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1643) 플러스적 1 : 플러스적인 매력

 

.. “소주와 요리는 각각 독립되어 맛을 내는 거지만, 니혼슈는 요리를 한층 맛있게 해 주는 플러스적인 매력이 있거든요.” ..  《오제 아키라/임근애 옮김-술의 장인 클로드 (2)》(대원씨아이,2007) 44쪽

 

 “각각(各各) 독립(獨立)되어”는 “서로 따로따로”나 “저마다 달리”나 “따로따로”나 “저마다”로 다듬습니다. “맛을 내는 거지만”은 “맛을 내지만”으로 손봅니다. “매력(魅力)이 있거든요”는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으나, “좋거든요”나 “입맛을 사로잡거든요”나 “입맛을 끌거든요”나 “돋보이거든요”나 “돋보여 좋거든요”로 손질할 수 있어요.

 

 플러스적 : x
 플러스(plus)
  (1) 이익이나 도움 따위를 이르는 말
   - 내 자신에게 플러스가 될지 모른다
  (2) [물리] = 양극(陽極)
  (3) [수학] = 더하기
  (4) [의학] 질병 따위의 검사에서, 양성임을 이르는 말

 

 한층 맛있게 해 주는 플러스적인 매력이 있거든요
→ 한층 맛있게 해 주거든요
→ 한결 맛있게 해 주도록 도와주거든요
→ 한결 맛있게 이끌거든요
→ 한결 맛있게 북돋우거든요
 …

 

 “플러스적인 매력”이라는 대목은 한국사람이 한국 말투로 적바림했다고 여겨야 할는지, 아니면 일본사람이 일본 말투로 적바림한 대목을 고스란히 한글로 바꾸기만 했다고 여겨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일본사람이 일본 말투로 ‘プラス的魅力’이라 적었으리라 느낍니다. 일본 누리집에서 ‘プラス的’을 찾아보면 이 말투가 제법 많이 떠요. 일본사람은 ‘プラス的’뿐 아니라 ‘プラス’도 무척 자주 씁니다.

 

 그런데, 한국사람도 “플러스적 사고”나 “플러스적 요인”이나 “플러스적 효과”나 “플러스적 요소”라고 하면서 ‘플러스적’이라는 말투를 참 곳곳에 씁니다. “좋게 생각하기”나 “더 생각하기”를 말하지 못합니다. “도움되는 대목”이나 “더 나은 대목”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좋은 효과”나 “도움되기”나 “이바지하기”를 다루지 않아요.

 

 내 자신에게 플러스가 될지 모른다
→ 나한테 도움이 될지 모른다
→ 내게 더 좋을지 모른다
→ 나한테 한결 나을지 모른다
→ 내게 좋은 일인지 모른다
 …

 

 더 좋은 일은 더 좋습니다. 더 나은 일은 더 낫습니다. 더 기쁜 일은 더 기뻐요. 더 도움이 되는 일은 더 도움이 돼요. 한국사람은 예부터 좋다 말하고 낫다 말하며 기쁘다 말합니다.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보탬이 된다고 말하며 힘이 된다고 말해요.

 

 이제 21세기로 접어든 한국이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땅에서는 한국사람 한국 말투보다는, ‘세계 시민 세계 말투’로 이야기할 수 있는지 모르지요. 아니, 이제는 영어도 섞고 일본 말투도 섞는 말투가 되어야 한다고 여길는지 모릅니다. 참말, 이제는 한겨레다운 한겨레 말투는 싹 걷어치우거나 잊어야 하는지 몰라요. 뿌리를 잊고 줄기를 모르며 잎과 꽃과 열매를 내버리는 한겨레가 되어야 하는지 몰라요. (4344.12.2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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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흥이 다 깨져

 

.. 내 말에 남아 있던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흥이 이미 다 깨져 버렸던 것이다 ..  《벤 마이켈슨/홍한별 옮김-나무소녀》(양철북,2006) 39쪽

 

 “남아 있던”은 “남았던”이나 “남은”으로 손봅니다. “깨져 버렸던 것이다”는 “깨져 버려 있었다”나 “깨져 버렸으니까”로 다듬습니다.

