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일각 신장판 13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김동욱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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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たかはしるみこ #高橋留美子 #めぞん一刻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그 한 발자국까지



《메종 일각 13》

 타카하시 루미코

 김동욱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0.9.30.



  붓을 처음 쥐고서 글씨를 또박또박 쓰는 사람이 있을까요. 어쩌면 있을는지 몰라요. 다만 웬만한 사람이라면 붓을 처음 쥐고서 글씨를 삐뚤빼뚤 쓰고, 붓을 쥔 지 여러 해가 지나도 글결을 가지런히 추스르지 못하곤 합니다.


  칼을 처음 쥐고서 무를 정갈하게 써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있을는지 몰라요. 다만 칼놀림이 손에 익지 않을 적에는 가지런히 못 썰기 일쑤요, 때로는 무가 아닌 손가락을 벱니다.



“잘도 저렇게 끝도 없이 사서 고생을 한다니까.” “그렇지만, 고다이 씨다워요.” (15쪽)



  글씨가 춤을 추는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제 어린 날을 떠올립니다. 저도 어린 날에는 ‘마음에서 쏟아지는 생각’을 주워담기 바빠서 글씨가 춤을 추었어요. 마구마구 날아오르지요.


  이런 글씨를 열 해 쓰고 스무 해를 쓰다 보니, 서른 해를 쓰고 마흔 해를 쓰노라니, 어느덧 글꼴이 서고, 춤짓보다는 얌전합니다. 날갯짓보다는 조용해요. 춤추거나 날고 싶은 글씨한테 마음으로 속삭여요. “글씨야, 네가 춤추거나 날고픈 뜻은 알겠지만, 글씨인 네가 춤추거나 날면 글씨를 쓴 나조차도 나중에 못 알아봐. 그러니까 조용히 천천히 가자.”



“엄마가 빨리 돌아오면 좋을 텐데.” “별님이랑 약속했으니까 괜찮아.” “별님?” “응.” …… “그, 그래? 믿고 있구나, 엄마를. 하긴, 별님한텐 거짓말할 수 없으니까.” “맞아.” “앗! 별님이 떨어졌어!” (35∼36쪽)



  사랑을 했기에 사랑을 잘 할는지 모르지만, 사랑을 처음 하기에 사랑을 사랑답게 할는지 모릅니다. 알 길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사랑인 줄 알았으나, 사랑이 아닌 마음이기도 하고, 참다이 흐르는 사랑이라서 둘레에서 어떻게 흔들든 조용히 제길을 가기도 합니다. 《메종 일각 13》(타카하시 루미코/김동욱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0)을 펴면, 막바지에 이른 줄거리가 조금씩 가닥을 잡습니다. 헤매던 사람이 이제 덜 헤맵니다. 춤추던 마음이 조금은 차분합니다. 날아오르던 마음도 어느새 아무 때나 날아오르려 하지 않고, 뚜벅뚜벅 나아가는 매무새를 익혀요.



“어떻게 하면 저한테 상처를 주지 않고 거절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계신가요? 어떻게 하시든 잔혹한데요.” (89쪽)



  이 사람을 만나서 살아갈 수 있기에 즐거울는지 몰라요. 저 사람을 만나서 살아가야 한다면 안 즐거울는지 몰라요. 앞길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오늘 우리가 스스로 어떻게 마음을 품느냐에 따라 앞길이 바뀌어요.


  왜 이 사람이어야 할까요? 왜 나여야 할까요? 왜 저 사람은 안 될까요? 왜 너여야 할까요? 묻고 묻고 새로 묻습니다. 물으며 물으며 다시 묻습니다. 사랑이 맞을까요? 사랑인 척하지 않나요?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속삭이려는 숨결인가요? 겉모습에 홀린 채 참길은 아직 안 틔우지 않았나요?



“애당초 관리인님은 그런 여자가…….” “무슨 소리야! 한창때인 남자랑 여자가 밤새 같이 있는데, 아무 일도 없을 리가 있나! 게다가 그 상대는 그 미타카라고! 분명 무슨 일이 있었을 거야!” “저는 관리인님을 믿어요.” (100쪽)



  어쩌면 바보스럽습니다. 아무래도 어리석습니다. 언뜻 보면 엉터리입니다. 곰곰이 봐도 엉성합니다. 굳이 쳐다볼 일이 없을 만하고, 또 보고 새로 보아도 한결같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사람이란 옷을 입고 살기에 바보스러운지 몰라요. 아무래도 우리는 사람이란 자리에서 만나기에 어리석구나 싶은 짓을 되풀이하는 듯합니다. 《메종 일각》은 사람이라는 삶에서 무엇을 바라보고서 마음에 품고 오늘을 맞이하려나 하는 대목을 그립니다. 이이는 이이대로 나고 자란 터전에서 디딘 발자국이 모인 오늘입니다. 저이는 저이대로 나고 자란 삶자리에서 밟은 걸음걸이가 모인 하루입니다.


  저 사람은 나랑 같지 않아요. 나는 저 사람이랑 같지 않아요. 그런데 끌리는 마음이 있다면 모두 내려놓고서 눈을 감고 바라보기로 해요. 겉모습이 아닌, 둘레에서 떠드는 소리가 아닌, 두 마음에서 흐르다가 만나는 빛줄기를 쳐다보기로 해요.



“공부를 하는 낌새라곤 전혀 없었는데.” “아니, 지금 이 모습이 안 보이는 거예요?” “고다이 씨는 지금 중대한 고비라고요!” “중대한 고비라. 이렇게 매년 고비를 맞는 남자도 흔치 않을걸.” “내년엔 또 어떤 고비가 올까요.” (120쪽)


“남자랑 여자는 말이다, 쫓아가는 쪽이 지는 거야. 달아나고 달아나고 또 달아나다…….” “그러다가 안 쫓아오면 어떡해요.” “멍청아! 그때는 깨끗하게! 전속력으로 돌아간 뒤에, 무릎 꿇고 싹싹 비는 거야!” (196쪽)



  저 사람은 저 사람대로 실마리를 찾습니다. 저 사람이 찾은 실마리를 내가 똑같이 거머쥐어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대로 실타래를 풉니다. 내가 푼 실타래를 저 사람도 똑같이 풀 만하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살고 싶은가를 똑바로 보아야 새로 한 발자국을 나아갑니다. 어떤 사랑이 되어 하루를 짓고 싶은가를 제대로 그려야 드디어 한 발자국을 뗍니다. 머뭇거려야 할 까닭이 없지만, 머뭇거리면 좀 어떤가요. 흔들릴 까닭이 없다지만, 흔들리면 좀 어때요.


