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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388) -로부터/-으로부터 6


그로부터 봄까지 얀은 더 튼튼해졌고

《시튼/햇살과나무꾼 옮김-작은 인디언의 숲》(두레,1999) 67쪽


 그로부터 봄까지

→ 그때부터 봄까지

→ 그날부터 봄까지

→ 그 뒤로 봄까지

 …



  어느 때나 날을 살피면서 말할 적에는 ‘그때부터’나 ‘그날부터’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그로부터’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처럼 ‘때’나 ‘날’이 아니라 ‘-로’라는 토씨를 ‘-부터’라는 토씨에 붙이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이렇게 한국말을 잘못 쓴 글이나 책을 읽는 사람도 이런 말투에 길들거나 물듭니다. 잘못 퍼지는 번역 말투가 걷잡을 수 없이 더 퍼지는 셈입니다. 4338.1.25.불/4348.2.2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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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432) -로부터/-으로부터 7


문자로부터 소외된 사람들과의 연대, 민중과 예술의 모순을 부수는 작가가 되라

《김곰치-발바닥 내 발바닥》(녹색평론사,2005) 259쪽


 문자로부터 소외된 사람들과의 연대

→ 글에서 멀어진 사람들과 함께하고

→ 글에서 따돌림받은 사람들과 어깨동무

→ 글과 책이 내친 사람들과 어깨동무

→ 글과 책을 못 누리는 사람들과 손잡기

 …



  글을 쓰거나 읽는 사람이 부쩍 늘어서 제법 많지만, 글과 동떨어지거나 멀어지는 사람도 많습니다. 학교에서는 누구나 글을 쓰도록 가르치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글과 등돌리거나 짓눌리는 아이도 많습니다. 수많은 책이 쏟아지고 인터넷이 널리 퍼지기에 이 모두 두루 누리는 사람이 있는 한편, 수많은 책도 너른 인터넷도 못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못 쓰는 사람하고 손을 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나 지식인은 책하고 동떨어진 곳에 있는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지구별에서 함께 사는 벗님이 누구인지 돌아보면서, 함께 기쁜 삶을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담을 허물고 울타리를 치울 수 있는 글을 쓸 때에, 글넋이 싱그러우면서 글빛이 눈부시겠지요. 4338.9.8.나무/4348.2.27.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글에서 멀어진 사람과 어깨동무하고, 민중과 예술을 가르는 담을 부수는 글을 쓰라

글을 못 누리는 사람과 손 잡고, 겉과 속이 다른 민중·예술을 부수는 글을 쓰라


‘문자(文字)’는 ‘글’이나 ‘글과 책’으로 손보고, ‘소외(疏外)된’은 ‘따돌림받은’이나 ‘멀어진’이나 ‘못 누리는’으로 손봅니다. ‘연대(連帶)’는 ‘함께하기’나 ‘어깨동무’나 ‘손잡기’로 손질합니다. 그런데, “민중과 예술의 모순(矛盾)”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민중과 예술이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가리킬까요, 민중과 예술을 “가르는 담이나 울타리”를 가리킬까요? 어느 쪽을 가리키는지 뚜렷하지 않습니다. “작가(作家)가 되라”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글을 쓰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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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440) -로부터/-으로부터 8


그로부터 사흘 뒤, 이번엔 부천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황안나-내 나이가 어때서》(샨티,2005) 92쪽


 그로부터 사흘 뒤

→ 그 뒤로 사흘 지나서

→ 그 뒤로 사흘 있다가

→ 그러고 사흘 뒤

→ 그러고 나서 사흘 뒤

 …



  이 보기글에서는 ‘그로부터’를 ‘그때부터’나 ‘그날부터’로 손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로 손볼 수 있는데, “사흘 뒤”라는 말마디가 곧바로 나오니, 앞뒤를 살짝 손질해서 “그 뒤로 사흘 지나서”처럼 쓸 만합니다. 또는 “그러고”나 “그러고 나서”로 첫머리를 열어도 돼요. 4338.10.4.불/4348.2.2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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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52) -로부터/-으로부터 10


