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41 크거나 작다


  두 아이가 있습니다. 두 아이가 나란히 설 적에 키가 같을 수 있고, 한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키가 크거나 작을 수 있습니다. 둘을 놓고 보면 둘이 같거나 다릅니다. 100원이 있습니다. 100원은 99원보다 큽니다. 그러나 101원보다 작습니다. 101원은 100원보다 크지만, 102원보다 작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따지면, 더 큰 숫자나 더 작은 숫자는 없습니다. 이리하여, 한 달에 버는 돈이 1000만 원이라고 할 때에 0원이라고 할 때에 어느 쪽이 더 크거나 작지 않습니다. 1000만 원과 999만 원을 대고, 999만 원과 998만 원을 대면서 차근차근 살피면 모두 같거든요.

  생각해 보면 됩니다. 1000만 원을 벌면 기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999만 원을 벌면 안 기쁠까요? 1001만 원을 벌면 더 기쁠까요? 998만 원을 벌면 덜 기쁘거나 안 기쁠까요? 이렇게 1만 원씩 덜면서 0원까지 오고 보면, 이러고 나서 -1만 원과 -1000만 원까지 가 보아도 모두 같아요.

  크기란 틀림없이 있습니다. 어떻게 있느냐 하면, ‘크기’를 생각할 때에는 크기가 틀림없이 있습니다. 크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어떠할까요? 네, 크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크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두 아이를 바라보면서 한 아이가 큰지 작은지 따지지 않습니다. 아니, 크기를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으니까, 누구 키가 큰지 아예 알지 못해요. 생각하지 않고, 바라보지 않으니, ‘크기를 생각하지 않고 바라보지 않은 사람’한테는 참말로 ‘크기가 없’습니다.

  삶은 ‘크기’로 따지거나 헤아리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큰’ 집도 없고 ‘작은’ 집도 없어요. 어느 만큼 되어야 큰 집이고 어느 만큼 되면 작은 집일는지 생각해 보셔요. 만 평쯤 되면 큰 집일까요? 그러면, 만하고 한 평이면? 만하고 두 평이면? 만하고 백 평쯤 되는 집이 옆에 있으면 만 평짜리 집도 ‘작은’ 집이 되고 맙니다. 열 평짜리 집이라 해도 아홉 평짜리 집이 옆에 있으면, 열 평짜리 집도 ‘큰’ 집이 되어요.

  삶도 집도 서로 같습니다. 우리는 ‘큰’ 집이나 ‘작은’ 집에 살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스스로 살 만한’ 집에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부자여야 하지 않고, 가난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살 만한’ 살림을 꾸려야 합니다. 즐겁게 지낼 집에서 살면 됩니다. 즐겁게 가꿀 살림이면 됩니다.

  책을 몇 권쯤 읽어야 많이 읽는다고 할까요? 한 해에 천 권 읽으면 많이 읽는 셈일까요? 그러면 구백아흔아홉 권 읽는 사람은 책을 적게 읽는 셈일까요? 아닐 테지요. 구백아흔여덟 권 읽는 사람은 책을 적게 읽는다고 하지 않을 테지요? 이 숫자대로 한 권씩 덜어 오백 권 …… 삼백 권 …… 백 권 …… 열 권, 한 권에 이릅니다. 이제 0권에 닿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책 많이 읽는 잣대’란 없습니다. 삶을 따지거나 재는 잣대는 있을 수 없습니다. 숫자는 언제나 눈속임입니다.

  더 큰 사랑이 없고, 더 작은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이면 모두 사랑입니다. 더 큰 선물이 없고, 더 작은 선물이 없습니다. 선물이면 모두 선물입니다. ‘크기’를 따지려 할 적에는 ‘삶’을 못 봅니다. ‘크기’에 얽매이는 사람은 ‘사랑’하고 멀어집니다. ‘크기’를 자꾸 살피면서 붙잡으려 한다면 ‘꿈’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크기는 늘 눈가림입니다.

