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662) 응시


그냥 보라! 응시하라. 관념을 보려 하지 말고 보이는 세계를 그냥 보라

《앤소니 드 멜로/이현주 옮김-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샨티,2012) 26쪽


 그냥 보라! 응시하라

→ 그냥 보라! 바라보라

→ 그냥 보라! 그저 보라

→ 그냥 보라! 똑바로 보라

 …



  우리는 보면 됩니다. 무엇이든 바라보면 됩니다. 이 생각을 하거나 저 생각에 기울지 않는 몸짓으로 “그냥 보면” 됩니다. 그저 보는 모습이 ‘바라보기’요, 이 한국말을 한자말로 옮기니 ‘응시’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보기글은 겹치기로 쓴 셈입니다. 하나는 한국말로 쓰고, 다른 하나는 한자말로 쓴 셈이에요.


 천장의 한 곳을 응시만 하고 있었다

→ 천장에서 한 곳을 바라보기만 했다

→ 천장 가운데 한 곳을 보기만 했다

 선생님의 응시를 피했다

→ 선생님 눈길을 거슬렀다

→ 선생님이 보자 눈길을 돌렸다

 응시를 계속할 따름이었다

→ 자꾸 바라볼 뿐이었다

→ 그대로 볼 뿐이었다

 허공을 응시하다

→ 하늘을 바라보다

 멍하니 바깥을 응시하고 있었다

→ 멍하니 바깥을 보았다

→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늘 쓰는 말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늘 쓰는 말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기에 잘못 쓰기 일쑤입니다. 말 한 마디를 제대로 살필 수 있을 때에, 내 뜻과 넋을 제대로 담아서 이야기합니다. 글 한 줄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을 때에, 내 마음과 꿈을 제대로 실어서 이야기합니다. 4348.3.2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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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보라! 바라보라. 생각을 보려 하지 말고, 보이는 곳을 그냥 보라


‘관념(觀念)’은 ‘생각’이나 ‘뭇생각’으로 다듬고, ‘세계(世界)’는 ‘곳’으로 다듬습니다.



응시(凝視) : 눈길을 모아 한 곳을 똑바로 바라봄

   - 천장의 한 곳을 응시만 하고 있었다 /

     그는 선생님의 응시를 피했다 / 응시를 계속할 따름이었다 /

     허공을 응시하다 / 멍하니 바깥을 응시하고 있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665) 내심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그리고 사실은 자네도 내심 내 말에 동감한다는 걸 아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원마루 옮김-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포이에마,2014) 95쪽


 내심

→ 속으로

→ 마음으로

→ 속으로는

→ 마음으로는

→ 막상

→ 정작

 …



  한국말 ‘속마음’을 한자로 옮겨서 적으니 ‘내심’이 됩니다. ‘속(內) + 마음(心)’인 셈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사람은 처음부터 ‘속마음’이라 말하면 되고, ‘속내’라 말하면 돼요. 더 헤아리면, ‘마음’은 속에 있을 뿐, 겉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마음’이라고만 말해도 되고, ‘마음속’이라 말해도 됩니다.


 내심으로 쾌재를 부르다

→ 속으로 기뻐하다

→ 속으로 기쁘게 외치다

 내심으로 기뻐하다 

→ 속으로 기뻐하다

→ 속마음으로 기뻐하다

 내심을 드러내다

→ 속내를 드러내다

→ 속마음을 드러내다


  ‘속-’이라는 앞가지를 살려서 ‘속생각’이나 ‘속사랑’ 같은 말을 쓰기도 합니다. 이러한 말틀을 헤아리면 ‘속빛’이나 ‘속뜻’이나 ‘속넋’ 같은 말을 쓸 수 있고, 이런 말도 제법 두루 씁니다. ‘속이야기’라든지 ‘속꿈’이라든지 ‘속말’ 같은 말도 쓸 만하고, ‘속삶’이나 ‘속기운’ 같은 말을 쓸 수도 있어요. 4348.3.2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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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그리고 막상 자네도 속으로는 내 말을 받아들일 줄 아네


‘사실(事實)은’은 ‘알고 보면’이나 ‘막상’이나 ‘정작’으로 다듬고, “동감(同感)한다는 걸”은 “같은 줄”이나 “같이 생각하는 줄”이나 “받아들일 줄”로 다듬습니다.