예로부터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고 꿋꿋이 그 길을 지켜온 진창, 숲, 벌판, 산과 함께 있었다

《리 호이나키/김병순 옮김-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의 길》(달팽이,2010) 76쪽


 예로부터

→ 예부터



  ‘예’는 한 낱말입니다. 이름씨이지요. ‘옛부터’로 잘못 쓰는 분이 많은데, ‘예부터’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그런데, ‘예부터’나 ‘옛날부터’가 아닌 ‘예로부터’나 ‘옛날로부터’로 잘못 쓰는 분이 꽤 많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니, 이 한국말사전에도 “예로부터 괴이한 전설이 하나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같은 보기글이 나옵니다. 이 보기글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내놓은 한국말사전도 ‘예로부터’를 ‘예부터’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에서 엮은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보기글을 살피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전(傳)하다’는 “이어지거나 남겨지다”나 “옮기어 주다”나 “물려주다”를 뜻하는 외마디한자말입니다. 그러니까, “전해 내려오고”는 겹말입니다. “예부터 전설이 하나 전한다”나 “예부터 전설이 하나 내려온다”나 “예부터 전설이 하나 있다”로 고쳐야 올바릅니다. 4348.2.27.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예부터 수천 해 동안 바뀌지 않고 꿋꿋이 그 길을 지켜온 진창, 숲, 벌판, 산과 함께 있었다


“수천 년(年)”은 “수천 해”로 손보고, ‘변(變)하지’는 ‘바뀌지’나 ‘달라지지’로 손봅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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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251) -로부터 2


그 편지는 지방에 있는 국민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보내진 것으로, 전에도 몇 번 서로 교신의 기회를 가졌던 분이다

《여승구-책사랑 33년》(한국출판판매주식회사,1988) 128쪽


 국민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보내진 것으로

→ 국민학교 선생님이 보내신 것으로

→ 국민학교 선생님한테서 받은 것으로

 …



  ‘-로부터/-으로부터’라는 토씨는 한국말에 없습니다. ‘-로 + -부터’라고 하지만, 이러한 토씨를 한국사람이 쓸 일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 토씨가 올림말로 나옵니다. 보기글도 몇 가지 나와요.


 아버지로부터 편지가 왔다 → 아버지한테서 편지가 왔다

 바퀴 달린 탈것은 마차로부터 고속 전철까지 발전해 왔다

→ 바퀴 달린 탈것은 마차에서 고속 전철까지 발돋움했다

 그 사람으로부터 나온 이야기 → 그 사람한테서 나온 이야기

 그곳으로부터 십 리 밖의 거리 → 그곳에서 십 리 밖 거리

 시험으로부터 해방되다 → 시험에서 풀려나다

 남쪽으로부터 꽃 소식이 전해 온다 → 남쪽에서 꽃내음이 퍼져 온다


  편지를 받거나 이야기를 들었다면 ‘(누구)한테서’ 편지를 받거나 이야기를 들었다고 적어야 올바릅니다. 무엇을 배울 적에도 “아버지한테서 배웠어요”라든지 “언니한테서 배웠어요”처럼 ‘-한테서’를 붙입니다. 말이 나온 자리를 살필 적에도 “누구한테서 나온 말인지 알아보다”처럼 써야 올발라요.


