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팅·로망·러브·노크·미니벨로
 좋은 사람을 사귈 수 있다는 달콤한 꿈을 안습니다. 사랑하는 짝지를 찾아 마음문을 똑똑 두드립니다. 작은자전거를 사뿐사뿐 달리면서 골목길을 천천히 지나갑니다. 만나고, 꿈꾸며, 사랑합니다.

2. 컨셉·싱글·스케일·서클·풀
 좋은 생각을 알맞게 품습니다. 슬기로운 길을 살피며 알맞춤한 생각을 살핍니다. 혼자서도 살피고 여럿이서도 헤아립니다. 커다란 꿈을 꾸기도 하지만 조그마한 꿈을 보듬기도 합니다. 동아리를 짓기도 하고, 모임을 이루기도 합니다. 가득가득 채울 수 있는 꿈이면서, 꼭 한 가지를 이루어도 아름다운 꿈입니다.

3. 라이프·스타일·마스터·오버·매뉴얼
 내 삶을 사랑하듯 네 삶을 사랑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매무새를 아리따이 돌보듯이 네가 살아가는 매무새를 아리따이 보살핍니다. 올바르게 익히고 빈틈없이 가다듬습니다. 물샐틈없이 갈고닦을 수 있으나, 자칫 지나칠 수 있으니 잘 살펴야 합니다. 애써 익힌 내 삶이요 매무새라 한다면, 차근차근 길잡이를 마련해 봅니다. 나와 함께 이 길을 거닐 좋은 벗님하고 더욱 기쁠 수 있도록 나부터 길동무가 됩니다.

4. 코너·모자이크·메시지·셀프·쇼
 골목길 한쪽 구석에 울긋불긋 무늬가 새겨지곤 합니다. 길가 너른 한켠에 바둑무늬 같고 그물무늬 같은 그림이 그려지곤 합니다. 그림 하나이든 오줌 자국 하나이든 저마다 담긴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 다른 이야기를 다 다른 결에 담습니다. 나 스스로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남들 보라고 짐짓 꾸미는 일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즐거웁기에 기쁜 잔치일 수 있고, 여럿이 흐뭇하도록 재미난 놀이마당일 수 있습니다.

5. 유머·심플·대시·럭셔리·스크랩
 웃기는 말은 쉽습니다. 단출한 말마디 하나로 웃기고 울립니다. 부딪히면서 살아갑니다. 가멸찬 살림이어야 아름답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들 좋은 살림살이를 가만히 살펴보며 배웁니다. 좋은 손길을 갈무리하여 내 삶자락에도 살포시 깃들입니다. 쉽고 가벼우면서 재미난 하루하루를 복닥복닥 알차게 맞아들입니다.

6. 스톱·커밍아웃·패션·마인드·미스터리
 한 걸음 걷다가 멈추고, 두 걸음 내딛다가 그칩니다. 흉내를 내기도 하지만, 당차게 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내 옷차림은 내 옷차림이기에 좋습니다. 애써 다른 사람 옷차림에 눈치를 두지 않습니다. 내 마음대로 차리고, 내 마음껏 돌보며, 내 마음결을 보듬으면서 살아갑니다. 수수께끼를 풀듯 하루하루 새롭게 맞이하면서 살아갑니다. 알쏭달쏭하면서 언제나 새삼스러운 하루하루 고맙게 누립니다.

7. 라이벌·클럽·아웃·오케이·비즈니스
 깊어 가는 밤 까무룩 곯아떨어지는 아이를 바라봅니다. 아이하고 힘겨루기라도 하려는 듯 지낼 수 없습니다. 맞수 아닌 사랑이요 살붙이인 아이입니다. 저마다 아이 낳아 키우는 삶이 고단해서 자그맣게 모임을 꾸려 인터넷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하고 생각을 주고받습니다. 죽도록 고단하지만 또, 죽을 만큼 괴롭지는 않으며, 죽도록 고단하기에 밖으로 뛰쳐나가고프다가도, 어쩌면 이런 나날인 터라 아이를 키우며 함께 살아가는 보람을 누립니다. 좋아요. 참 좋습니다. 아이를 돈벌이 하자고 낳았겠습니까. 아이 장사를 하자며 낳는가요. 출산장려금이란 참 쓸데없습니다. 그저, 우리 아이 사랑스레 살아가도록 예쁜 터전을 지켜 주셔요.

