곧잘 ‘자가용’을 보곤 한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동백마을에는 자가용 있는 집이 한 군데도 없다. 이장님만 짐차 하나를 몰고, 다른 분들은 경운기가 있으면 있고, 없으면 아무 기계가 없다. 자가용을 모는 이는 마을 어르신들 아들이거나 딸이다. 곧, 마을 어르신들 아들딸이 어르신들을 뵈러 주말 맞아 찾아올 때에 자가용이 곳곳에 서곤 한다.


  처음 우리 동백마을에 들어올 때에는 둘레 분들이 ‘여기 참 살기 좋은 곳이에요’ 하고 들려주는 이야기를 잘 헤아리지 못했다. 들과 멧자락이 좋고 포근하기 때문인가, 하고만 여겼는데, 지내고 보니, 마을 어르신들 아들딸이 퍽 자주 찾아온다. 아마, 시골마을치고 ‘도시로 떠난 아들딸’이 우리 마을처럼 자주 찾아오는 데는 썩 드물지 않을까 싶다. 어버이날이 낀 저번 달에는 한창 마늘밭 일로 바쁠 때였는데, 온 마을에 ‘차 댈 데가 모자랄 만큼’ 자가용이 득실득실했고, 마늘밭에도 젊은 사람과 어린 아이 얼굴이 자주 보였다.


  이웃 할머니한테서 푸른콩을 얻어 콩보따리를 들고 온 첫째 아이는 저 스스로 콩을 다 까겠다고 한다. 그래서 안 도와주기로 하고 빈 그릇 하나를 내민다. 네가 다 까서 담아 주렴. 첫째 아이는 한참 콩을 깐다. 많이 더디다. 곁에서 꼬투리 몇 내가 까서 담는다. “벼리야, 콩을 깔 때에는 꼬투리를 이렇게 잡고 뒤집으면 금세 잘 깔 수 있어.” 콩까기를 몇 차례 보여주고 방으로 들어간다. 아이는 마당에서 콩을 깐다. “다 깠어요.” 하고 부르며 아이가 들어온다. 그릇을 들여다보는데 얼마 안 된다. “다 깠어?” “네, 다 깠어요.” 마당을 내다 본다. 콩꼬투리가 많이 남았다. 1/20도 안 깐 듯하다. 아마 이만큼 까며 퍽 힘들었는지 모른다. 잘 했다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콩순이가 깐 푸른콩으로 아침에 밥을 지어 다 함께 먹었다. (4345.6.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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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개구리 (도서관일기 2012.6.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교실 넉 칸 가운데 마지막 칸을 치우면서 책꽂이 자리를 잡기로 한다. 어쨌든 바닥을 쓸고 책꽂이를 놓는다. 마지막 칸에 남은 걸상은 한쪽 벽에 높이 쌓는다. 내 것으로 사들인 옛 학교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옛 학교가 문을 닫으며 남긴 물건을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 해서 한쪽 벽에 쌓는다.


  먼지를 잔뜩 마시며 일한다. 오늘은 아이들 안 데리고 와서 혼자 일하는데, 외려 잘 한 노릇이라고 느낀다. 아이들까지 이 먼지를 마시도록 하고 싶지는 않다. 며칠쯤 혼자 먼지를 실컷 마시며 치우고 나면, 이제 아이들이 와서 뒹굴거나 기어다녀도 이럭저럭 괜찮을 만큼 될 테지.


  면내 철물점에서 나뭇가지 자르는 가위랑 낫을 장만했다. 학교 나무를 우리가 섣불리 건드리면 안 되지만, 등나무 가지와 덩쿨이 너무 뒤죽박죽 뻗기에, 때때로 이 가지를 치고 잘라야겠다고 생각한다.


  교실 넉 칸 가운데 마지막 칸을 조금씩 치우기로 하니, 이제 어느 만큼 꼴을 잡는다 하겠지. 올여름이 다 갈 무렵이면 사람들을 부를 만큼 갈무리 마칠 수 있을까. 오늘은 책꽂이며 이것저것 사진으로 찍고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세 시간 즈음 쉴새없이 일하다가 땀에 젖은 몸으로 집으로 돌아갈 무렵, 빗물 새는 벽 한쪽에 조그마한 푸른개구리 앉아서 쉬는 모습을 본다. 그래, 네 모습은 사진으로 찍자.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살갗으로 느끼는 이야기만 스스로 알아챌 수 있다. 몸으로 부대끼고 마음을 기울여 사랑할 때에만 책 한 줄 내 삶으로 스며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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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걸상 책읽기

 