  한편, ‘-에서’라는 토씨를 넣어야 할 자리에 ‘-로부터/-으로부터’가 끼어들기도 합니다. 섣부른 번역 말투입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번역 말투’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널리 써서 퍼지’면, 이 또한 ‘새로운 한국말’이라고 여깁니다. 이를 놓고 ‘사회성’이라 하는데, 이는 사회성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학교와 언론과 지식과 철학이 이러한 번역 말투를 자꾸 쓰고 퍼뜨려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길든 말투이기 때문입니다. 학교와 언론과 지식과 철학은 이 같은 번역 말투를 한국말로 올바로 가다듬으려고 애쓴 적이 없다시피 합니다. 이제라도 한국말이 제길을 찾도록 학교와 언론과 지식과 철학이 모두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고 느낍니다. 4337.6.21.달/4348.2.27.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 편지는 시골에 있는 국민학교 선생님이 보내셨고, 예전에도 몇 번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셨던 분이다


‘지방(地方)’은 ‘시골’이나 ‘다른 고장’으로 다듬고, “보내진 것으로”는 “보내신 것으로”나 “보내셨고”로 다듬습니다. ‘전(前)에도’는 ‘예전에도’로 손질하고, “교신(交信)의 기회(機會)를 가졌던 분이다”는 “서로 편지를 주고받은 분이다”나 “서로 편지를 나눈 분이다”로 손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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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257) -로부터 3


자족으로부터 드높은 행복이 찾아온다

《슈마허/이덕임 옮김-자발적 가난》(그물코,2003) 172쪽


 자족으로부터

→ 스스로 넉넉해야

→ 스스로 넉넉하면

→ 삶을 손수 지어야

→ 삶을 손수 지으면

 …



  먼 나라에서 한국으로 찾아온 사람과 ‘영어 낱말’ 몇 가지를 이럭저럭 엮어도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빈틈이 없거나 알맞게 ‘영어 문장’을 읊지 못하더라도 이야기는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이 보기글을 보면 겉모습은 한국말이지만, 무늬만 한글일 뿐, 제대로 쓴 말이나 글이 아닙니다. 다만, 이처럼 글을 써도 이야기는 알아듣거나 나눌 수 있어요.


  행복은 높거나 낮지 않습니다. 행복이나 즐거움은 높낮이로 따지지 않습니다. 크게 즐겁거나 조금 즐겁다고 나눌 수 있을 뿐입니다. ‘자족’은 어떤 낱말일까요. 이 낱말을 그대로 쓰고 싶다면 “자족에서 큰 행복이 찾아온다”쯤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족’이라고 하는 ‘스스로 넉넉함’은 남이 나를 넉넉하게 하지 않고 내가 나를 넉넉하게 합니다. 그러니, 즐거움(행복)은 먼 데에서 나한테 찾아오지 않습니다. 이 보기글은 다시 “자족에서 큰 행복이 비롯한다”로 손볼 만해요. 이러고 나서 ‘자족’이나 ‘행복’ 같은 한자말도 손질해 줍니다. 4337.6.26.흙/4348.2.27.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넉넉한 삶에서 큰 즐거움이 비롯한다

삶을 손수 지어야 기쁨이 샘솟는다

스스로 넉넉해야 삶이 매우 즐겁다

삶을 손수 지어야 스스로 몹시 기쁘다


‘자족(自足)’이라는 한자말은 “(1) 스스로 넉넉함을 느낌 (2) 필요한 물건을 자기 스스로 충족시킴”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스스로 넉넉해야”나 “삶을 손수 지어야”로 손질해야지 싶습니다. ‘행복(幸福)’은 ‘기쁨’이나 ‘즐거움’으로 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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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319) -로부터 4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72년 10월 18일 국무총리 특별지시로 보사부 안에 위에 말한 것 같은 ‘연탄가스 중독방지 중앙대책위원회’가 설치되었으나 대책이란 말뿐, 실효 있는 방지 대책은 고사하고 공식적인 피해자 집계조차 못하고 있다니 한심하다기보다 기가 차 말이 안 나온다

《송건호-현실과 이상》(정우사,1979) 259쪽


 지금으로부터 5년 전 72년

→ 5년 전인 1972년

→ 다섯 해 앞서인 1972년

→ 올해로 치면 다섯 해 앞서인 1972년

→ 지난 1972년

→ 다섯 해 앞서인 지난 1972년

 …



  ‘지금(只今)으로부터’는 거의 관용구처럼 뿌리를 내리는 말투라고 할 만합니다. “바로 오늘부터 따져서”를 뜻한다고 할 텐데, “오늘부터 치면”이나 “올해로 치면”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한자말 ‘지금’은 한국말로는 ‘이제’나 ‘이적’을 가리킵니다. ‘이(只) + 이제(今)’으로 엮은 ‘지금’이거든요.


