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할아버지 5
네코마키 지음, 오경화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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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젊은이가 바라보는 길



《고양이와 할아버지 5》

 네코마키

 오경화 옮김

 미우

 2019.5.31.



  돌개바람이 불기 앞서 농약드론에 능약헬기를 띄우는 소리로 시끄러웠습니다. 돌개바람이 지나가고서 다시금 농약드론에 농약헬기를 날리는 소리로 귀가 따갑습니다. 이제 웬만한 시골에서는 손수 농약을 치기가 어려울 만큼 할매 할배가 나이가 들었습니다. 농협에 돈을 주고서 농약드론하고 농약헬기를 쓰곤 합니다.



“타마야, 비 오기 전에 성묘 다녀올까?” (18쪽)



  농협은 무인헬기하고 드론으로 농약을 뿌리는 길을 닦으면서 돈을 법니다. 어쩌면 농약헬기랑 농약드론을 다루는 ‘젊은이 일거리’를 늘리는 셈일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기로 해요. 농약을 뿌리는 무인헬기하고 드론을 다루는 일거리를 늘리면 시골살이가 즐거울까요? 이러한 일거리를 맡도록 젊은이를 시골로 끌어들이면 아름다울까요?



“아휴, 귀여워라. 이리 온. 이리 온.” “키득키득. 고양이한테 말 걸었는데 얘가 도망갔어.” (31쪽)



  나라하고 지자체에서는 젊은이가 시골에 갈 수 있도록 여러모로 돈을 쓴다고 합니다만,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웬만한 시골마다 비슷한데, 시골로 가려는 젊은이는 드뭅니다. 일거리가 없기에 시골로 안 간다고도 하고, 시골살이를 몰라서 안 가기도 하고, 어두운 밤이나 조용한 낮이 두렵다고도 하고, 풀꽃나무를 하나도 모른다고도 합니다. 《고양이와 할아버지 5》(네코마키/오경화 옮김, 미우, 2019)을 펴면, 조그마한 섬마을에 새롭게 깃드는 젊은이 이야기가 흐릅니다. 처음에는 섬마을 할아버지하고 고양이 이야기였다가 차츰 ‘섬마을을 사랑하려는 젊은이’ 쪽으로 줄거리가 바뀝니다.



“그 반지, 어디서 났어?” “남편이 준 선물이야.” “어머, 부럽네. 어디서 샀어?” “어제 긴자 간 김에 사다 줬어.” “긴자? 그것, 긴자에서 산 거야? 얼마 줬어?” “그건 좀∼, 밝힐 만한 게 못 돼서.” “되게 비싸구나?” (93쪽)



  만화책 이야기는 그저 만화책에나 있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흐르는 이야기를 만화로도 옮길 수 있고요. 어느 쪽이든 좋습니다. 섬마을이건 시골이건 멧골이건 숲이건, 젊은이가 서울이며 큰고장을 스스로 떠나 고즈넉하면서 아기자기하고 푸르게 너울거리는 바람을 맞아들이는 길을 간다면 반갑지요.


  흔히들 말하기를, 돈을 벌려면 서울에 가야 한다지요. 그런데 있잖아요, 서울에서는 돈벌이가 많겠지만, 그만큼 돈쓸거리도 많아요. 많이 벌수록 많이 써야 하는 얼거리가 서울입니다. 시골이라면 돈벌거리가 적다고 하지만, 돈쓸거리도 적어요. 많이 벌어 많이 쓰도록 돌리는 서울이라면, 적게 벌어 적게 쓰도록 흐르는 시골입니다. 시골에서는 때때로 안 벌고 안 써도 느긋하게 살림할 만해요.


  이 대목을 함께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구태여 벌어야 할까요? 굳이 회사원이나 공장노동자가 되어야 하나요? 애써 초중고등학교랑 대학교랑 대학원이랑 유학을 거쳐야 하는지요?


  삶을 배우고 살림을 익히면 즐겁지 않을까요? 사랑을 나누고 슬기를 펴면 아름답지 않을까요? 새롭게 피어나는 마음이 되어 하루를 싱그러이 누릴 적에 이 땅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보람을 맛보지 않을까요?



“아뇨. 전 이미 이 섬의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다만, 교수님께 은혜를 갚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봄까지는 교수님 밑에서 일하려구요. 그리고 봄에 정식 의사가 되어 여기로 돌아와, 여러분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요.” (110쪽)



  때맞춰 농약을 뿌리는 길을 펴야 농협이나 농림부 노릇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이제는 농약이 없이, 또 비닐이 없이, 또 농기계가 없이, 또 돈을 들이는 일이 없이, 누구나 스스로 조촐히 흙살림을 이루는 길을 헤아려서 함께할 적에 참다운 농협이나 농림부 노릇이 아닐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이 손도 안 대고 기계로 척척 유리온실에서 물로 푸성귀를 뽑아내는 ‘스마트팜’이 아니라, 사람이 날마다 방긋방긋 웃고 노래하는 손길로 보드라이 풀꽃나무를 어루만지면서 하루를 짓는 ‘숲살림’으로 나아가기를 빕니다.



“젊었을 땐 본섬에 물고기 팔러 나갔는데, 이젠 그 반대가 됐네. 그야말로 우리 어머니 시대엔 이고 지고 기차도 타고, 리어카도 끌고 다니며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와주니 얼마나 좋아. 고마워. 꿈의 자동차야.” (129쪽)



  꿈이란 무엇일까요? 꿈은 누가 꿀까요? 젊은이는 무엇을 꿈꾸면서 스스로 피어날 만할까요? 나이든 사람은 어떤 꿈으로 삶을 마감하는 보람으로 걸어갈 적에 홀가분하게 꽃 한 송이가 될까요?