내심(內心)

1. = 속마음

   - 내심으로 쾌재를 부르다 / 내심으로 기뻐하다 / 내심을 드러내다

2. [불교] ‘마음’을 외상(外象)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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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62) 통하다通 85


특히 기능과 같은 특기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잘 그리는 아이는 항상 잘 그리는 아이로 통한다

《문현식-선생님과 함께 일기 쓰기》(철수와영희,2012) 171쪽


 잘 그리는 아이로 통한다

→ 잘 그리는 아이로 여긴다

→ 잘 그리는 아이로 본다

→ 잘 그리는 아이 소리를 듣는다

→ 잘 그리는 아이가 된다

 …



  이 보기글에 나오는 ‘통하다’는 ‘여기다’나 ‘보다’나 ‘생각하다’ 같은 한국말을 밀어냈습니다. ‘통하다’라는 외마디 한자말이 ‘여기다·보다·생각하다’를 뜻하기도 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여기다·보다·생각하다’를 알맞게 쓰던 말결이 무너진 셈입니다. 어떤 말이든 제대로 살피고 올바로 깨달아서 슬기롭게 쓸 수 있기를 빕니다. 4348.3.2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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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솜씨나 재주는 바뀌지 않기 때문에, 잘 그리는 아이는 늘 잘 그리는 아이로 여긴다


‘특(特)히’는 ‘더욱이’나 ‘게다가’로 손봅니다. “기능(器能)과 같은 특기(特技)”는 겹말입니다. 똑같은 것을 가리키는 한자말입니다. 그래서 “솜씨와 재주”로 손질합니다. ‘변(變)하지’는 ‘바뀌지’나 ‘달라지지’로 다듬고, ‘항상(恒常)’은 ‘늘’이나 ‘언제나’로 다듬습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64) 통하다通 86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가장 잘 배운다. 놀이는 기쁨과 만족을 주고 일상의 어려움에 초연해지게 돕는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원마루 옮김-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포이에마,2014) 44쪽


 놀이를 통해 가장 잘 배운다

→ 놀이를 하며 가장 잘 배운다

→ 놀이를 할 때 가장 잘 배운다

→ 놀이로 가장 잘 배운다

→ 놀면서 가장 잘 배운다

→ 놀 때에 가장 잘 배운다

 …



  아이들은 놀면서 배웁니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면서 배웁니다. 아이들은 놀이를 거쳐서 어른으로 나아갑니다. 아이들은 놀이를 누리면서 무엇이든 새롭게 깨닫습니다. 아이들은 즐겁게 놀기에 웃습니다. 아이들은 기쁘게 놀고 노래하기에 아름답게 자랍니다. 아이들은 놀이와 함께 무럭무럭 크고, 아이들은 놀이를 동무로 삼아서 맑은 바람을 마십니다. 4348.3.2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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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놀면서 가장 잘 배운다. 놀이는 기쁘고 즐거우며, 어려운 일에도 씩씩해지게 돕는다


“기쁨과 만족(滿足)을 주며”는 “기쁘고 즐거우며”로 손질하고, “일상(日常)의 어려움에 초연(超然)해지게”는 “어려운 일에도 씩씩해지게”나 “어려운 일에도 꿋꿋하도록”이나 “어려운 일에도 의젓하도록”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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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94) 풀솜할매


아궁이 앞에서 불때던 풀솜할매가 / 찬장에 숨겼다 꺼내 마시곤 / 나무광 뒤로 된시름 던지듯

《김수우-붉은 사하라》(애지,2005) 52쪽



  우리는 흔히 ‘외할머니·외할아버지’와 ‘친할머니·친할아버지’ 같은 말을 씁니다. 그런데 ‘外’와 ‘親’이라는 앞머리는 한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말을 제법 오래 썼으나, 이 말은 한자가 이 땅에 들어오고 나서 퍼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한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앞서 우리는 어떤 말을 썼을까요? 이 대목을 알기는 쉽지 않지만, 지난날에는 따로 ‘외·친’으로 가르지 않고 그냥 ‘할머니·할아버지’라고만 썼을 수 있습니다. 여느 시골에서는 두고두고 집과 살림을 고스란히 물려받으면서 살았을 테니 굳이 ‘외·친’으로 가를 일이 없었다고도 할 만합니다. 어머니 쪽 할머니와 아버지 쪽 할머니를 따로 갈라야 했다면, 이를 가리키는 오래된 이름도 틀림없이 있었으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외할머니’를 가리키는 이름이 하나 따로 있습니다. 바로 ‘풀솜할머니’입니다. 고장에 따라서 ‘풀솜할매’나 ‘풀솜할미’처럼 쓰기도 합니다. ‘풀솜’은 “실을 켤 수 없는 허드레 고치를 삶아서 늘여 만든 솜”이라고 합니다. “빛깔이 하얗고 반짝거리며 가볍고 따뜻하다”고 해요. 한국말사전을 보면 ‘풀솜할머니’가 올림말로 나옵니다. 뜻풀이는 “‘외할머니’를 살가이 이르는 말. 외손자를 사랑하는 따뜻하고 두터운 마음을 나타내려는 뜻으로 쓴다”로 나옵니다.