  이 보기글에서는 ‘지금으로부터’를 덜어도 됩니다. 다른 자리에서도 ‘지금으로부터’는 거의 군말이기 일쑤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으로부터’ 다음에 적는 말마디를 살피면, 굳이 이런 말을 안 넣어도 돼요. “5년 전인 72년 10월 18일”이라고만 적어도 뜻이나 느낌은 잘 드러납니다. 애써 꾸밈말을 넣고 싶다면 ‘지난’이나 ‘앞서’를 넣으면 돼요. 또는 “다섯 해 앞서인 지난 72년 10월 18일”처럼 적을 만합니다. 4337.8.8.해/4348.2.27.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다섯 해 앞서인 지난 1972년 10월 18일, 국무총리 특별지시로 보사부에 ‘연탄가스 중독방지 중앙대책위원회’가 생겼으나 대책이란 말뿐, 제대로 된 대책은 없고 피해자가 얼마나 되는지조차 알지 못하다니 바보스럽다기보다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온다


“5년(五年) 전(前)인”은 “다섯 해 앞서인”으로 다듬고, “보사부 안에”는 “보사부에”로 다듬으며, “위에 말한 것 같은”은 “앞서 말한”으로 다듬거나 덜어냅니다. ‘설치(設置)되었으나’는 ‘두었으나’나 ‘생겼으나’로 손보고, “실효(實效) 있는 방지(防止) 대책은 고사(姑捨)하고”는 “제대로 된 대책은 없고”나 “이를 막을 제대로 된 대책은 없고”로 손보며, “공식적(公式的)인 피해자 집계(集計)조차 못하고 있다니”는 “피해자가 얼마나 되는지조차 알지 못하다니”로 손봅니다. ‘한심(寒心)하다기보다’는 ‘어이없다기보다’나 ‘바보스럽다’로 손질하고, “기(氣)가 차”는 “어이가 없어”나 “터무니없어”로 손질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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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57) 당최


잡초가 어찌나 무성한지 안에 뭐가 있는지 당최 볼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황선미-나온의 숨어 있는 방》(창비,2006) 20쪽


 당최 볼 수도 없을

→ 도무지 볼 수도 없을

→ 영 볼 수도 없을

→ 하나도 볼 수 없을

→ 조금도 볼 수 없을

→ 무엇 하나 볼 수도 없을

→ 아무것도 볼 수 없을

 …



  한자말 ‘당초(當初)’에 토씨 ‘-에’를 붙인 ‘당초에’를 줄여서 ‘당최’로 쓴다고 합니다. 한자말 ‘당초’는 “일이 생기기 시작한 처음”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은 ‘처음’인데, 이를 한자로 옮기니 ‘당초’라는 낱말인 셈입니다. 한국말사전을 찾아보면 ‘당최’를 ‘도무지’나 ‘영’을 뜻하는 낱말이라고 풀이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처음부터 ‘도무지’나 ‘영’이라는 한국말을 써야 올바르다는 뜻입니다. ‘당최’라는 한자말은 뜬금없거나 엉뚱한 낱말이라는 소리입니다. 4348.2.26.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풀이 얼마나 우거졌는지 안에 뭐가 있는지 도무지 볼 수도 없었다


‘잡초(雜草)’는 ‘풀’로 손보고, ‘무성(茂盛)한지’는 ‘우거졌는지’로 손봅니다. “없을 지경(地境)이었다”는 “없을 노릇이었다”나 “없었다”로 손질합니다.