  이제는 ‘밑살림돈(기본소득)’ 이야기가 차츰 불거지고 무르익는데, 이 밑살림돈을 시골부터 하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복지 저런 지원사업이란 이름을 싹 걷어내고서, 누구나 시골에 몸을 깃들어 살림한다고 할 적에 ‘시골 밑살림돈’을 주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주 쉬워요. 시골 어르신이 다달이 50만 원씩 ‘시골 밑살림돈’을 받으신다면 굳이 농약이나 비닐을 쳐야 할 까닭이 없을 만합니다. 농약이나 비닐을 안 쓰고서 거둔 ‘조금 못생겨 보이거나 조금 작아 보이는’ 푸성귀하고 열매를 서울이웃이 스스럼없이 장만하는 길을 연다면, 참말로 시골 어르신이 농협에 돈을 주고서 농약드론하고 농약헬기를 띄울 까닭이 없습니다.


  더 생각해 보지요. 농약드론하고 농약헬기가 춤추느라 멧새가 죽고 벌나비가 죽으며 풀벌레에 개구리까지 몽땅 죽어서 ‘고요한 땅(레이첼 카슨이 쓴 《침묵의 봄》 같은 땅)’이 되는 시골에 찾아와서 아이를 낳으려는 젊은이란 없습니다. 아이들이 맨발로 뛰놀다 넘어져도 무릎이 안 깨지는 너른 들이며 풀밭이며 숲이 있을 적에 비로소 젊은이가 시골로 찾아와서 아이를 낳겠지요. 그리고 ‘시골 밑살림돈’이란 이름 하나로 다달이 50만 원을 주면 되어요. 이런 육아지원금 저런 자녀양육비란 이름은 다 부질없습니다. 유치원하고 학교에 갖다 바치는 돈이 아닌, 수수하게 시골살이를 하는 젊은이가 조용하면서 차분하고도 조촐하게 스스로 살림을 짓는 길을 조금씩 이바지하면 됩니다.



“이 섬을 사랑해 주는 젊은이들이 늘어난다는 건 고마운 일이지.” “암, 그렇고 말고.” (173쪽)



  한 걸음 두 걸음 이어가는 만화책 《고양이와 할아버지》는 뭐 대단하다 싶은 줄거리를 안 다룹니다. 그저 고양이 이야기에, 그냥 할아버지 이야기에, 고만고만한 섬 이야기에, 어디에나 있는 마을 이야기에, 흔하고 너른 삶 이야기를 짚습니다. 삶이 있기에 꿈을 품고, 꿈을 품기에 사랑을 길어올리며, 사랑을 길어올리기에 보금자리를 가꿉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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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벨트 이가라시 다이스케 작품집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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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 누가 누구를 배울까



《움벨트》

 이가라시 다이스케

 강동욱 옮김

 미우

 2019.5.31.



  날개가 있으면 날고, 다리가 있으면 걷거나 뛰고, 손이 있으면 쥐거나 잡을는지 모릅니다. 입이 있으면 먹거나 마시고, 이 입으로 말을 하거나 노래하고, 이 입으로 숨을 쉴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날개가 없으면 날지 못할까요? 다리가 없으면 걷지 못할까요? 손에 없으면 잡지 못할까요? 입이 없으면 말을 못할까요?



“자네 회사가 우리 회사를 매수한 게 언제였지?” “7년 전이죠.” “농약 회사가 민간 군사회사를 매수한 까닭이 그거였나?” “우리의 유전자 기술이 우주개발의 꽃이 되는 건 조금 뒤의 일. 그때까지 군사 분야에 응용하여 푼돈이라도 벌겠다는 생각이죠. 우리 회장님은 남들보다 훨씬 부지런하시니까요. 식량으로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걸로는 성에 안 차는 모양입니다.” (169쪽)



  그저 마땅하다고 여기는 길이 어쩌면 하나도 안 마땅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는 길이 더없이 대수로울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문득 “내가 입도 벙긋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어?” 하고 묻습니다. 이 말을 들은 쪽에서는 “네가 입을 벙긋하지 않아도 얼굴에 다 적혔어.”처럼 대꾸하지요. 때로는 “입으로 말해야 아니? 네 몸에서 나오는 기운으로 다 알겠던데.”라든지 “네 눈에 다 나타나더라.”라든지 “네 마음을 읽었어.” 하고도 대꾸합니다.



“실험동물이라고 되어 있지만, 이건 인간 아닌가?” “동물입니다. 내 자존심을 걸고 맹세하죠.” (149쪽)



  우리는 무엇을 볼까요? 우리는 얼마나 볼까요? 우리는 우리가 본 모습 가운데 무엇이 참이거나 거짓이라고 가려낼 만할까요? 밑바탕으로는 하나도 모른다면, 코앞에서 보더라도 무엇인가를 모를 뿐 아니라, 아예 못 느끼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저기 봐. 저기 있잖아.” 하고 손가락으로 콕 짚어도 못 보곤 합니다. ‘모르는’ 것이나 ‘처음 보는’ 것이라면, 대놓고 보여주어도 ‘알아보지’ 못해요. 다시 말하자면, 아주 쉬운 낱말로 엮은 몇 마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하더라도, ‘이 이야기에 흐르는 줄거리’를 듣는 사람으로서는 영 낯설거나 마음을 안 여는 몸짓이라면 그저 한귀로 흘러나갈 뿐입니다. 《움벨트》(이가라시 다이스케/강동욱 옮김, 미우, 2019)는 이 대목을 넌지시 건드립니다.



