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훌쩍 가다 : 등허리가 결리다는 곁님을 주무른다. 온몸에 땀이 송글송글 맺도록 주물러 주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가서 손을 씻고 물을 한 모금 마시는데, 어느새 한 시간쯤 흘렀지 싶다. 벌써? 가볍게 주물렀다고 생각했으나 훌쩍 갔구나. 하루가 참 잘 흐른다. 결린 자리를 가볍게 풀기에 한 시간쯤 쓴다면, 결린 자리를 말끔히 풀자면 두 시간쯤 써야 하려나. 문득 돌아보면 어릴 적에 아버지 팔다리 등허리를 주무르느라 거의 날마다 한 시간씩 쓰곤 했다. 한 시간이란, 이 몸에 결리거나 아픈 구석을 풀고서 새로 깨어나려고 쉴 만한 겨를이지 싶다. 2019.11.2.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살림말


웃는 사진 : 한국 사진밭은 참 오래도록 몇 가지 틀에 박힌 채 헤어나려 하지 못한다. 이쪽도 저쪽도 그쪽도 엇비슷하다. 사람을 찍으며 ‘웃는 낯’이 아니면 안 된다고 여겨 버릇한다. 누구보다 신문기자가 이런 데에 너무 매인다. 이러다 보니 어느 사진은 줄줄이 ‘웃는 낯’투성이인데, 또 어느 사진은 줄기차게 ‘우는 낯’투성이가 된다. 삶을 담는 사진이라면, 사람을 담는 사진이라면, 사랑을 담는 사진이라면, 줄줄이 ‘웃는 낯’이나 ‘우는 낯’만 담아서 얼마나 어울릴까? 웃는 사람도 웃다가 가만히 쉬면서 하늘바라기를 하거나 슬프기도 하다. 우는 사람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면서 노래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이 얼굴을 찍어야먼 ‘사람 사진’이 되지는 않는다. 손만 찍어도, 등짐만 찍어도, 등판만 찍어도, 신만 찍어도, 빗만 찍어도 얼마든지 ‘사람 사진’이 된다. 이 나라 사진님 스스로 틀을 깨지 않는다면 이쪽 저쪽으로 갈라 놓고서 밥그릇을 다투는 사진밭이 될 뿐이다. 부디 ‘웃는 사진’을 내려놓기를 빈다. 그리고 ‘우는 사진’도 접어놓기를 빈다. 우리는 웃고 울며 노래하고 고요히 잠자다가 이야기꽃을 터뜨리는 사랑스러운 사람인 줄 살살 바라보면서 고루 담아내는 사진빛이 되기를 빈다. 2015.4.5.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살림말


아이 눈높이 : 아이 눈높이로 집을 짓고 살림을 꾸리면 틀림없이 확 다르다.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살기 좋지. 아이 눈높이로 글을 쓰고 말을 하면 틀림없이 확확 다르다.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듣거나 읽거나 말하거나 이야기하기에 참으로 좋지. 아이 눈높이로 길을 닦거나 자동차를 만들거나 나들이를 다니면 틀림없이 확확확 다르다.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드나들기 좋은 길이 될 테고 타고다니기 좋은 자동차가 될 테며 서로서로 즐거이 마실꽃을 누리리라. 그리고 아이 눈높이로 책을 바라보고 마주하면 틀림없이 책을 고르는 눈빛도 확확확확 달라지리라. 아무 책이나 고르거나 장만하거나 읽겠는가? 아니리라. 아이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즐길 책을 눈여겨볼 테고, 아이한테 물려줄 만한 책을 눈밝혀서 찾을 테며, 아이가 읽어 주고 어른이 읽어 줄 아름다운 책을 서로 한 손씩 내밀어 가볍게 잡고서 이야기꽃 피우리라. 2000.5.5.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살림말


마감글 : 마감글이란 그 날까지 마쳐서 보내 달라는 글이기도 하지만, 진작 글을 다 써 놓았다 하더라도 그 마감날까지 더 살피고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헤아리면서 찬찬히 손질하고 가다듬은 뒤에 보내 달라고 하는 글이기도 하겠지. 일찌감치 써서 마무리한 글도 일부러 마감날까지 두고보고 되읽은 뒤에 ‘이제 보내자’ 하고 여기면서 띄운다. 2003.3.13.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살림말


틀맺기 : 어떤 일이든 굳이 끝을 맺어야 하지는 않더라. 즐겁게 하다가 안 되면 ‘아, 안 되었네?’ 하고는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도 된다. 곰곰이 보면 사회에서는 무엇이든 ‘끝을 내라’고 하니까, 이런 데에서 꽤 힘들구나 싶다. 하다가 못하면 두 손 들고서 ‘아! 안 되네! 도무지 못하겠네!’ 해도 된다. 이렇게 그만두는 일도 ‘끝맺기’ 가운데 하나일 텐데, ‘하다가 그만두는 끝맺기’는 도무지 안 받아주는 셈이랄까. 어쩌면 사회는 끝맺기 아닌 틀맺기로 내몬다고 할 만하다. 끝이란 맺고 싶은 사람 마음이니, 이렇게 해도 좋고 저렇게 해도 된다. 보기좋게 끝을 맺어야 할 까닭은 없다. 보기나쁘게 끝을 맺으면 어떤가? 그저 그뿐이다. 틀에 박히거나 갇히거나 눌려야 할 일이 없다. 스스로 스스럼없이 하면 되고, 느긋이 놀이를 하듯 끝을 맺으면 즐거울 뿐. 2006.11.5.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