당최(當初+에) : ‘도무지’, ‘영’의 뜻을 나타내는 말

   - 무슨 말인지 당최 모르겠다 / 어찌 된 일인지 당최 알 수가 없어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56) 평평


해안 지역이 아주 평평한 경우, 강물에 실려 온 퇴적물이 넓은 지역 위에 골고루 퍼지면서 쌓여 바다 쪽을 향해 삼각형으로 펼쳐진 퇴적층이 생깁니다

《얀 리고/이충호 옮김-바다가 아파요》(두레아이들,2015) 35쪽


 아주 평평한 경우

→ 아주 고를 때에

→ 아주 판판할 적에

→ 아주 판판하면

→ 아주 반반하면

 …



  한자말 ‘평평(平平)하다’를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면 “바닥이 고르고 판판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평평하다 = 고르다’나 ‘평평하다 = 판판하다’인 셈입니다. 한국말 ‘고르다’는 “여럿이 다 높낮이, 크기, 양 따위의 차이가 없이 한결같다”를 뜻한다 하고, ‘판판하다’는 “물건의 표면이 높낮이가 없이 평평하고 너르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땅을 평평하게 다지다 → 땅을 고르게 다지다

 바위가 평평하다 → 바위가 판판하다

 바닥은 평평했다 → 바닥은 반반했다


  그러니까, ‘고르다’나 ‘판판하다’를 쓰면 됩니다. 그리고, ‘판판하다 < 펀펀하다’처럼 쓰고, ‘판판하다 > 반반하다’처럼 쓰며, ‘반반하다 < 번번하다’처럼 씁니다. 한국말은 느낌과 결을 살펴서 여러모로 알맞게 쓸 수 있습니다. 4348.2.26.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바닷가가 아주 판판하면, 냇물에 실려 온 것이 넓은 곳에 골고루 퍼지면서 쌓여, 바다 쪽으로 세모꼴로 펼쳐진 자리가 생깁니다

바닷가가 아주 판판할 때에, 냇물에 실려 온 것이 넓은 곳에 골고루 퍼지면서 쌓여, 바다 쪽으로 세모꼴로 펼쳐집니다


“해안(海岸) 지역(地域)”은 ‘바닷가’로 다듬고, “-한 경우(境遇)”는 “-한 때에”나 “-하면”으로 다듬으며, “넓은 지역(地域) 위에”는 “넓은 곳에”로 다듬습니다. ‘퇴적물(堆積物)’은 그대로 둘 만하지만, 곧바로 ‘퍼지면서 쌓여’처럼 이어지니 겹말이 돼요. 그래서 “실여 온 퇴적물”은 “실려 온 것”으로 손질합니다. “바다 쪽을 향(向)해”는 ‘쪽’과 ‘향하다’가 겹말로 쓰입니다. “바다 쪽으로”로 손질합니다. “삼각형(三角形)으로 펼쳐진 퇴적층(堆積層)이 생깁니다”는 “세모꼴로 펼쳐진 자리가 생깁니다”나 “세모꼴로 펼쳐집니다”로 손봅니다.



평평(平平)하다

1. 바닥이 고르고 판판하다

   - 땅을 평평하게 다지다 / 바위가 평평하다 / 바닥은 평평했다

2. 예사롭고 평범하다

   - 얼굴은 그저 평평하게 안 생겼더냐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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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670) 임자말 자리 1


취미가 직업이 되고 취향이 삶이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김종휘-너, 행복하니?》(샨티,2004) 72쪽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 우리는 이러한 때에 산다