 

 흥(興) : 재미나 즐거움을 일어나게 하는 감정
   - 흥이 나다 / 흥을 깨뜨리다 / 춤과 노래로 흥을 돋우었다

 

 흥이 깨져 버렸던
→ 재미가 깨져 버렸던
→ 즐거움이 깨져 버렸던
→ 기쁨이 깨져 버렸던
→ 신바람이 깨져 버렸던
 …

 

 저는 ‘흥’이라는 말을 들으면, 콧방귀를 뀌는 “흥!”이 먼저 떠오릅니다. 어릴 때부터 이랬습니다. 그저 “흥! 흥! 흥!” 하듯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흥을 돋운다”고 말하면 “흥흥거리며 무얼 돋운다구?” 하면서 썰렁한 말장난을 하곤 했습니다.

 

 흥이 나다 → 재미가 나다 / 신이 나다
 흥을 깨뜨리다 → 재미를 깨뜨리다 / 신바람을 깨뜨리다
 흥을 돋우었다 → 재미를 돋우었다 / 즐거움을 돋우었다

 

 외마디 한자말 ‘興’을 헤아려 봅니다. 국어사전을 뒤적이고 나서야 이 낱말이 한자말이었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아마 ‘흥’을 한자말로 깨닫는 분은 썩 많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한자말인 줄 안다 하여도 그저 이 낱말을 쓸 뿐, 달리 어찌어찌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흥은 그저 ‘흥’이라고 여길 테니까요.

 

 조금이나마 생각이 깊은 분들은 한자말 ‘興’이 “재미 흥”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토박이말로는 ‘재미’요, 한자말로는 ‘興’이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리라 봅니다. 사람들이 한자말 ‘興’을 널리 쓴다면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일 테지만, 나 스스로 굳이 ‘興’을 쓰지 않아도 우리 말 ‘재미’가 있으니, 우리 말로 넉넉하게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고 생각하리라 봅니다.

 

 여기에 ‘신’과 ‘신바람’이라는 다른 낱말이 있습니다. 자리에 따라 ‘기쁨’이나 ‘즐거움’을 넣을 수 있습니다.

 

 보기글에서는 ‘잔치판’이라고 적어도 어울립니다. “즐거운 잔치판”이나 “신나는 잔치”나 “기쁜 놀이마당”이라고 적어 볼 수 있습니다.

 

 잔치판은 벌써 다 깨져 버렸던
 즐거운 잔치는 벌써 다 깨져 버렸던
 신나는 잔치는 벌써 다 깨져 버렸던
 기쁜 놀이마당은 벌써 다 깨져 버렸던
 …

 

 한자말을 쓴다 해서 생각과 넋을 좁은 틀에 가두어 버린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한자말이 굴레가 되어 생각과 넋이 갇힌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누구나 익숙해지거나 길들고 맙니다. 한 번 두 번 쓰는 말이 더 익숙하고, 저도 모르게 어떤 말씨와 말투에 길들어요. 살갑고 싱그러운 말투에도 익숙하게 젖어들지만, 얄궂고 뒤틀린 말투에도 익숙하게 물듭니다.

 

 스스로 마음밭을 튼튼하게 일구려 하지 않는다면, 거친 물결에 아무렇게나 휩쓸리지 않도록 담금질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들 생각이며 넋이며 엉망이 되기 일쑤입니다. 얕고 추레한 말에 나도 모르게 젖어들고 맙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합니다만, 곰곰이 말삶을 돌아볼라치면, ‘興’이 쓰이는 만큼 ‘재미’와 ‘신’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재미나다’는 한 낱말로 국어사전에 실리지만, ‘신나다’는 아직까지 국어사전에 못 실립니다. 왜냐하면, 사람들 스스로 즐겨쓰지 않으니까요. 나 스스로 우리 말을 북돋우거나 가꾸지 못하니까요.

