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행을 떠난 펭귄, 화이트블랙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43
한스 아우구스토 레이.마르그레트 레이 글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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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29



아이들한테 ‘여행’은 무엇일까

― 세계 여행을 떠난 펭귄, 화이트블랙

 한스 아우구스토 레이·마르그레트 레이 글·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02.8.20.



  사뿐사뿐 얌전하거나 조용하게 걷는 아이를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뜀뛰는 걸음’으로 다니기 마련입니다. 바빠서 뜀뛰듯이 걷지 않습니다. 그저 홀가분하면서 기쁘게 뜀뛰듯이 걷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것 하나에도 활짝 웃고, 아주 자그마한 선물 하나에도 밝게 노래합니다. 작은 몸짓이 큰 날갯짓이 되듯이 뛰고 달리고 웃고 노래하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뛰거나 달리지 못하게 막습니다. 오직 운동장에서만 뛰거나 달릴 수 있는데, 바깥에서 뛰거나 달려도 뛰지 말거나 달리지 말라고 막기 일쑤입니다. 학교 바깥으로 나가면 자동차가 많으니 천천히 둘레를 살피면서 걸으라고 시킵니다. 자동차 걱정이 없는 곳에서는 시끄럽게 굴면 안 되고, 자동차 걱정이 있는 곳에서는 얌전히 굴어야 하는 오늘날 아이들인 셈입니다.





.. 라보눈 방송국은 펭귄나라의 방송국이에요. 거꾸로 읽으면 눈보라 방송국이 되지요. 이 방송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야기꾼은 펭귄 화이트블랙이에요. 그런데 화이트블랙에게 걱정이 생겼어요. 이야깃거리가 떨어졌거든요 ..  (2쪽)



  아이들은 한국에서 미국이나 프랑스나 남극이나 아프리카나 인도 같은 곳을 찾아가야 기뻐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이웃나라를 모릅니다. 아이들은 이웃마을도 모릅니다. 이웃나라나 이웃마을은 ‘어른이 흔히 말하거나 알려주니’까 비로소 알 뿐입니다.


  아이들은 홀가분하게 뛰놀 수 있는 곳이 즐겁습니다. 아이들은 마음껏 뛰거나 달리거나 뒹굴 수 있는 곳이 재미있습니다. 낯선 나라로 찾아가야 여행이 되지 않습니다. 먼 나라에 여러 날 머물러야 여행이 되지 않습니다. 호텔에서 묵거나 기차를 타야 여행이 되지 않습니다.


  느긋하게 걸으면서 웃고 노래할 수 있는 길이 비로소 여행길, 그러니까 마실길이 됩니다. 신나게 놀고 뛰면서 지낼 수 있는 자리가 비로소 여행터, 그러니까 마실터가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날마다 여행을 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날마다 마실을 합니다. 집안에서도 날마다 새롭게 마실을 합니다. 집밖에서도 언제나 새롭게 마실을 누립니다. 마루와 마당과 부엌을 오가는 걸음도 기쁜 마실이 됩니다. 이웃집이나 학교나 우첵구을 다녀오는 길도 멋진 마실이 됩니다. 마음이 넉넉하고 즐거울 때에는 모든 걸음걸이가 마실이 됩니다.




.. “여행하면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화이트블랙은 너무나 지루해서 깜박 잠이 들었어요. 그러다 우지끈! 깜짝 놀라서 잠이 깼어요. 배가 빙산에 부딪힌 거예요! 배는 무서운 속도로 가라앉고 있었어요. “배를 잃어버린 건 아쉽지만 라디오에서 이야기할 거리는 되겠지. 게다가 사고도 한번 당해 봤으면 했는데, 잘 됐다.” ..  (5쪽)



  한스 아우구스토 레이 님과 마르그레트 레이 님이 함께 빚은 그림책 《세계 여행을 떠난 펭귄, 화이트블랙》(시공주니어,2002)을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두 레이 님이 1930년대에 처음 그렸다고 합니다. 유럽에서 번지던 전쟁 불길에서 벗어나려고 자전거에 챙긴 그림꾸러미였고, 두 레이 님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림책을 그리며 사는 동안 오랫동안 잊고 지낸 그림꾸러미였다고 합니다. 예순 해 가까이 짐꾸러미 사이에서 묵다가 뒤늦게 빛을 본 그림책이라고 합니다.


  오래된 그림책이니, 이 그림책에 나오는 배(군함과 고기잡이배)는 퍽 예스러워 보입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펭귄이 남극에서 다닌다는 ‘라보는 방송국’은 라디오 방송국입니다.


