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57. 고요히 어우러지는 빛깔



  겨울이 지나면 봄이고, 봄이 무르익으면 여름이 다가옵니다. 겨울에는 겨울빛이 있고, 봄에는 봄빛이 있습니다. 여름과 가을에는 여름빛과 가을빛이 있습니다. 겨울 가운데 십이월은 십이월빛이 있고, 일월은 일월빛이 있으며, 이월은 이월빛이 있습니다. 같은 겨울이어도 다른 겨울빛입니다. 더 낱낱으로 파고들면, 같은 이월이어도 첫무렵과 끝자락 빛결이 다릅니다. 날마다 다른 빛결이 흐릅니다.


  흙을 보고 하늘을 보며 푸나무를 보면, 날마다 다른 빛결과 빛살과 빛깔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멘트로 지은 집에서 도시 한복판을 바라본다면, 아무래도 철마다 다른 빛을 느끼기 어렵고, 날마다 새로운 빛을 헤아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해님은 날마다 다른 빛살을 지구별에 골고루 베푸니, 이 빛살을 읽으려 한다면 도시 한복판에서도 철마다 다른 빛, 이른바 ‘철빛’을 읽고 잡아챌 수 있습니다.


  한여름에는 흙바닥이 풀빛으로 가득합니다. 이른봄에는 겨우내 시들어서 마른 풀잎이 흙빛으로 차츰 바뀝니다. 이런 흙빛에서 조물조물 푸른 빛깔이 태어납니다. 새로 돋는 풀은 모두 풀빛이니까요. 겨울눈을 틔우는 나무는 해맑은 꽃빛을 베풉니다. 날마다 조금씩 자라는 풀빛과 꽃빛은 저마다 고요히 어우러집니다. 풀잎은 풀포기로 사람한테 밥이 되어 주고, 꽃송이는 어느덧 꽃잎이 지고 씨앗을 맺으면서 열매가 무르익어 사람한테 밥이 되어 줍니다.


  풀포기를 먹는 사람은 저마다 푸른 몸이 됩니다. 해맑게 피어난 앵두꽃은 새빨간 앵두알로 바뀝니다. 새빨간 앵두알을 먹는 사람은 빨간 숨결을 받아들이는 한편, 새하얀 넋도 맞아들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바람을 마셔요. 하늘이 파랗게 물들도록 흐르는 바람을 마시니까, 우리 모두 파란 빛깔을 온몸으로 품습니다.


  내 앞에도 무지개빛이 펼쳐지고, 내 마음에도 무지개빛이 흐릅니다. 낮에 일어나서 움직이는 사람은 누구나 무지개빛으로 펼치지거나 흐르는 숨결을 마주하면서 고요하게 깨어납니다. 밤에 천천히 잠들면서 꿈을 꾸는 사람은 누구나 까망과 하양으로 어우러지는 넋을 헤아리면서 생각을 짓습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 두 갈래로 찍는 뜻이 재미있습니다. 하나는 낮 이야기요, 다른 하나는 밤 이야기입니다. 하나는 한낮에 짓는 사랑 이야기요, 다른 하나는 한밤에 빚는 꿈 이야기입니다. 낮밤과 밤낮이 어우러져서 삶이 되어 사진 한 장으로 태어납니다. 4348.5.10.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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