8. 힌트·미니·스마일·하이킹·해피
 아이는 날마다 새말을 배웁니다. 오늘 아침 일찍 깨어난 아이한테 “잘 잤어요?” 하고 물으니 거침없이 “네!” 하고 외칩니다. 아, 예뻐라. 이 아이는 제 어버이한테서 좋은 넋을 속속들이 받아먹을 테니까, 어버이 되는 사람은 조그마한 사랑을 웃음꽃 피우면서 나누어야겠다고 새삼 다짐합니다.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거닐며 우리가 걷는 이 길가에 흐드러진 꽃누리를 즐거이 바라보며 껴안는 매무새를 지키고, 아이 스스로 뚜벅뚜벅 신나게 거닐 만한 멧골자락 살림을 기쁘게 돌보아야겠습니다.

9. 그린·다운로드·리스트·파이팅·시스템
 푸른 들판을 꿈꿉니다. 푸른 들판이 찾아들고 흐드러지는 봄과 가을에는 이 푸름누리를 내 가슴속 깊이 곱게 내려받습니다. 하늘이 내려주고 땅이 내려주는 반가운 보배입니다. 꽃이름을 알든 모르든 하나하나 읊습니다. 찬찬히 아로새깁니다. 사람이 붙인 이름이 있건 없건 힘을 내어 뿌리를 내리고, 힘을 쏟아 줄기를 올리는 들풀입니다. 자연이라는 누리는, 터전은, 보금자리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얼거리입니다.

10. 쿨·알레르기·커버·이미지·타월
 능금 한 알을 깎습니다. 한 알로는 모자랄까 싶어 한 알 더 깎습니다. 아침나절 먹는 능금은 시원합니다. 입안이 개운해집니다. 내 아이는 나만 깨끗하게 살아간다고 깨끗할 수 없기에, 왜냐하면 이 지구별과 한국땅은 숱한 항생제와 화학조합식으로 찌들었기에, 얼굴에 두드러기꽃이 핍니다. 슬프지만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껍데기를 씌워 가릴 수 없고, 뚜껑으로 덮을 수 없습니다. 가만히 그려 봅니다. 마음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모시나 무명으로 된 천을 소금물로 적셔 아이 얼굴을 살며시 닦아 주면서 꿈 같은 그림을 그립니다. 도시란 도시가 모두 논밭 일구며 푸나무 싱그러운 푸른터가 되는 꿈 같은 그림을 그립니다.

11. 아마추어·뮤직·센스·스트레스·플레이
 오늘 쓴 글을 열 해쯤 뒤에 돌아보면 어떤 느낌일까요? 참말 풋내기가 쓴 글이라고 느낄까요? 결 고운 노래를 들을 때면, 이 결 고운 노래는 열 해이고 스무 해이고 노상 결이 곱다고 느낍니다. 참 알뜰한 마음으로 빚은 노래요, 참 빛나는 가슴으로 이룬 노래입니다. 마음 구석구석 깃들던 짜증스럽던 찌꺼기는 그예 사라지고, 숱한 앙금이 지워집니다. 즐겁게 살아가요. 신나게 뛰어요. 활짝 웃어요, 마음껏 달려요.

12. 스토리·사이즈·제로·브레이크·리플
 내 이야기는 내 이야기라서 아름답습니다. 말사랑벗 이야기는 말사랑벗 이야기라서 아리따와요. 내 이야기는 좁달막한 속알맹이로 이루어진 나머지 얄딱구리하거나 어설플는지 모릅니다. 아주 밑바닥 빵점짜리일는지 모릅니다. 그래, 밑바닥이면 밑바닥이라서 좋고 빵점짜리라면 빵점짜리라서 좋아요. 저는 제 삶에 점수를 매기지 않거든요. 자꾸자꾸 멈추어야 하거나, 이래저래 걸리면서 붙잡아야 한다면, 아이구나 등허리가 쑤십니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조금 더 쓰고 싶으나 아이가 일찍 일어나서 함께 놀자 하면 어떻게 이 글쓰기를 그쳐야 하느냐, 더 붙잡아야 하느냐 망설입니다. 하는 수 없이 얼추 마무리짓고 나중에 덧보탭니다. 덧달아서 씁니다. 온글보다는 덧글입니다. 늘 덧붙이면서 새로 써야 할 글입니다.

