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나이 창비시선 107
김정환 지음 / 창비 / 199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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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 숲노래 시읽기 2023.6.19.

노래책시렁 345


《희망의 나이》

 김정환

 창작과비평사

 1992.11.5.



  우리를 둘러싼 숨결이 무엇일까 하고 이웃님한테 묻다가 ‘아차, 잘못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하루 내내 새·개구리·풀벌레 노래에 바람·구름·해·별 노래를 듣는 터전이 아니라, 쇳덩이·잿더미가 가득한 터전에서는 ‘숨결’을 느끼거나 헤아릴 틈이 없게 마련입니다. 저는 시골에서 부채조차 거의 안 쓰면서 보내니, 바람이(선풍기·에어컨)는 집에 들여놓지도 않는데, 시골조차 읍내나 버스에서는 바람이를 싱싱 틀 뿐, 들바람을 누리려 하지 않습니다. 《희망의 나이》를 다시금 읽다가 예전부터 마음에 안 와닿던 까닭을 어렵잖이 알아챕니다. 이 꾸러미를 여민 분을 비롯해 거의 모두라 할 글꾼은 서울(도시)에서 삽니다. ‘이름까지 서울’인 곳에서 살든 ‘이름만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든, 다 ‘서울’입니다. ‘이쁘장한 호프집 여종업원’을 그리는 글이 나쁘다고 여길 수는 없으나, 늘 술집마실을 하면서 늘 술고래로 헤엄치는 판에서 끌어낼 만한 글은 너무 뻔합니다. ‘헌책방’이라는 이름인 글은 뭘 말하려는 셈이었을까요. 헌책집에는 ‘손길책’이 있습니다. 손길을 받아 오래오래 읽힌 책이 있고, 미처 손길을 못 받고 숨죽이는 책이 있고, 앞으로 손길을 받고픈 새책이 있는 데가 ‘헌책집’입니다. 참으로 딱합니다.


ㅅㄴㄹ


그날 4차까지 가고 헤어졌다 / 교수인 그는 지하철 막차를 탔다 / 나는 택시를 타고 꽤 미인이었던 / 호프집 알프스 복장의 여종업원 얼굴과 / 그의 안경테가 밤 한강 파돗물에 / 출렁이는 것을 달리며 보았다 (안경/83쪽)


망하지 않았다면 절망했으리 / 그 사이에 네가 있다 / 내가 진열창 밖에서 여직 / 그 속에 있으므로 더욱 그렇다 / 식구들은 안녕할 것인가 / 낭만적이던 것은 끝났다 모두 / 시대는 수척하지 않고 날씬하다 / 그 사이에 내가 있다 (헌책방/86쪽)



《희망의 나이》(김정환, 창작과비평사, 1992)


고층건물도 뒤집어보면 계단이다

→ 높은집도 뒤집어보면 디딤돌이다

89족


자본주의의 裏面으로서 되돌아보면 눈 내려 시간이 깔리고

→ 돈나라 뒷낯으로 되돌아보면 눈 내려 하루가 깔리고

10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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