  넘어지면서 다리에 힘이 붙어 잘 걷습니다. 자빠지면서 발에 힘이 붙어 자전거를 잘 달립니다. 삐뚤빼뚤한 글씨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기에 다시 손에 힘을 붙여 글씨를 정갈하게 다스립니다. 사랑을 모른다면 이제부터 사랑을 알아가기로 하면 되지요. 그이 마음을 못 읽었다면 오늘부터 그이 마음을 읽도록 온힘을 내기로 하지요. 자, 두 사람도, 둘레 모두도 이 너머로 나아갈 새로운 자리에 섭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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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
백남호 글.그림 / 철수와영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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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 이야기를

새로 써 보았습니다


..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그림책

돈버는 어른과 일하는 어린이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

백남호 글·그림

철수와영희

2012.1.7.



  요새는 아기를 천기저귀로 돌보는 집이 매우 적다고 합니다만, 씩씩하게 즐겁게 노래하면서 천기저귀로 아기를 돌보는 집이 곳곳에 있어요. 저도 우리 집 두 아이를 천기저귀로 씩씩하게 즐겁게 노래하면서 돌보았어요.


  기저귀 빨래를 하는 삶을 돌아본다면, 아침은 언제나 지난밤 옷가지 빨래를 하면서 열어요. 밤새 나온 오줌기저귀랑 아침에 나온 똥기저귀랑 바지랑, 이런 똥오줌이 묻은 이불이랑 포대기에다가, 여느 옷가지 빨래가 수북합니다.


  아침에 해놓는 빨래는 낮에 마르고, 낮에 이르도록 나온 새로운 빨래를 잔뜩 해서 새로 널면서, 아침에 빨래한 옷가지를 착착 갭니다. 저녁에 이르면 낮빨래가 마르고, 새삼스레 저녁빨래를 다시 기운내어 하고서 밤새 집안에서 말리지요.


  천기저귀를 쓰는 집이라면, 빨래는 적어도 아침 낮 저녁에 세벌 하는데, 오줌기저귀나 똥기저귀란 날마다 수북수북 나오는 터라, 날마다 다섯벌이나 일곱벌쯤 실컷 빨래하는 살림이라 할 만해요. 빨래하다가 밥을 짓고, 밥을 지어 먹이다가 빨래하고 씻기고, 마른 옷가지를 개면서 아이랑 놀고 노래를 부르며, 다시 빨래를 하다가 밥을 짓고 집안일을 하고 …… 그런 하루입니다.


  이런 ‘하루빨래’를 날마다 보내노라면, 아이들을 하루에 두세벌이나 너덧벌 씻기더라도 정작 저 스스로 씻을 틈이 없습니다. 아이들 옷가지를 날마다 몇 벌씩 빨래하지만 제 옷가지는 며칠마다 겨우 빨아요. 두 아이가 기저귀를 뗄 때까지 오롯이 손빨래를 했고, 요즈막에도 기계보다는 손으로 모든 빨래를 합니다.



우리 아빠는 버스 정류장에서 떡볶이를 팔아. 순대랑 어묵이랑 김밥도 팔지. 출출한 저녁 시간에는 사람들이 북적북적해. 아빠가 바쁠 때는 눈코 뜰 새도 없어. 음식 담아 주랴 먹은 거 치우랴 양념 더 넣으랴,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하대. (20∼21쪽)



  집안일을 하고 보면 끝이 없어요. 그러나 삶도 매한가지예요. 삶도 끝이 없는걸요. 아니, 집안일이나 집살림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길은 날마다 새롭게 맞아들여서 누려요. 날마다 오줌기저귀에 똥기저귀에, 오줌이불이나 똥이불에, 이밖에도 멧더미처럼 나오는 빨랫감을 삶고 비비고 헹구고 말리고 개고 건사하는 몸짓을 조금이라도 지겹거나 힘들다고 여기면 하루조차 못 버팁니다.


  빨래할 적에 노래를 부르고, 노래하며 빨래하는 아버지 곁에 아이가 쪼르르 달라붙으며 “뭐 해? 빨래 해? 나도 해보고 싶어!” 하고 속삭이면, “자, 그럼 넌 이 빨래를 맡으렴.” 하고 건네면서 손빨래를 소꿉놀이로 돌릴 줄 안다면, 이 멧더미 빨래하기는 그리 힘들지도 싫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손빨래를 하면서 머리를 맑게 틔우고 생각을 새로 가꾼달까요.


  배고프다고 조잘조잘 노래하는 아이들한테 틈틈이 밥을 지어서 차릴 적에도 그렇습니다. “뭐 해요?” “밥을 하지.” “나도 썰어 보고 싶다.” “그래? 그럼 이쪽 도마에 이 작은 칼로 썰어 봐.” 하고서 부엌 일감을 슬그머니 나누어 주면, 어느새 부엌일도 부엌소꿉으로 거듭납니다.


  같이 해보면서 같이 누리고, 함께 즐기면서 함께 노래하는 하루가 된달까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아도 놀잇거리가 줄잇습니다. 학교에 다니지 않더라도 배울거리가 잇달아요. 두 손으로 짓고, 두 손으로 가꾸며, 두 손으로 노래하는 하루입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다른 사람 옷을 깨끗하게 빨아 주지. 뜯어진 옷도 깁고, 얼룩도 지우고, 구겨진 옷도 다려서 빳빳하게 펴지. 아빠는 손이 빨라. 세탁기 돌리고, 다리미질하고, 재봉틀로 옷도 고쳐. 엄마는 발이 빨라. 빨랫감을 모아 오고 다시 가져다주지. 아빠는 세탁 담당, 엄마는 배달 담당, 나는 잔심부름꾼이야. 엄마 아빠는 다른 사람 옷을 자기 옷보다 더 소중하게 다뤄. (32∼33쪽)



  저는 시골에서 ‘마당 있는 집’을 누립니다. 예전에 큰고장에서 살 적에는 하늘집(옥탑방)을 얻어 하늘마당(옥탑마당)을 누렸지요. 하늘집은 여름에 더 덥고 겨울에 더 춥습니다만, 한겨울에도 해바라기로 빨래를 널어 말리기 좋았기에, 큰고장에서는 하늘집에서 살림을 하며 큰아이를 돌보았어요.