  큰 꿈이나 작은 꿈은 없습니다. 큰 마음이나 작은 마음은 없습니다. 큰 생각이나 작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있을 것’이 있습니다. 그저 우리 삶이 있고, 사랑과 꿈이 있습니다. 눈을 뜨고 보아야 합니다. 눈을 속이거나 가리는 거짓을 벗겨야 합니다.

  한 사람이 하루 동안 열 마지기 땅뙈기를 야무지게 갈았기에 훌륭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열흘 동안 한 마지기 땅뙈기를 겨우 갈았기에 덜떨어지지 않습니다. 둘은 저마다 제 삶에 맞게 땅을 갈았습니다.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며 누군가는 100점을 맞을 테고 누군가는 50점을 맞을 테며 누군가는 0점을 맞습니다. 100점이기에 훌륭하지 않습니다. 점수는 늘 점수입니다. 우리가 바라볼 곳은 ‘크기’나 ‘숫자’나 ‘점수’가 아닙니다. 은행계좌나 권력이나 이름값을 볼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사람’을 보고 ‘삶’을 보며 ‘사랑’과 ‘꿈’을 보면 됩니다. 보아야 할 모습을 볼 때에 사람이 되고, 보아야 할 삶을 보면서 아낄 때에 삶이 되며, 보아야 할 삶을 보면서 기쁘게 웃고 노래할 때에 사랑과 꿈이 피어납니다. 4348.3.1.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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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98) 책동냥


날을 갈아 보라 하면, 이것은 눈동냥으로 안 되는데, 그래서는 연장을 쓸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니시오카 쓰네카즈/최성현 옮김-나무에게 배운다》(상추쌈,2013) 69쪽


  “곁에서 얻어 보는 일”을 가리켜 ‘눈동냥’이라 합니다. “남이 하는 말을 얻어들어서 앎”을 가리켜 ‘귀동냥’이라 합니다. 곁에서 얻어 보기에 ‘눈동냥’이라 한다면, 이는 ‘곁동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말을 얻어들어서 알기에 ‘귀동냥’이라 한다면, 이는 ‘말동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눈동냥 = 곁동냥

 귀동냥 = 말동냥


  무언가 얻으려고 하기에 ‘동냥’을 합니다. 동냥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좋은 일도 아닙니다. 동냥은 그저 동냥입니다. 없기에 얻으려 하는 몸짓이 ‘동냥’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너한테 동냥을 할 수 있고, 모레에는 네가 나한테 동냥을 할 수 있어요. 서로 동냥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삶을 나눕니다. 배가 고프면 ‘밥동냥’을 합니다. 목이 마르면 ‘물동냥’을 하지요.


 책동냥 : 책을 읽어 아는 일

 노래동냥 : 노래를 들어 아는 일

 춤동냥 : 춤을 보고 아는 일


  우리는 여러 가지 ‘동냥’을 할 수 있습니다. 학교는 다니지 못했어도 책을 읽어서 스스로 익히거나 알면 ‘책동냥’을 하는 셈입니다. 어떤 사람한테서 따로 배우지 않았으나 둘레에 흐르는 노래를 듣고 노래를 익힌 사람은 ‘노래동냥’을 한 셈입니다. 이와 비슷한 얼거리로 ‘춤동냥’을 합니다.


  한편, ‘일동냥’이나 ‘놀이동냥’도 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지켜보면서 일을 익혔으면 ‘일동냥’입니다. 다른 아이가 새로운 놀이를 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혼자 해 볼 수 있으면 ‘놀이동냥’입니다. 4348.3.25.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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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40 해, 봐, 돼



  모든 일을 합니다. 모든 삶을 봅니다. 모든 사랑이 됩니다. 할 때에 보고, 볼 때에 됩니다. 될 때에 다시 하고, 다시 할 때에 다시 보며, 다시 볼 때에 다시 됩니다. 이윽고 새롭게 합니다. 새롭게 하기에 새롭게 봅니다. 새롭게 보기에 새롭게 됩니다.