13. 점프·로그인·베스트·박스·타임
 콩콩콩 뛰듯이 달리는 아이를 바라보며, 아버지로서 나는 내 걸음이 왜 이리 묵직하기만 할까 싶어 쓸쓸합니다. 나 또한 아이 마음으로 살포시 접어들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짐을 훌훌 내려놓고 살가운 빛누리로 들어서지 못하기 때문일 테지요. 가장 손꼽을 만한 느긋한 삶이어야 콩콩콩 뛰는 삶이 아닙니다. 네모난 틀이어도 좋고 세모진 틀이어도 좋으나, 아무런 틀이 없어도 좋은 삶입니다. 가벼이 손을 잡고 홀가분히 어깨동무를 하는 겨를을 즐기면 됩니다. 말미를 얻어 책을 읽고, 틈을 내어 사진을 찍으며, 짬을 빚어 밥을 짓고 사랑을 나눕니다.

14. 노트·누드·노·레벨·스터디
 셈틀을 결 틈이 거의 없다 보니까 공책을 씁니다. 볼펜을 들어 공책에 일기를 쓰듯 글을 씁니다. 아이는 아버지 곁에서 “공부!”라 외치며 글쓰기를 흉내냅니다. 공부라는 말은 누구한테서 배웠는지 아리송합니다. 공부한다는 아이는 작은 수첩에 꼬물꼬물 줄 맞추어 그림을 그립니다. 텅 빈 수첩이 꼬물그림으로 가득합니다. 알굴둥이처럼 말랑말랑하다 싶은 예쁘장한 꼬물그림입니다. 이런 예쁜 꼬물그림은 제도권 학교에서 틀에 박힌 그림을 배운다면 금세 사라지겠지요. 교과서는 홀가분히 춤추는 그림을 내버려 두지 않으니까요. 아이 눈높이에 맞추지 않는 교과서이고, 따지고 보면 어른 눈높이에도 안 맞는 교과서입니다. 참 아니올시다예요. 그래도 이런 학교에서 이런 교과서로 숱한 아이들이 배움을 나눈다고 합니다. 배움누리나 배움터 아닌 학교에서 교과서 지식만 가득 쌓습니다.

15. 포인트·나이스·아이디어·리듬·메모
 인터넷책방에서 책을 사며 점수를 쌓는 사람들이 늘면서 동네책방은 사라집니다. 참 멋진 일일까요? 인터넷책방이란? 택배값 없이 그날그날 집에 드러누워 받아볼 수 있는 책이니 훌륭할까요? 누가 이런 생각을 해내서 돈벌이를 할까요? 거저로 그날 보내 주는 책을 파는 인터넷책방은 어디에서 돈을 벌까요? 제 가락을 잃는 삶으로 책만 들여다본다고 무슨 빛을 보며 어떤 꿈을 이룰까요? 멧골자락에서 살아가며 책방마실이 만만하지 않지만, 읍내 작은 책방으로 찾아가 책 하나 사들인 다음 천천히 읽으며 빈 자리에 내 생각을 가만가만 적바림합니다.

16. 트러블·스커트·시즌·업·마이너스
 말썽을 부리는 아이는 치마 입기를 좋아합니다. 에휴, 아이가 부리는 말썽이란 어른인 제가 보기에 말썽이지만, 아이로서는 이렇게도 놀고프고 저렇게도 놀고프면서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나는 삶일 테지요. 아이가 갓난쟁이였을 때에는 아이가 무얼 알아서 똥오줌을 가리나요. 그저 나오는 대로 마려운 대로 싸겠지요. 어버이는 이 모두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웃는 낯으로 치울 노릇입니다. 딸아이는 치마를 한 벌 입고도 또 껴입는다며 칭얼댑니다. 참 딱합니다. 겨울날 추운 날씨라면 그러려니 봐주지만 더운 날씨에는 치마 입기 말리느라 애먹습니다. 아이야, 치마가 아무리 좋아도 한 벌만 입자꾸나. 너무 많이 껴입으면 너한테 좋을 일이 없단다. 게다가 아빠도 빨래하기 너무 힘드네. 힘이 다 빠지네. 아빠도 좀 봐주렴.