  빨래를 마치면 마당에 널지요. 소쿠리 두엇쯤 나오는 빨래를 마당으로 들고 나오면, 아이들도 쪼르르 마당으로 따라옵니다. “나도! 나도! 나도 널래!” 하고 한 아이가 외치면 “나도! 나도! 내가 널래!” 하고 다른 아이가 따라 외칩니다.


  퍽 어린 아이는 빨랫줄이 손에 안 닿지만, 걸상을 가지고 와서 영차영차 넙니다. 꽤 어린 아이가 넌 빨래는 엉성한 터라 제 손이 더 가야 하지만, 빨래널기를 마당놀이로 바꾸어 내는 아이들이니 조용히 지켜보면서 다시 노래를 부릅니다. 노랫말을 ‘햇볕이랑 바람에 빨래를 너는 하루’라는 줄거리로 그때그때 새로 지어서 불러요.


  그저 일만 해야 한다면, 날마다 엄청나게 밀려오는 숱한 일을 해내야 한다면, 이때에는 퍽 고달프면서 등허리가 결리겠다고 여깁니다. 날마다 맞이하는 온갖 일거리를 ‘일이면서 놀이’로, ‘삶이면서 살림’으로, 무엇보다도 ‘사랑이면서 노래’로 가다듬어서 마주하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웃고 춤추면서 아이들한테 새로운 하루를 물려줄 만하겠구나 싶어요.


  이렇게 아버지하고 함께 소꿉하듯 집안일을 함께 즐기면서 자란 아이들은 어느덧 혼자서 밥을 척척 짓는 솜씨가 되고, 반죽도 착착 해서 빵을 굽는 손놀림이 되며, 비질도 걸레질도 설거지도 야무지게 할 줄 아는 몸짓으로 피어납니다.


  낮잠을 자는 아이들 곁에서 옷가지를 개다가, 밤잠을 이루는 아이들 베개맡에서 살살 부채질을 하다가, ‘새벽바람으로 회사에 일하러 나갔다가 별바라기로 집에 돌아올’ 여러 이웃님을 떠올리곤 합니다. 이렇게 집 바깥에서 돈을 벌려고 바쁘며 힘든 아버지 어머니는 아이들하고 어떤 집안일이나 집살림을 나눌 만할까요? 두 어버이 모두 고되거나 버거운 나머지 아이하고 함께 집안일을 하거나 집살림을 즐기는 재미나 보람이나 노래나 웃음을 느끼지 못하는 하루는 아닐까요? 모두 기계에 맡기거나 도움이(가정부)를 불러서 후딱 일거리를 해치우는 하루는 아닌가요?



우리 엄마는 멀리 베트남에서 왔어. 아빠랑 결혼해서 우리 나라에 처음 왔을 때는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대. 말도 안 통하고, 사는 모습이 엄마 나라와는 모두 달랐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우리 말도 잘하고 시장에서 물건값도 잘 깎아. 엄마랑 시장에 가면 내가 가끔 엄마 통역을 해. 엄마에게 아직 어려운 우리 말이 있거든. 나는 우리 말도 잘 하고 베트남말도 잘 해. (61쪽)



  바람이 불어 빨래를 말립니다. 해가 솟으며 빨래에 보송보송한 기운을 담아 줍니다. 마당이며 뒤꼍에서 잘 자라는 나무로 멧새가 찾아와 노래를 부르니, 이 노래는 우리 옷가지뿐 아니라 집안 구석구석 스며듭니다. 낮에는 파란하늘에 무지개에 흰구름, 밤에는 뭇별에 미리내에 별똥, 그리고 이 모두를 함께 누리면서 맞이하는 우리 보금자리입니다.


  일하는 두 어버이 삶을 담아낸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백남호, 철수와영희, 2012)를 읽습니다. 쉬는 틈을 쪼개어 조금씩 넘깁니다.


  일이란 무엇일까요? 일은 누가 하나요? 일은 어디에서 하지요? 일을 어떻게 하고, 일을 왜 하는가요?


  아침에 빨래를 하는 동안, 아이들을 어르면서, 오늘은 또 어떤 밥을 차릴까 머리를 기울이다가 문득문득 생각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흔히 “일을 한다”고 말하지만, 참말 오늘날 사람들이 “일을 한다”고 할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참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동안 즐겁게 살림을 꾸린다면고 이 삶을 사랑할 만하겠다고 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얼마쯤 번다면 ‘많이 벌든 적게 벌든’ 대수로이 여기지 않으면서 ‘일노래’를 부르고 ‘일놀이’도 할 만하지 싶습니다.


  우리가 돈을 벌어야 한다면, 떼돈이나 목돈을 쌓으려는 길이 아닌, ‘우리가 저마다 좋아하는 이 삶을 즐겁게 누리는 길에 쓸 돈’을 벌겠지요. 더 많이 벌어야 할 돈이 아니라, 곁님하고 사랑을 속삭일 보금자리를 가꿀 돈을 벌 테고, 아이들하고 신나게 뛰노는 즐거운 보금자리를 보듬는 돈을 벌 테지요.



우리 엄마는 음식 만드는 일을 가장 좋아해. 보글보글 국 끓이고, 달강달강 반찬 만들고, 칙칙폭폭 밥 짓는 일이 마냥 신난대. 식구들에게 몸에 좋고 맛있는 요리를 해 주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래. 엄마가 집에 있다고 가만히 쉬고만 있을까? 우리가 어질러 놓은 방 청소해야지, 더러워진 옷도 빨아야지, 시장에 가서 장도 봐야지, 하루 종일 우리 엄마는 바쁘고 바빠. (52∼53쪽)



  백남호 님이 빚은 그림책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에는 “일하는 엄마 아빠” 모습이 모두 열여섯 가지로 나옵니다. “일하는 엄마 아빠” 모습이 열여섯 가지뿐이겠습니까만, 십육만 가지이든 천육백 가지이든, 온갖 일 가운데 열여섯 가지를 추려서 보여줍니다.


