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씻으니 빨래를

 


  서울에서 바깥일을 마치고 먼 길을 달려 시골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은 기차를 탄다. 순천역에서 내려 고흥읍으로 시외버스를 갈아탄다. 기차와 버스에서 배를 살살 어루만진다. 멀미를 안 하고 배앓이를 안 하기를 빈다. 읍내에 내린 뒤 택시를 불러 시골집으로 간다. 요 며칠 하늘이 뿌옇다. 그래도 시골 하늘은 서울 하늘보다 훨씬 맑고 깨끗하지만, 별이 몇 안 보인다.


  집 앞에서 택시를 내린다. 짐칸에 실은 귤상자와 여러 가지를 내린다. 작은아이는 잠들었고, 큰아이는 어머니 곁에서 논다. 먹을거리를 마루와 부엌으로 옮기고 나서 씻는다. 서울에서 몸에 묻은 때를 벗긴다. 서울에서 입은 옷을 벗어서 바닥에 깔고는 빨래를 한다. 어제 나온 아이들 옷가지도 함께 빨래를 한다. 물을 마시고, 빨래를 옷걸이에 꿰어 방에 넌다. 큰아이는 잘 놀았으니 포근히 잘 수 있도록 옷을 갈아입히고 이불을 여미어 준다. 곯아떨어진 작은아이 이불을 다시 여민다. 나는 속이 니글니글해서 함께 드러눕지 않는다. 책상맡에 앉아서 몇 가지 일을 한 뒤에 누워야지 싶다. 고작 하루 서울로 바깥일을 보러 다녀왔지만, 저녁에 몸을 씻으며 하는 빨래가 새삼스럽다. 참말 하루만 집을 비워도 며칠이나 몇 해가 지난 듯하다. 참말 하루만 아이들 얼굴을 안 보아도 며칠이나 몇 해가 훌쩍 흐른 듯하다. 4347.1.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백마을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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