17. 팀·바이바이
 무리를 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슬기를 모으고자 무리를 짓기도 하지만, 웅성웅성 떼를 지으며 엉뚱한 힘을 부리기도 합니다. 무기를 든 평화는 달갑지 않습니다. 총칼을 들거나 주먹을 흔들거나 몽둥이를 휘두르는 평화는 평화가 아닙니다. 모두 모두 잘 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쇠붙이도 가고 손찌검도 가며 돈뭉치도 멀리멀리 가 버리면 고맙겠습니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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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우리말 바르게 손보기 ㉢ 잘못 쓰는 말 : 온갖 영어


 바람이 몹시 부는 한낮, 하늘을 올려다보니 파란 빛깔 하늘에 하얀 빛깔 구름이 퍽 빠르게 흐릅니다. 시골집에서 살아가기에 날마다 멀고 가까운 멧자락이랑, 이 멧자락을 감싸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에 구름 하나 없이 파랑이 물들기만 한 날이 있고, 파란하늘에 알록달록 무늬를 놓듯 하얀 솜털이 곳곳에 무리짓는 날이 있습니다.

 요즈음은 시골이라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파랗디파란 눈부신 하늘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마, 오늘날 큰도시에서 살아가는 말사랑벗들은 눈부신 파란하늘이란 어떤 하늘인지 잘 모르리라 생각합니다. 나라밖으로, 그러니까 티벳이라든지 뉴질랜드라든지 서사모아라든지 쿠바라든지 핀란드쯤으로 가 본다면, 비로소 눈부신 파란하늘을 볼 수 있겠지요. 티가 없어야 파랗고, 해맑아야 하얗습니다. 공장은 공장대로 많으면서 자동차는 자동차대로 아주 많은 우리 나라니까 파랑을 파랑대로 느끼기 어렵고, 하양을 하양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여름에는 집이나 일터를 춥다 싶게 식히고, 겨울에는 집이나 일터를 덥다 싶게 덥히니 하늘은 하늘빛을 잃고 구름은 구름빛을 잃습니다.

 하늘빛을 잃은 나라에서는 밤에 미리내를 보지 못합니다. 구름빛이 없는 땅에서는 낮에 무지개를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미리내를 잃거나 무지개를 잊은 만큼, 더 많은 돈과 더 큰 아파트랑 자가용을 얻습니다. 미리내를 떠나 보내거나 무지개를 잠재우는 만큼, 더욱더 세계화에 기울어지고 영어바다가 되도록 뒤덮습니다.

 말사랑벗뿐 아니라 말사랑벗을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들이 몹시 바쁩니다. 몹시 바쁜 나머지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합니다. 땅을 내려다보지 못합니다. 바람이 불 때에 겨울에는 찬 기운을, 여름에는 더운 느낌을, 봄과 가을에는 시원하거나 서늘한 느낌을 맞아들이지 못합니다. 땅을 밟으며 가만히 쪼그려앉아 흙을 만진다든지, 흙길을 줄줄이 오가는 개미나 뭇 벌레를 내려다본다든지 할 겨를이 없습니다. 바다나 냇가나 골짜기는 한여름 방학이나 휴가 때에만 찾아가는 곳으로 잘못 알고 맙니다. 조개 잔뜩 넣은 칼국수를 값싸게 사먹기는 해도, 막상 갯벌에 들어가 조개를 캐는 삶이 어떠한지를 헤아리지 못해요. 이에 앞서, 밥을 먹건 빵을 먹건 쌀이나 밀이 어떠한 곳에서 어떠한 사람이 어떠한 땀을 흘리며 일구어 거두고 털어 갈무리하는가를 깨닫지 않습니다.

 오늘 수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글을 쓸 때에 온갖 영어를 참 아무렇지 않게 쉬 섞곤 합니다. 사진을 찍으니 사진기이지만 으레 ‘카메라’라 이야기합니다. 서로 모여 공부를 하면서 ‘스터디’를 한다 말합니다. 뜻이 맞는 동무들이 모여서 한 가지 놀이나 일을 즐기는데 동아리 아닌 ‘서클’이나 ‘클럽’을 한다고 합니다. 어른들은 우리 말사랑벗한테 책을 읽히려 하면서 ‘북쇼’를 한다고 떠들썩합니다. 초·중·고등학교 가운데에는 ‘English zone’을 만든 곳이 꽤 됩니다.

 학교를 다니며 역사 수업에서 배운 적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날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주의 총칼에 짓눌리던 때 ‘조선말을 섣불리 쓰다’가는 흠씬 얻어맞거나 벌을 받았습니다. 학교에서 조선말을 쓰든 집이나 마을에서 조선말을 쓰든 빨갱이라든지 나쁜 놈이라며 손가락질을 받고 푸대접을 받으며 뭇매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영어를 버젓이 쓸 뿐 아니라, 학교에서는 ‘영어만 써야 하는 교실이나 골마루’를 마련할 뿐 아니라, 공문서에 영어를 함께 쓰기까지 하고, 대학교나 회사에 들어가자면 영어를 아주 잘 해야 할 뿐더러, 토익이나 토플 점수를 내야 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또 관공서에서든 동네에서든 집에서든, 우리말을 옳고 바르며 알맞고 손쉽게 쓰도록 이끌거나 살피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말이야 엉터리로 하든 멍텅구리처럼 하든 아랑곳하지 않아요.

