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
백남호 글.그림 / 철수와영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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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 이야기를

새로 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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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그림책

돈버는 어른과 일하는 어린이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

백남호 글·그림

철수와영희

2012.1.7.



  요새는 아기를 천기저귀로 돌보는 집이 매우 적다고 합니다만, 씩씩하게 즐겁게 노래하면서 천기저귀로 아기를 돌보는 집이 곳곳에 있어요. 저도 우리 집 두 아이를 천기저귀로 씩씩하게 즐겁게 노래하면서 돌보았어요.


  기저귀 빨래를 하는 삶을 돌아본다면, 아침은 언제나 지난밤 옷가지 빨래를 하면서 열어요. 밤새 나온 오줌기저귀랑 아침에 나온 똥기저귀랑 바지랑, 이런 똥오줌이 묻은 이불이랑 포대기에다가, 여느 옷가지 빨래가 수북합니다.


  아침에 해놓는 빨래는 낮에 마르고, 낮에 이르도록 나온 새로운 빨래를 잔뜩 해서 새로 널면서, 아침에 빨래한 옷가지를 착착 갭니다. 저녁에 이르면 낮빨래가 마르고, 새삼스레 저녁빨래를 다시 기운내어 하고서 밤새 집안에서 말리지요.


  천기저귀를 쓰는 집이라면, 빨래는 적어도 아침 낮 저녁에 세벌 하는데, 오줌기저귀나 똥기저귀란 날마다 수북수북 나오는 터라, 날마다 다섯벌이나 일곱벌쯤 실컷 빨래하는 살림이라 할 만해요. 빨래하다가 밥을 짓고, 밥을 지어 먹이다가 빨래하고 씻기고, 마른 옷가지를 개면서 아이랑 놀고 노래를 부르며, 다시 빨래를 하다가 밥을 짓고 집안일을 하고 …… 그런 하루입니다.


  이런 ‘하루빨래’를 날마다 보내노라면, 아이들을 하루에 두세벌이나 너덧벌 씻기더라도 정작 저 스스로 씻을 틈이 없습니다. 아이들 옷가지를 날마다 몇 벌씩 빨래하지만 제 옷가지는 며칠마다 겨우 빨아요. 두 아이가 기저귀를 뗄 때까지 오롯이 손빨래를 했고, 요즈막에도 기계보다는 손으로 모든 빨래를 합니다.



우리 아빠는 버스 정류장에서 떡볶이를 팔아. 순대랑 어묵이랑 김밥도 팔지. 출출한 저녁 시간에는 사람들이 북적북적해. 아빠가 바쁠 때는 눈코 뜰 새도 없어. 음식 담아 주랴 먹은 거 치우랴 양념 더 넣으랴, 손이 열 개라도 부족하대. (20∼21쪽)



  집안일을 하고 보면 끝이 없어요. 그러나 삶도 매한가지예요. 삶도 끝이 없는걸요. 아니, 집안일이나 집살림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길은 날마다 새롭게 맞아들여서 누려요. 날마다 오줌기저귀에 똥기저귀에, 오줌이불이나 똥이불에, 이밖에도 멧더미처럼 나오는 빨랫감을 삶고 비비고 헹구고 말리고 개고 건사하는 몸짓을 조금이라도 지겹거나 힘들다고 여기면 하루조차 못 버팁니다.


  빨래할 적에 노래를 부르고, 노래하며 빨래하는 아버지 곁에 아이가 쪼르르 달라붙으며 “뭐 해? 빨래 해? 나도 해보고 싶어!” 하고 속삭이면, “자, 그럼 넌 이 빨래를 맡으렴.” 하고 건네면서 손빨래를 소꿉놀이로 돌릴 줄 안다면, 이 멧더미 빨래하기는 그리 힘들지도 싫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손빨래를 하면서 머리를 맑게 틔우고 생각을 새로 가꾼달까요.


  배고프다고 조잘조잘 노래하는 아이들한테 틈틈이 밥을 지어서 차릴 적에도 그렇습니다. “뭐 해요?” “밥을 하지.” “나도 썰어 보고 싶다.” “그래? 그럼 이쪽 도마에 이 작은 칼로 썰어 봐.” 하고서 부엌 일감을 슬그머니 나누어 주면, 어느새 부엌일도 부엌소꿉으로 거듭납니다.


  같이 해보면서 같이 누리고, 함께 즐기면서 함께 노래하는 하루가 된달까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아도 놀잇거리가 줄잇습니다. 학교에 다니지 않더라도 배울거리가 잇달아요. 두 손으로 짓고, 두 손으로 가꾸며, 두 손으로 노래하는 하루입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다른 사람 옷을 깨끗하게 빨아 주지. 뜯어진 옷도 깁고, 얼룩도 지우고, 구겨진 옷도 다려서 빳빳하게 펴지. 아빠는 손이 빨라. 세탁기 돌리고, 다리미질하고, 재봉틀로 옷도 고쳐. 엄마는 발이 빨라. 빨랫감을 모아 오고 다시 가져다주지. 아빠는 세탁 담당, 엄마는 배달 담당, 나는 잔심부름꾼이야. 엄마 아빠는 다른 사람 옷을 자기 옷보다 더 소중하게 다뤄. (32∼33쪽)



  저는 시골에서 ‘마당 있는 집’을 누립니다. 예전에 큰고장에서 살 적에는 하늘집(옥탑방)을 얻어 하늘마당(옥탑마당)을 누렸지요. 하늘집은 여름에 더 덥고 겨울에 더 춥습니다만, 한겨울에도 해바라기로 빨래를 널어 말리기 좋았기에, 큰고장에서는 하늘집에서 살림을 하며 큰아이를 돌보았어요.


