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적 삶을 위한 사유
서성열 지음 / 좋은땅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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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11.24.

읽었습니다 49



  나라에 ‘농협’이 있고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이 있습니다만, ‘시골’도 ‘흙’도 ‘땅’도 ‘숲’도 등진 말씨입니다. 《농적 삶을 위한 사유》를 읽으며 《녹색평론》을 떠올렸습니다. 이 나라 글바치는 “푸른말씀·숲이야기”는 아예 생각조차 안 합니다. 먼 옛날을 더듬어 보아도 같아요. 붓바치는 ‘農’을 썼을 테지만 흙지기(여름지기)는 그저 ‘땅·흙·논밭’을 말할 뿐입니다. 글쟁이는 ‘자연’을 말할 테지만 시골사람은 ‘숲’을 말하지요. 서울로 치닫는 나라는 죽음길로 갈 뿐이니, 이제 숲을 보고 들을 품으며 흙을 살리는 길로 가야 한다는 줄거리를 ‘숲넋·흙살림길·푸른빛’ 같은 이름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문이나 일본 한자말을 쓰기에 잘못이거나 나쁘지 않아요. 그저 시골말도 숲말도 푸른말도 없이는 ‘숲넋·흙살림길·푸른빛’하고 동떨어질 뿐입니다. 시골아이하고 시골할매한테 읽힐 마음으로 쓰지 않는 ‘녹색평론’이란, 먼나라 잠꼬대 같습니다.


《농적 삶을 위한 사유》(서성열 글, 좋은땅, 2021.4.28.)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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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
염무웅 지음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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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11.24.

읽었습니다 52



  푸른배움터를 다니던 열일곱 살(1991년)에 《민중시대의 문학》을 읽으며 이런 목소리를 내는 분이 있구나 하고 놀랐는데, 2021년에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를 읽으면서 이분도 그저 ‘힘켠(기득권)’에 젖어들어 글빛을 잃었다고 느낍니다. 적잖은 분들은 저쪽을 ‘보수언론’이라 삿대질하면서 싸움을 거는데, ‘이쪽이라 하는 보수 아닌 언론’도 그동안 ‘또다른 힘켠’이 되어 왔습니다. 굳이 싸워야 한다면 모든 힘켠·돈켠·이름켠 아닐까요? 《샘터》가 처음 나올 적에 박정희 그늘을 얼마나 얻었는가를 스리슬쩍 넘어가지만, 감출 수 있을까요? 저쪽을 삿대질하기에 ‘바른붓’이지 않습니다. 바른붓이란 스스로 ‘푸른숲’이 되어 살아가는 숨소리를 담는 글빛입니다. 여든 살 나이라서 ‘어른’이라면 이 나라에 어른은 다 죽었다는 소리일 테지요. ‘저쪽 잘잘못’뿐 아니라 ‘모든 잘잘못’에 입을 열지 않는다면 그이는 힘켠일 뿐, 바른붓도 어른도 아닌 샛장수입니다.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염무웅 글, 창비, 2021.6.30.)


ㅅㄴㄹ


이렇게 ‘글발림’을 하면서

슬그머니 꼬리를 뺄 만큼

기득권 단맛이란

대단한가 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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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 1 - 남자의 눈으로 본 남성문화
수요자 포럼 지음,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기획, 허주영 엮음 / 호랑이출판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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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책읽기 2021.11.21.

읽었습니다 44



  어릴 적 살던 인천에서 드나들던 ‘오락실’ 둘레가 하나같이 노닥골목(성매매촌)인 줄 그때에는 몰랐습니다. 서른 살이 넘어 그곳(오락실)을 다시 찾아가서 빛꽃(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온통 노닥가게(성매매업소)여서 뒤늦게 놀랐습니다. 그곳(오락실)은 어린배움터하고 매우 가까운데, 이렇게 코앞에 잔뜩 있다니, 더구나 곳곳에 이렇게 많다니, 누가 이 많은 노닥집을 드나들었다는 뜻일까요? 오늘날에도 노닥거리는 나라 곳곳에 멀쩡합니다. 엄청나게 장사가 되나 봅니다.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을 읽다가, 노닥질(성매매)을 안 하는 사내가 손꼽을 만큼 적은 줄 처음 알았습니다. xx뿐 아니라 내로라하는 글바치가 노닥집을 뻔히 드나든 줄 알기는 했으나 여느 사내도 숱하게 노닥집을 드나든다더군요. 놀이도, 살림도, 사랑도 아닌 노닥질을 왜 해야 하는지 저로서는 모르겠습니다만, 노닥골목이며 노닥집을 드나드는 이들이 벼슬(정치권력)하고 돈·이름을 쥐었으니 그대로 왔겠지요.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살림 기획·허주영 엮음, 호랑이출판사, 2018.5.7.)