  아무튼, 그림책에 나오는 펭귄은 남극에서 라디오 방송을 이끈다고 하며, 어느 날 문득 방송국에서 사람들한테 들려줄 만한 ‘이야깃거리’가 바닥이 났다고 여겨서 새로운 곳으로 나들이를 떠나자고 생각합니다.


  쪽배를 타고 홀로 길을 나섭니다. 쪽배를 타고 한참 바다를 가로지르다가 졸려서 잠이 듭니다. 그만 얼음덩이에 부딪혀서 쪽배가 부서지고, 전쟁터로 가는 군함에 살짝 올라탑니다. 군함에서 대포에 숨었는데, 대포를 쏘니 펭귄은 포알과 함께 멀리멀리 날아 아프리카에 떨어집니다. 아프리카에 떨어진 펭귄은 새로운 짐승을 만나고, 사막을 끙끙거리면서 가로지릅니다. 이러다가 비행기를 보고, 비행기에 함께 타며, 비행기를 타고 남극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다에 빠집니다. 고기잡이배에 잡히고, 깊은 밤에 고기잡이배에서 그물 하나를 훔쳐서 몰래 빠져나옵니다.


  이름이 ‘화이트블랙’이라는 펭귄은 아슬아슬한 고비를 숱하게 넘깁니다. 여느 펭귄으로서는 겪기 힘들 만한 일을 수없이 겪습니다. 펭귄 화이트블랙은 온갖 고비를 만날 적마다 생각합니다. ‘이 멋진 일을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 재미있다’고.




.. 밤이 되어 모두 잠들자 화이트블랙은 갑판으로 올라갔어요. 그러고는 말리려고 널어 놓은 큰 그물 하나를 들고 바다로 뛰어들었어요. 화이트블랙의 생각이 맞았어요! 그물을 끌고 펭귄나라로 헤엄쳐 가는 동안, 물고기들이 그물에 걸렸어요 ..  (22쪽)



  남극으로 돌아간 펭귄은 오랫동안 재미난 이야기를 이웃하고 동무한테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다른 펭귄은 겪기 힘들거나 겪을 수 없던 일이었을 테니 몹시 재미나다고 할 만하리라 느낍니다.


  다만, 한 가지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꼭 세계 여행을 해야 ‘이야깃거리’가 많이 생기지 않습니다. 세계 여행은 ‘아슬아슬한 고비’가 많아야 하지 않습니다. ‘세계’란 내 보금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닙니다.


  펭귄 화이트블랙은 여행길에 나서면서 이야깃거리를 더 얻을 수 있습니다. 여행길에 나서지 않더라도 사랑을 하고 아기를 낳으면 이때에도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남극에 나무를 심어 본다면(그림책이라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나무심기도 놀라운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남극에 사는 짐승들마다 먼 옛날부터 내려온 이야기를 귀여겨들어서 방송국에서 들려줄 수 있습니다. 지구와 우주가 태어난 수수께끼를 깊이 헤아리고 살피면서 이런 생각을 푸는 실마리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꾸는 기쁨 꿈을 멋지게 풀어내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구름 이야기를, 하늘 이야기를, 눈 이야기를, 그러니까 펭귄 화이트블랙 둘레에 늘 있는 가장 수수한 이야기를 스스로 가장 아름답게 여미어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곁에 있는 삶을 언제나 새롭게 바라볼 수 있을 때에,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새로운 숨결을 마십니다. 곁에 있는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없으면, 어느 곳으로 가든 새로운 눈길을 열기 어렵습니다. 4348.5.13.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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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의 고민 사계절 그림책
김상근 글.그림 / 사계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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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28



걱정만 쌓으면 기쁨이 없지

― 두더지의 고민

 김상근 글·그림

 사계절 펴냄, 2015.1.26.



  걱정을 하면 걱정이 생깁니다. 걱정 하나는 새로운 걱정으로 이어지고, 새로운 걱정은 또 다른 걱정으로 나아갑니다. 웃음은 웃음으로 이어집니다. 웃으니까 자꾸 웃고, 또 웃으며 거듭 웃어요. 고운 말은 고운 말로 이어지고, 미운 말은 미운 말로 이어집니다. 낯을 찌푸리는 사람은 낯을 찌푸릴 만한 일로 자꾸 나아가며, 맑은 낯으로 노래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맑게 노래하는 길로 즐거이 나아갑니다.


  어떤 마음이 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홀가분한 마음이 될 수 있다면 홀가분한 삶으로 나아갑니다. 걱정이 가득한 마음이 된다면 걱정을 가득 쌓은 삶으로 나아갑니다. 남이 나를 괴롭히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삶이 되지 않습니다. 남이 나를 보살피거나 돕기 때문에 홀가분한 삶이 되지 않습니다.


