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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요, 라흐마니노프 ㅣ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2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6월
평점 :
나카야마 시치리는 최근에 가장 많이 만난 작가라 할 수 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 못지않는 화수분 작가에
매력적인 캐릭터와 반전의 제왕다운 스토리로 단숨에 최애 작가 반열에 등극했다. 너무 많은 시리즈를
쏟아내고 있어 그의 대표작 내지 대표 캐릭터를 꼽기도 쉽지 않은데 그중에선 아무래도 2009년 제8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을 수상한 '안녕 드뷔시'의 피아니스트 탐정 미사키 요스케를 뺴놓을 수
없다. '안녕 드뷔시'의 후속작인 이 책은 라흐마니노프를 제목에 내세우고 있는데 아이치 음대를
배경으로 고가의 첼로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실종(?)과 학생들이 정기 연주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얘기들을 담고 있다.
작년 가을에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지금 이 계절의 클래식', '클래식이 들리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를 통해 클래식의 매력에 한껏 빠진 적이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클래식은 그렇게
친숙하다고는 할 수 없다. 곡 제목들은 익숙하지만 정작 선율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찾아 들어보면 '이 곡이었어'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만큼 클래식이 우리와 가까이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그런 클래식을 글로 만나는 건 더 뜬구름 잡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의 첫 편이라 할 수 있는 '안녕 드뷔시'에서는 고등학교를 무대로 했다면
이번에는 한 단계 성숙한 대학교를 무대로 한다. 바이올린 전공인 기도 아키라라는 고학생이 화자가
되어 내용이 전개되는데 기도 아키라와 친한 첼로 전공인 쓰게 하쓰네가 연습할 때만 빌려 사용하던
고가의 첼로 스타라디바리우스가 사라지면서 얘기가 시작된다. 밀실 상태에서 보관 중이던 첼로가
사라지자 학교에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지 않고 은밀히 조사에 나서는데 별다른 단서도 없이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그 와중에 가을 연주회 멤버 선발 절차가 진행되고 쟁쟁한 후보들 가운데 얼떨결에
기도 아키라가 콘서트마스터로 선임되지만 첼로에 이어 피아노까지 테러를 당하면서 분위기는 점점
뒤숭숭해진다.
음악가를 꿈꾸는 학생들이 주요 등장인물들이다 보니 여러 유명 클래식 곡들을 연주하는 장면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학생들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가을 연주회를 하는 장면이 클라이
막스라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폭우로 인해 수재를 당한 주민들이 체육관에 모인 가운데 미사키와
기도가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를 연주하는 장면이 압권이라 할 수 있었다. 솔직히 어떤
곡인지는 잘 모르지만 물건들을 건지러 폭우 속으로 나가겠다며 통제가 되지 않던 분위기를 단숨에
제압하며 잠시나마 힐링의 시간을 선사하는 이들의 연주는 음악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음악이라는 게 노력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타고난 재능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은데
이 책에서도 재능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시기와 질투, 반목과 갈등이 그려지면서 연주회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래도 오케스트라는 특정 악기만 잘 해서는 안
되는 악기들의 조화가 더 중요하다 보니 각자의 개성을 조금은 억제하면서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도
중요함을 잘 보여주었다. 미스터리로서는 어느 정도 추측이 되긴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출생의 비밀(?)이
도사리고 있었다. 여러 클래식 연주 묘사가 적지 않아 이 책에 등장하는 작품들을 알면서 봤으면 훨씬
더 공감이 되었을 것 같은데 음악 전문가가 아님에도 작품 묘사를 마치 연주를 직접 듣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표현한 작가의 능력에 감탄할 따름이었다. 음악이 주가 되다 보니 미스터리로서의 재미는 약간
덜한 느낌도 들지만 음악 미스터리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점에서 의미가 있었는데 미사키 요스케가
다음 작품에서는 또 어떤 활약을 할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