 

 외마디 한자말 ‘興’을 쓰겠다면 쓸 노릇입니다. 다만, 우리가 ‘興’이라는 낱말을 쓰는 동안 ‘재미’와 ‘재미나다’라는 말마디는 자취를 감춥니다. 우리가 ‘興’이라는 낱말로 우리 모습을 가리키는 만큼 ‘신’과 ‘신나다’라는 글줄은 가뭇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4340.2.26.달./4342.5.4.달.4344.12.20.불.ㅎㄲㅅㄱ)

 

 

 

ㄴ. 흥이 절로 났다

 

.. 이어도라는 상상 속의 유토피아라는 희망이 있는 한, 헐벗고 굶주려도 섬의 토박이들은 흥이 절로 났다 … 공부 열심히 해 부모보다 사람답게 살아가길 기원하노라면 힘든 노동에도 그저 신바람이 난다. 이어도라는 상상 속의 섬이 존재하는 한 신바람이 절로 난다 ..  《김영갑-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하날오름,1996) 196쪽

 

 “상상(想像) 속의 유토피아(Utopia)라는 희망(希望)이 있는 한(限)”은 “꿈나라라는 희망이 있는 동안”이나 “꿈 같은 나라를 생각하는 동안”이나 “꿈나라를 그리워하는 동안”으로 다듬어 봅니다. “섬의 토박이”는 “섬 토박이”나 “섬사람”으로 손보고, ‘열심(熱心)히’는 ‘힘껏’이나 ‘바지런히’로 손봅니다. ‘기원(祈願)하노라면’은 ‘바라노라면’으로 손질하고, ‘노동(勞動)’은 ‘일’로 손질하며, “상상 속의 섬이 존재(存在)하는 한”은 “꿈나라가 있는 동안”으로 손질합니다.

 

 흥이 절로 났다 (x)
 그저 신바람이 난다 (o)
 신바람이 절로 난다 (o)

 

 보기글을 살피면 처음에는 “흥이 절로 났다”라고 적고, 다음에는 “신바람이 난다”고 거듭 적습니다. ‘흥’이나 ‘신바람’이나 같은 낱말이니 이렇게도 적고 저렇게도 적을 수 있습니다. 적는 사람 마음이요, 적는 사람 나름입니다.

 

 그러나, 앞이나 뒤나 한결같이 ‘신바람’으로 적었다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꼭 ‘興’이라는 낱말을 한 번쯤이라도 적어야 했을까 궁금합니다.

 

 신이 절로 났다
 그저 재미가 난다
 신바람이 절로 난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면, 세 자리 모두 다른 낱말을 넣어 줍니다.

 

 신이 절로 난다
 그저 즐겁기만 하다
 덩실덩실 춤이 절로 나온다

 

 또는, 첫마디는 “신이 절로 난다”로 적은 다음, 뒷자리에서는 아예 다른 말로 풀어내면서 느낌과 뜻을 살려냅니다. “마냥 기쁘기만 하다”라 적어도 괜찮고,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라 적어도 괜찮습니다. “그예 들뜨기만 하다”라 적어도 되며, “춤과 노래가 절로 나온다”라 적어도 됩니다.

 

 우리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니, 우리 땅과 삶과 사람을 한 번 더 살피면서 들려준다면 한결 나으리라 봅니다. 우리 모습을 가리키는 글이니, 우리 터전과 이웃과 겨레를 곰곰이 헤아리면서 적어 준다면 훨씬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4342.5.4.달./4344.12.20.불.ㅎㄲㅅㄱ)

 

 

ㄷ. 흥興 3 : 흥겨움

 

.. 찰리는 두 관악대가 동시에 서로 다른 곡을 연주했던 그날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날을 가득 채운 소리들과 흥겨움을 작품 속에 표현했습니다 ..  《모디캐이 저스타인/천미나 옮김-찰리는 무엇을 들었을까?》(보물창고,2006) 31쪽

 

 ‘동시(同時)에’는 ‘함께’나 ‘같은 자리에서’로 다듬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동시에’를 덜어도 이 다음에 나오는 ‘서로’라는 낱말이 있어 글흐름이 보드라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연주(演奏)했던’은 그대로 둘 수 있고, ‘들려주던’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작품 속에 표현(表現)했습니다”는 “작품으로 담았습니다”나 “작품으로 그렸습니다”나 “작품으로 빚었습니다”나 “작품으로 보여주었습니다”로 손질합니다.

 

 흥겨움
→ 즐거움
→ 신남
→ 신바람
→ 재미
 …

 

 즐거운 일을 떠올리고 기쁜 꿈을 생각합니다. 잃은 기운을 북돋우고 스러지는 힘을 끌어올립니다. 신바람이 나도록 손길을 내밀고, 신이 날 만한 일거리를 찾습니다. 재미난 놀이를 함께하고 서로서로 웃을 만한 놀이감을 헤아립니다.