  나무는 언제 어디에서나 나무입니다. 풀과 꽃은 언제 어디에서나 풀과 꽃입니다. 전쟁통이어도 시골지기는 씨앗을 심고 나락을 갈무리합니다. 전쟁통이건 말건 겨울눈은 새봄에 깨어나며, 풀은 씩씩하게 돋고 꽃은 곱게 피어납니다. 시골지기가 마음을 쓸 곳은 씨앗과 흙입니다. 나무와 풀과 꽃이 마음을 쓰는 자리는 해님과 바람과 빗물입니다.




.. 두더쥐는 그제야 머리 위로 눈이 수북이 쌓인 걸 알았어. 그리고 그 눈으로 작은 눈덩이를 만들었지. 할머니가 해 준 말이 문득 생각났거든 ..  (7쪽)



  아이들은 즐겁게 노는 하루를 생각합니다. 동무가 있건 없건 즐겁게 노는 하루를 꿈꾸고 바랍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까닭은 아이들 마음이 즐거움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장난감이 있거나 놀이기구가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놀지 않아요. 아침에 번쩍 하고 눈을 뜬 뒤 ‘오늘은 또 뭘 하고 놀까?’ 하고 생각하니까, 날마다 새로우면서 씩씩하게 놀 수 있어요.


  이와 달리 아이들이 아침에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면서 ‘오늘도 지겹게 학교에 가야 하나?’ 하고 생각하면, 일어나기도 싫고 아침을 먹기도 싫으며 학교에 가는 길도 지겹습니다. 지겹다고 여기는 마음이 바로 지겨운 하루로 이어집니다.


  김상근 님이 빚은 그림책 《두더지의 고민》(사계절,2015)을 아이들과 읽습니다.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재미나게 들여다봅니다. 귀엽게 생긴 두더쥐를 귀엽게 바라보고, 겨울눈을 굴려서 뭉치는 몸짓을 웃으면서 들여다봅니다. 눈뭉치가 차츰 커지면서 여러 들짐승이 눈뭉치에 섞이는 모습도 까르르 웃으면서 들여다봅니다.




.. “겨울 내내 친구가 없으면 어쩌지?” 어디선가 피리 소리가 들려왔어. 하지만 두더쥐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그만 ..  (13쪽)



  그림책에 나오는 두더쥐는 할머니가 들려준 말을 떠올리면서 눈을 굴립니다. 마음속에 맺히는 걱정을 털어내고 싶어서 눈을 굴립니다. 이런 걱정과 저런 근심을 내려놓고 차분한 마음이 되고 싶어서 눈을 굴려요. 반가운 동무를 사귀어서 기쁘게 어울려 놀고 싶다는 꿈을 꾸면서 눈을 굴립니다.


  두더쥐는 좀 엉뚱한 짓을 했달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한겨울 두더쥐라니 더더욱 엉뚱합니다. 더군다나 땅밑에서만 사는 두더쥐는 땅위로 나오면 눈이 부셔서 다니지 못할 텐데, 어쨌거나 눈을 굴려요.


  그림책에서는 이 모든 얼거리가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림책이니까요. 두더쥐도 얼마든지 하늘을 날면서 놀도록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아무튼, 그림책에 나오는 두더쥐는 눈뭉치를 굴리면서 여러 들짐승을 눈덩이에 파묻히게 했고, 두더쥐답게 눈을 씩씩하게 파헤치면서 들짐승을 모두 눈덩이에서 꺼내 줍니다. 이러고 나서 모두 사이좋은 동무가 되고, 여러 들짐승은 저마다 새롭게 눈뭉치를 굴리면서 아침해를 바라보고 새 놀이를 즐깁니다.





.. “와아, 밖이다!” 눈덩이 밖으로 모두 쑤욱! 그리고 저 너머에도 쑤욱! 그건 아침 해였고 ..  (33쪽)



  동무가 없다면서 걱정하던 두더쥐한테 드디어 동무가 생깁니다. 아주 마땅한 일인데, 걱정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하면 동무가 생길 수 없습니다. 동무를 바란다면 동무를 만날 만한 곳으로 가야 할 테지요.


  더 생각해 본다면, 들짐승만 동무가 되지 않습니다. 풀과 꽃과 나무도 동무가 됩니다. 바람과 해님과 빗물도 동무가 됩니다. 흙알갱이도 동무가 되고, 지렁이도 동무가 되지요. 다만, 지렁이는 두더쥐한테 맛난 밥이 되겠지만요.


  아이들과 그림책을 찬찬히 읽으면서 몇 군데 글월을 손질해 봅니다. 나는 어버이로서 아이들이 한국말을 옳고 바르게 배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니까요.