  하지 않는 일은 될 수 없습니다. 하지 않으니 안 되기 마련입니다. 하지 않은 일은 볼 수 없습니다. 하지 않으니 되지 않고, 되지 않았기에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이 되기를 바란다면, 해야 합니다. 무엇이 되기를 바란다면, 하면서 보아야 합니다.


  큰 일이나 작은 일은 따로 없습니다. 그저 우리가 하는 일이 있습니다. 더 재미난 놀이나 더 재미없는 놀이가 따로 없습니다. 그저 우리가 하는 놀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든, 할 때에 눈앞에 하나씩 나타나고, 눈앞에 하나씩 나타나기에 천천히 됩니다(이루어집니다).


  생각을 할 때에 볼 수 있습니다. 생각을 하지 않을 때에는 볼 수 없습니다. 생각을 하기에, 내가 생각으로 마음에 심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마음에 아무런 모습을 심지 않았으니, 아무런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생각을 하고, 이 생각이 어떠한 그림인지 찬찬히 봅니다. 마음에 그린 생각을 찬찬히 보면서, 내 넋이 몸한테 이 그림에 따라 움직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내 몸은 내 넋이 바라는 대로 움직이고, 이렇게 움직이면서 비로소 됩니다. 생각을 하기에, 생각을 보며, 생각이 삶으로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안 됩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 삶도 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그저 제자리에 멈춥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은 ‘남이 시킨 일’만 따르다가 죽음길로 나아갑니다. 왜냐하면, 내가 스스로 하는 생각이 아니라면 기쁨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내가 스스로 하는 생각은 언제나 기쁘기에, 이 기쁨을 보면서, ‘기쁜 삶’이 됩니다. 기쁜 삶을 이룹니다. 남이 시키는 일만 할 적에는 ‘내가 바라지 않던 일(내가 생각하지 않던 일)’이기에 어렵습니다. 어려우면서 지겹거나 따분합니다. 어려우면서 지겹거나 따분하기에 고단하거나 고달픕니다. 몸이 닳지요. 몸이 닭으니 어느새 낡아요. 이리하여 죽음길로 갑니다.


  내 삶은 내가 짓습니다. 내 삶은 내가 생각을 해서 마음에 심은 씨앗을 그림으로 환하게 바라보면서, 이 그림을 넋이 몸한테 바람처럼 말을 들려주기에 비로소 삶으로 드러납니다(됩니다). 해야, 보고, 됩니다. ‘해, 봐, 돼(so be it)’입니다.


  어른이 아이한테 말합니다. “자, 해 보렴. 다 된단다.” 아이가 어버이한테 말합니다. “내가 했어요. 이리 와서 보셔요. 다 됐어요.” ‘해 보면 되는’ 일입니다. ‘해 보기에 되는’ 삶입니다. ‘해 볼 때에 되는’ 사랑이고 꿈입니다. 그저 합니다. 그저 하고 봅니다. 이것을 따지거나 저것을 가리지 말고, 그저 생각부터 합니다. 마음으로 생각부터 하면서 기쁘게 몸으로 합니다. 좋고 나쁨을 따지지 말고 합니다. 아름다움을 생각하면서 합니다. 아름다움을 보려고, 아름답게 되려고, 내 마음에 아름다운 생각을 심습니다. 4348.3.1.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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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63) 진짜 3


미국에서도 이런 상황은 거의 진실에 가깝다. 미국에서 진짜 권력은 가장 많은 돈을 소유한 자들에게 있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로버트 W.맥체스니/전규찬 옮김-디지털 디스커넥트》(삼천리,2014) 48쪽


 진짜 권력은

→ 참 권력은

→ 숨은 권력은

→ 가장 큰 권력은

→ 가장 힘센 권력은

→ 가장 무서운 권력은

 …



  보기글을 보면 ‘진실(眞實)’이라는 한자말이 나옵니다. 이 낱말은 “거짓이 없는 사실”을 뜻한다고 합니다. ‘사실(事實)’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을 뜻한다고 합니다. ‘실제(實際)’는 “사실의 경우나 형편”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래저래 돌림풀이인데, “거짓이 없는”이라는 말풀이를 헤아린다면, ‘진실·사실·실제’는 모두 ‘참’을 가리킨다고 할 만합니다. 한국말로는 ‘참’이라고 하면 되는데, 여러 가지 한자말을 자꾸 쓰는 셈입니다.