→ 이러한 때에 산다

 …



  이 보기글을 보면 임자말 ‘우리는’이 글 사이에 끼어들었습니다. 서양말이나 서양 말법이라면 임자말을 홀가분하게 이곳저곳에 넣을 만할는지 모르나, 한국말에서는 임자말을 아무 자리에나 끼워넣지 않습니다. 한국말에서는 임자말을 글월 첫머리에 넣거나 아예 뺍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임자말 ‘우리는’을 맨 앞으로 옮기거나 아예 빼야 올바릅니다. 4339.12.27.물/4348.2.26.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우리는 취미가 직업이 되고 취향이 삶이 되는 때에 산다

우리는 즐거움을 일로 삼고 기쁨을 삶으로 짓는 때에 산다

우리는 재미있게 일하고 좋아하는 대로 산다


‘시대(時代)’는 ‘때’로 손보고, “살고 있다”는 “산다”로 손봅니다. “취미(趣味)가 직업(職業)”이 되고는 그대로 둘 만하지만, “즐거움을 일로 삼고”나 “재미있게 일하고”로 손볼 수 있습니다. “취향(趣向)이 삶이 되는”도 그대로 둘 만하지만, “기쁨을 삶으로 짓고”나 “좋아하는 대로 살고”로 손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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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692) 임자말 자리 2


비밀 정원으로 가는 길을 나는 알고 있다. 골목과 골목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지나 나는 그곳으로 간다. 그러다 활처럼 휘어지는 언덕길을 올라가면 초록 대문이 나오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비밀 정원에 들어선다 … 교문을 들어서며 별이에게 내가 물었다

《김옥-청소녀 백과사전》(낮은산,2006) 158, 162쪽


 정원으로 가는 길을 나는 알고 있다

→ 나는 꽃밭으로 가는 길을 안다

→ 뜰로 가는 길을 안다

교문을 들어서며 별이에게 내가 물었다

→ 나는 교문을 들어서며 별이한테 물었다

→ 교문을 들어서며 별이한테 물었다

 …



  이 보기글을 가만히 보면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처럼 글머리를 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자리에서는 임자말 ‘나는’을 글월 사이에 함부로 넣습니다. 글흐름을 본다면, 이 보기글에서는 ‘나는’을 모두 덜 만합니다. 이 보기글은 ‘내’가 임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끄니까, 굳이 ‘나는’이라는 임자말을 안 넣어도 됩니다. 굳이 ‘나는’을 넣고 싶으면 글월 첫머리로 옮겨 줍니다. 4340.1.30.불/4348.2.26.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나는 숨은 뜰로 가는 길을 안다. 골목과 골목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지나 그곳으로 간다. 그러다 활처럼 휘어지는 언덕길을 올라가면 푸른 대문이 나오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숨은 뜰에 들어선다 … 나는 교문을 들어서며 별이한테 물었다


“비밀(秘密) 정원(庭園)”은 “숨은 뜰”이나 “숨은 꽃밭”으로 다듬고, “알고 있다”는 “안다”로 다듬습니다. “초록(草綠) 대문”은 “푸른 대문”으로 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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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693) 임자말 자리 3


저는 라디오 방송을 처음 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야외의 낭독회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해방감을 저는 느낍니다