  ‘풀솜할머니(풀솜할매, 풀솜할미)’라는 낱말은 누에고치가 이 땅에 들어오고 나서 생겼으리라 생각합니다. ‘풀솜’을 빗대어서 쓰는 낱말이니까요. 이렇게 따지면 ‘풀솜할머니’라는 낱말이 처음 생겨서 쓰인 지 무척 오래되었다고 할 만합니다.


 풀솜할머니

 풀솜할아버지


  ‘풀솜할머니’라는 낱말은 있으되 ‘풀솜할아버지’라는 낱말은 없는 듯합니다.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이 아예 없는지 아니면 있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외할머니처럼 따뜻하고 두터운 마음으로 아이를 보살피려는 외할아버지도 틀림없이 있어요. 그러나, ‘풀솜할아버지’라는 낱말은 따로 안 쓴다면, 아무래도 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아이를 덜 따뜻하거나 덜 살가이 아낀다고 여길 만하구나 싶어요. 가없는 사랑과 믿음으로 아이를 살가이 아끼는 따뜻한 품이 바로 ‘풀솜’과 같은 숨결이요, 이러한 숨결을 ‘풀솜할머니’라는 낱말에 담았구나 싶어요.


  여기에서 한 가지를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비록 이제껏 ‘풀솜할아버지’라는 낱말이 거의 안 쓰였다고 할 테지만, ‘어머니를 낳은 할아버지’도 따뜻하고 살가우며 도타운 품이 되어 ‘풀솜할아버지’가 될 수 있습니다. 외할머니 아닌 친할머니도 따뜻하고 살가우며 도타운 품이 되어 새로운 이름을 얻을 수 있습니다. 4348.3.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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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38 ‘차갑다’와 ‘뜨겁다’



  차가우면 그대로 얼어붙습니다. 뜨거우면 녹아서 날아오릅니다. 차가우니까 땅바닥에 들러붙습니다. 뜨거우니까 어느덧 몸뚱이가 사라지면서 아지랑이가 됩니다. 차가우니까 딱딱한 얼음이 됩니다. 뜨거워서 아지랑이가 된 숨결은 하늘 높이 날아오릅니다. 얼음은 그대로 머뭅니다. 어디로도 안 갑니다. 하늘 높이 날아오른 아지랑이는 이내 구름이 됩니다. 구름이 된 아지랑이는 빗물이 됩니다. 빗물이 된 구름은 하늘을 가르며 땅으로 내려옵니다. 하늘을 가를 적에 바람을 타고 온누리 골골샅샅으로 퍼진 빗물은 냇물도 되고 샘물도 되며 우물물도 되고 바닷물도 됩니다. 골짝물도 되고 시냇물도 되며 가람물도 되지요. 온갖 물로 새로 태어납니다. 온갖 물로 몸을 바꿉니다. 온갖 물로 거듭나는 숨결이 되어요.


  차가워서 얼어붙는 몸은 늘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늘 그대로 있기에 ‘고인 숨결’은 아닙니다. 늘 그대로 있을 뿐입니다. 차가워서 얼어붙어도, 이 몸은 바로 내 몸입니다. 차가움을 가득 안은 몸입니다. 차가움을 가득 안아서 무거우니 어느 곳에도 못 가는데, 아직 아무 곳으로도 안 갔을 뿐, 마음속에 따사로운 꿈을 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차가운 몸은 따사로운 마음을 꿈으로 꿉니다. 따사로운 마음으로 태어나서 새롭게 피어나겠다는 꿈을 꾸면서 깊디깊이 잠을 잡니다. 이른바 겨울잠입니다.


  뜨거워서 녹는 몸은 언제나 바뀝니다. 언제나 바뀌니 언제나 흐릅니다. 언제나 하르니 언제나 새롭습니다. 뜨거운 기운은 어느 한곳에 머물지 않습니다. 뜨거운 기운은 모든 곳을 흐릅니다.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이 되며, 모든 것을 생각합니다. 뜨거운 기운은 언제나 모든 것에 스스로 깃들어 모든 것으로 살다가 새로운 모든 것이 됩니다. 뜨거운 것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이른바 꽃이고 열매입니다.


  그런데 뜨거운 기운은 어느 날 문득 ‘다른 새로움’을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짓고, 모든 것이 되며, 모든 것을 하고, 모든 것을 보는 삶에서, 다른 새로움을 한 가지 생각합니다. 언제나 ‘모든 것(온 것)’으로 사는 뜨거운 기운은 ‘뜨거운 기운이 아닌 새로운 것’을 생각해서, ‘삶’이 아닌 앞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뜨거운 기운이 나아가는 곳은 ‘죽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뜨거운 기운은 삶을 누리면서 모든 것을 짓고 사랑을 꽃피우고 열매를 맺는데, 이렇게 하면서 문득 한 가지를 새롭게 그리니 바로 ‘죽음’이자 ‘잠(겨울잠)’이요 ‘꿈’입니다. 이제 ‘모두 다 지었’으니까, ‘잠들어서 꿈을 꾸’려고 하지요. 마당에서 놀던 아이가 집으로 돌아와서 밭으로 간다고 할까요. 씨앗이 밭에서 자라 싱그럽게 자란 풀이 되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 다시 겨울을 맞이하면서 흙(밭)으로 돌아간다고 할까요.