  빨래를 마치면 마당에 널지요. 소쿠리 두엇쯤 나오는 빨래를 마당으로 들고 나오면, 아이들도 쪼르르 마당으로 따라옵니다. “나도! 나도! 나도 널래!” 하고 한 아이가 외치면 “나도! 나도! 내가 널래!” 하고 다른 아이가 따라 외칩니다.


  퍽 어린 아이는 빨랫줄이 손에 안 닿지만, 걸상을 가지고 와서 영차영차 넙니다. 꽤 어린 아이가 넌 빨래는 엉성한 터라 제 손이 더 가야 하지만, 빨래널기를 마당놀이로 바꾸어 내는 아이들이니 조용히 지켜보면서 다시 노래를 부릅니다. 노랫말을 ‘햇볕이랑 바람에 빨래를 너는 하루’라는 줄거리로 그때그때 새로 지어서 불러요.


  그저 일만 해야 한다면, 날마다 엄청나게 밀려오는 숱한 일을 해내야 한다면, 이때에는 퍽 고달프면서 등허리가 결리겠다고 여깁니다. 날마다 맞이하는 온갖 일거리를 ‘일이면서 놀이’로, ‘삶이면서 살림’으로, 무엇보다도 ‘사랑이면서 노래’로 가다듬어서 마주하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웃고 춤추면서 아이들한테 새로운 하루를 물려줄 만하겠구나 싶어요.


  이렇게 아버지하고 함께 소꿉하듯 집안일을 함께 즐기면서 자란 아이들은 어느덧 혼자서 밥을 척척 짓는 솜씨가 되고, 반죽도 착착 해서 빵을 굽는 손놀림이 되며, 비질도 걸레질도 설거지도 야무지게 할 줄 아는 몸짓으로 피어납니다.


  낮잠을 자는 아이들 곁에서 옷가지를 개다가, 밤잠을 이루는 아이들 베개맡에서 살살 부채질을 하다가, ‘새벽바람으로 회사에 일하러 나갔다가 별바라기로 집에 돌아올’ 여러 이웃님을 떠올리곤 합니다. 이렇게 집 바깥에서 돈을 벌려고 바쁘며 힘든 아버지 어머니는 아이들하고 어떤 집안일이나 집살림을 나눌 만할까요? 두 어버이 모두 고되거나 버거운 나머지 아이하고 함께 집안일을 하거나 집살림을 즐기는 재미나 보람이나 노래나 웃음을 느끼지 못하는 하루는 아닐까요? 모두 기계에 맡기거나 도움이(가정부)를 불러서 후딱 일거리를 해치우는 하루는 아닌가요?



우리 엄마는 멀리 베트남에서 왔어. 아빠랑 결혼해서 우리 나라에 처음 왔을 때는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대. 말도 안 통하고, 사는 모습이 엄마 나라와는 모두 달랐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우리 말도 잘하고 시장에서 물건값도 잘 깎아. 엄마랑 시장에 가면 내가 가끔 엄마 통역을 해. 엄마에게 아직 어려운 우리 말이 있거든. 나는 우리 말도 잘 하고 베트남말도 잘 해. (61쪽)



  바람이 불어 빨래를 말립니다. 해가 솟으며 빨래에 보송보송한 기운을 담아 줍니다. 마당이며 뒤꼍에서 잘 자라는 나무로 멧새가 찾아와 노래를 부르니, 이 노래는 우리 옷가지뿐 아니라 집안 구석구석 스며듭니다. 낮에는 파란하늘에 무지개에 흰구름, 밤에는 뭇별에 미리내에 별똥, 그리고 이 모두를 함께 누리면서 맞이하는 우리 보금자리입니다.


  일하는 두 어버이 삶을 담아낸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백남호, 철수와영희, 2012)를 읽습니다. 쉬는 틈을 쪼개어 조금씩 넘깁니다.


  일이란 무엇일까요? 일은 누가 하나요? 일은 어디에서 하지요? 일을 어떻게 하고, 일을 왜 하는가요?


  아침에 빨래를 하는 동안, 아이들을 어르면서, 오늘은 또 어떤 밥을 차릴까 머리를 기울이다가 문득문득 생각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흔히 “일을 한다”고 말하지만, 참말 오늘날 사람들이 “일을 한다”고 할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참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동안 즐겁게 살림을 꾸린다면고 이 삶을 사랑할 만하겠다고 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얼마쯤 번다면 ‘많이 벌든 적게 벌든’ 대수로이 여기지 않으면서 ‘일노래’를 부르고 ‘일놀이’도 할 만하지 싶습니다.


