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옆 책읽기

 


  밥상을 차린다. 밥을 먹자고 부른다. 아이가 밥상 옆에서 책을 펼친다. 아이들이 나오는 사진책이다. 밥보다 아이들 사진이 더 마음에 끌릴는지 모른다. 애써 밥상을 차린 사람으로서는 기운이 빠진다. 밥도 책도 아닌 꼴이 되니까. 그런데 나는 이런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는 사진을 찍는다. 어느 모로 보면 얄밉지만, 어느 모로 보면 귀엽거든. 내 마음속에 깃든 얄미움이 아이한테 옮을 테고, 내 가슴속에 스민 귀여움 또한 아이한테 이어질 테지. 아이가 좋은 밥을 먹으며 좋은 넋을 추스르기를 꿈꾼다면, 어버이 또한 좋은 밥을 먹으며 좋은 넋을 추스를 노릇이리라. 서로서로 좋은 길을 찾아 좋은 사랑을 빛낼 때에 가장 기쁘리라. (4345.6.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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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에서 두 달에 한 번 내는 <경기문화나루>에 싣는 글입니다. 7-8월호치에 실리는 글이기에, 이제 이곳에 함께 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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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에 한 줄, 즐거이 읽는 책

 


  나카야마 세이코 님 청소년문학 《산촌유학》(문원,2012)을 금세 다 읽습니다. 갓난쟁이 둘째를 가슴에 얹혀 재우면서 이 책 하나 훌러덩 읽습니다. ‘산촌유학’이란 도시에 사는 아이를 시골로 보내 배우게 한다는 일로, 시골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살림집 가운데 한 곳으로 ‘도시 아이가 들어가서’ 그 집 아이와 똑같이 살아가도록 합니다. 26쪽을 보면, “별이 이렇게 밝게 빛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어쩐지 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일본은 어디든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 소리, 냄새, 색깔, 빛, 바람 …… 여기는 내가 사는 곳(도쿄)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참말, 시골 밤하늘 별은 밝습니다. 도시 밤하늘에는 별이 밝지도 않으나, 별이 뜰 수조차 없습니다. 아니, 도시에서 살아갈 때에는 밤하늘을 올려다볼 일이 없고, 밤하늘을 생각할 일마저 없곤 합니다.


  경기 파주 책도시 한켠에서 5월 한 달, 제 사진잔치를 마련했습니다. 사진잔치를 나 스스로 기리며 식구들하고 먼 마실을 떠납니다. 들새 소리와 바람 냄새와 햇살 빛깔과 들풀 빛무늬 어여쁜 시골집을 떠나 여러 날 파주에서 머물렀습니다. 시골집 날씨와 여러 날 묵을 일을 헤아리며 두 아이 옷가지를 챙겼는데, 막상 파주 책도시에 닿으니 복사열이 대단해 두 아이 모두 더위에 시달립니다. 더욱이, 걸을 만한 들길이라든지 오를 만한 멧자락이라든지 쉴 만한 나무그늘이라든지 마실 만한 냇물이라든지 먹을 만한 들풀이라든지 하나도 없습니다.


  청소년문학 《산촌유학》에 나오는 도쿄 청소년들은 ‘시골에 편의점이 없어 과자나 청량음료를 사 마실 수 없겠다고 걱정’합니다. 시골에서 살다가 도시로 볼일 보러 아이들 이끌고 찾아간 우리 식구는 ‘도시에 쉬고 걸으며 먹을 너른 들판과 숲이 없다고 새삼스레 깨달으며 걱정’합니다.


  복사열과 아스팔트와 시멘트집에 시달린 끝에 시외버스와 여러 차를 갈아타고 예닐곱 시간만에 시골집으로 돌아옵니다. 짐을 풀고 벌렁 드러누워 달게 잔 이듬날 아침, 아이와 함께 그림책 《루비의 소원》(비룡소,2003)을 읽습니다. 1900년대 첫무렵 중국에서 있던 일을 이야기책으로 빚었다 합니다. 사내로 태어난 사람만 글을 가르치고, 가시내로 태어난 사람은 집일과 살림을 배우느라 글을 배울 수 없다던 지난날, 그림책 주인공 ‘루비’는 이녁 할아버지를 깨우칩니다. 루비네 할아버지는 루비한테 “아가, 네가 왜 이런 시를 썼는지 정말로 알고 싶구나. 남자 아이들에게 어떻게 더 잘 해 준다는 거니?” 하고 물어요. 할아버지 말씀을 듣던 루비는 할아버지가 알아들을 만한 가장 쉬운 보기를 찾습니다. 이를테면, 전병을 줄 때에 사내한테는 더 달콤한 자리를 떼어 주고, 가시내한테는 퍽퍽한 데를 떼어 준다는 말을 들려줍니다.