  “진실에 가깝다”라 적은 글월 바로 뒤에 “진짜 권력”이라는 글월이 나옵니다. ‘진실’도 ‘참’을 가리키고 ‘진짜’도 ‘참’을 가리킵니다. 글흐름을 살핀다면, 미국이나 다른 나라나 가장 돈이 많은 사람한테 ‘권력이 참으로 있다’는 이야기이니, “참 권력”이나 “참된 권력”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권력이라 할 수 있고, 이는 “숨은 권력”이라 할 수 있는 한편, “가장 큰 권력”이나 “가장 센 권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4348.3.24.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미국에서도 이런 모습은 거의 똑같다. 미국에서 가장 큰 권력은 틀림없이 가장 돈이 많은 이들한테 있다

미국에서도 이런 모습은 똑같이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돈이 가장 많은 이들한테 가장 큰 권력이 있다


“이런 상황(狀況)”은 “이런 모습으로 다듬고, “거의 진실(眞實)에 가깝다”는 “거의 똑같다”나 “거의 똑같이 볼 수 있다”로 다듬습니다. “가장 많은 돈을 소유(所有)한 자들에게”는 “돈을 가장 많이 가진 이들한테”나 “돈이 가장 많은 이들한테”로 손질하고, “-에게 있다는 점(點)에 의심(疑心)의 여지(餘地)가 없다”는 “틀림없이 -한테 있다”나 “말할 것도 없이 -한테 있다”로 손질합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64) 진짜 4


카토를 좋아하지만, 진짜 사랑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쿄우 마치코/한나리 옮김-미카코 5》(미우,2012) 67쪽


 진짜 사랑

→ 참된 사랑

→ 참다운 사랑

→ 참사랑

 …



  사랑이 참답다면 ‘참사랑’이라 하고, 사랑이 거짓스럽다면 ‘거짓사랑’이라 합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는 ‘참사랑’이라 적으면 되고, “참된 사랑”이나 “참다운 사랑”이라 적으면 돼요. 또는 “사랑다운 사랑”처럼 적어 볼 수 있어요. 4348.3.24.불.ㅎㄲㅅㄱ


..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65) 진짜 5


스스로 만족스러운 목적을 찾아낼 줄 아는 것, 이것이 진짜 교육의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존 테일러 개토/김기협 옮김-바보 만들기》(민들레,2005) 88쪽


 진짜 교육

→ 참된 교육

→ 참다운 교육

→ 참교육

→ 참 가르침

→ 참 배움

 …



  교육을 놓고 “진짜 교육”을 말하려 한다면, “가짜 교육”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교육이 ‘진짜’이거나 ‘가짜’라는 말은 어떤 뜻일까요. 제대로 된 교육이거나 제대로 되지 않은 교육이라는 뜻일 테지요. 참답게 하는 교육이거나 참답게 하지 못하는 교육이라는 뜻일 테고요.


  교육이라면 ‘참교육’이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이와 맞물려 ‘거짓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육’이라는 낱말은 ‘가르침’을 뜻하니 “참 가르침”이라 적어도 어울리고, “참 배움”이라 적어 볼 수 있어요. 4348.3.24.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스스로 받아들일 만한 뜻을 찾아낼 줄 알기’가 바로 참교육에서 큰 자리를 차지합니다