  빨래집을 꾸리고 떡볶이를 팔며, 짜장면을 나르고 막일판에서 일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모습을 그림책에 나온 모습으로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참말 이 나라에는 숱한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녁 딸아이와 아들아이하고 사랑스레 살아가고 싶어서 “일을 찾고 일을 합”니다. 그렇지만 막상 이러한 이야기를 그림책이나 동화책이나 소설책에서 다룬 일은 드뭅니다. 사진책이나 그림책이나 만화책에서도 ‘공장에서 톱니를 맞추는 어머니나 아버지’ 삶을 좀처럼 다루지 못하거나 않지요.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바느질을 하거나 뜨개질을 하는 어머니나 아버지’ 삶자락을 살뜰히 담아내지 못하거나 않더군요. 소설책이든 시집이든 ‘호미와 괭이와 낫을 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온삶을 조곤조곤 들려주지 못하기 일쑤예요.


  이럭저럭 집안일을 건드리는 사람은 있어요. 살짝살짝 집살림을 보여주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온몸으로 아이랑 살아내며 온마음으로 함께 웃거나 우는 이야기로 온사랑으로 꽃피우는 사람은 뜻밖에 매우 적더군요.


  그림책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라고 해서 빈틈없이 아름답지는 않습니다만, 이 그림책도 아쉽거나 모자란 구석이 있습니다만,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라고 붙인 이름부터 푼더분하구나 싶어요. 수더분하지요. 이쁘장합니다. 참말로 일하는 분이거든요. 집 바깥에서도, 집에서도, 늘 일을 해요. 이 일은 바로 우리 어린이하고 푸름이를 즐겁게 사랑하면서 기쁘게 노래하는 보금자리를 북돋우는 손길이면서 몸짓입니다.



어느 날 엄마가 텔레비전에 나왔어. 엄마가 다니는 회사가 사정이 안 좋다며 엄마를 쫓아냈대. 함께 일하던 엄마 친구들도 같이 쫓겨났어. 엄마랑 엄마 친구들이 계속 일하게 해 달라고 말해도 회사에서는 엄마 말을 안 들어 줘. 그래서 엄마는 친구들이랑 함께 회사에서 일하게 해 달라고 싸우고 있어. 텔레비전에서는 엄마가 아주 나쁘고 무서운 사람처럼 자꾸 싸우는 모습만 보여줘. 우리 엄마는 집에서 방구 뿡뿡 뀌는 착한 엄마란 말이야. (74쪽)



  비가 그친 하늘은 낮에 더 파랗고 밤에 더 까맣습니다. 더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는 더욱 기운찹니다. 더 까맣게 빛나는 하늘에 퍼지는 멧새노래는 한결 그윽합니다.


  어른은 어릴 적부터 마음에 품은 꿈을 이루는 길을 ‘일’이라는 모습으로 풀어냅니다. 아이는 어버이하고 함께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 앞으로 품을 꿈을 지켜보고 생각하면서 마음에 ‘놀이’라는 씨앗으로 심습니다. 어른은 일하면서 자라고, 아이는 놀면서 자라요. 어른은 일하면서 사랑하고, 아이는 놀면서 꿈꾸지요.


  온누리 모든 어린이·푸름이랑 어른이 “돈을 버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보다 “일을 즐겁게 하고 놀이를 신나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버는 길보다는 삶을 사랑하면서 하루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아름답겠다고 생각해요. 자, 오늘도 슬슬 빨래를 새로 하고 집일도 새삼스레 붙잡아야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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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숟가락 17 - 완결
오자와 마리 지음, 노미영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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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만화책

- 성교육 아닌 참사랑을 함께



《은빛 숟가락 17》

 오자와 마리

 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2020.3.23.



  물 한 모금을 나누어도 하루가 즐겁습니다. 잔칫밥을 차려야 즐겁지 않습니다. 즐거우면서 넉넉히 웃고 노래하면서 이야기를 꽃피울 적에 참으로 즐겁습니다. 웃음도 노래도 이야기도 없이 맨숭맨숭 잔칫밥 곁에 있다고 해서 즐거울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더 먹어야 하지 않아요. 많이 먹어야 하지도 않습니다. 잘 먹어야 하지도 않고, 끼니를 꼬박꼬박 채워야 하지도 않습니다. 먹든 안 먹든 즐거이 하루를 맞아들여야지요. 먹거나 안 먹거나 하루를 노래해야지요.



‘가다랑어포밥 만드는 방법을 물었다. 중1 남동생과 초6 여동생한테 가다랑어포밥을 먹이기 위해. 그게 내가 만든 최초의 밥이었다. 그무렵엔 아직 그런 것도 몰랐다. “뭔가, 괴로운 일이 있어도 맛있는 밥 먹으면 우선은 기운이 나잖아.” 그 애가 아무렇지 않게 건넨 말로 인해 나는 다시금 조금 더 구원받았다.’ (8∼9쪽)



  언제부터인가 ‘복지’란 이름을 내세워 배움터에서 도시락이 사라집니다. 이러면서 일본스러운 한자말 ‘급식’을 내걸어요. 왜 배움터는 아이들 스스로 도시락을 싸도록 이끌지 않을까요? 왜 길잡이는 아이들이 손수 밥을 지어서 차린 다음, 같이 즐기고 나서 함께 설거지를 하고 자리를 치우는 길을 가르치지 않을까요?


  오늘날 졸업장학교에는 ‘조리사’에 ‘청소부’까지 있습니다. 왜 아이들은 스스로 제 배움터를 건사하거나 가꾸는 데에서 손을 뗄까요? ‘전문직 조리사’가 굳이 있어야 할까요? ‘전문직 청소부’를 애써 두어야 할까요? 배움길에는 밥짓기나 걸레질이나 비질을 치워 놓아야 하는지요?


  손에 물을 묻혀 밥을 짓거나 살림터 안팎을 정갈히 건사하는 길을 배우지 않고서, 오직 책이랑 교과서랑 시험으로 머리에 지식을 쌓는다면, 이 아이들 앞길은 어찌 될까요? 밥짓기도 걸레질도 비질도 모르는 채 몸뚱이만 무럭무럭 커서 ‘성교육’만 받는 젊은이가 참다이 사랑을 나눌는지는 알쏭달쏭합니다.



