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하고 빨래하는 겨울
겨울에는 아침에 밥을 할 적에 춥다. 겨울에는 저녁에 밥을 차릴 적에도 춥다. 가스불을 켜니 가스 냄새가 밖으로 나가도록 문을 열어 밥을 지으니 추울밖에 없다. 여름에는 늘 문을 활짝 열어 놓으니 밥을 차리면서 덥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여름에는 불가에서 일해야 하니, 밥을 차리면서 땀이 흐른다.
겨울에 아침을 차리면, 다 차리기까지 춥지만, 따순 밥과 국을 밥상에 올리고 아이들을 부를 무렵 해가 하늘 높이 올라가는 때라 차츰 포근한 기운 감돈다. 놀면서 먹는 아이들 입에 이것저것 떠먹여 주다가 바야흐로 다 먹였구나 싶으면 기지개를 켠다. 등허리를 편다. 오늘은 제법 썰렁한 날이기는 하지만 햇볕이 좋으니, 설거지를 마치고서 바로 빨래를 한다. 이불을 널어 볕바라기 시키려 했지만 바람이 제법 불어 이불을 널지는 않는다. 모레쯤이면 한결 따스할 테니 모레에 이불을 말리자고 생각한다.
담가 놓은 빨랫감이 몹시 시리다. 따순 물을 튼다. 따순 물로 빨랫감과 손을 녹이면서 비누를 묻힌다. 비빔질을 할 적에도 손이 시려 따순 물로 손과 빨랫감에 조금씩 붓는다. 문득 며칠 앞서 혼자 본 영화 〈오싱〉이 떠오른다. 아이들하고 함께 볼 만한지 살피려고 먼저 혼자 보았는데, 영화에 나오는 어린 가시내는 ‘영화라고는 하지만’ 흰눈 수북하게 덮은 멧골짝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물을 긷는다. 눈보라 몰아치는 숲속을 맨손과 홑옷차림으로 걷는다.
얼마나 시릴까. 얼마나 추울까. 옛날 사람은 고무장갑 따위 없이 맨손으로 한겨울 기저귀 빨래를 해야 했으니, 손이 빨갛게 꽁꽁 얼다가 허옇게 되어도 꾹 참거나 견디었을까. 언손 녹일 겨를이 없이 불을 때고 절구질을 하여 겨를 벗기고는 쌀을 안쳐 밥을 지으면서, 또 반찬을 차리면서, 겨우내 어떤 모습으로 살림을 꾸렸을까.
예전 사람들은 늦가을부터 새봄까지 한 벌 옷을 갈아입지 않고 씻지도 못했다고 하나, 아기한테까지 이렇게 지내지는 않았으리라 느낀다. 아기들 누는 똥기저귀와 오줌기저귀를 그대로 둘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아기가 이불에 쉬를 하거나 똥이라도 누었으면 이불도 빨아야 한다. 한겨울 눈밭에서도 기저귀 빨래뿐 아니라 이불 빨래까지 해야 한다. 양반집에서 일하는 머슴이라면 한겨울에도 양반네 옷가지를 빨아야 한다.
이 나라에서 나오는 역사 영화나 역사 연속극에서는 ‘빨래하는 사람’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한겨울에 밥하거나 빨래하는 사람 모습은 이 나라 영화나 연속극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그렇지만, 영화나 연속극에만 없을 뿐, 모두들 그렇게 겨우내 언손 비비고 녹이면서 햇살 한 조각 고마이 여기고, 새로 찾아올 봄을 애타게 기다렸겠지. 4347.1.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백마을 빨래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