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남자는 왜 바지만 : “남자는 왜 바지만 입어?” 하고 물을 수 있을까? “남자는 왜 머리를 짧게 해?” 하고 물을 수 있을까? 멀리 갈 까닭이 없이 한국 하나만 생각해 보아도, 이 땅에서 ‘사내가 머리카락을 짧게 한 지’는 매우 짧다. 무척 오랫동안 머리카락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몸이기에 함부로 건드려서도 쳐서도 안 된다고 여겨 왔다. 그러나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몸이어도 아이가 새롭게 가꾸거나 돌볼 수 있겠지. 기르든 치든 아이 마음이다. 그러나 ‘가시내라서 머리를 기르거나 치마를 둘러야’ 할 까닭도, ‘사내라서 머리를 치거나 바지만 꿰어야’ 할 까닭도 없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스스로 머리를 기르든 치든 치마를 두르든 말든, 스스로 하면 될 뿐이다. 가시내가 바지를 꿸 수 있으면, 사내는 치마를 두를 수 있다. 누구나 즐겁게 하면서 집안을 가꾸는 살림일이다. 성평등이나 육아분담 같은 말을 쓰지 않아도 된다. 함께하면 되고, 같이하면 넉넉할 뿐. 2019.10.8.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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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꼴찌 : 학교에서 등수나 성적이나 시험이 없을 수 있을까? 이런 것을 없앨 적에 비로소 학교가 학교다운 길을 갈 수 있는지 모른다. 일등도 꼴등도 없을 적에. 그렇지만 시험과 성적과 등수로 매기는 학교를 그대로 잇는다면, 바로 이곳 학교는 배우거나 가르치는 터전이 아닌, 고단한 아이들이 고단한 마음으로 나이만 먹도록 내모는 수렁이 되리라. 굳이 모든 아이들이 일등을 하도록 내몰 까닭이 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할 일이다. 왜 모든 아이들이 느긋하면서도 서로 살피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익힐 수 있는 학교로 안 갈까? 학생도 교사도 넉넉한 마음이 되는 길이라면, 같이 넉넉하면서 함께 즐거운 삶을 이루겠지. 숫자를 지우는 곳에 삶이 태어난다. 2019.10.7.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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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 : 모든 사람은 ‘시간도 공간도 따지지 않는’ 채 살아간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눈을 뜬다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그야말로 오롯이 마음으로 만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편다. 이 이야기꽃은 마음에 생각을 새롭게 키우는 즐거운 노래가 되어 사랑으로 자랄 테고.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시간도 공간도 따지는 몸’을 입었다고 여기면서 그만 스스로 시간하고 공간에 갇힌다. 갇힐 까닭도 없고 가둘 놈도 없으나, 우리가 스스로 가두어서 스스로 갇히는 꼴이다. 이러다 보니 우리 스스로 마음을 못 열 뿐 아니라 눈조차 못 뜨기 일쑤이다. 그러나 이러면 또 어떤가. 마음을 못 연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못 여는 채 살아가기에 툭탁거린다든지 시샘이라든지 미움 같은 느낌을 길어올리겠지. 마음을 즐겁게 연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금 홀가분하게 깨어나서 훨훨 날아오르는 산뜻한 나로 거듭날 수도 있고. 2019.10.8.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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밉고 좋고 : 밉고 좋고를 늘 따지니 우리한테 미운 일이나 좋은 일이 갈마든다. 미운 놈이나 좋은 님도 갈마든다. 그리고 어느 한 사람을 바라보며 이이가 밉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 우리 스스로 미운 일도 하고 좋은 일도 한다. 밉놈하고 좋님하고 남남일까? 한몸이지 않을까? 피해자하고 가해자란 무엇일까. 어제는 피해자였으나 오늘은 가해자 자리에 서지는 않는가? 어제는 가해자였는데 오늘은 피해자 자리에 있지는 않은가? 밉고 좋음이란 무엇일까. 왜 겉모습을 따르거나 휘둘릴까. 속마음을, 속사랑을, 속빛을 바라본다면 모든 것이 녹아버리리라. 2019.8.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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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물놀이터 : 크고 작은 고장마다 냇물이 흐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냇물이 맑게 흐르도록 마음을 기울이기보다는, 냇가에 따로 돈을 들여서 시멘트랑 화학물질로 덮은 물놀이터를 꾸미기 일쑤. 냇물에 들어가서 물놀이를 하는 길이 훨씬 낫지 않을까? 아니 누구나 냇물에서 헤엄을 즐기도록 맑은 터전으로 가꾸어야 할 일이 아닐까? 냇가에 마련한 물놀이터에는 으레 아이들이 노는데, 이곳에는 하나같이 ‘어른들 대중노래’가 시끄럽게 흐른다. 플라스틱 미끄럼틀을 놓고, 플라스틱 바람이를 품고, 하나부터 열까지 온통 플라스틱이다. 아이들도 궁금하지 않을까? 왜 냇물에서는 못 놀고 물놀이터란 곳이 따로 있어야 할까? 언제이든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냇물이 버젓이 옆에 있는데 발도 못 담그게 하는 이런 삶이라면, 냇가 물놀이터는 아주 빈틈없는 굴레가 아닌가? 2019.8.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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