“넌 항상 그런 식으로 기다리기만 하고 우연을 기대하면서 스스로는 움직이려 하지 않더라.” (41쪽)


‘몇 년이나 우물쭈물했던 것이 거짓말인 듯이, 간단히 문이 열렸다.’ (70∼71쪽)



  졸업장학교 안팎에서 벌이는 성교육은 끝내야지 싶습니다. 어른이자 어버이로서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는 성교육이 아닌 ‘참사랑’을 보여주고 가르치고 나눌 노릇이라고 봅니다. 《은빛 숟가락 17》(오자와 마리/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2020)을 읽었습니다. 《은빛 숟가락》은 열일곱걸음으로 모든 이야기를 마무릅니다. 대단한 밥차림이 아니어도 된다는 하루를 그린 수수한 만화입니다. 놀라운 밥짓기가 아니어도 즐겁다는 살림을 담아낸 투박한 만화입니다.


  사랑이 피어나는 손길이기에 아이들이 사랑을 배우고, 이 사랑을 받아들여 푸르게 빛나며, 어느새 씩씩한 어른으로 피어난 젊은이가 새롭게 보금자리를 짓는 슬기로운 마음이 된다는 줄거리를 들려주는 만화예요.


  그러니까 성교육 교재는 다 집어치우고, 이런, 참사랑을 속삭이는 만화책을 함께 읽기를 바랍니다. 성평등이나 남녀평등(여남평등)이나 페미니즘 같은 이름도 부질없어요. 참사랑을 노래하는 길을 어깨동무하는 살림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함께하면 됩니다. 자꾸 뭔 이름(프레임)을 내걸지 말 노릇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삶자리에서 먼먼 옛날부터 흐르던 즐거운 사랑을 눈여겨볼 일이에요.



“꿈에서는 보기 좋게 차였는데?” “그 정도까지 리허설을 했으면 현실에서 차여도 충격을 적게 받고 끝날 수 있어.” “꿈에서도 괴로웠어.” “너도 왕자님을 그런 기분이 들게 했어. 그런 식으로 언제까지나 후회하면서 질질 끌 거라면 확 결말을 짓는 게 나아.” (58쪽)



  소꿉놀이가 왜 재미있을까요? 왜 아이들은 신나게 놀까요? 장난감이나 놀이터가 있어야 놀까요? 아이들을 놀이터에 길들이면서 아무 사랑도 안 하고 안 보여주고 안 나누는 오늘날 어른이나 어버이는 아닌가요?


  아이들은 돈을 치르고 들어가서 이것을 타고 저것을 타야 하지 않습니다. 그런 돈수렁에 아이들을 자빠뜨리지 마셔요. 그런 돈밭에 아이들을 물들이지 마셔요.


  오늘날 이 나라를 둘러봐요.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쉴 곳이 조금도 없습니다. 시골이건 서울이건 거님길에 걸상조차 없고, 푹 주저앉거나 드러누울 풀밭마저 없습니다.


  빈터는 자동차가 차지해요. 아니, 자동차는 거님길까지 잡아먹어요. 잘 생각해야지요. 자동차는 어린이나 푸름이가 안 몹니다. 모두 어른이 몹니다. 이 나라 어른은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막나갑니다. 아이들한테 빈터도 쉼터도 내주지 않고, 모조리 ‘돈으로 흐르는 가게’를 그득그득 채웁니다. 아이들은 하릴없이 떠돌거나 헤매면서 ‘돈, 돈, 돈’ 생각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네. 이렇게 죽고 싶은 기분인데 어째서 배가 고픈 걸까, 나는?’ (88쪽)


‘울면서 먹은 오믈렛 볶음국수는, 그런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맛있었다.’ (98쪽)



  틈이 없는 서울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터입니다. 돈을 쓰지 않고는 쉬지도 눕지도 앉지도 못하는 서울은 사람한테서 사람다움을 빼앗는 불구덩이입니다. 끝없이 자동차가 달리면서 귀를 찢는 서울은 사람이 사람길에서 튕겨나오도록 몰아내는 사슬터입니다.


  이런 서울에 잿빛집(아파트)을 세워서 비싸게 사고파는 나라라면, 이 나라에는 빛이 없습니다. 잿빛집을 더 세워서 사람들을 가두는 길이 주택정책이라고 외치는 벼슬아치라면, 그런 벼슬아치를 거느린 우두머리한테서는 아무 사랑이 없습니다. 돈을 들이지 않고서 나라를 아름다이 가꾸어야 참다이 꼭두머리입니다. 돈을 쓰지 않고서 마을을 돌보아야 참답게 벼슬꾼입니다.



“그보다 넌 스스로를 걱정하렴.” “시라베도 아직 훗카이도에 있잖아요.” “언제까지고 부모님 집에서 사는 남자는 여자한테 인기 없어!” “그러면 엄마는 혼자 살게 되는데요?” “마마보이라고 생각할 거야!” “이 넓은 집에.” “실은 그거 무척 기대돼! 오히려 후련할 거야. 혼자 하고 싶은 일이 잔뜩 있거든!” (146쪽)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돈벌이를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도 푸름이도 삶짓기를 배울 노릇입니다. 살림짓기를 배우고, 사랑짓기를 배워야지요. 마음짓기를 배우고, 생각짓기를 배울 길입니다. 꿈짓기를 배우고, 숲짓기를 배울 하루입니다.


  오직 하나 ‘돈굴리기’를 보여주고 가르치고 내모는 어른이라면, 그이는 어른이 아닌 ‘늙은이’입니다. 삶도 살림도 사랑도 못 보여주면서 나이만 먹은 그대라면, 참으로 늙은이일 뿐입니다.



‘지난번과는 다르게 유코 언니는 오빠를 축복했다. 왜냐면 만나고 싶으면 이번엔 언제든지 만나러 갈 수 있으니까. 낯선 땅에서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는 오빠를 가장 이해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은, 시작은 했지만 도착점이 보이지 않는 꿈을 향해 지금도 노력을 계속하는 유코 언니일지도 모른다.’ (150쪽)



  성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성행위’를 할 뿐입니다. 사랑을 배운 아이들은 ‘사랑’을 합니다. 아이들이 어떤 어른으로 크기를 바라는가 하고 생각할 오늘입니다. 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짓는 어른으로 이 별에서 삶을 누릴 적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할 우리입니다.