  



 머리 위로 눈이 수북이 쌓인 걸 알았어

→ 머리에 눈이 수북이 쌓인 줄 알았어

 작은 눈덩이를 만들었지

→ 작은 눈덩이를 굴렸지

 눈덩이는 점점 커졌고

→ 눈덩이는 차츰 커졌고

 피리 연주를 들려줄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 피리를 불어 줄 동무를 기다렸는데

 두더쥐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어

→ 두더쥐는 더는 혼자가 아니었어

 행복한 고민에 빠졌어

→ 즐거운 생각에 빠졌어

→ 기쁜 생각이 가득했어



  눈은 ‘머리에’ 쌓입니다. 그릇은 ‘밥상에’ 올립니다. 책은 ‘책상에’ 놓습니다. “책에 냄비 올리지 마” 하고 말해야 옳습니다. “쌓인 줄”이라고 ‘줄’을 넣어야 할 자리에 ‘것(걸)’을 넣는 말투는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눈덩이는 ‘굴린다’고 하지,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다. 눈사람도 “눈을 굴려서” 눈사람이 되게 합니다. 그림책에서도 눈을 굴리는 모습만 나오니 “눈덩이를 만들다”로 적으면 틀립니다. 눈덩이를 만든다고 한다면, 눈을 손에 쥐어서 척척 붙여서 덩이가 지도록 해야 ‘만들다’입니다.


  일본 한자말 ‘점점(漸漸)’은 ‘자꾸’로 손질하고, “피리 연주(演奏)를 들려줄”은 겹말이니 “피리를 불어 줄”로 손질합니다. 한자말 ‘연주’는 “노래를 들려주는 일”을 뜻합니다. “기다리고 있었는데”는 현재진행형 말투이니 “기다렸는데”로 손보고, “더 이상(以上)”은 “더는”으로 손봅니다. ‘행복(幸福)’은 ‘기쁨’을 뜻하고 ‘고민(苦悶)’은 ‘걱정’을 뜻합니다. 그러니 “행복한 고민”은 “기쁜 걱정”을 가리키는 셈인데, ‘걱정’은 괴롭거나 애가 타는 마음을 가리켜요. “기뻐서 괴롭다”고도 할 만하지만, 이야기 흐름을 살피거나 이 그림책을 읽을 아이들을 헤아린다면 “즐거운 생각”이나 “기쁜 생각”으로 고쳐써야 알맞습니다.


  한 가지를 더 돌아본다면, 책이름도 “두더쥐의 고민”이 아니라 “걱정 많은 두더쥐”라든지 “걱정꾸러기 두더쥐”라든지 “걱정쟁이 두더쥐”로 새롭게 붙일 만합니다. 한국말에서는 ‘-의’를 함부로 붙여서 이름을 짓지 않습니다. 다른 책도 아닌 어린이책인 만큼, 책이름과 몸글에 넣는 말마디는 더 깊고 넓게 마음을 기울여서 바라보고 다룰 수 있기를 빕니다. 4348.5.9.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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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델과 주말을 보낸다고요? 비룡소의 그림동화 25
케빈 헹크스 지음, 이경혜 옮김 / 비룡소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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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27



놀이로 피우는 이야기꽃

― 웬델과 주말을 보낸다고요?

 케빈 헹크스 글·그림

 이경혜 옮김

 비룡소 펴냄, 2000.4.17.



  물구나무를 섭니다. 아버지가 물구나무를 서면, 아이들은 옆에서 저희도 물구나무를 서겠다면서 콩콩 뜁니다. 두 아이는 아직 물구나무서기가 익숙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발목을 잡아 주면 하하하 웃으면서 두 팔로 버티다가 폭 주저앉습니다. 그래도 다시 물구나무를 서겠다면서 달라붙고, 또 주저앉고 다시 주저앉습니다.


  두 팔을 잡고 마당에서 빙글빙글 돌면 아이들은 하늘을 훨훨 납니다. 무섭다고 하면서도 팔을 잡혀서 빙글빙글 돌기를 좋아합니다. 놀이기구가 없어도, 놀이공원에 가지 않아도, 어버이는 온몸으로 아이를 태우고 던지면서 재미나게 놀 수 있습니다.


  두 아이와 놀다가 힘들면 방바닥에 엎드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엎드리면 두 아이는 아버지를 말로 삼아서 올라타는데, 때로는 아버지 등짝을 배로 여겨 뱃놀이를 합니다. 그러면 나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아이들은 아버지 등짝에서 너른 바다를 가로지르는 뱃놀이를 하다가 바다에 풍덩풍덩 빠집니다.