《김수영-퓨리턴의 초상》(민음사,1976) 212쪽


 어느 정도의 해방감을 저는 느낍니다

→ 저는 어느 정도 해방되었다고 느낍니다

→ 저는 이럭저럭 해방되었다고 느낍니다

→ 저는 제법 홀가분하다고 느낍니다

→ 꽤 홀가분합니다

 …



  글월 첫머리에서 ‘저는’이라고 밝힌 만큼, 이 다음부터는 ‘저는’이라는 임자말을 굳이 안 넣어도 됩니다. 따로 힘주어 말하려는 뜻이라면 ‘저는’을 넣을 만합니다. 다만, 글월 사이에 임자말을 넣을 수 없는데, 이 보기글은 글이 아닌 말을 옮겨서 적었기에, 말을 하다가 ‘저는’이라고 하는 말마디를 깜빡 잊었구나 싶어서 뒤늦게 넣을 수 있어요. 그러면, 이 보기글은 “그래도 어느 정도의 해방감을, 저는 느낍니다”처럼 사이에 쉼표를 넣어서 앞뒤를 끊어야 올바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했어도 글로 다시 옮길 적에는 임자말 ‘저는’을 앞으로 빼 주면 한결 매끄럽지요. 왜냐하면 말을 할 적에는 살짝 더듬거나 깜빡 차례를 잊거나 잘못 쓸 수 있으니, 글로 옮기면서 이런 대목을 손볼 수 있어요. 그래서, “그래도 저는, 어느 정도의 해방감을 느낍니다”처럼 보기글을 다시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임자말 자리를 제대로 추스른 뒤, “해방감을 느낍니다” 같은 겹말을 손질하고, “어느 정도의”에 붙은 ‘-의’를 손질합니다. 4340.1.30.불/4348.2.26.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저는 라디오 방송을 처음 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밖에서 하는 낭독회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이럭저럭 홀가분하다고 느낍니다


“야외(野外)의 낭독회(朗讀會)”는 “밖에서 하는 낭독회”나 “밖에서 하는 글잔치”로 손볼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程度)의 해방감(解放感)을 느낍니다”는 “어느 만큼 해방되었다고 느낍니다”나 “이럭저럭 홀가분하다고 느낍니다”나 “제법 홀가분합니다”로 손질합니다. ‘해방감’에서 ‘感’은 ‘느낌’을 뜻하니, “해방감을 느낍니다”처럼 적으면 겹말입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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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291) -ㅁ에 따라/-함에 따라 1


사랑에 빠진 자동차 구매자들이 자동차에 부정적인 이야기를 계속 무시함에 따라, 1920년대는 미국에서 특히 거셌던 자동차 붐으로 인해 수백만 대의 새로운 내연기관이 포효하는 소리로 들끓었다

《케이티 앨버드/박웅희 옮김-당신의 차와 이혼하라》(돌베개,2004) 38쪽


 부정적인 이야기를 계속 무시함에 따라

→ 궂은 이야기에 아예 귀를 닫자

→ 궂은 이야기를 깡그리 모르쇠 하자

→ 나쁜 얘기를 하나도 안 듣자

→ 나쁜 얘기는 조금도 안 들으려 하자

 …



  외국말을 한국말로 옮기면서 생긴 수많은 번역 말투 가운데 하나인 ‘-ㅁ에 따라/-함에 따라’입니다. 앞말이 한국말이면 “먹음에 따라”나 “입음에 따라”나 “시킴에 따라”나 “배부름에 따라”처럼 나타나고, 앞말이 한자말이나 이름씨 꼴이면 “무시함에 따라”나 “경청함에 따라”나 “주시함에 따라”나 “생각함에 따라”나 “사랑함에 따라”처럼 나타납니다.


 먹음에 따라 → 먹으면서 / 먹자

 입음에 따라 → 입으면서 / 입자

 경청함에 따라 → 귀여겨들으면서 / 귀담아들으면서

 주시함에 따라 → 지켜보면서 / 살펴보면서

 생각함에 따라 → 생각하면서 / 생각하자

 사랑함에 따라 → 사랑하면서 / 사랑하자


  애벌 번역을 하더라도 제대로 옮겨야 합니다. 애벌 번역을 한 뒤에는 찬찬히 손질해서 ‘한국사람이 한국말로 읽을 만하’도록 살펴야 합니다. 서양말을 한국말로 옮길 적에는 한국말답게 옮길 노릇이고, 한국말을 서양말, 이를테면 영어로 옮길 적에는 영어답게 옮겨야 합니다. 나라마다 쓰는 말이 다르니, 나라마다 어떠한 삶을 누리면서 어떠한 말을 나누는지 찬찬히 헤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37.7.19.달/4348.2.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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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자동차와 얽힌 궂은 이야기에 아예 귀를 닫자, 1920년대는 미국에서 더욱 거셌던 자동차 바람이 불어 수백만 대나 되는 새로운 내연기관이 내뿜는 소리로 들끓었다