 

 즐거이 말하면서 즐거이 꿈꿉니다. 신나게 노래하면서 신나게 춤을 춥니다. 재미나게 이야기하면서 재미나게 삶을 일굽니다.

 

 말과 넋과 삶은 늘 한동아리가 됩니다. 말과 넋과 삶은 저마다 아름다이 가꾸고픈 꿈을 바라보면서 씩씩하게 걷는 이 길에서 환하게 빛납니다. (4344.12.2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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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12-21 15:44   좋아요 0 | URL
국어선생님의 유익한 말씀을 잘 듣고 갑니다.

숲노래 2011-12-21 20:52   좋아요 0 | URL
아이고... 뭘요 (__)
 


 우리 말도 익혀야지
 (926) 있다 7 : 들어 있는

 

.. 이 책은 2003년 코오단샤에서 발행한, 어린이문학걸작선에 들어 있는 《용의 아이 타로오》(1995)를 우리 말로 옮긴 것입니다 ..  《마쯔타니 미요꼬/고향옥 옮김-용의 아이 타로오》(창비,2006) 187쪽

 

 ‘발행(發行)한’은 ‘펴낸’이나 ‘내놓은’이나 ‘낸’으로 다듬고, “우리 말로 옮긴 것입니다”는 “우리 말로 옮긴 책입니다”나 “우리 말로 옮겼습니다”로 다듬습니다.

 

 어린이문학걸작선에 들어 있는 작품을
→ 어린이문학걸작선에 든 작품을
→ 어린이문학걸작선에 담긴 작품을
→ 어린이문학걸작선에 실린 작품을
→ 어린이문학걸작선으로 나온 작품을
→ 어린이문학걸작선 가운데 하나인 작품을
 …

 

 우리 어른들은 ‘있다’ 같은 말마디를 알맞게 쓰지 못합니다. 곰곰이 살피면, 어른이 되기까지 읽은 책이나 글에서 ‘있다’를 알맞게 다루지 못하기도 했고, 어린이부터 어른이 되는 동안 다닌 학교에서 ‘있다’를 올바로 가르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말글을 이야기하는 책에서도 이 대목을 살뜰히 짚지 않아요.

 

 이 보기글에서는 “걸작선 가운데 하나”라고 적으면 됩니다. “걸작선에 실린”이라 적어도 되고, “걸작선으로 뽑힌”이라 적을 수 있어요. ‘걸작(傑作)’이란 훌륭하다는 작품이고, ‘걸작선(-選)’이란 훌륭하다는 작품 가운데 추린 작품이에요. 그래서 “걸작선으로 뽑힌”이나 “걸작선 몇 번으로 뽑은”이나 “훌륭하다는 책으로 뽑힌”처럼 풀어 볼 수 있어요.

 

 보기글을 통째로 더 다듬는다면, “훌륭한 어린이책으로 뽑은 책 가운데 하나인”처럼 적을 수 있어요. 앞 대목까지 묶어 “2003년에 코오단샤에서 훌륭한 어린이책 가운데 하나로 뽑은”처럼 적어도 되고요.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말을 한다지만, 정작 옳거나 바르게 쓰는 말을 배우지 못했다면, 아무리 생각을 기울여도 엉뚱하다 싶은 말이 튀어나올 수 있겠지요. 그러나, 옳은 길을 찾고 바른 삶을 헤아린다면, 가장 쉬우면서 가장 곱고 가장 보드라이 말을 하거나 글을 쓰리라 믿습니다. 꾸밈없이 말하면 됩니다. 수수하게 글을 쓰면 돼요.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책이면서 글이라고 생각하며 애쓰면 됩니다. 내 아이하고 나눌 사랑스러운 책이면서 글이라고 여기며 힘쓰면 돼요. (4344.12.1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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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겹말 손질 330 : 버림받은 유기견

 


.. “그 개는 버림받은 유기견인데, 나쁜 녀석들이 괴롭히는 걸 보고, 사쿠라 형이 말리러 갔다가 싸움이 벌어져서.” ..  《후지모토 유키/김진수 옮김-녀왔어 노래 (1)》(대원씨아이,2011) 16쪽

 

 “괴롭히는 걸 보고”는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나 “괴롭히는 짓을 보고”로 다듬습니다.