  삶을 짓는 사람은 아름돈을 벌고 꽃돈을 모아서, 아름길에서 넉넉히 나누는 손길이 됩니다. 살림을 짓는 사람은 웃음돈을 벌고 빛돈을 꾸려서, 아름마을에서 즐거이 나누는 눈빛이 됩니다. 서로서로 참어른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보금자리에 멧새가 찾아들고 개구리랑 뱀이 같이 살면서 풀꽃나무가 흐드러지는 숲을 품는 손짓이 되기를 빕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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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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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테레츠 대백과 3
후지코 F. 후지오 지음, 허윤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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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내가 배워서 새로 할게



《키테레츠대백과 3》

 후지코 F. 후지오

 오경화 옮김

 미우

 2018.6.30.



  어떤 이는 ‘이분법’이란 한자말을 쓰고, 어떤 이는 ‘가르다·둘로 가르다’ 같은 우리말을 씁니다. 비슷하지만 다른 ‘나누다’나 ‘쪼개다’를 쓰기도 합니다. 어떤 이가 쓰는 말은 어떤 무리에서는 알아듣는 말이 되고, 어떤 이가 쓰는 말은 누구나 알아듣는 말이 됩니다.


  우리는 어떤 말을 쓸 적에 즐거울까요? 우리는 어떤 말을 쓰면서 생각을 키울까요? 우리는 어떤 말을 쓰면서 동무가 될까요? 우리는 어떤 말을 쓰기에 서로 새롭게 하루를 짓는 슬기로운 마음으로 가다듬을까요?



“난 말이지, 부모님께 말도 없이 나가거나 하지 않아.” “어른은 안 따라가? 도대체 어딜 가는 건데?” “세계 일주.” “돌아올 때는 달에라도 들렀다가 오렴.” “농담으로 생각하는 건 엄마 마음인가, 뭐.” (10쪽)



  누구나 쉽게 알아들으면서 새롭게 생각을 지피도록 하는 낱말을 가려서 쓰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반갑습니다. 몇몇만 알아듣는, 이른바 ‘전문지식’을 ‘전문용어’에 담아서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늘 버겁습니다. ‘전문지식·전문용어’는 조금도 안 새롭습니다. 이런 말은 오직 외워야 합니다. 더 많이 외우는 사람이 더 많이 얻거나 누리거나 거머쥐는 길이 바로 ‘전문’이란 일본스러운 한자말을 내거는 모든 말이요 일이며 자리입니다.


  누구나 쉽게 알아들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북돋우는 말이란, 굳이 ‘전문’이란 허울을 안 씌워요. 누구나 알아듣기에 누구나 하도록 이끌지요. 누구나 알아들으니 외워야 하지 않고, 혼자 차지하거나 거머쥐는 일이 없습니다. 마음이 있다면 이 쉬운 말씨로 스스로 생각을 짓고, 삶을 지으며 사랑을 짓겠지요.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돼지고릴라의 폭력은 어떻게 좀 해야 될 텐데.”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보고 있어 봐. 저 녀석의 인격을 싹 바꿔 놓을 테니까.” “그건 좀 무리 아닐까? 아무리 키테레츠라고 해도.” (75쪽)



  어려운 사투리란 없습니다. 이 대목을 알아야 합니다. 어려운 시골말이란 없습니다. 이 대목도 알아야지요. 어려운 숲말이란 아예 없습니다. 참말로 이 대목을 곱씹을 노릇입니다.


  ‘말’이 아닌 ‘용어’나 ‘어휘’나 ‘단어’란 한자말 옷을 입힐 때마다 ‘전문’이란 허울이 불거집니다. 이 ‘전문’은 끼리질을 하고, 울타리를 세우며, 돈·이름·힘이란 자리하고 맞닿습니다. 《키테레츠대백과 3》(후지코 F. 후지오/오경화 옮김, 미우, 2018)을 읽으며 ‘누구나·끼리끼리’ 사이를 헤아립니다. 모두 석걸음으로 마무리짓는 이 만화는 ‘누구나 삶을 넉넉히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스스로 새길을 찾는 어린이가 나와요. 으레 어른들한테 꾸지람을 듣지만, 어떤 꾸지람을 듣더라도 이 어린이는 의젓합니다. 스스로 더 새롭게, 더 즐겁게, 더 눈부시게 피어날 길로 나아가려고 해요.



“그때부터 50년 가까이 지나서 오랜만에 일본에 돌아왔는데, 정말 놀랐단다.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더구나. 마을도, 사람도, 들도, 산도 ……. 용궁에서 돌아온 우라시마 타로가 분명 지금의 나와 같은 기분이었겠지.” (151쪽)


“어릴 적의 내가 있고, 곤타도 있고 사부도 있어. 아버지도, 어머니도, 마을도, 들도, 산도 옛날 그대로 이곳에 있구나!” “키테레츠, 참으로 좋은 걸 만들었소이다.” (153쪽)



  사투리나 시골말이나 숲말은 하나도 안 어렵지만, 서울말(표준말)이나 맞춤길은 골머리를 썩인다지요. 왜 대학입시를 치러야 하나요? 왜 대학교를 다녀야 하나요? 왜 대학교재나 인문책에 적힌 말하고 어린이책에 적힌 말이 달라야 하나요?


  ‘전문’을 다룬다는 핑계는 대지 말 노릇입니다. ‘깊이’ 들어가거나 ‘넓게’ 짚는다고 할수록 더욱 쉽고 상냥하면서 부드럽고 단출히 풀어낼 노릇이지 싶습니다. 깊이 들어가는데 말이 자꾸 어렵다면, 제대로 모른다는 뜻입니다. 넓게 짚는데 말이 자꾸 까다롭다면, 제대로 모르는 터라 제대로 나눌 길조차 모른다는 뜻입니다.


  하늘에는 별이 있어요. ‘천체’가 아닙니다. 하늘은 하늘이요, 하늘은 파랗습니다. ‘창공’도 ‘공중’도 아니며, ‘창천’도 아닙니다. 바다가 너르면 ‘너른바다’이고, 바다가 크면 ‘큰바다’입니다. ‘대해’가 아닙니다. 들이 너르면 ‘너른들’일 뿐, ‘대평원’이 아닙니다.