 영어를 배워야 하면 배워야 합니다. 영어를 배우려면 잘 배워야 합니다. 허투루 배운다든지 겉치레로 배울 영어가 아닙니다. 한문을 배울 때에도 옳게 잘 배워야 합니다. 엉터리로 배울 한문이 아닙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옳고 알맞으며 슬기롭게 배울 우리말이요 영어이며 한문입니다. 세 갈래 말이 모두 다른 줄 제대로 깨달으면서, 우리말은 우리말답게 배우고 영어는 영어다이 배우며 한문은 한문으로 배워야 합니다. 우리말은 우리말 결과 느낌을 살리면서 우리 이웃하고 나누고, 영어는 영어 무늬와 말투를 북돋우면서 나라 안팎에서 외국사람을 마주할 때에 쓰며, 한문은 한문 깊이와 너비를 헤아리면서 옛책을 찾아 읽을 때에 잘 써야 합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바르게 짚어야 합니다. 아무 데에서나 어리숙하게 써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찬찬히 생각을 기울이고, 가만히 사랑을 쏟으며 주고받을 말입니다. 말사랑벗들이 영어를 영어다이 슬기롭게 배우면서, 영어를 써야 하는 자리에 제대로 쓸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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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키는 쓰레기 전사 - 2002년 뉴질랜드 어린이 도서상 수상작 독깨비 (책콩 어린이) 8
샌디 매케이 지음, 전경화 옮김, 한지선 그림 / 책과콩나무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구별을 지키지 않아도 돼요
 [푸른 책과 함께살기 70] 샌디 매케이, 《지구를 지키는 쓰레기 전사》(책과콩나무,2010)



- 책이름 : 지구를 지키는 쓰레기 전사
- 글 : 샌디 매케이
- 옮긴이 : 전경화
- 그림 : 한지선
- 펴낸곳 : 책과콩나무 (2010.6.10.)
- 책값 : 9800원


 (1) 도시와 쓰레기


 쓰레기가 말썽거리가 된 지 얼마나 되었나 더듬으면,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백 해는 안 되었을 테며, 아직 쉰 해조차 안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쉰 해 앞서면 1960년대인데, 이무렵에도 우리 나라에서 쓰레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을까요. 1970년대에는 어떠했을까요. 1980년대에는 또 어떠한가요.

 모든 쓰레기는 도시에서 태어납니다. 모든 쓰레기는 시골에 버립니다. 도시에서 생긴 쓰레기를 도시에서 다루는 일이란 없습니다. 서울 강남에서 만든 쓰레기를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치우는 일이란 없습니다. 서울 신촌에서 생기는 쓰레기를 서울 신촌바닥에서 태우는 일이란 없어요.

 서울사람이 마시는 물 또한 서울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서울사람이 버리는 물 또한 서울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서울사람이 누는 똥오줌 또한 서울에서 치우지 않습니다. 서울사람이 쓰는 물건은 서울에서 만들지 않습니다. 서울 종로나 혜화동에 자동차공장이 서는 일은 없습니다. 서울 명동이나 충무로에 정유공장이 서지 않습니다. 서울 송파나 목동에 발전소가 서지 않습니다. 서울 봉천동이나 노량진에 제철소가 들어설 일이란 없습니다.

 서울은, 또 부산은, 또 대구는, 그리고 대전은, 도시 한복판에 공장을 두거나 발전소를 두거나 쓰레기를 다루는 곳을 두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한국땅 큰도시 가운데 인천만 공장이며 쓰레기 다루는 곳이며 발전소이며 제철소이며 비료공장이나 밀가루공장이나 유리공장이나 화학공장을 한복판에 버젓이 둡니다. 울산은 처음부터 공장동네였고요. 그런데 인천도 새로 만든다는 도심지에는 공장이 없습니다. 오로지 높은 건물과 아파트와 가겟집뿐입니다. 높은 산이나 건물에서 내려다보면 불빛이 번들번들할 뿐입니다.