  곰곰이 돌이켜봅니다. 곁에서 누군가 깨우쳐 주지 않으면 참으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곁에서 쉽고 살가우며 따스한 눈길이나 손길이나 마음길이나 말길로 깨우쳐 주더라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림책 할아버지는 당신 손녀가 넌지시 깨우쳐 주는 말마디를 잘 삭힙니다. 가시내를 대학교까지 보내는 일이 아주 없다던 때에 그림책 주인공 루비는 처음으로 대학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만화책 《사원 시마, 주임 편》(서울문화사,2008)을 읽습니다. 첫째 권 70쪽에 ‘평사원 시마’가 “우직해도 좋다. 출세 못해도 좋다. 난 이런 자세를 관철하고 싶다.” 하고 혼잣말을 합니다. 평사원 시마 주임은 이처럼 혼잣말을 하지만, 만화책 흐름을 보면 과장이 되고 부장이 되며 전무와 이사를 거쳐 사장에 이릅니다.


  마음을 쉬고 싶어 《어머니전》(호미,2012)이라는 책을 펼칩니다. 섬마을에서 ‘스스로 고향이 된’ 할머니들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섬할매 한 분은 “자식들 있어도 다 객지 가 사요. 큰아들은 서울서 살고, 나는 이라고 삽니다. 이게 편합니다. 시골 사람은 시골 사는 게 좋습니다(111쪽).” 하고 말씀합니다. 그래, 사람들은 저마다 가장 좋아할 만한 곳에서 가장 좋아할 만한 삶을 일구며 사랑을 합니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할 만한 들길을 거닐며 내가 가장 좋아할 만한 꿈을 읽다가, 우리 집 처마 밑 제비들 노랫소리 들으며 삶을 읽습니다. (4345.5.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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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타리 책읽기

 


  돌울을 타고 자라는 하늘타리 하얀 꽃이 피었다. 처음에는 무슨 솜뭉치가 바람에 날려 돌울에 붙었나 하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들여다보니, 낱낱이 가는 실이 타래처럼 엮여 저마다 흐드러진 잎사귀 모양인 꽃봉오리였다. 돌울에 피어났기에 담쟁이꽃인가 생각했는데, 하늘타리꽃이라 한다. 하늘타리꽃은 이렇게 어여쁘면서 하얗게 맑구나. 천천히 타면서 감쌀 울타리 있고, 이 울타리 한켠에서 짙푸른 잎사귀 빛낼 수 있으며, 햇살과 바람과 빗물이 싱그럽게 찾아드는 곳에서 고운 꽃송이 한껏 터지는구나. (4345.6.2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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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중꽃 책읽기

 


  뒷밭에서 풀을 뽑다가 까마중풀은 그대로 둔다. 까마중꽃이 하얗게 피기도 했고, 벌써 꽃이 지면서 푸르게 익는 열매가 보인다. 이제 하루하루 좋은 날이 이어지면, 까마중알은 까맣게 달게 맛나게 익겠지. 내가 따로 심지 않아도 스스로 씩씩하게 나는 어여쁜 까마중풀은 다음해에도 또 다음해에도 새롭게 어여쁜 빛깔로 찾아오리라. (4345.6.2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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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2-06-25 13:32   좋아요 0 | URL
작년이었던가 류도 산소에 가서 까마중을 보았는데,,
까맣게 익은 까마중을 따 먹어보라고 했더니 망설이더니 입에 하나 넣고 웃더라구요,
그리고 가끔 엄마네 집에 가서 보게 되면 아주 반가워해요,,ㅎㅎ

숲노래 2012-06-26 03:24   좋아요 0 | URL
아주 어릴 적부터 들열매를 먹어 버릇하지 않으면
누가 건네거나 내밀어도
낯선 먹을거리가 되고 말아요.

아이도 어른도 자연을 느끼는 삶이란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 있는데..
모두들 씩씩하게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
 


 그림자놀이 책읽기

 


  해가 움직이는 결에 따라 그림자가 생긴다. 그림자는 널찍하게 생기기도 하고, 좁다랗게 생기기도 한다. 아이가 들어가 몸을 쏙 숨길 만하게 생기기도 한다. 아이 키보다 훨씬 높으나 어른 키로는 이럭저럭 알맞춤한 빨랫줄에 드리우는 갓난쟁이 기저귀는 조금 큰 아이한테는 그림자놀이를 즐기기에 좋은 놀이터를 마련해 준다.


  그림자놀이는 놀이책에 실리지 않는다. 그림자놀이를 놀이로 여길 어른은 아마 없으리라. 그러나, 그림자를 바라보는 아이들은 으레 제 그림자를 따라다니고, 다른 그림자를 콩콩 밟으면서 논다. 말없는 벗이요, 언제나 같은 빛깔로 기다려 주고, 모습을 달리하는 예쁜 동무이다. 날마다 보아도 새삼스럽고, 언제 보아도 다른 빛깔과 모습과 무늬와 결로 찾아드는 좋은 손님이다. (4345.6.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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