.. 웬델과 소피는 엄마 아빠 놀이를 했어요. 웬델이 뭐든지 다 정했어요. 웬델은 아빠랑 엄마랑 다섯 명이나 되는 아이들 노릇을 다 했어요. 소피는 강아지였어요 ..  (4쪽)



  케빈 헹크스 님이 빚은 그림책 《웬델과 주말을 보낸다고요?》(비룡소,2000)를 가만히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쥐’를 빗대어 두 아이가 나옵니다. 한 아이는 소피이고, 다른 한 아이는 웬델입니다. 웬델은 소피네 집에서 며칠 머물기로 합니다. 소피는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입니다. 웬델은 시끌벅적하고 장난꾸러기입니다. 두 아이는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놀 수 있을까요?


  웬델은 소피네 집에 와서 처음 하는 말이 ‘장난감이 너무 적다’입니다. 아마 웬델네 집에는 장난감이 많은가 봐요. 그러나 웬델은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장난감이 몇 가지 없어도 얼마든지 무엇이든 하며 놀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웬델은 소피를 이끌면서 온갖 놀이를 합니다. 그런데 웬델은 소피가 어떻게 느낄는지 헤아리지 않아요. 그저 혼자 앞서 나갑니다.




.. 점심을 먹을 때에도 웬델은 땅콩버터와 젤리를 손가락에 묻혀 온통 낙서를 했어요. 웬델이 말했어요. “참 재미있지?” 소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  (16쪽)



  웬델은 무척 신나게 놉니다. 소피는 무척 조용히 지켜봅니다. 소피는 웬델이 거북하면서 힘겹습니다. 그렇지만 어쩌는 수 없어요. 웬델네 어버이가 여러 날 웬델을 맡겼거든요. 웬델은 소피네 집에 머물러야 합니다. 소피는 이것도 참고 저것도 견디면서 보냅니다. 소피는 웬델이 언제 저희 집으로 돌아가려나 싶어서 기다립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어찌하지 못합니다. 소피네 어버이도 장난꾸러기 웬델을 어찌하지 못합니다. 소피도 소피네 어버이도 웬델을 어찌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느 모로 보면 소피와 소피네 어버이는 ‘놀이’를 모른다고 할 만합니다. 소피도 소피네 어버이도 너무 조용합니다.


  소피는 왜 얌전둥이로 지낼까요? 소피네 어버이는 왜 소피랑 시끌벅적하게 놀지 못할까요? 소피도 왁자지껄하게 떠들면서 놀고 싶지는 않을까요? 소피네 어버이도 어릴 적에는 개구쟁이나 장난꾸러기가 되어 신나게 뛰놀지 않았을까요?




.. 이번에는 소피가 뭐든지 다 정했어요. 소피가 소방대장을 했어요. 웬델은 불타는 건물이었어요. 소피가 말했어요. “참 재미있지?” 웬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  (24쪽)



  함께 놀기에 한결 재미있습니다. 혼자만 놀면 재미있지 않습니다. 서로 아끼면서 놀기에 더욱 즐겁습니다. 한 사람만 웃으면서 놀면 재미없습니다. 서로 북돋우고 돌볼 줄 아는 마음이 되어 놀 때에 싱그러운 웃음이 터집니다.


  예부터 ‘깍두기’가 있습니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끼지 못하는 아이는 깍두기가 되는데,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따스하게 보살펴 줍니다. 놀이를 잘 하지 못하는 아이는 깍두기가 되어 두 쪽 모두한테서 사랑을 받으며 함께 놉니다.


  조금 서툴면 서툰 대로 함께 섞입니다. 조금 어수룩하면 어수룩한 대로 함께 어울립니다. 놀이는 일등이나 이등을 가리지 않습니다. 놀이는 꼴등을 따지지 않습니다. 한 아이가 너무 오래 술래를 하지 않도록 서로 돌아가면서 놉니다. 일부러 지기도 하지만, 일부러 이기기도 합니다. 놀이에서는 이기고 지는 일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가 함께 웃고 노래할 수 있도록 서로 마음을 기울입니다.



.. 소피 엄마가 말했어요. “이제 갈 시간이야!” 소피 아빠가 말했어요. “이제 갈 시간이야!” 웬델이 말했어요. “벌써요?” 소피가 말했어요. “벌써요?” ..  (28쪽)



  그림책을 보면, 막바지에 비로소 소피가 마음을 엽니다. 소피가 마음을 열 무렵 웬델도 홀가분합니다. 소피는 시끌벅적하게 노는 재미를 비로소 깨닫습니다. 하하하 웃고, 히히히 뒹굴며, 옷이며 몸이 흠뻑 젖거나 흙투성이가 된들 대수롭지 않아요. 마루와 집안을 이렁저렁 더럽혀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젖은 옷은 벗으면 되고, 흙투성이 몸은 씻으면 됩니다. 어질러진 집안도 치우면 되지요.