‘매일 수십 명씩 저렇게 소란을 떠는데, 큰 장어가 사라지는 게 당연하지. 저런 건 도시의 테마파크로도 충분한데. 역시 이 섬의 좋은 점을 좀더 알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해야 해.’ (38쪽)


‘사람들에게 알리면, 저 녀석을 지키기 위해서 섬의 환경보호에 진지하게 나서 줄까. 아니면 저 녀석을 구경거리로 삼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섬이 더욱 황폐해져 버릴까. 어떻게 하지? 알려야 하나? 아니면…….’ (41쪽)



  시골집에서 살아가다가 때때로 큰고장으로 볼일을 보러 다녀옵니다. 시골집에 깃들 적에는 풀벌레하고 멧새하고 바람하고 구름하고 풀꽃나무하고 들짐승하고 개구리하고 …… 이런저런 이웃 숨결이 들려주는 노래를 하루 내내 듣습니다. 바람빛하고 구름빛을 헤아리고 별빛하고 햇빛을 읽어요. 이러다가 큰고장에 이르면 눈앞뿐 아니라 둘레를 가로막는 가게에 아파트에 자동차에 어수선합니다. 더구나 큰고장에서는 제비는커녕 참새를 보기도 만만하지 않고, 돌림앓이가 훅 퍼진다는 2020년에는 매미 노랫소리마저 못 들어요.


  버스로 움직이거나 걸으며 돌아다니거나 가게에 깃들면서 구름빛이나 하늘빛을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사람도 자동차도 많은 큰고장에서는 천천히 걷는다든지, 걷다가 멈추어 하늘바라기를 할 겨를이 없습니다. 버스에 타서 앉든 서든 하늘을 못 봅니다. 해가 기운 뒤에는 별빛이 아니라 자동차 불빛에 눈이 따갑습니다.


  아, 이런 곳, 큰고장, 서울이란 데, 삶터가 아닌 매캐하고 차갑고 꽉 막힌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마주하거나 겪거나 스치거나 얼크러질까요?



“집에는 인간만 살고 있는 게 아니거든. 어두워지면 특히. 많은 생물이 기어다니는 소리가 집 전체에 시끄럽게 울려퍼지지. 지금까지는 왜 눈치를 못 챘을까. 마치 숲속에 있는 것 같아.” (111쪽)



  오늘날 시골 어린이는 생태자연 그림책을 그리 눈여겨보지 않습니다. 오늘날 시골 푸름이는 생태자연 인문책을 그다지 가까이하지 않아요. 둘레에서 쉽게 숲을 마주할 만하지만, 시골 어린이나 푸름이는 하루빨리 서울로 가고 싶을 뿐이요, 손전화에 코를 박으며 하루를 보냅니다.


  오늘날 서울 어린이는 생태자연 그림책을 꽤 많이 읽습니다. 서울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숲을 숲으로 보여주지는 못하고, 그림책이나 동화책으로 보여주고, 유튜브나 영화로 보여줍니다. 서울 푸름이는 꽤 어려운 말씨가 가득한 인문책으로 생태자연 이야기를 읽습니다. 서울 푸름이도 서울 어린이하고 마찬가지인데, 맨몸으로 숲을 마주할 틈이 없고, 맨손으로 숲을 어루만질 자리가 없어요.


  매미로 거듭나기 앞서 굼벵이로 살아가는 이웃 숨결이 어느 나무 곁에서 어떻게 지내는가를 살피지 못하고서 매미 도감만 달달 왼들 매미를 알 턱이 있을까요? 흔하디흔한 참새나 비둘기가 철마다 어떻게 다른 날갯짓에 노랫소리인가를 늘 귀담아듣지 않고서 그림책이나 동화책으로 살핀들, 참새나 비둘기를 안다고 할 수 있나요?


  풀개구리하고 참개구리하고 무당개구리하고 멧개구리는 울음소리가 다 다릅니다. 똑같은 풀개구리라 해도 하나하나 노랫소리가 다릅니다. 여치하고 베짱이하고 방울벌레하고 귀뚜라미하고 곱등이도 노랫소리가 다르지요. 우리는 이 얼거리를 얼마나 스스로 느끼면서 이웃하고 나누는 하루일까요?



“내가 작은 새로 변해 있는 동안에는, 두 분의 동작이나 대화도 느리게 느껴졌어요. 그럼 내가 더욱더 개미만큼 작아지면? 너무 느려서 분명 여러분이 움직이는 존재라는 사실도 알 수 없게 되겠죠. 언덕이나 산과 똑같이 보이고 말 거예요.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서로 상대가 있는지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다른 시간 속에 있겠죠. 왠지, 죽는다는 것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눈치채지 못할 뿐, 있는 게 아닐까 하고.” (21쪽)



  만화책 《움벨트》에 흐르는 이야기는 얼핏 먼먼 꿈나라 같은 삶일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깊이 감춰진 모습일 수 있습니다. 정부나 권력자가 숨기고, 지식인이나 과학자가 모르는 척 지나가려는 모습이라고도 하겠지요. 그러나 우리 스스로 눈을 감거나 등돌리면서 어느덧 우리 마음에서 사라져 버린 숨결이라고 해야 옳지 싶어요.