  ‘차가운 기운’은 ‘뜨거운 기운’이 바뀐 몸입니다. ‘차가운 기운’과 ‘뜨거운 기운’은 한몸이요 같은 넋입니다. ‘차가운 기운’과 ‘뜨거운 기운’은 한마음이면서 같은 숨결입니다.


  몸이 차갑게 식습니다. 죽음입니다. 죽은 몸은 흙으로 돌아가 새로운 흙을 깨웁니다. 죽은 몸에서 나온 넋은 새로운 몸을 찾아서 꿈을 꿉니다. 새로운 몸을 찾는 넋은 꿈을 꾸려고 ‘밤낮누리’로 갑니다. 밤낮누리에 깃들어 꿈을 꾸는 넋은 천천히 온별(온 우주)을 살피면서 새롭게 나아갈 길을 찾습니다.


  넋은 새 길을 찾으면 새 곳으로 가서 새 몸을 입습니다. 넋이 새 몸을 입으면, 새로운 몸은 다시 뜨거운 기운이 돕니다. 아기가 태어나지요. 4348.2.28.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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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63) 백白- 1


할머니는 5분 동안 등에서 아기를 내려놓는 대가로 백동전 다섯 개를 아저씨 손에 놓아 주고 돌아갔습니다

《임정진-나보다 작은 형》(푸른숲,2001) 33쪽


 백동전 다섯 개

→ 흰동전 다섯 닢

→ 하얀 동전 다섯 닢

→ 반짝이는 동전 다섯 닢

→ 하얗게 반짝이는 동전 다섯 닢

 …



  동화책에 나오는 ‘백동전’이라는 낱말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백동전(白銅錢)’을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면 “‘백통전’의 원말”이라 나오고, ‘백통전’은 “= 백통돈”이라 나오며, ‘백통돈(白銅-)’은 “백통으로 만든 돈”이라 나옵니다. ‘백통(白銅)’은 “구리, 아연, 니켈의 합금. 은백색으로 화폐나 장식품 따위에 쓴다”고 나와요. 그러니까, ‘백동전’이란 ‘은백색 동전’이라는 소리이니, 이 보기글에서는 ‘은빛 동전’이나 ‘새하얀 동전’이나 ‘하얗게 반짝이는 동전’으로 손볼 만합니다. ‘은백색(銀白色)’은 “은의 빛깔과 같은 흰색”을 뜻하고, ‘은색(銀色)’은 “은의 빛깔과 같이 반짝이는 색”을 뜻하거든요.


  조금 더 헤아린다면, ‘백동전’은 그냥 ‘흰동전’이나 ‘하얀 동전’이라고 손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전(銅錢)’은 한국말로 ‘쇠돈’이기도 합니다. 더 손보고 싶다면 ‘흰쇠돈’으로까지 손볼 수 있어요.


 백구두 → 흰구두

 백장미 → 흰장미

 백포도주 → 흰포도술


  다음으로 ‘白-’이라는 한자말을 생각해 봅니다. 이 한자말을 그대로 쓰고 싶다면 그대로 쓸 수 있으나, ‘흰-’이라는 한국말이 있습니다. 굳이 ‘白-’이라는 한자말을 쓸 까닭이 없이 ‘흰-’이라는 한국말을 쓰면 됩니다. ‘흰고니’와 ‘까만고니’처럼 쓰면 되고, ‘흰오리’와 ‘까만오리’처럼 쓰면 됩니다. ‘흰털’과 ‘까만털’이라든지 ‘흰옷’과 ‘검은옷’처럼 쓰면 되지요. 한국사람이 한겨레를 일컬을 적에는 ‘백의민족(白衣民族)’이 아니라 ‘흰옷겨레’처럼 적으면 한결 알아보기에 쉬우면서 고운 말이 됩니다. 4348.3.18.물.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할머니는 5분 동안 등에서 아기를 내려놓는 삯으로 새하얀 동전 다섯 닢을 아저씨 손에 놓아 주고 돌아갔습니다


“내려놓는 대가(代價)로”는 “내려놓는 값으로”나 “내려놓는 삯으로”로 손질하고, “다섯 개(個)”는 “다섯 닢”으로 손질합니다.



백(白)- : ‘흰’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 백구두 / 백장미 / 백포도주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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