  이제 소피는 웬델과 더 놀고 싶습니다. 그러나 웬델은 저희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소피네 어버이는 웬델이 돌아간다고 하니 한시름 놓습니다. 이와 달리, 소피는 웬델한테 쪽글을 하나 남깁니다. 다음에 다시 놀자는 이야기를 적어서 띄웁니다. 웬델은 새롭고 신나며 즐거운 놀이동무를 사귀었습니다. 소피도 삶을 더욱 맑고 환하게 밝히도록 북돋우는 멋진 놀이동무를 사귀었습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랍니다. 어른들도 놀면서 자랐습니다. 아이들은 마음껏 뛰고 달리고 뒹굴고 날면서 무럭무럭 큽니다. 어른들도 마음껏 뛰고 달리고 뒹굴고 날았기에 튼튼하며 아름답게 우뚝 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놀이가 있어 기쁩니다. 놀이를 함께 즐기면서 웃습니다. 놀이를 새롭게 지으면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노는 하루는 이야기꽃이 피는 삶입니다. 4348.5.6.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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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아저씨 민들레 그림책 5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 길벗어린이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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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26



빈몸끼리 살을 부비면서 지내는 삶

― 황소 아저씨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길벗어린이 펴냄, 2001.1.25.



  아이들은 대단한 장난감이 있어야 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맨손과 맨몸으로도 즐겁게 놉니다. 아이들은 비싼 옷을 입어야 예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모래밭이나 풀밭에서 뒹굴며 놀아도 예쁩니다. 흙투성이가 되어도 예쁘고, 땀투성이가 되어도 예쁩니다. 씩씩하게 뛰놀 줄 아는 아이들은 모두 예쁩니다. 활짝 웃고 노래하는 아이는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 새앙쥐 한 마리가 외양간 모퉁이 벽 뚫린 구멍으로 얼굴을 쑥 내밀었어요, 쪼끄만 두 눈이 반짝반짝했어요 ..  (7쪽)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기까지 아이들은 모두 한 가지를 바랍니다. ‘신나게 놀고 싶어!’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은 놀지 못합니다. 신나게 놀기는커녕 놀이가 콱 막힙니다.


  아이들은 공부해야 하는 목숨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시험공부를 잘 해서 시험성적이 잘 나와야 하는 목숨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대학교에 붙을 때까지 ‘죽은 듯이’ 놀이하고 동떨어진 채 참고서와 문제집만 붙잡아야 하는 목숨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이들은 시험기계나 입시노예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입니다. 홀가분하게 뛰놀 수 있어야 하고, 마음껏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학교 골마루에서 조용조용 걸어야 할 아이들이 아니라, 길거리이든 골목이든 마당이든 어디에서든 까르르르 웃음을 터뜨리면서 이마에 땀을 흘리며 뛰놀 수 있어야 합니다.




.. “그런데 한밤중에 뭣 하러 나왔니?” “동생들 먹을 것 찾아 나왔어요. 우리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황소 아저씨는 뜻밖이었어요 ..  (14쪽)



  권정생 님이 쓴 글에 정승각 님이 그림을 그린 《황소 아저씨》를 아이들과 찬찬히 읽습니다. 누렁소와 새앙쥐가 나오는 그림책을 조용히 읽습니다. 어두운 밤에 언니 새앙쥐는 먹이를 찾으러 외양간에 갑니다. 고요한 밤에 누렁소는 새앙쥐 소리와 몸짓에 잠을 깹니다.


  언니 새앙쥐는 동생 새앙쥐를 보살핍니다. 어미 새앙쥐를 잃었으나 씩씩하게 웃으면서 살아갑니다. 아저씨 누렁소는 새앙쥐를 보면서 참으로 대견하다고 여깁니다. 아저씨 누렁소가 먹고 남은 밥을 새앙쥐한테 기꺼이 나누어 줍니다. 추운 겨울밤이 찾아오니 새앙쥐더러 좁은 굴에서 오들오들 떨지 말고 이녁 품에 깃들어서 따스하게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 새앙쥐는 얼른 콩 조각 하나를 물고 동생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갔어요. 새앙쥐네 집 작은 방엔 동생들 넷이서 모여 앉아 언니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요것 넷이서 나눠 먹어라. 내 또 가서 금방 가져올게.” 새앙쥐는 열네 번이나 황소 아저씨 등을 타넘었어요 ..  (18쪽)



  누렁소는 고삐에 매인 몸입니다. 누렁소는 사람들이 주는 밥을 받아서 먹습니다. 누렁소는 갇힌 몸이요, 사람이 시키는 일만 해야 합니다. 누렁소가 ‘가진 것’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누렁소한테 일을 더 시키지 못할 만한 때가 다가오면, 누렁소는 목숨을 잃고 고기가 됩니다. 외양간도 누렁소한테는 ‘오늘 깃든 집’일 뿐, ‘언제까지 깃들 수 있을 집’인지 알 수 없습니다.


