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 책읽기



  창문을 열면 가을바람이 들어온다. 가을볕은 나락이 무르익도록 북돋우느라 제법 뜨겁고, 가을바람은 이 뜨거운 볕을 살살 달랜다. 가을바람은 거의 익은 나락 냄새를 퍼뜨린다. 억새 씨앗을 날리면서 불기도 하고, 차분한 그림처럼 하늘에 새로운 그림을 빚기도 한다.


  바람을 쐬면서 가을이 어느 만큼 깊은가 하고 헤아린다. 바람을 마주보면서 가을이 어떤 철인가 하고 새삼스레 돌아본다. 바람을 마시면서 이 가을에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노래를 즐겁게 짓는다. 가을이라면 가을바람이 부는 곳에 서서 온몸으로 이 바람을 맞아들여야 비로소 ‘가을읽기’를 한다. 햇볕이 내리쬐고 들풀이 한들거리는 곳에서 바람을 받아들이며 새롭게 가을읽기를 한다. 고즈넉하다. 4348.10.15.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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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손으로 책읽기



  늦은 낮밥을 먹으면서 책을 읽는다. 집안일을 하고 마을 빨래터를 치우고 이래저래 바삐 몰아친 뒤 혼자서 늦게 밥을 먹는다. 작은아이는 먼저 잠이 들었고, 기침을 자꾸 하는 큰아이는 자리에 누우라 이른다. 밥을 먹으며 한손에 만화책을 쥔다. 밥을 거의 다 먹고 책도 거의 다 읽을 무렵, 큰아이가 부시시 일어나서 아버지를 바라본다. “아버지, 아버지는 밥 먹을 적에 책 보지 말라고 하면서 아버지는 왜 책을 봐?” 빙그레 웃으면서 “벼리야, 자, 네 손을 좀 줘 봐.” 하고 말한다. “벼리는 손이 아직 작지?” “응.” “벼리도 앞으로 몸이 자라고 손도 크면 한손으로 책을 쥘 수 있어. 아직 벼리는 손이 작아서 한손으로 이렇게 할 수 없어.” “벼리도 손이 크면 먹으면서 책 볼 수 있어?” “벼리도 몸하고 손이 크면 한손으로 다 할 수 있어.”


  여덟 살 큰아이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 이 아이가 갓난쟁이일 무렵 아버지는 아기를 한손으로 살살 달래면서 재우는 동안 다른 한손으로 책을 읽었다. 이 아이가 갓난쟁이일 적에 이 아이를 한손으로 안고 골목을 서너 시간이나 너덧 시간 거닐면서 다른 한손으로 사진을 찍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이 아이를 한손으로 안고 다른 한손으로 우산을 쥐는데, 우산을 쥔 어깨에 짐가방을 멨지.


  한손으로 아기를 안고 다른 한손으로 책을 쥐면서, 발가락으로 기저귀를 잡아당기고는 다른 발로는 자리를 잘 펴고는, 아기를 눕혀서 기저귀를 갈았다. 밤똥을 눈 아기를 한손으로 안아서 밑을 씻고 기저귀를 빠는데, 이동안 아기가 깨지 않도록 자장노래도 불렀다.


  그러니까, 아이야, 네가 몸이 자라고 손도 발도 머리도 모두 무럭무럭 크면 네 힘으로 모든 것을 다 즐겁게 할 수 있단다. 언제나 튼튼하게 자라도록 마음속에 파란 바람이 흐르는 별을 그리렴. 4348.10.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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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구조물’도 ‘문화유산’이 될까?



  유홍준 님이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을 보면, 175∼182쪽에 ‘시멘트’ 이야기가 나온다. 유홍준 님은 이녁 동무 말을 빌어서 ‘시멘트는 값싸고 좋은 건축재료’라는 이야기를 싣는다.


  그런데 이 나라 정부와 지자체는 끝없는 개발로 조용하고 고즈넉한 시골 삶터를 마구 파헤쳤고, 끝없는 모든 개발은 언제나 ‘시멘트 붓기’로 이루어진다. 4대강사업이란 무엇인가? 냇바닥에 시멘트 들이붓기 아니던가?


  곰곰이 헤아려 본다. 앞으로 쉰 해나 백 해 뒤에 ‘시멘트 구조물’도 ‘문화유산’이 될까? 그래서 유홍준 님은 앞으로 쉰 해나 백 해 뒤에 ‘시멘트 구조물 문화유산답사’를 다니시려나?


  시멘트로 엮은 구조물 가운데 백 해를 버티는 구조물은 드물다. 어떤 아파트가 쉰 해라도 제대로 버틸까. 시멘트가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예부터 사람들이 시멘트로 함부로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을 헤아리거나 읽지 못한다면, 문화유산을 어떻게 헤아리거나 읽을 만한지 잘 모르겠다. 4348.10.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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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을 노래하는 책으로



  책순이가 손에 쥐는 책이 책순이 마음을 노래하는 책으로 스미기를 빈다. 어떤 책을 손에 쥐든 네 두 손에서 이야기꽃이 피어날 수 있기를 빈다.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나 마음으로 소리를 듣고 마음으로 숨결을 느끼며 마음으로 빛깔을 읽을 수 있기를 빈다.


  이야기는 책에만 있지 않으니, 책 안팎에서 흐르는 모든 이야기에 눈을 기울이고 귀를 열며 생각을 북돋울 수 있기를 빈다. 언제나 비는 마음이다. 그리고, 이처럼 비는 마음은 책순이하고 함께 사는 아버지로서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읽으려고 하는 책내음이라고 할 만하다.


  오늘 하늘을 보았니? 아침에 일어나서 책을 먼저 집었니, 아니면 나무하고 먼저 이야기를 나누었니? 오늘 아침에 마당에 나가서 해님한테 먼저 웃음을 띄웠니, 아니면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읽고 먼저 웃음을 터뜨렸니? 네 마음을 노래하는 하루로 살고, 네 마음을 노래하는 책으로 가꾸렴. 4348.10.4.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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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그리는 책읽기



  손으로 만질 수 있으면 손으로 만지면서 느끼면 된다. 손으로 만질 수 없으면 손이 아닌 마음으로 읽고 느끼면서 헤아리면 된다. 책은 손으로 만지면서 읽을 수 있고, 귀로 들으면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손도 귀도 아닌 오직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아름다운 숲은 눈으로 짙푸른 빛깔을 바라보면서 느끼거나 읽거나 헤아릴 수 있다. 코로 숲을 느끼거나 읽거나 헤아릴 수 있고, 귀로 숲을 느끼거나 읽거나 헤아릴 수 있다. 그리고, 눈도 코도 귀도 아닌 마음으로 숲을 느끼거나 읽거나 헤아릴 수 있다.


  아이들은 사랑을 어떻게 느낄까? 아이들은 꿈을 어떻게 생각할까? 아이들은 기쁨을 어떻게 읽을까? 눈으로도 사랑을 볼 수 있을 테고, 코로도 꿈을 맡을 수 있을 테며, 귀로도 기쁨을 들을 수 있을 테지. 그러나, 모름지기 사랑이나 꿈이나 기쁨이라 한다면, 언제나 마음으로 지어서 마음으로 나눈다. 4348.10.2.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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