“괜찮잖아. 뭐가 됐든 저만큼 열중할 수 있다는 건 훌륭한 거야.” (160쪽)


“그렇게 걱정하지 말라니까. 물론 위험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남자란 신념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일도 있는 법이란 말야. 쑥스럽네. 멋진 말을 해버렸어.” (164쪽)



  어려운 말로는 못 배웁니다. 어려운 말로는 못 가르칩니다. 쉬운 말이기에 배우고 가르칩니다. 쉽게 풀어내기에 배우며 가르칩니다. 어렵게 비꼬아 놓으니 배우지도 가르치지도 못합니다.


  오늘날 온갖 책이 쏟아집니다만, 이 삶터는 좀처럼 나아지거나 바뀔 낌새가 안 보입니다. 속속들이 짚는다는 인문책이 너울거리지만 막상 이 인문책을 읽거나 곁에 두거나 대학교까지 다닌 분들이 슬기롭게 눈을 틔워서 푸르면서 아름답게 삶을 사랑하는 길을 가는지 아리송합니다. 오히려 인문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물에 갇히고, 대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수렁에 잠기며, 강의나 수업을 챙길수록 쳇바퀴에 맴돌지 싶어요.


  이제는 허울을 벗을 때이지 싶습니다. 그야말로 껍데기를 벗어야지 싶습니다. 1980년대 한복판에 《껍데기를 벗고서》란 책이 나와 불티나게 팔린 적이 있습니다만, 이 책도 이름은 “껍데기를 벗고서”라 말하면서 막상 쉽게 안 쓰고 어렵고 일본스러운 한자말이 가득했습니다. 먹물이 먹물에서 그쳤달까요. 한 손에 붓을 쥔 이가 다른 손에 호미를 안 쥐었달까요. 한 손에 붓을 쥐었다면, 다른 손에는 호미뿐 아니라 아기가 똥오줌을 눈 천기저귀도 쥘 노릇입니다. 부엌칼이랑 도마도 쥐고, 걸레랑 빗자루도 쥐어야지요. 자가용은 이제 내다버리고서 자전거를 달릴 노릇입니다. 버스나 전철도 줄이고 두 다리를 사랑할 일입니다.


  마을을 걷지 않고서 마을을 알지 못해요. 아이랑 손을 잡고 골목을 거닐지 않고서 이웃을 만나지 못해요. 하늘빛을 늘 마주하지 않고서나 밤낮이 어떻게 다른 바람결인가를 느끼지 못해요. 두 손으로 풀꽃나무를 어루만지는 여느 삶자락이 아니고서 풀밥(채식·비건)을 차린대서 풀꽃나무를 마음으로 품는 사랑이나 살림이 되지 않습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대백과》는 벌써 포기했다고. 앞으로는 케테레츠 사이 님한테만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훌륭한 발명을 하기로 했어. 그러려면 공부를 해야 되잖아.” (190쪽)



  쉬운 말로 쉽게 배워서 이웃이랑 쉽게 사랑을 나누는 길을 가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말로 어렵게 배우면, 이웃이랑 담을 쌓으면서 ‘전문스러운 울타리’에 스스로 갇힙니다. 자, 보셔요. 쉽게 배운 사람은 스스럼없이 나눕니다. 어렵게 배운 사람은 죽어도 안 나눕니다.


  노래하고 웃고 춤추고 사랑하면서 배운 즐거운 삶길이란, 언제나 이웃을 노래로 마주하고 웃음으로 맞이하며 춤으로 반기고 사랑으로 하나될 줄 아는 살림길입니다. 여태까지 어려운 말로 몸뚱이를 친친 감쌌다면, 오늘부터 한 올씩 풀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말이라는 ‘전문 권력’을 한 타래씩 털어내기를 빕니다. 정치꾼이나 장사꾼을 나무라 보았자 안 바뀝니다. 우리가 스스럼없이 즐거이 거듭날 적에 이 푸른별이 시나브로 풀빛으로 피어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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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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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붉은 강가 1 - 애장판
시노하라 치에 글.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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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は赤い河のほとり #篠原千


숲노래 푸른책

별빛이 없이 달빛만 있는 서울이라면



《하늘은 붉은 강가 1》

 시노하라 치에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10.1.25.



  별을 바라보는 사람은 별을 생각합니다. 달을 바라보는 사람은 달을 생각하지요. 꽃을 바라본다면 꽃을 생각할 테고, 책을 바라본다면 책을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이와 매한가지이니, 아파트를 바라보는 사람은 아파트를 생각하고, 자동차를 바라보는 사람은 자동차를 생각해요.


  대학입시를 바라본다면 대학입시를 생각할 테고, 대통령을 바라본다면 대통령을 생각하겠지요. 골목집을 바라보면 골목집을 생각하며, 나무를 바라보면 나무를 생각합니다. 우리 삶은 스스로 무엇을 바라보느냐로 갈리고, ‘무엇을 바라보는 자리’에 있으면서 ‘무엇을 생각으로 품어 마음을 지으려 하느냐’로 더 갈립니다.



‘하지만 정말, 입시 공부에서도 해방되고, 히무로하고도, 우후훗. 천벌 한두 개쯤이야 하나도 안 무서워.’ (11쪽)



  무엇을 보든 좋거나 나쁘지 않습니다. 그저 무엇을 볼 뿐입니다. 오늘날 이 나라는 거의 서울에 쏠립니다. 이제 경기도가 서울사람을 넘어선다지만, 경기라는 고장은 거의 서울바라기 얼개예요. 부산이나 대구처럼 큰고장조차 그 고장이 스스로 서려는 얼개라기보다는 서울바라기로 기울곤 합니다.


  부산조차 “서울로 올라간다”고 말하며, “부산으로 내려간다”고 말하지요. 이 말씨란 바로 우리 마음입니다. 그저 서울에 가고 부산으로 가는 삶이 아니라, ‘서울로 가야 높’고 ‘서울에서 나가면 낮’다는 생각을 말씨에 고스란히 담아서 삶을 이루는 얼거리입니다.