  다섯 살 아이는 부엌 개수대에서 걸상을 대지 않으면 까치발을 해야 한다. 걸상 하나를 대면 물을 켤 수 없다. 걸상 둘을 대니 물을 마음껏 켜거나 끌 수 있다. 다섯 살 아이는 제 손과 머리를 써서 슬기롭게 논다. 아버지가 늘 하는 대로 설거지 놀이를 한다.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날마다 새롭게 놀이를 누린다. 나는 아이한테 딱히 무엇을 가르치지 않았다. 아이는 그저 살아가며 스스로 무언가를 느끼면서 익힌다. 아이는 어디에선가 걸상을 디디고 올라가며 무언가 꺼내는 모습을 으레 보았을 테고, 하나로 안 되면 둘을 받치면 되는 줄 문득 깨달았으리라. 아이는 아이 키보다 훨씬 높은 사다리를 두려워 하지 않고 오르내린다. 이 모습은 아마 ‘삐삐 영화’를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아홉 살에서 열 살을 맞이하는 말괄량이 삐삐는 높다란 사다리이든 지붕이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삐삐가 두려워 할 일이란 한 가지도 없다. 아니, 꼭 한 가지 있다. 삐삐한테는 사랑스러우면서 좋은 동무인 토미와 아네카하고 헤어질 뻔한 일을 걱정했다. 해적이 토미와 아네카를 붙들었을 때에도 걱정했다. 그러나 걱정은 오래 가지 않는다. 삐삐 스스로 이 실타래를 슬기롭게 풀 테니까. 다섯 살 아이도 다섯 살 아이 깜냥껏 제 삶을 제 나름대로 푼다. 나도 아이가 놓은 걸상 도움을 받아서, 높은 데 있는 무언가를 꺼내기도 한다. (4345.6.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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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 할머니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면내까지 한 바퀴 천천히 돌고 돌아오는 길에 마을 할머니를 뵙는다. 할머니는 나뭇가지 지팡이를 왼손에 쥐며 땅을 당기고, 비료푸대를 오른손으로 끌면서 집으로 돌아가신다. 할머니는 당신 손에 흙이 묻어 지저분하다며 아이를 안기 꺼리신다. “뭘 줘야 하는데 줄 게 없네.” 하시더니, 나무를 쌓으며 덮은 비닐 한쪽을 북 뜯어, 비닐보자기를 만든 다음 여기에 콩꼬투리 몇 줌 싸서 아이한테 내미신다.


  비닐보자기에 싼 콩꼬투리를 품에 안은 첫째 아이는 아주 좋아한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온다. 아이는 혼자 콩을 까겠다 말한다. 빈 그릇 하나 아이한테 건넨다. 아이는 씩씩하게 콩을 깐다. 그릇에 콩을 제법 담고는 소꿉을 챙겨 그릇에 담고 붓고 옮기고 나르고 하며 논다. 날콩 하나 씹더니 “아이, 맛없어.” 한다.


  아이가 깐 콩으로는 이듬날 아침에 콩밥을 지어야지. 아이가 아직 안 깐 콩으로는 마당 가장자리 꽃밭에 몇 알 함께 심을까 싶다. 아이 스스로 심고, 아이 스스로 돌보아, 아이 스스로 거둘 수 있기를 빌어 본다. 그러면, 나중에 아이가 콩을 이웃 할머니한테 선물할 수 있으리라. (4345.6.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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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밭에 떨어진 감꽃

 


  뒷밭에서 한창 물을 주다가, 고랑에 떨어진 감꽃을 본다. 뒷밭 옆 풀밭 사이에 떨어진 감꽃도 본다. 꽤 높은 감나무를 올려다본다. 감꽃이 어느 만큼 있는가 살핀다. 좀 나즈막한 가지에는 감꽃이 얼마 안 보인다. 퍽 높다 싶은 가지에 감꽃이 이럭저럭 맺혔다. 사다리를 대고 올라가야 올가을에 감을 따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우리 집 뒤꼍 감나무는 풀밭 한복판에 있기에 꽃망울 톡톡 떨굴 때에도 이렇게 풀숲에 떨어져 풀숲으로 스며드는구나 싶다. 우리 식구들 인천에 살던 무렵, 조그마한 흙틈에 심어 수십 해를 자란 감나무들은 감꽃을 떨굴 때에 으레 시멘트 바닥이나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뜨려야 했다. 시골에서 떨어지는 감꽃은 흙땅에 닿기 앞서 포근한 풀잎에 내려앉는다. 풀잎 사이에서 쉬다가 봄비를 맞으면 천천히 흙땅으로 내려와 가만히 흙 품에 안기다가는, 시나브로 새 흙으로 거듭나겠지. (4345.5.3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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