  우리가 돈을 벌어야 한다면, 떼돈이나 목돈을 쌓으려는 길이 아닌, ‘우리가 저마다 좋아하는 이 삶을 즐겁게 누리는 길에 쓸 돈’을 벌겠지요. 더 많이 벌어야 할 돈이 아니라, 곁님하고 사랑을 속삭일 보금자리를 가꿀 돈을 벌 테고, 아이들하고 신나게 뛰노는 즐거운 보금자리를 보듬는 돈을 벌 테지요.



우리 엄마는 음식 만드는 일을 가장 좋아해. 보글보글 국 끓이고, 달강달강 반찬 만들고, 칙칙폭폭 밥 짓는 일이 마냥 신난대. 식구들에게 몸에 좋고 맛있는 요리를 해 주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래. 엄마가 집에 있다고 가만히 쉬고만 있을까? 우리가 어질러 놓은 방 청소해야지, 더러워진 옷도 빨아야지, 시장에 가서 장도 봐야지, 하루 종일 우리 엄마는 바쁘고 바빠. (52∼53쪽)



  백남호 님이 빚은 그림책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에는 “일하는 엄마 아빠” 모습이 모두 열여섯 가지로 나옵니다. “일하는 엄마 아빠” 모습이 열여섯 가지뿐이겠습니까만, 십육만 가지이든 천육백 가지이든, 온갖 일 가운데 열여섯 가지를 추려서 보여줍니다.


  빨래집을 꾸리고 떡볶이를 팔며, 짜장면을 나르고 막일판에서 일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모습을 그림책에 나온 모습으로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참말 이 나라에는 숱한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녁 딸아이와 아들아이하고 사랑스레 살아가고 싶어서 “일을 찾고 일을 합”니다. 그렇지만 막상 이러한 이야기를 그림책이나 동화책이나 소설책에서 다룬 일은 드뭅니다. 사진책이나 그림책이나 만화책에서도 ‘공장에서 톱니를 맞추는 어머니나 아버지’ 삶을 좀처럼 다루지 못하거나 않지요.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바느질을 하거나 뜨개질을 하는 어머니나 아버지’ 삶자락을 살뜰히 담아내지 못하거나 않더군요. 소설책이든 시집이든 ‘호미와 괭이와 낫을 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온삶을 조곤조곤 들려주지 못하기 일쑤예요.


  이럭저럭 집안일을 건드리는 사람은 있어요. 살짝살짝 집살림을 보여주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온몸으로 아이랑 살아내며 온마음으로 함께 웃거나 우는 이야기로 온사랑으로 꽃피우는 사람은 뜻밖에 매우 적더군요.


  그림책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 이야기》라고 해서 빈틈없이 아름답지는 않습니다만, 이 그림책도 아쉽거나 모자란 구석이 있습니다만, “일하는 우리 엄마 아빠”라고 붙인 이름부터 푼더분하구나 싶어요. 수더분하지요. 이쁘장합니다. 참말로 일하는 분이거든요. 집 바깥에서도, 집에서도, 늘 일을 해요. 이 일은 바로 우리 어린이하고 푸름이를 즐겁게 사랑하면서 기쁘게 노래하는 보금자리를 북돋우는 손길이면서 몸짓입니다.



어느 날 엄마가 텔레비전에 나왔어. 엄마가 다니는 회사가 사정이 안 좋다며 엄마를 쫓아냈대. 함께 일하던 엄마 친구들도 같이 쫓겨났어. 엄마랑 엄마 친구들이 계속 일하게 해 달라고 말해도 회사에서는 엄마 말을 안 들어 줘. 그래서 엄마는 친구들이랑 함께 회사에서 일하게 해 달라고 싸우고 있어. 텔레비전에서는 엄마가 아주 나쁘고 무서운 사람처럼 자꾸 싸우는 모습만 보여줘. 우리 엄마는 집에서 방구 뿡뿡 뀌는 착한 엄마란 말이야. (74쪽)



  비가 그친 하늘은 낮에 더 파랗고 밤에 더 까맣습니다. 더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는 더욱 기운찹니다. 더 까맣게 빛나는 하늘에 퍼지는 멧새노래는 한결 그윽합니다.


  어른은 어릴 적부터 마음에 품은 꿈을 이루는 길을 ‘일’이라는 모습으로 풀어냅니다. 아이는 어버이하고 함께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 앞으로 품을 꿈을 지켜보고 생각하면서 마음에 ‘놀이’라는 씨앗으로 심습니다. 어른은 일하면서 자라고, 아이는 놀면서 자라요. 어른은 일하면서 사랑하고, 아이는 놀면서 꿈꾸지요.


  온누리 모든 어린이·푸름이랑 어른이 “돈을 버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보다 “일을 즐겁게 하고 놀이를 신나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버는 길보다는 삶을 사랑하면서 하루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아름답겠다고 생각해요. 자, 오늘도 슬슬 빨래를 새로 하고 집일도 새삼스레 붙잡아야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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