“당신은 개구리의 대합창을 들은 적 있나요?” “아아, 네. 인도네시아에서.” “그 장대한 교향악을 경험했다면 알겠죠. 그들은 소리로 세상과 일체화할 수 있어요. 우주공간은 진공이라 소리는 전달되지 않는다고 하죠. 하지만 소리를 전달하는 매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간 물질로 가득 차 있죠. 다만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소리로서 전달되지 않을 뿐입니다.” (188쪽)


“하지만 개구리라면 그들의 피부는 틀림없이 우주의 교향곡을 받아들일 수 있어요. 인간보다 더욱 우주공간에 친숙해지겠죠.” (189쪽)



  누가 누구를 배울까요. 아이는 언제나 어른한테서 배우는데, 오늘날 어른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사랑하고, 어떻게 살림하며, 어떻게 일하거나 노는가요? 앞으로 어른이란 자리에 설 아이들은 일하고 놀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서 어떻게 가꿀 적에 아름답거나 즐거울까요?


  아이들이 드론을 다루는 솜씨를 배워서 농약드론도 돌리고 사진드론로 다루고 군사드론을 만지작거리도록 해야 첨단문명이나 직업훈련이나 사회공헌이 될까요? 아이들이 손수 낫을 쥐어 풀을 베고, 풀베기를 마친 다음에는 풀밭에 드러누워 하늘바라기를 하고, 다시 낫질을 하고서 새참을 먹고 수다를 떨면서 쉬다가, 일을 마무리짓고서 나무가 우거진 길을 걸어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삶을 누리도록 이끌어야 어른다운 어른이지 않을까요?


  큰고장에는 빛이 없습니다. 참말 없습니다. 그러나 빛이 없는 큰고장이기에 앞으로 참답게 고운 빛이 천천히 피어나도록 처음부터 가다듬을 수 있기를 바라요. 빛이 퍼질 수 없도록 잿빛으로 매캐하게 꽉 막힌 큰고장이기에, 그곳에 빛씨앗 한 톨을 심어서 나무 한 그루로 돌보는 길을 생각하는 어른 한 사람이 씩씩하게 설 수 있기를 빌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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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여우 14
오치아이 사요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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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믿지 말고 볼 줄 알면



《은여우 14》

 오치아이 사요리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20.8.31.



  볼 줄 안다면 그저 봅니다. 믿는다거나 못 믿겠다는 생각으로 가지 않습니다. 볼 줄 알기에 그저 바라보지요. 있는 대로 보며, 드러나는 대로 느끼고, 느끼는 결을 하나하나 맞아들입니다.


  볼 줄 모른다면 참말로 못 볼 테지요. 감추거나 숨길 적에 알아채지 못하기도 하지만, 꾸미거나 덧씌우면 속기도 합니다. 이러다 보니 ‘못 보는 마음으로 그저 따르다’가 ‘믿음이 스스로 굴레가 되’기 일쑤입니다. 볼 줄 아는 눈길이 없다면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텐데, 눈길도 마음길도 아닌 ‘믿음’으로 가고 나면, 둘레에서 들려주는 말이라든지 꺼풀을 벗긴 속모습을 마주하더라도 참길을 마주하려고 하지 않더군요.



“타츠오는? 타츠오는 보여? 아빠는 안 보여! 그러니까 믿는 거라니까!” (15쪽)



  믿는 마음이 되면 눈앞에서 뻔히 보이는 모습을 놓고도 거짓길로 갈 때가 있습니다. 믿어버렸거든요. 밑자리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믿음은 좀처럼 안 흔들리지요. 그래서 정치하고 종교는 언제나 사람들이 ‘믿고 따르’도록 내몰기 마련입니다. 허수아비를 세우는 모든 곳은 사람들이 참길을 바라보지 않게끔, 참삶을 생각하지 않도록, 참사랑으로 어우러지지 않을 굴레를 씌우려 합니다.


  믿게 하려면 다 다른 모습을 거슬러야 하지요. 다 다른 사람이 다 같은 차림새에 말씨에 얼굴이 되도록 내몰아요. 이러면서 또래를 묶어 하루 내내 지내도록 묶어 놓습니다. 똑같은 책을 펴서 똑같은 이야기를 달달 외워서 똑같은 종이를 내밀고는 똑같은 풀이를 적도록 밀어붙입니다.



“뭐, 유코를 잊으라는 건 아니지만, 딱히 물건에 집착하지 않아도 추억은 얼마든지 있잖아. 조금씩 정리를 해두는 게 좋아.” (59쪽)



  어버이는 아이를 안 믿습니다. 어버이가 왜 아이를 믿어야 할까요? 어버이는 아이를 바라봅니다. 어버이는 아이가 어떤 마음이나 생각이나 뜻으로 움직이는가를 지켜봅니다. 어버이는 언제나 사랑이라는 눈길이 되어 마주보려 합니다.


  어버이는 ‘보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이 되면 아이가 몹시 괴롭습니다. 거꾸로 아이도 어버이를 믿을 적에 스스로 갇혀요. 어버이를 믿는 아이는 스스로 서는 힘을 기르지 못합니다. 어버이를 바라보면서 어깨너머로 배우고, 곁에서 익히며, 함께 누리면서 삶으로 녹일 줄 안다면, 이 아이는 슬기롭고 튼튼하며 의젓하게 큽니다.


  일본절(신사)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루는 《은여우 14》(오치아이 사요리/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20)은 첫걸음부터 이어온 ‘믿다·보다 사이에 무엇이 있나’ 하는 대목을 부드럽게 다룹니다. 그저 수수하다 싶은 사람살이에서 왜 누구는 믿고 왜 누구는 보는가를 다루려 하지요. 믿는 마음으로 어떻게 살고, 보는 마음으로 어떻게 사는가를 가만히 맞댑니다.