‘사용한 능력은 같은 신관밖에 못 없앤다고? 그럼 그 기분 나쁜 황비만이 날 일본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는 거잖아. 가까이 가면 틀림없이 위험할 테고, 제일 접근하기 싫은 사람인데. 돌아가기 위해선 싫어도 다시 한 번 황비를 만나야만 해.’ (98∼99쪽)



  서울에서 만난 여러 이웃님이 “고흥은 시골이라 달이 밝겠네요?” 하고 물어보십니다. “저는 달을 안 봐요. 별을 봅니다. 서울에 볼일 보러 올 적에도 달이 아닌 별빛을 어림해요.” “서울에서는 별이 안 보여서 달을 보는데, 그러고 보니 서울에 살며 별을 본다는 생각을 안 해 봤네요.” “비록 전깃불하고 달빛이 밝은 듯하지만, 우리가 마음을 기울여서 밤하늘을 바라보면 서울에서도 별빛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어요. 그리고 눈에 안 보이는 듯하지만 서울에도 틀림없이 별이 있어요.”


  달하고 별을 둘러싼 이야기를 새삼스레 떠올리며 《하늘은 붉은 강가 1》(시노하라 치에/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10)를 읽었습니다. ‘고등학교 입시’를 마친 아이가 갑자기 ‘기원전 14세기’로 끌려가서 뜻밖이자 뜬구름을 잡는 듯한 일에 휘말리는 줄거리를 다룹니다. 얼추 3000해 남짓 가로지르는 삶인 셈인데, 만화이니 그리는 이야기라고만 여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때하고 곳을 가로지를 수 있고, 꿈이며 삶에서 숱하게 가로지른다고 할 만해요.


  다만, 때랑 곳을 가로지를 적에 늘 되새겨야겠지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언제 어떤 꿈을 삶으로 옮겨 이루고 싶은지, 스스로 어떤 숨결로 피어나는 사람으로 서고 싶은지, 하나하나 생각할 노릇입니다.



“무슨 소리예요! 신분이란 건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 아닌가요? 권력이 있다면 이런 때 쓰지 않고 언제 쓰나요?” (124쪽)



  낮에도 별이 있습니다. 햇빛이 우리 별에 훨씬 가까워 다른 별빛이 햇빛에 가린다고 하더라도, 낮이고 밤에고 온누리 뭇별은 이 별로 빛을 쏘아보냅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달빛은 달이 내는 빛이 아닙니다. 이와 달리 우리가 보는 별빛은 모두 별이 내는 빛이에요.


  서울을 비롯한 큰고장에서는 매캐한 하늘에서 전깃불빛 탓에 별빛을 보기 어렵다면, 이리하여 달빛만 바라본다면, ‘있는 빛’이 아닌 ‘튕긴 빛’인 ‘정작 있지 않다고 할 만한 빛’에 휘둘리는 눈길이리라 느낍니다. 바라보는 대로 생각하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우리 하루라면, ‘있는 빛’을 볼 줄 모르면서 생각조차 못하는 나날로 흐를 적에는, 남이 시키는 대로 휩쓸리기 좋겠지요. 이를테면 나라에서 시키거나 언론에서 흘리거나 학교에서 다루는 이야기에서 맴도는 몸짓이 됩니다.



‘목숨을 구해 줘서 고맙다고? 난 아무것도 한 게 없어. 나야말로 이런 일에 끌어들이고, 몇 번이고 도움을 받고…….’ (185쪽)


“진정됐나? 나는 티토를 포기한 게 아냐. 신분의 상하에 관계없이 생명은 똑같이 존중해야 한다. 그걸 잊는다면 나도 황비와 다를 바가 없어져.” (201쪽)



  참길을 밝히는 글이 있다면, 거짓길을 퍼뜨리는 글이 있습니다. 참길을 보여주고 나누려는 책이 있다면, 거짓길을 보여주고 퍼뜨리려는 책이 있습니다. 정치하고 신문·방송도 매한가지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볼까요? 우리는 무엇을 못 볼까요?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나요?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하나요?


  돈·이름·힘을 거머쥔 이들은 사람들이 깨어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돈·이름·힘을 거머쥔 이, 다시 말하자면 ‘부자·지식인·권력자’는 사람들이 참빛을 못 보거나 안 보면서 참생각을 안 하거나 못 하는 길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이들은 언제나 전문가 얼굴로 나서려 합니다. 이들은 언제나 전문용어, 그러니까 딱딱하고 어려운 말씨로 사람들을 길들이거나 가르치거나 이끌려고 합니다. 지난날 ‘부자·지식인·권력자’가 한문을 썼고, 일제강점기에 일본말을 쓰다가, 해방 뒤에 일본 한자말을 그대로 살린 채 영어를 끼워맞춘 얼거리를 읽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깨어나지 못합니다. 말 한 마디하고 글 한 줄에까지 꿍꿍이가 깃든 줄 헤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별빛 아닌 달빛만 바라보면서 바보스레 휩쓸리기 딱 좋습니다.


  달빛은 허울이거든요. 달빛은 눈속임이거든요. 달빛은 참길이 아니거든요. ‘달’은 “딸린(달린) 돌덩이”를 가리키는 오랜 이름입니다. 해에 매달리고 지구한테 매달린 돌덩이가 ‘달’입니다. 사람을 비롯한 뭇숨결이 어우러진 푸른별이 푸르게 내는 빛을 느끼고, 해를 비롯한 온누리 뭇별이 저마다 밝히는 빛을 헤아릴 적에,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 깨어나리라 봅니다.



“세상엔 미녀가 별의 수만큼 많으니 결정하기가 참으로 힘이 듭니다.” (80쪽)


“이대로 돌아가도 끝이 아닌걸요. 틀림없이 이 일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서 원래대로 사는 건 불가능할 거예요.” (241쪽)



  만화책 《하늘은 붉은 강가》에 나오는 아이는 ‘열여섯’이란 나이로 일본이란 나라에서 고등학교 입시를 마친 그날 그곳으로 돌아갈 길을 찾아낼까요? 아니면 ‘기원전 14세기’라고 오늘날 일컫는, 그리고 그날 그곳 사람으로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그자리에서 새롭게 삶을 짓는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까요?


  우리가 우리 스스로이기를 내버리면 “딸린 돌덩이”인 ‘달’이 되어 아무 빛이 없이 맴돌고 맙니다. 내내 맴돌기만 하면서 맴도는 줄도 모르겠지요. 우리가 우리 스스로이기를 바라면서 생각을 세우고 꿈을 지으면 “스스로 빛나는 터”인 ‘별’이 되어 저마다 다르면서 새롭게 빛나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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