“사랑에 빠진 자동차 구매자(購買者)들이”는 그대로 둘 수 있으나, “자동차에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로 손볼 만합니다. “자동차에 부정적(否定的)인 이야기를 계속(繼續) 무시(無視)함에 따라”는 “자동차와 얽힌 궂은 이야기에 아예 귀를 닫자”나 “자동차와 얽힌 나쁜 얘기를 하나도 안 듣자”로 손질하고, ‘특(特)히’는 ‘더욱’이나 ‘더’로 손질하며, “자동차 붐(boom)으로 인(因)해”는 “자동차 바람이 불어”로 손질합니다. “수백만 대의”는 “수백만 대에 이르는”이나 “수백만 대나 되는”으로 다듬고, ‘포효(咆哮)하는’은 ‘내뿜는’이나 ‘내뱉는’으로 다듬습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498) -ㅁ에 따라/-함에 따라 2


곶에 가까워짐에 따라 완만하고 푸르러 양이 노니는 언덕이 새하얀 단면을 보이는 석회석의 조금 높은 언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요코가와 세쯔코/전홍규 옮김-토토로의 숲을 찾다》(이후,2000) 75쪽


 가까워짐에 따라

→ 가까워지면서

→ 가까워지자

→ 가까워지니

 …



  번역 말투는 한국말이나 한국 말투가 아닙니다. 이런 말투는 낯섭니다. 낯설면서 한국말과 안 어울립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낯선 외국말’이나 ‘낯선 번역 말투’를 ‘새롭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이 번역 말투를 쓰면 ‘마치 새로운 한국말을 쓸 수 있는’듯이 여깁니다.


  새로운 말투는 ‘외국 말투’를 흉내내거나 ‘번역 말투’를 아무렇게나 쓴다고 해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새로운 말투는, 말 그대로 마음 깊이 새로운 숨결로 새로운 생각을 들려줄 때에 태어납니다.


  새롭게 거듭난 사람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늘 그대로이지만, 마음을 스스로 새롭게 바꾸어서 생각을 스스로 새롭게 짓기에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요. 살결이나 뼈를 뜯어고치기에 새로운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옷을 바꿔 입기에 새로운 사람이 되지 않아요. 번역 말투가 ‘새로운 말투’라도 되는듯이 잘못 생각하는 일이 없기를 빕니다. 번역 말투를 아무리 받아들여서 써도 한국말은 발돋움할 수 없다는 대목을 깨닫기를 빕니다. 한국말이 발돋움하거나 새롭게 거듭나려면, 한국말에 담는 넋을 슬기롭게 빚고 가꾸면서 보듬어야 합니다. 4339.2.7.불/4348.2.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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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에 가까워지면서 부드럽고 푸르러 양이 노니는 언덕이 새하얗게 잘린 모습이 보이는 석회석으로 된 조금 높은 언덕으로 바뀐다

부드럽고 푸르러 양이 노니는 언덕은, 곶에 가까워지니, 새하얗게 잘린 곳이 드러나는 석회석으로 된 조금 높은 언덕으로 바뀐다


‘완만(緩慢)하고’는 ‘부드럽고’나 ‘밋밋하고’나 ‘비스듬하고’나 ‘가파르지 않고’로 다듬고, “새햐안 단면(斷面)을 보이는 석회석의 조금 높은 언덕”은 “새하얗게 잘린 모습이 보이는 석회석으로 된 조금 높은 언덕”이나 “새하얗게 잘린 곳이 드러나는 석회석으로 된 조금 높은 언덕”으로 다듬습니다. “바뀌기 시작(始作)했다”는 “바뀐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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