  누렁소는 빈몸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빈몸이라 할 누렁소는 이녁한테 몇 가지 없는 것을 새앙쥐하고 스스럼없이 나눕니다. 함께 즐기고 같이 누리며 서로 아끼는 길을 갑니다.


  새앙쥐는 누렁소 도움을 받을밖에 없습니다. 새앙쥐도 빈몸이고 누렁소도 빈몸인데, 빈몸끼리 만나서 돕고 도움을 받습니다. 언니 새앙쥐는 동생 새앙쥐를 이끌고 아저씨 누렁소 둘레에서 놀고 먹고 자고 이야기하고 웃고 노래합니다.



.. 새앙쥐들은 황소 아저씨랑 사이좋은 식구가 되었어요. 황소 아저씨 등을 타넘고 다니며 술래잡기도 하고 숨바꼭질도 했어요. “오늘부터 나하고 함께 여기서 자자꾸나.” “예, 아저씨!” ..  (31쪽)



  빈몸끼리 살을 부비고 지내는 삶입니다. 빈몸끼리 어깨동무를 하는 삶입니다. 틀림없이 누렁소와 새앙쥐는 빈몸입니다. 그런데, 둘(누렁소하고 새앙쥐)은 넉넉히 나눕니다. 너그러운 품이 되고 넓은 마음이 됩니다. 따사로운 웃음이 되고 기쁜 노래가 됩니다. 이리하여, 누렁소와 새앙쥐는 아름다운 사랑으로 피어납니다. 몸은 갇혔다고 하더라도 마음은 홀가분하게 하늘을 날아오르는 고운 숨결입니다.


  권정생 님은 《황소 아저씨》라는 이야기에서 이녁 삶을 고스란히 드러냈구나 싶습니다. 몸은 아프고 갇히고 외롭다고 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하늘나라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사랑이라는 넋을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로구나 싶습니다.


  꿈을 꾸기에 사랑을 찾습니다. 사랑을 찾기에 꿈을 꿉니다. 삶을 생각하기에 자그마한 일에도 웃습니다. 삶을 헤아리기에 작은 힘으로도 이웃을 도우면서 서로 손을 맞잡을 수 있습니다. 4348.5.4.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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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버스 파랑새 그림책 79
제인 고드윈 글, 안나 워커 그림, 강도은 옮김 / 파랑새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25



버스를 타는 아이들은

― 빨간 버스

 제인 고드윈 글

 안나 워커 그림

 강도은 옮김

 파랑새 펴냄, 2009.4.24.



  나는 어릴 적에 버스를 타면 맨 앞이나 맨 뒤에 즐겨 앉았습니다. 맨 앞에 앉으면 버스가 달리는 길이 시원하게 트여서 넓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맨 뒤에 앉으면 버스가 달리면서 휙휙 지나치는 길을 가만히 내다볼 수 있습니다. 맨 앞이나 맨 뒤가 아닌 가운데쯤에 서면 창밖을 보기 어렵습니다. 어디쯤 지나가는지 알 수 없기도 합니다. 버스에 손님이 가득한 날은 이리저리 밀리면서, 막상 내려야 할 곳에서 못 내리기도 합니다.


  아마 누구라도 맨 앞이나 맨 뒤에 앉아서 느긋하게 창밖을 내다보고 싶어 하리라 느낍니다. 어정쩡한 자리보다는 눈앞이 시원하게 트이는 자리를 좋아하겠지요. 그러니, 우리 집 아이들이 맨 앞에 앉아서 신나게 바깥을 내다보려고 하는 마음을 잘 알 만합니다. 아이들은 키가 작으니 가운데쯤 어정쩡하게 서거나 앉으면 바깥을 내다보지 못합니다. 애써 버스를 탔는데 창밖을 구경할 수 없으면 몹시 서운합니다.




.. 수업이 끝나면 키티는 버스에 타서 두리번거려요. 키티는 언니랑 앉고 싶은데, 언니는 친구들이랑 앉고 싶대요. 키티는 맨 앞자리에 앉고 싶은데, 다른 애가 늘 먼저 앉아 있어요 ..  (4쪽)



  아이들과 시골에서 살며 이레나 보름에 한 차례쯤 버스를 탑니다. 읍내를 다녀올 적에 버스를 탑니다. 그야말로 어쩌다가 한 번 타는 버스요 자동차인 터라, 아이들은 읍내마실을 몹시 기다립니다. 멀리서 버스가 오는 소리를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늘 똑같이 바라보는 창밖 모습을 언제나 새롭게 마주합니다.