“보통은 큰 신사에서 해야 신덕을 입는다고 생각하시지만, 시치고산은 원래 지역의 우지가미님을 모신 신사에서 하는 행사고, 게다가 큰 신사는 많은 사람이 참배를 오시니까 궁사 밑에 있는 여러 신직들이 진행하지만, 이쪽은 신사의 수장인 궁사님께서 직접 진행을 해주시죠.” (107쪽)



  ‘믿음직하다’라는 말씨는 좋은 결도 나쁜 결도 아니라고 여깁니다. 무엇을 하든 받아들일 만하기에 믿음직할 텐데요, 무엇을 하든 받아들일 만한 사람이 나쁘지 않을 수 있다지만, 이보다는 ‘같이 일할 만한’ 사람이라면 더없이 반가우리라 생각해요. 믿음직하기보다는 ‘함께 놀고 일하며 살아갈 만한’ 사람이라면 그지없이 사랑스러울 테고요.



‘죽음을 접하면 부정 탄다. 인간은 죽음을 접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존재일까? 죽음이란 대체 뭘까?’ (136쪽)


‘불교는 다시 태어나지만, 신도에서는 죽은 사람은 신이 되어 지켜봐 준대. 그것도 왠지 나쁘지 않네.’ (138∼139쪽)



  알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알기 때문에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길이든 다르게 살아가며 다르게 맞아들이는 하루가 되겠지요. 저는 ‘알기 때문에 바라보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알아냈기 때문에 더 즐겁게 바라보거나 들여다보거나 살펴보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하나를 알았으면 이다음인 둘을 알고 싶은 걸음이 되고 싶어요. 둘을 알아냈으면 열이며 스물을 내다보면서 새삼스레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습니다.


  알아낸 대목으로 굳게 믿음을 뿌리박고 싶지 않습니다. 알아낸 대목을 내세워 믿음직한 모습이 되고 싶지 않아요. 알면 알수록 제 마음속을 한결 깊고 넓게 파헤치면서 더더욱 날아오르는 바람이 되고 싶습니다. 때로는 돌개바람이 되겠지요. 때로는 휘파람이 되겠지요. 때로는 산들바람이 될 테지요.


  어느 바람이든 이 별을 두루 돌면서 푸르게 어루만집니다. 어떠한 바람이든 누구한테나 서글서글 다가서면서 곱게 흐릅니다. 바람이 불기에 풀꽃나무가 숨을 쉬고, 사람도 숨을 쉽니다. 바람이 있기에 이 별은 푸르게 빛납니다.



“전에 물어봤지? 왜 신주를 그만뒀냐고. 내가 없었기 때문이야.” (177쪽)



  나이기에 ‘나’를 찾습니다. 너이기에 ‘너’를 찾지요. 내가 너를 보면 너는 너이지만, 네가 나를 보면 너는 ‘너이면서 나’입니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면서 서로 다른 줄 알아차립니다. 서로 다르기에 서로 다른 솜씨와 재주를 살려서 서로 다른 즐거운 하루가 되기를 꿈꿉니다.


  서로 다른 우리가 굳이 똑같아야 하지 않아요. 서로 다른 우리가 애써 똑같은 길을 가야 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대로 못 먹는 밥이 있고, 그대는 그대대로 못 마시는 술이 있겠지요. 저는 저대로 엉성한 손놀림이 있을 테며, 그대는 그대대로 멋진 손빛이 있겠지요.


  우리가 저마다 믿지 않고 볼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믿음이란 틀을 버리고, 믿음이란 굴레는 녹여버리고, 언제나 새롭게 보고 새삼스레 바라보며 사랑으로 마주보는 상냥한 눈망울이 되기를 빕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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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멜 심해수족관 2
스기시타 키요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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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참되게, 참하게, 참말로



《마그멜 심해수족관 2》

 스기시타 키요미

 문기업 옮김

 대원씨아이

 2020.2.29.



  어떻게 하면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요? 참으로 까마득합니다. 저는 때때로 입을 다무는데요, 왜 다무느냐 하면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면서, 거짓말이 아닌 참말을 어떻게 부드럽고 상냥하게 해야 좋을까 하고 생각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심해는 컴컴하기만 한 장소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어두우니까 빛이 보이는 거구나.” (12쪽)



  늘 느끼며 살아가는데, 두 다리로 걷지 않는 사람이라면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아기를 등에 업고 두 다리로 걷지 않는 어버이라면 자장노래를 사랑으로 부르지 못합니다. 못 믿겠다면 그냥 해보셔요. 신나게 노느라 곯아떨어진 아이를 안거나 업고서 두어 시간쯤 천천히 거닐어 보셔요. 아마 노래가 저절로 샘솟겠지요.


  아기를 안고 업고 재우고 달래는 동안 흘러나오는 자장노래를 그저 불러 보셔요. 한두 판만 이러지 말고, 몇 달도 아닌 몇 해를 이렇게 아이를 품에 안으면서 하루 한나절을 업은 채 걸어다니면서 자장노래를 가장 상냥한 목소리로 불러 보셔요. 그러면 알 만하지 싶어요.



“물고기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계속 애정을 쏟는 것뿐이야.” (36쪽)


“관심을 갖는 건 좋지만 뭐든 다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기만 해서는 재미없어. 스스로 발견한 순간이야말로 가장 재미있는 순간이거든.” (52쪽)



  우리가 마음을 늘 활짝 틔워 놓고 산다면 자가용을 몰아도 됩니다. 우리가 사랑을 언제나 가득가득 길어올리면서 일한다면 자가용뿐 아니라 비행기이든 무엇이든 다 몰고 다녀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제대로 열지 못하는 몸으로 지낸다면 숱한 자가용이며 손전화이며 텔레비전이며, 게다가 책이며 영화까지도 우리한테 아무 이바지를 못 하기 마련이라고 느낍니다.