 

 유기견 : x
 유기(遺棄) : 내다 버림
   - 시체를 유기하다 /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지성인의 사회적 책임을 유기하는 행위이다

 

 버림받은 유기견인데
→ 버림받은 개인데
→ 버려진 개인데
 …

 

 요사이 퍽 쉬 들을 수 있는 ‘유기견’이라는 낱말인데, 이 낱말은 국어사전에 안 실립니다. 국어사전 올림말 다루는 법을 살피면, 국어사전에 안 실린 ‘유기견’은 띄어서 적어야 알맞습니다. 그러나 이 낱말을 ‘유기 견’처럼 띄어서 쓰는 사람은 없어요. 어쩌면 ‘유기견’은 붙여서 적어야 알맞다 할는지 모르는데, “버려진 고양이”를 가리킬 한자말 ‘유기猫’는 어떻게 될까요. 소를 버릴 사람은 없을 테지만, ‘유기牛’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유기鳥’나 ‘유기豚’은 또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사람이 집에서 예쁘게 여기면서 기르다가 내다 버렸기에 ‘버린 짐승’이라 일컫습니다. 곰곰이 생각하자면, ‘유기견’을 한 낱말로 삼아서 쓰는 말법이라 할 때에는 ‘버린짐승’ 또한 한 낱말로 삼는 말틀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버린짐승’에서 가지를 칠 ‘버린개’와 ‘버린고양이’도 새로운 낱말로 삼을 수 있어야 올발라요.

 

 시체를 유기하다 → 주검을 버리다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지성인의 사회적 책임을 유기하는 행위이다
→ 나쁜 짓에 입다문다면 지성인으로서 질 몫을 내다 버리는 셈이다
→ 나쁜 짓에 눈감는 모습은 지성인이 짊어질 몫을 내팽개치는 꼴이다
 …

 

 개나 고양이는 처음부터 그저 개나 고양이입니다. 길개나 길고양이 아닌 개나 고양이입니다. 들개나 들고양이 또한 아닌 개나 고양이예요.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를 집개와 집고양이로 바꿉니다. 이러다가는 내다 버려 ‘버린개’와 ‘버린고양이’로 바꾸고 말아요.

 

 다시금 생각한다면, 말짓기를 돌아볼 때에는 ‘버린짐승’과 같은 꼴을 세우는 일이 걸맞다 할 터이나, 굳이 이렇게 말틀을 세우기보다는 “버림받은 개”처럼 적바림하기만 하면 넉넉하리라 느낍니다.

 

 “그 개는 버림받았는데”나 “그 개는 버려졌는데”처럼 적으면 돼요. “그 개는 기르는 임자가 없는데”라든지 “그 개는 돌보는 사람이 없는데”처럼 적을 수 있어요. (4344.12.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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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결에 물든 미국말
 (664) 블루버드(bluebird)

 

.. 케럴과 그녀의 남편은 블루버드를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다 ..  《커트 보네커트/김한영 옮김-나라 없는 사람》(문학동네,2007) 63쪽

 

 “캐럴과 그녀의 남편은”은 “캐럴과 그 사람 남편은”이나 “캐럴과 그이 남편은”이나 “캐럴네 부부는”이나 “캐럴과 옆지기는”이나 “캐럴네 집은”이나 “캐럴네 식구는”으로 다듬습니다. ‘노력(努力)했다’는 ‘애썼다’로 손질합니다.

 

 블루버드 : x
 bluebird : 파랑새

 

 미국문학을 한국말로 옮긴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랍니다. 따로 묶음표를 치지 않고 ‘블루버드’라고 적은 대목이 나왔거든요.

 

 곰곰이 생각에 젖습니다. ‘블루버드’라는 이름이 붙는 새가 따로 있으니 이렇게 옮겼을 수 있지만, 번역다운 번역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옮겼나 궁금합니다.

 

 미국사람한테는 틀림없이 ‘블루버드’입니다. 이 새는 미국에서만 살아갈는지 모르니, 미국말 그대로 ‘블루버드’로 적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문득 또 한 가지 궁금합니다. 한국사람이 한국문학에 ‘파랑새’라는 이름을 적으면, 이 한국문학을 미국말로 옮길 때에 어떤 낱말로 옮겨야 할까요. ‘parangsae’로 옮겨야 할까요, ‘bluebird’로 옮겨야 할까요. (4344.12.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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