  시골버스가 구불구불힌 길에 흔들리며 달리면 까르르 웃으면서 재미있어 합니다.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버스를 마치 놀이기구로 여깁니다. 게다가 어쩌다 한 번 타는 버스인 터라, 내릴 적에 단추를 꼭 누르고 싶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작은아이는 누나가 먼저 단추를 누르면 골을 부리기까지 하고, 단추가 손에 안 닿는 곳에 있으면 그야말로 섭섭합니다.




.. “가자.” 언니는 기다란 다리로 성큼성큼 앞서 가요. 키티는 언니를 따라가느라 늘 총총대요 ..  (10∼11쪽)



  제인 고드윈 님이 글을 쓰고, 안나 워커 님이 그림을 그린 《빨간 버스》(파랑새,2009)를 읽습니다. 자동차나 버스를 좋아하는 작은아이는 《빨간 버스》 같은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자주 들추지는 않습니다. 틈틈이 들추기는 하되, 손수 버스를 만들어서 놀기를 훨씬 좋아합니다.


  가만히 헤아려 보면, 나도 어릴 적에 우리 집 작은아이처럼 버스놀이를 곧잘 했다고 떠오릅니다. 장난감이 없어도 맨손으로 버스 모습을 그려서 놀고, 연필이나 나무젓가락을 버스로 삼아서 놉니다. 돌멩이나 나뭇잎을 버스로 삼기도 합니다. 머릿속으로 그리는 길고도 거칠며 깊은 곳을 버스가 달린다고 생각합니다. 혼자서 생각에 폭 빠져서 놀이를 할라치면, 참말 나는 버스를 타고 아주 먼 곳을 신나게 달린다고 느낍니다. 꿈에서 깨어 이곳으로 돌아오면 아쉽습니다.


  버스를 타고 움직일 적에 때때로 이 버스가 하늘을 날거나 바닷속을 누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울퉁불퉁한 길에서 덜컹거린다든지, 구부정한 길을 아슬아슬하게 달릴 적에는 온몸이 짜릿짜릿합니다.




.. 키티가 부스스 눈을 떴을 때, 사방이 아주 깜깜했어요. 키티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두리번거렸어요. 정말 아무도 없었어요 ..  (22쪽)



  그림책 《빨간 버스》는 ‘버스놀이’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버스와 얽힌 애틋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몸이 작고 마음이 여린 아이가 언니 꽁무니를 좇으며 버스를 타지만, 막상 언니와 어울려서 놀지 못하고 외톨이처럼 지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언니 옆에 앉지도 못하고, 맨 앞에 앉지도 못하다가, 어느 날 언니 없이 혼자 버스를 탔는데 그만 버스에서 잠들었다고 해요. 집으로 어떻게 돌아가야 하나 걱정하면서 덜덜 떨 적에, 버스 일꾼이 아이를 알아봅니다.



.. 바로 버스 운전사 아저씨였어요. “아저씨, 저 못 내렸어요.” 키티가 콩알만 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아저씨는 조용히 웃음을 짓더니, 빨간 담요를 가져와서 키티를 포근하게 감싸 주었어요 ..  (26쪽)



  그림책 《빨간 버스》에 나오는 아이는 맨 앞에 앉고 싶은 마음도 있고, 언니와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즐거운 마음이 되어 버스를 타고 싶습니다. 날마다 타고 다니는 버스에서 즐겁게 웃고 맑게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혼자 동떨어진 채 말 한 마디 섞지 못하고 쓸쓸하게 달리는 버스가 아니라, 창밖도 신나게 구경하면서 동무나 언니하고 도란도란 말을 섞을 수 있는 버스가 되기를 바라요.


  더 빨리 달려야 하지는 않습니다. 더 멀리 달려야 하지도 않습니다. 날마다 똑같은 길을 달리더라도, 이 길에서 즐거움을 실컷 맛보고 싶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어요. 모두 얌전히 자리에 앉아서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면 버스는 몹시 따분합니다. 모두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아무 말을 할 수 없다면 버스는 몹시 괴롭습니다.


  웃고 떠들기에 싱그러운 기운이 흐릅니다. 서로 따스하게 마주보면서 마음을 기울이기에 즐거운 바람이 붑니다. 이곳과 저곳 사이를 잇는 버스는 나와 너 사이에서 이야기를 싣고 가볍게 달립니다. 4348.4.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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