  아주 마땅하거든요. 우리 스스로 이 터전이 아름다운 보금자리라 여긴다면 맨발로 흙을 밟고 맨손으로 풀꽃을 쓰다듬을 만한 마을숲을 가꾸겠지요. 우리한테 맨발로 디딜 텃밭이나 뒤꼍이나 마당이 없다면, 우리한테 맨손으로 쓰다듬을 풀꽃나무가 없다면, 우리 삶에는 가장 대단한 알맹이가 없으면서 쳇바퀴에 갇힌 얼거리입니다.


  스스로 길찾기를 하고 싶으나 아직 길찾기까지는 어림도 못하면서 차근차근 한 발짝씩 떼고 싶은 젊은이가 나오는 《마그멜 심해수족관 2》(스기시타 키요미/문기업 옮김, 대원씨아이, 2020)을 읽으며 빙그레 웃습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는 ‘깊바다 이웃’을 사진으로 담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하는 일이 일인 만큼 아버지를 보기 어렵대요. 이 아버지는 이녁 아이한테 ‘바다벗’ 이름을 굳이 알려주지 않는다지요.



“사람들이 우무문어가 얼마나 귀여운지 알아줘서 다행이야. 먹어도 맛이 없어서 옛날에는 가치가 없다며 그냥 버렸대. ‘귀엽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은 이렇듯 생물을 지키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해.” (58쪽)



  마을길을 걷지 않는 면장이나 동장이나 구청장이나 군수나 시장이나 국회의원이라면 그 마을을 모를 뿐 아니라, 그 마을에 참다이 사랑스레 이바지할 길을 하나도 모릅니다. 생각해 봐요. 한집에 살면서도 부엌에 걸음을 하지 않을 뿐더러, 설거지를 안 하고 밥을 안 짓고 부엌을 이모저모 쓸고닦고 치우고 건사하지 않는 사람이 ‘밥살림’을 알까요? 밥살림뿐 아니라 부엌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도 모를 테고, 집에서 어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가조차 모르겠지요.


  손수 부엌살림을 맡아서 하지 않는 대통령이나 군수나 국회의원이나 도지사라면, 이들은 어떤 정책이나 행정을 펼까요? 이런 이들이 펴는 길은 우리 살갗에 조금이라도 와닿을까요? 아기를 업고서 자장노래를 찬찬히 불러 주며 오래오래 어우러진 적이 없는 살림으로 ‘국민 여러분’이란 말만 주워섬기는 이들이 참말로 슬기로이 정치일꾼 노릇을 할까요?



“먹는 사람을, 음식 재료를, 소중히 생각하며 만들었어. 그래, 이곳에 온 지 벌써 3년이나 됐던가? 열심히 많이 노력했구나.” (112∼113쪽)



  작은 만화책 하나를 펴면서, 더구나 ‘심해수족관’을 바탕으로 다루는 만화책 하나를 읽으면서, 사람이 사랑으로 살아가는 슬기로운 살림길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환하게 들여다봅니다. 깊바다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를 ‘고기’가 아닌 ‘이웃’이며 ‘동무’로 마주하고픈 아이는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어떤 꿈을 그릴 적에 즐거우면서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을 짓는데, 이러한 줄거리를 만화책으로 들여다보면서 ‘이 만화가 대단하다’보다는 ‘이렇게 삶을 그릴 수 있는 틀이기에 만화가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그렇지요. 만화이기에 깊은바다 이야기를 척척 그림으로 옮깁니다. 만화이기에 깊은바다 이웃을 사귀면서 상냥하게 마주하고픈 아이가 있다는 줄거리를 짜서 차근차근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만화이기에 모든 길을 틔워요. 만화인 터라 모든 꿈을 새롭게 빚습니다. 만화라는 얼거리로 부드러이 두 손을 맞잡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건 잘 압니다. 하지만 괴로워하는 모습을 이미 제 눈으로 보고 말았어요. 그게 수조 안이든 바닷속이든 그냥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다니,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143∼144쪽)



  이 나라 숱한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초등학교랑 중학교랑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직업훈련’을 받거나 ‘입시훈련’을 받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봐요. 오늘날 이 나라 학교는 모조리 훈련만 시킵니다. 배움길이 아니에요. 꿈을 이루는 일을 찾도록 돕는 배움터가 아니라, 돈을 잘 버는 일자리(직업)를 더 빠르고 손쉽게 얻도록 자격증학고 졸업장을 거머쥐도록 얽어매는 학교예요.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대학교를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어느 만화책에서든 아이들은 스스로 삶을 마주하면서 배우고 깨닫고 돌아보고 헤아리면서 생각을 지어요. 비록 만화책으로 그치는 이야기가 될는지 모르지만, 만화에서만 흐르는 이야기가 아닌, 만화에서도 삶에서도 이처럼 씩씩하고 의젓한 아이들이 곳곳에서 무럭무럭 자란다고 하는 빛을 느낄 수 있어요.



“지금은 지식도 경험도 없지만, 앞으로 이곳에서 배우고 싶어요. 유리 너머에서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심해에 있는 생명들과 직접 접촉하고 싶어요.” (184∼185쪽)



  참되게, 참하게, 참말로 길을 걷습니다. 참되게, 참하게, 참말로 사랑을 합니다. 참되게, 참하게, 참말로 하루를 짓습니다. 참되게, 참하게, 참말로 이야기를 펴고 웃음을 띄웁니다. 저 너머를 기웃거리기만 하지 않습니다. 저 너머로 한 발짝을 떼고 두 발짝을 옮깁니다. 석 발짝을 디디고 넉 발짝을 밟습니다.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차근차근 나아가면서 스스로 큽니다.