‘스스로 기뻐할 만한 길을 찾아낼 줄 알기’가 바로 참된 배움을 이루는 한 가지입니다

‘스스로 마음에 드는 삶을 찾아낼 줄 알기’가 바로 참 배움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족(滿足)스러운 목적(目的)을 찾아낼 줄 아는 것”은 “기뻐할 만한 길을 찾아낼 줄 알기”나 “받아들일 만한 뜻을 찾아낼 줄 알기”로 다듬습니다. ‘이것이’는 ‘바로’로 손볼 수 있고, “교육(敎育)의 중요(重要)한 한 부분(部分)입니다”는 “교육에서 큰 자리를 차지합니다”나 “배움을 이루는 한 가지입니다”로 손봅니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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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3-24 21:29   좋아요 0 | URL
교육은 가르치는 사람의 편에서 쓰는 말이니 참가르침은 괜찮은데 참배움은 조금 어울리지 않는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명사로만 볼 때요.

숲노래 2015-03-24 21:33   좋아요 1 | URL
네 그럴 수 있어요.
그저 이 보기글은 `가능성`으로만 적어 보았어요.
어떤 자리에서는 `배움`으로 써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61) 진짜 1


진짜 못 말릴 녀석이구만. 넌 지난 6년 동안 뭔가 하나라도 배운 게 없이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던 게냐

《모리모토 코즈에코/이지혜 옮김-개코형사 ONE코 9》(대원씨아이,2015) 73쪽


 진짜 못 말릴 녀석이구만

→ 참 못 말릴 녀석이구만

→ 아주 못 말릴 녀석이구만

→ 끔찍히 못 말릴 녀석이구만

→ 바보처럼 못 말릴 녀석이구만

 …



  나는 어릴 적에 ‘진짜·가짜’라는 낱말은 올바르지 않으니 쓰지 말라는 소리를 으레 들었습니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어린 우리가 이런 말을 쓰면 낯을 찡그리면서 ‘참·거짓’으로 바로잡으라고 이르셨고, 학교(국민학교)에서도 ‘참·거짓’으로 쓰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한 해 두 해 흐르는 동안 ‘참·거짓’으로 쓰라고 말하는 어른은 차츰 사라져서 이제 거의 안 보이고, 요즈음 어른들은 그냥 ‘진짜·가짜’라는 낱말을 널리 씁니다.


  이 보기글에 나오는 “‘진짜’ 못 말릴 녀석”은 ‘= 진짜로’를 가리키는데, ‘진짜로’는 “꾸밈이나 거짓이 없이 참으로”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진짜로’는 ‘참으로’로 바로잡을 낱말인 셈입니다. 또는 ‘참말로’나 ‘꾸밈없이’나 ‘거짓없이’로 바로잡을 만합니다. 흐름에 따라 ‘참·아주·매우·몹시’나 ‘끔찍히·대단히·그지없이’로 손볼 수 있습니다.


 영화가 진짜 지루하다

→ 영화가 참 따분하다

→ 영화가 매우 지겹다

 너 진짜 혼자서 집에 갈 거니

→ 너 참말 혼자서 집에 가니

 진짜 무지무지하게 아프다고요

→ 참말 무지무지하게 아프다고요

→ 거짓말 아니고 무지무지하게 아프다고요


  한편, ‘진품(眞品)’을 가리킨다는 ‘진짜’가 있습니다. ‘진품’은 “진짜인 물품”을 뜻한다는데, ‘진짜 1’ 말풀이를 보면 “본뜨거나 거짓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닌 참된 것”으로 나옵니다. 다시 말하자면, ‘참된 것’이나 ‘거짓이 아닌 것’으로 써야 할 말을 ‘진짜’라는 낱말로 쓰는 셈입니다.


 진짜 도자기 → 참 도자기 / 참것인 도자기

 진짜 보석 → 참 보석 / 참것인 보석

 이 위조지폐는 진짜 같다 → 이 거짓돈은 그럴듯하다


  곰곰이 생각하면, 도자기나 보석이라면 모두 도자기나 보석이지, 도자기나 보석이 아닌 것은 없습니다. ‘진품·위조품’을 가린다든지 ‘진짜·가짜’를 나눈다고 한다면, ‘참된 것·시늉인 것(흉내낸 것)’을 따지려는 뜻이지 싶습니다.


