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넘세 창비시선 51
신경림 지음 / 창비 / 1985년 10월
평점 :
품절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2023.8.21.

노래책시렁 362


《달넘세》

 신경림

 창작과비평사

 1985.10.10.



  그제 새벽에 비가 억수로 내립니다. 이른아침에 이웃마을로 걸어가서 시골버스로 읍내에 가서, 다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려 하는데, 함께 움직일 아이들이 걱정합니다. “걱정 마. 우린 우산 없이 다닐 테니까.” 새벽비는 우리가 짐을 꾸리고 나서기 앞서 그칩니다. 그런데 이날 밤 경기 일산 길손집에 깃드니 또 함박비가 오고, 다시 아침에 할아버지한테 찾아갈 즈음에는 말끔히 갭니다. 아이들이 이모를 만나서 이모네에 깃드니 또 비가 오고, 다시 우리가 길손집으로 돌아갈 즈음에는 구름이 걷혀요. “별을 보라는 하늘일까요?” “음, 구름은 우리가 서울(도시)에서도 푸르게 숨쉬라고 내렸대. 별은 고흥으로 돌아가서 보라고 하네.” 아이들하고 두런두런 말을 섞은 밤에, 끝없는 부릉물결을 느끼면서 《달넘세》를 곱씹습니다. 신경림 님이 쓴 글을 1992년부터 읽었고, 2010년부터 더는 못 읽겠다고 여겼습니다. 떠도는 말을 떠돌듯 구경하면서 옮기는 글재주는 있을 테지만, 살아가는 하루를 푸르게 노래하는 글결은 찾기가 어렵구나 싶어요. 이녁은 왜 ‘글쓰기’가 아닌 ‘이름벌이’를 할까요? ‘가난하고 낮은 이웃’을 찾아다니면서 술그릇을 부딪으면서 쏟아내는 술타령도 ‘시’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손수 기저귀를 빨래하지 않고, 아침저녁을 차리지 않고, 살림꾼으로 하루를 누리지 않을 적에는, 어쩐지 텅 빈 채 별빛 한 줄기 없는 ‘서울 한복판 밤거리’를 보는 듯싶습니다.


ㅅㄴㄹ


더 오르리라는 수몰보상금 소문에 / 아침부터 들떠 있다 / 농협창고에 흰 페인트로 굵게 그어진 / 1972년의 침수선 표시는 이제 아무런 뜻도 없다 / 한 반백 년쯤 전에 내 아버지들이 주머니칼로 새겼을 / 선생님들의 별명 또는 이웃 계집애들의 이름이 / 헌 티처럼 붙어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들만이 / 다시는 못 볼 하늘을 향해 울고 있다 (강길 2/60쪽)


신새벽에 일어나 / 비린내 역한 장바닥을 걸었다. / 생선장수 아주머니한테 / 동태 두 마리 사 들고 / 목로집에서 새벽 장꾼들과 어울려 / 뜨거운 해장국을 마셨다. // 거기서 나는 보았구나 / 장바닥에 밴 끈끈한 삶을, / 살을 맞비비며 사는 / 그 넉넉함을, / 세상을 밀고 가는 /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편지―시골에 있는 숙에게/80쪽)


+


너는 나를 칼날 위에 서게 한다

→ 너는 나를 칼날에 세운다

10쪽


어물전에서 난장판에서

→ 고깃간에서 북새판에서

52쪽


두 길 험한 낭떠러지를 만들며

→ 두 길 낭떠러지로

→ 두 길 가파른 길로

54쪽


갈미봉에 뿌옇게 비 몰려도

→ 갈미메에 뿌옇게 비 몰려도

54쪽


그는 나의 소학교 동창이다

→ 그는 어린배움터 또래이다

→ 그는 씨앗배움터 벗이다

58쪽


목로집에서 새벽 장꾼들과 어울려 뜨거운 해장국을 마셨다

→ 시렁집에서 새벽 저잣꾼과 어울려 속풀이국을 마셨다

→ 널술집에서 새벽 장사꾼과 어울려 술풀이국을 마셨다

8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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