  노래하고 뛰놀기에 꿈을 꾸는 어린이입니다. 꿈을 꾸기에 노래하고 뛰노는 어린이입니다. 우리 어른은 어떤 어린이로 자랐나요? 우리 어른은 오늘 어떤 어린이를 코앞에서 마주하며 어깨동무를 할 마음인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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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의 권 1
Buronson 글, 하라 테츠오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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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하늘처럼 파랗게 두 손 가득



《창천의 권 1》

 부론손 글

 하라 테츠오 그림

 조진숙 옮김

 학산문화사

 2002.5.25.



  중학교 2학년 무렵이라고 떠오르는데, ‘기술’이란 갈래에서 하는 ‘제도’를 배워야 해서 값비싼 ‘제도 참고서’를 사야 했고, 어머니한테서 돈을 받아 학교 앞 문방구로 걸어가다가 그만 주먹떼를 마주쳤습니다. 이들은 대여섯이었나 예닐곱이었는데, 저하고 동무를 두들겨패고서 돈을 빼앗습니다.


  돈을 빼앗긴 채 집으로 울면서 돌아오니 우리 형은 도리어 저를 나무랍니다. 얼간이 같은 놈들한테 돈을 빼앗기고도 모자라, 맞고 울면서 돌아오느냐고, 넌 안 되겠으니 바로 무술학원에 다녀야겠다면서 제 손목을 움켜쥐고 온갖 무술학원을 찾아갔어요.



“염왕을 잡아? 푸하하! 염왕이 폐하의 호위병이 되면 우린 하루아침에 거지꼴이 되고 말 텐데! 당연히 찾는 즉시 없애버릴 거야!” (40쪽)



  태권도, 유도, 합기도 …… 이런 저런 무술학원을 찾아가서 어떻게 가르치는가를 지켜본 우리 형은 이도 저도 내키지 않습니다. 이러다가 특전무술을 가르치는 데에 저녁나절에 닿는데, 우리 형은 이곳이 마음에 든다며 대뜸 제 이름을 적어 넣고 이튿날부터 다니라고 얘기합니다.


  특전무술을 가르치는 그곳은 가장 어린 배움이가 고등학교 2학년이고, 그나마 한 사람입니다. 이이하고 저를 뺀 모든 사람은 스무 살이 넘어요. 어쩜 이렇게 벅찬 곳에 집어넣는가 싶었으나, 무술학원 막내 가운데 그야말로 꼬꼬마라는 대목 때문에 오히려 이를 악물기로 했어요.



“왜 말하지 않았어요, 리! 나에 대해 다 말하지 그랬어요!” “우린 친구를 팔지 않아! 그게 청방이야!” (51쪽)


“이 은혜를 어떻게 갚지?” “필요 없어.” “뭐라구?” “친구잖아?” (73쪽)



  우리 주먹은 왜 있을까요? 우리는 주먹으로 무엇을 할 만할까요? 주먹이란 다른 사람이나 짐승을 때리라고 있을까요? 푸른별 사람들이 걸어온 자취를 돌아보면, 아무래도 하나같이 싸움자취입니다. 어느 나라를 돌아보아도 이른바 ‘역사’란 이름으로 남기는 얘기는 한결같이 싸움박질입니다.


  《창천의 권 1》(부론손 글·하라 테츠오 그림/조진숙 옮김, 학산문화사, 2002)를 읽습니다. 이 만화에 앞서 《북두의 권》이 있어요. 두 만화는 어깨동무를 하는 줄거리입니다. 사람들이, 아니 사내들이 참다운 빛을 잃고서 오직 ‘돈·가시내·마약’에 사로잡혀 노닥질을 하고 쌈박질로 하루를 보내는 어지럼판을 오직 맨주먹으로 때려부수면서 “넌 이미 죽어 있다”라는 한 마디를 날리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오호! 북두의 별이 소원을 이루어준 건가? 짐을 위해 잘 와주었다!” (철썩!) “으아악! 아브브브브! 아파! 무슨 짓이냐! 부모한테도 맞은 적이 없는 짐을! 짐은, 짐은, 짐은, 황제다!” “거 참 되게 시끄럽군, 이 얼뜨기! 차라리 죽어버리지 그래? 인간 말종, 똥자루야!” (100∼101쪽)



  어릴 적부터 어른이 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늘 생각에 잠깁니다. 우리 눈은 왜 있을까요? 우리 이는 왜 있을까요? 우리 귀는 왜 있을까요? 우리 손발은 왜 있을까요? 우리 몸은 왜 있을까요? 스스로 묻고 생각합니다.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도 다시 묻고 자꾸 묻습니다.


  어느 날 문득 어디에선가 소리를 들려주는 빛덩이가 있어요. “얘야, 사람한테 주먹이란, 작은 씨앗을 든든히 감싸서 지켜 주려고 있단다. 그리고, 이 움켜쥐면서 생기는 주먹이란 눈물을 훔치라고 있고, 빗물을 떨구라고 있단다. 이 주먹은 어른이 된 몸으로 아이들을 두 팔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해서 즐겁게 노는 구실이란다.”


  그래요. 그렇지요. 싸우라는 주먹이 아닌, 씨앗을 감싸면서 바깥 그 어느 얄궂거나 자질구레하거나 지저분한 것도 스미지 못하도록 돌보는 주먹일 테지요. 누가 주먹을 쥐어 때리려고 달려들면 손을 활짝 펴서 가볍게 톡톡 스치며 흘려보내라는 손일 테지요. 맞싸우는 주먹이 아닌, 안쓰럽거나 가엾거나 바보스러운 이웃을 보면 스스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이 눈물을 씻으라는 주먹일 테고요.