  한국말사전을 더 찾아보면 1940년대 《조선어사전》(문세영 엮음)에는 ‘진짜·가짜’가 안 실립니다. 1957년에 나온 《큰 사전》(한글학회 엮음)부터 비로소 이 낱말이 실립니다. ‘-짜’라는 말끝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알 길은 없는데, 비슷한 얼개로 ‘공짜(空-)’가 있고, 이 낱말은 1940년대 한국말사전에도 나옵니다.


  곰곰이 살피면 ‘眞’이든 ‘假’이든 ‘空’이든 한자이고, 이러한 한자는 한국사람이 처음부터 쓰지 않았습니다. ‘진짜·가짜·공짜’가 쓰인 햇수는 아주 짧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자를 앞에 붙인 낱말’이 널리 퍼진 때는 일제강점기입니다. 일본사람이 쓰던 말투가 일제강점기에 물결처럼 밀려들어서 퍼졌고, 이 말투는 해방이 끝난 뒤에도 좀처럼 가시지 않았어요. 마흔 해 가까이 일본말과 일본 말투에 길든 탓에 ‘진짜·가짜·공짜’ 같은 말투는 사그라들 줄 모릅니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닌 1980년대 무렵에는 일제강점기를 겪은 어른이 매우 많았고, 이분들 가운데 ‘일본 말투’나 일본말을 몹시 못마땅해 하는 분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무렵에는 ‘진짜·가짜’뿐 아니라 ‘공짜’ 같은 말을 아이들이 쓰면 크게 나무라면서 ‘참·거짓’이나 ‘거저’로 바로잡으라고 이르셨구나 싶어요.


  “이 보석은 진짜냐 가짜냐?” 같은 말은 “이 보석은 참이냐 거짓이냐?”라든지 “이 보석은 참것이냐 거짓것이냐?”로 손볼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참것’이라는 낱말을 때와 곳에 알맞게 쓸 수 있기를 빕니다. ‘참것’과 맞물려 ‘거짓것’이라는 낱말도 새롭게 지어서 쓸 만합니다. 4348.3.24.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참 못 말릴 녀석이구만. 넌 지난 여섯 해 동안 뭔가 하나라도 못 배운 채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느냐


‘6년(六年)’은 ‘여섯 해’로 손보고, “배운 게 없이”는 “못 배운 채”로 손봅니다. “못했던 게냐”는 “못했느냐”로 손질합니다.



진(眞)짜

1. 본뜨거나 거짓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닌 참된 것

   - 진짜 도자기 / 진짜 보석 / 이 위조지폐는 진짜 같다

2. = 진짜로

   - 영화가 진짜 지루하다 / 너 진짜 혼자서 집에 갈 거니 /

     진짜 무지무지하게 아프다고요

진(眞)짜로 : 꾸밈이나 거짓이 없이 참으로

   - 진짜로 따분하다 / 진짜로 웃고 있었다 / 진짜로 죽어 버리고 말았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62) 진짜 2


그 코를 깍, 깨물었지요. 진짜로 형인가 보려고요

《모리스 샌닥/서남희 옮김-나의 형 이야기》(시공주니어,2013) 28쪽


 진짜로 형인가 보려고요

→ 참으로 형인가 보려고요

→ 참말 형인가 보려고요

→ 형이 맞는가 보려고요

→ 형인지 아닌지 보려고요

 …



  요새는 “놀러갈까?” “진짜?” “그래, 진짜.”와 같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예전에는 “놀러갈까?” “참말?” “그래, 참말.”과 같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제법 많았습니다. 훨씬 더 옛날에는 ‘진짜’라는 낱말을 쓰는 사람은 없었고, 모두 ‘참·참말·참으로’라는 낱말을 알맞게 썼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참·참말·참으로’ 가운데 하나를 넣으면 됩니다. 또는 “형이 맞는가”나 “형이 맞는가 아닌가”처럼 쓰면 됩니다. 4348.3.24.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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