ㅅㄴㄹ


'xx'이란 사람은 무척 속이 쓰리리라 본다.

왜냐하면 저 혼자만 노닥거리지 않았는데

다른 글바치는 얌전한 척 입을 다물 뿐 아니라,

노닥질에 돈을 대고 자리를 마련한

출판사 대표와 편집자,

그리고 이런 자리에 슬쩍 낀 기자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으니

'xx' 이름 하나만 손가락질을 받아서

얼마나 갑갑(?)할까.

이럴 적에는 민낯을 스스로 다 털어내고서

이 나라 글판이 제자리를 찾도록

뉘우침글(참회록)을 쓰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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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진의 평화 특강 - 가짜뉴스, 난민, 국가 폭력, 민족주의, 환경으로 살펴본 평화 이야기 10대를 위한 인문학 특강 시리즈 5
정주진 지음 / 철수와영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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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11.21.

읽었습니다 45



  한자를 뜯어서 ‘평화 = 밥나눔’으로 읽는 분이 꽤 있습니다만, 저는 글쎄 좀 안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우리 삶자락하고 우리말로 바라본다면 ‘어깨동무’라 해야지 싶고, 바탕은 모름지기 ‘사랑’일 노릇입니다. 잘 보셔요. 나란히 안 설 적에는 싸움이나 위아래입니다. 어깨동무일 적에는 저절로 콩 한 알도 나누지만, 밥만 나눌 적에는 굳이 어깨동무로 안 가더군요. 어깨동무는 위아래도 없고 왼오른도 없습니다. 어깨동무는 아이어른을 안 가록, 사람하고 뭇목숨도 안 가릅니다. 《정주진의 평화 특강》을 곰곰이 읽었습니다. 열린배움터(대학교)에서 평화를 가르친다니 훌륭하고, 푸른배움터에서도 이 얘기를 펴니 알찹니다. 다만, 어깨동무(평화)를 이야기하거나 들려줄 적에는 눈높이까지 헤아리기를 바라요. 어린이 눈높이에서, 시골 눈높이에서, 새와 헤엄이와 개구리와 풀꽃나무 눈높이에서 ‘쉽고 수수하고 상냥하게 살핀 우리말로’ 생각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쉬운 말이 평화인걸요.


《정주진의 평화 특강》(정주진 글, 철수와영희, 2019.11.13.)


ㅅㄴㄹ


언제 어디에서나 매한가지입니다.

쉬운 말을 쓸 적에'만' 평화입니다.

쉬운 말을 안 쓰면서

인권-진보-소수자-성평등-통일...을 

읊는 분들은 하나같이

눈가림이나 장삿속에 치우친 채

겉치레와 껍데기에서 맴돌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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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여행이라면 - 낯선 골목 안에 우주가 있다
배종훈 외 지음 / 메종인디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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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11.21.

읽었습니다 43



  숲으로 둘러싼 보금자리에서 살아간다면 딱히 나들이를 다닐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스라히 먼 옛날까지 거슬러 헤아리지 않아도 알 만합니다. 집이며 마을을 나무로 포근히 둘러싸던 지난날에는 ‘집에서만 머물러’도 철마다 새롭고 남다르다 싶은 빛을 누려요. 새가 알아서 찾아오고 풀벌레가 개구리랑 알아서 노래합니다. 숲짐승도 알아서 곧잘 고개를 내밀고 비에 바람에 눈에 싱그러이 춤추는 나날이에요. 《이런 여행이라면, 낯선 골목 안에 우주가 있다》는 서울 한복판에서 살아가며 인도라는 이웃나라를 만나고, 글하고 그림을 손수 쓰고 그리는 맛을 누린 자취를 그러모읍니다. 하루는 언제 어디에서나 마실이에요. 스스로 마실인 줄 느끼는 사람하고 안 느끼는 사람으로 갈릴 뿐입니다. 무엇을 보더라도 그림으로 담을 만해요. 멋스러운 빛만 찾아나서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 집 곁이 골목이면 되고, 마루하고 마당 사이를 드나드는 걸음이 가볍게 춤짓이라면 글꽃이 흐드러집니다.


《이런 여행이라면, 낯선 골목 안에 우주가 있다》(배종훈·원지연·김희숙·손상신 글·그림, 메종인디아, 2020.10.2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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