“잠꼬대 하지 마! 개가 사람을 물면 그 책임은 주인한테 있어!” (106쪽)


“힘겨루기는 끝났어. 죽을 필요는 없어.”“경호원 생활에 열중하다가 내 권법은 녹슬어 버렸어. 아니, 나 자체가.” (159∼160쪽)



  무술학원이란 곳을 다니면서 날마다 담금질을 했습니다. 무술학원 사범은 날마다 저를 숱하게 집어던졌습니다. 집어던지면서 늘 말하지요. “바닥에 떨어질 적에 바로바로 낙법을 해서 몸이 안 다치게 해라.” 어리다고 봐주는 눈치가 하나도 없는 무술학원에서 이를 깨물고 살아남으려고 집하고 학교하고 무술학원 사이를 날마다 뜀박질로 오갔어요. 버스를 아예 안 탔고, 걷기조차 안 했어요. 등짐이 가볍건 무겁건 늘 달렸어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그저 눈비를 맞으면서 달립니다. 건널목에 걸리면 제자리뛰기를 했고, 건널목이 푸른불로 바뀌면 이내 다시 달렸지요.


  무술학원 다른 사람들이 한 시간 동안 땀을 빼면 저는 두 시간 동안 땀을 뺐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팔굽혀펴기를 백 판 하면 저는 이백 판을 했습니다. 무엇이든 곱빼기로 했고, 온힘을 다해 한 해 동안 무술학원을 버티어 냈어요.



“죽을 자리는, 어디든 상관 없어.” (174쪽)


“보답을 하고 싶네.” “됐습니다.” “그럼 이것밖에 없지만 이거라도 가지고 가게.” “라면 값은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자넨, 내 딸의 생명을 구해 줬어.” “그럼 담배 한 개비, 그거면 됩니다.” “왜 구해 준 건가?” “후우, 맛있군. 당신은 여기서 죽기에는 아깝다, 그렇게 보였을 뿐.” (190∼191쪽)



  무술학원을 다닌 뒤로는 얻어맞은 일이 없을까요? 여느 삶터에서는 얻어맞은 일은 없습니다만, 군대에서는 노상 얻어맞습니다. 군대는 병장·상병·일병·이병으로 가른 자리뿐 아니라, 행정보급관·하사관하고 중대장이란 자리로 윽박지르면서 마구마구 두들겨패더군요.


  무술학원을 다니고서도 ‘주먹으로 남을 때리지’ 못하고 얻어맞기만 했다지만, 무술학원을 다니면서 몸을 다스린 바탕이 생겼기에, 군대에서 그렇게 흠씬 맞는 나날이었어도 견딜 만하더군요. 그렇게 때려대는 사람을 보면서 ‘그대야말로 참 불쌍하네.’ 하고 마음으로 생각했어요. 주먹꾼이 군대를 마치는 마지막날 밤에 그 주먹꾼한테 조용히 찾아가서 “야, 오늘 저녁까지는 네가 고참인지 지랄인지 모르겠으나, 이튿날부터 넌 개×끼야. 내가 이 군대를 마치고 사회에 돌아가면, 넌 내가 없는 데로만 다녀. 길에서 나를 봤다가는 너 무슨 꼴이 날는지 모른다.” 하고 속삭였어요.


  《창천의 권》에 잘 나오는데요, 주먹질을 일삼는 이들은 저희보다 힘센 주먹이 눈앞에 있으면 깨갱하면서 꼬리를 내립니다. 아무 데서나 주먹을 휘두르는 이들은 얌전하거나 반듯하거나 착하거나 부드러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어요. 그래서 그런 주먹꾼이 군대에서 저지른 주먹질을 뒤로 하고 사회로 돌아갈 적마다 흠씬 말벼락을 베풀어 주곤 했습니다. 그들하고 똑같이 되고 싶지 않아 그들을 주먹으로 건드리는 짓은 안 했고요.



“라몬, 많이 컸구나! 이제 안심이다!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네가 계승자다!” “무슨 소리야. 바보야! 형 맘대로 뭐야? 말도 안 되는 소리란 거 잘 알잖아!” “라몬! 만일 고민되는 일이 있으면, 창공을 생각해라! 창공에 기원해라!” (206∼207쪽)


“아무리 구름이 끼어도 구름 위는 항상 창공이다! 너의 소망은 창공에 있다!” (208쪽)



  만화책을 덮고서 생각에 새삼스레 잠깁니다. 1995∼1997년에 군대에 있는 동안 저를 그렇게 때려댄 그 바보스러운 사내한테 말벼락을 퍼붓는다고 해서 그들이 사회에서 달려졌을는지 알 길이 없어요. 어쩌면 그들은 군대에서 무슨 짓을 일삼았는지 감쪽같이 숨기거나 꽁꽁 묻어두면서 오늘을 살아갈는지 모릅니다.


  뒤늦은 일이기는 하겠지만, 그때 그들한테 말벼락이 아닌, 눈물어린 말을 들려주면 어떠했으랴 싶어요. 이를테면 “밤이라서 별빛이 가득한 까만하늘이야. 이 까만 밤하늘을, 또 낮에는 새파란 하늘을, 어디에 가서라도 생각하기를 바라. 그대가 주먹을 휘두른들 저 별빛이나 바람을 부술 수 있니? 건드리지도 못할걸. 부디 이다음에 가는 곳에서는 주먹에서 힘을 풀고서 별빛을 두 손에 담고 바람빛을 두 손으로 쓰다듬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 이제부터라도 착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겠어. 네가 앞으로 착하게 살아간다면, 뭐 그때엔 길에서 그대를 스칠 일이 있으면 빙긋 웃어 줄게.” 같은 말을.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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