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밥을 하는 마음 : ‘아, 오늘도 또 밥을 해야 하네?’ 하고 생각할 적에는 참으로 맛없는 밥이 나온다. 이런 마음으로도 사람들 혀를 사로잡는 멋은 낼 수 있으나 참맛이 나올 수 없다. 마음이 벌써 어둠에 물들었으니 손맛이 나오지 않고 겉멋만 나온다. ‘자, 오늘은 또 무슨 밥을 해볼까?’ 하고 생각할 적에는 참으로 맛있는 밥이 나온다. 이런 마음이더라도 사람들 혀를 하나도 못 사로잡는 멋이 될 수 있다만, 마음이 어느덧 기쁨으로 가득하니 겉멋은 볼품없어도 손맛이 확 살아난다. 이제 다 되었다. 무슨 밥을 하고 싶은가? 글을 쓴다면, 무슨 글을 쓰고 싶은가? 책을 읽겠다면, 무슨 책을 읽고 싶은가? 일을 한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하루를 살겠다면, 무슨 하루를 살고 싶은가? 길은 늘 두 갈래 가운데 하나를 우리 스스로 골라서 간다. 1995.5.7. (덧말 : 신문사지국에서 먹고자며 지내던 날, 새벽마다 같이 밥을 짓던 분이 나한테 들려준 말을 조금 손질해서 옮겨적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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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기 싫다면 : 아이가 아파서 학교 가기 싫다 하면, 또는 아이가 그냥그냥 학교 가기 싫다 하면, 어떻게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을까? 내가 어릴 적을 돌아보면 우리 어머니는 ‘밤부터 아예 앓아누워 꼼짝을 못하는 날’이 아니고는 학교로 밀어넣었다. 오늘 나는 이렇게 할 마음이 하나도 없다. 아이가 아프다 하든 안 아프든 “그래, 그럼 오늘은 가지 말자. 푹 쉬렴. 또는 신나게 놀렴. 다만 오늘 하루 무엇을 하면서 쉬거나 놀 생각인지 하나하나 그리고서 쉬거나 놀렴.” 하고 말할 생각이다. 다만 우리 집 아이들은 졸업장학교에 나가지 않으니 이런 말을 들려줄 일이 없다. 아침에 눈을 뜬 아이들한테 “물부터 한 모금 마시고, 오늘 하루 스스로 무엇을 할는지 차근차근 그리고, 이 그림을 너희 공책에 스스로 쓰렴.” 하고 들려준다. 스스로 하루를 그리는 대로 스스로 하루를 짓고, 배우고, 살고, 가꾸고, 누리면 된다. 2019.10.30.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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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을 때 : 모든 책집은, 새책집이든 헌책집이든 마을책집이든, 곁에 있을 적에 즐겁게 아끼면서 넉넉히 누려야지 싶다. 아무리 우람한 책집도 하루아침에 이슬처럼 사라질 수 있다. 조그마한 마을책집이라 해서 우리 마음을 적실 책이 없을 수 없다. 우리는 저잣구럭을 무겁게 채우려고 책마실을 가지 않는다. 마음을 적실 책을 만나려고 책마실을 간다. 어제 하나, 오늘 하나, 이튿날 하나, 이렇게 날마다 하나씩 만나도 좋다. 이레 앞서 하나, 오늘 하나, 이레 뒤에 하나, 이렇게 만나도 좋다. 지난달에 하나, 오늘 하나, 다음달에 하나, 이렇게 만나도 좋겠지. 곁에 있을 때에 느끼는 마음이라면 아름답다. 곁에 있을 때에 느끼지 못한다면, 아이들 웃음도 별빛도 햇살도 꽃내음도 나뭇잎도 흙빛도 물결도 못 느낄 수밖에 없다. 2004.5.20.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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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몸 : “책을 그렇게 함부로 다루려면 이제는 책을 그만 보기로 하자.” 말을 바꿔 본다. “책은 네 몸하고 똑같아. 네 몸을 다루듯 책을 다루면 좋겠어.” 더 생각해 본다. “네 몸을 가장 즐겁고 곱게 돌보는 마음이자 손길이 되어 책을 마주하기를 바란다.” 더 돌아본다. “네가 너를 스스로 사랑하거나 아낄 줄 알면, 책을 어떻게 쥐어서 펼 적에 네 눈앞에 꿈나라가 피어나는가를 알 수 있어.” 책을 꾹꾹 눌러 펴며 읽으려 한다든지, 과자나 기름이나 밥풀 묻은 손으로 책을 쥐려 한다든지, 책을 팔랑팔랑 소리가 나도록 넘기면서 읽는다든지, 그러면 책이 얼마나 아파하고 싫어하는지를 부디 마음으로 느낄 수 있기를 ……. 2007.7.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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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 ‘엮는’ 사람은 엮는 ‘일꾼’일 뿐, 쥐락펴락을 하는, 이른바 ‘힘센이(권력자)’가 아니다. 그러나 힘센이 자리에 있다는 생각에다가 ‘좋은일’을 한다는 보람을 너무 내세우고 보면, 사람들한테 ‘좋은글을 알리는 좋은일’이라는 이름을 앞세우고 보면, ‘엮는’ 사람이 ‘짓는’ 사람을 타고 앉아서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기도 한다. 마치 농협하고 비슷한 얼개이다. 농협은 잇는 구실은 징검다리가 되어야 하는데, 흙을 짓는 이들을 타고 앉아서 샛돈을 거머쥐고 떵떵거리잖은가? 편집자는 자칫 농협 벼슬아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엮는 일꾼으로서 징검다리 몫을 즐겁게 할 때에 빛난다. ‘지어서 보내는’ 사람이 있기에 농협이 징검다리 노릇을 하고, 편집자도 독자 사이에서 징검다리 구실을 한다. 지어서 보내는 사람한테서 ‘받아서 엮을’ 수 있는 그 일을, 편집자 스스로 ‘심판자’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만 모두 힘들다. 편집자여, 심판자 아닌 일꾼으로 있어 주게나. 이녁한테 글을 지어서 보내는 우리는 이녁이나 우리도 똑같이 ‘일꾼’으로 어깨동무하고픈 마음이지, 이쪽도 저쪽도 심판자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라네. 2015.7.9.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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