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가는 길에는



  아이들과 골짝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우리 집 아이들은 골짜기를 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나무를 안다. 우리 집 아이들은 풀벌레를 알고, 멧새를 알며, 개구리를 안다. 그런데, 우리 집 아이들은 야구나 축구나 농구나 배구를 모른다. 우리 집 아이들은 연속극을 모르고, 코미디 방송을 모른다. 이런 것들을 본 적이 없으니 알 길이 없고, 이런 것들을 마주한 적이 없으니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이 없다.


  어버이가 야구를 좋아하거나 연속극을 좋아한다면 으레 이런 것을 보리라. 그러면, 아이들도 으레 야구나 연속극을 만날 테니, 차츰 눈여겨볼 테지. 아이들은 이런 것을 좋아할 수 있으나 안 좋아할 수 있다.


  아이들이 그림책을 본다. 아이들은 어버이인 내가 고르고 장만한 그림책을 본다. 어버이로서 내가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그림책을 골라서 장만했으면, 아이들은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빛이 서린 그림책을 읽는다. 어버이라 하지만 그림책을 찬찬히 살피기보다 ‘추천도서’라든지 ‘책방에서 잘 보이는 데 놓은 책’만 덥석덥석 사서 갖춘다면, 아이들은 또 이 그림책들만 만난다.


  자동차가 수없이 밀려다니는 도시에서 살림을 꾸리면, 아이들은 이런 모습에 익숙하다. 자동차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시골에서 살림을 꾸리면, 아이들은 찻길에서도 한복판을 거침없이 달리면서 논다.


  우리는 어떤 삶으로 가는 길일까. 나는 어떤 삶을 사랑하고픈 길을 걷는가.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으로 가는 길이 될까. 우리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어떤 빛을 물려받으면서 저희 삶을 사랑하는 하루를 누릴까. 4347.8.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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