.. “우리 나라(뉴질랜드)에서 매년 가정용 쓰레기가 얼마나 많이 버려지고 있는지 알고 있나? 자그마치 3500만 톤이다. 가정마다 1톤짜리 트럭에 해당하는 분량의 쓰레기를 버리는 셈이지.” “아이고머니나.” 바이런이 빈정대듯 조그마한 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럼 이 쓰레기가 전부 어디로 가느냐. 누구 아는 사람?” “쓰레기장으로 보내요, 선생님.” 착한 척하기 대장인 라이언이 손을 번쩍 들고 대답했다. “그럼 그 다음엔 어떻게 하지?” “태워요. 아님 땅에 묻던가.” ..  (10쪽)


 쓰레기 걱정은 도시사람이 해야 합니다. 쓰레기를 만드는 도시사람 스스로 쓰레기를 걱정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도시사람은 쓰레기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끝없이 쓰레기를 쏟아내는 도시사람이면서, 막상 이 쓰레기를 걱정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척척 길에 내놓으면 된다 여기거나, 아무 봉투에나 대충 담아 버리면 된다 여기거나, 그냥 아무렇게나 내던지거나 어지르면 청소부가 알아서 치우겠거니 여기거나, 아예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시골에는 청소부가 없습니다. 시골에는 쓰레기차가 다니지 않습니다. 시골사람은 쓰레기를 딱히 만들지 않으나 굳이 만들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비료와 농약을 써서 더 빛깔 좋게 더 크게 더 많이 곡식을 뽑아내야 하지 않다면 비료봉투이든 농약병이든 나오지 않아요. 요즈음에야 막걸리병이며 소주병이 나오지만, 지난날에는 주전자에 막걸리를 받아서 마셨습니다. 술병이 시골자락에 나뒹굴 까닭이 없어요. 그런데 소주병은 깨끗이 씻어 간장을 담는다든지 참기름을 담는다든지 하는 데에 씁니다. 큼직한 맥주병은 한둘쯤 남겨 반죽을 밀 때에 씁니다. 도시사람들 먹여살리느라 하는 수 없이 비닐농사를 지어야 하니까, 이 비닐쓰레기가 해마다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런 ‘도시사람 때문에 나와야 하는 쓰레기’ 말고는 시골사람 쓰레기가 있을 턱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돈을 버느라 바쁘고 돈을 쓰느라 다시금 바쁜 사람들이 쓰레기를 빚습니다. 도시에서 더 큰 돈을 벌어들이려고 애쓰며 더 돈을 실컷 쓰고픈 꿈을 꾸는 사람들 때문에 쓰레기가 끊이지 않고 자꾸 태어납니다.


.. 사람들은 왜 자진해서 굶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고작 작은 사이즈의 옷을 입기 위해서 말이다 … 누나는 종이 1톤을 만드는 데 열일곱 그루의 나무가 들어간들 자기와 무슨 상관이냐며, 안 그럼 모델 수업료를 무슨 수로 버느냐고 말했다. 게다가 그 일은 운동도 된단다. 새로 산 다이어트 책에 따르면, 빨리 걸으면 한 시간에 560칼로리를 태울 수 있어서 좋다는 거다 ..  (23, 85쪽)


 도시에서 짓는 아파트는 그야말로 쓰레기덩어리입니다. 도시에서 짓는 아파트를 적어도 쉰 해나 예순 해쯤이라도 버티는 일은 없습니다. 으리으리하게 짓는 아파트인데 서른 해가 지나지 않아 허뭅니다. 그러고는 다시금 으리으리하게 짓습니다. 허문 아파트에서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쓰레기는 모두 어디로 보내야 하지요? 이 쓰레기는 어떡하지요?

 도시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은 도시에만 아파트를 지어서는 돈이 모자라니까, 시골구석까지 아파트를 지어댑니다. 이제 시골자락마저 도시내기 돈놀이에 휘말립니다. 시골자락 어디에도 쓰레기덩어리가 잔뜩 올라섭니다.

 쓰레기 아닌 삶을 생각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쓰레기 낳는 도시물질문명이 아니라, 쓰레기 없이 삶을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하기란 몹시 힘듭니다.

 초등학교에 간들 쓰레기 걱정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쯤 된다 해서 쓰레기가 왜 말썽인지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학교에 가면 무언가 달라질까요. ㅅ이나 ㅎ처럼 커다란 회사에 들어가면 쓰레기를 어떻게 맺고 풀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려나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는, 아니 9급 공무원이든 8급 공무원이든, 공무원 자리를 꿰차는 사람이나 학교에서 교사 일을 맡는 사람은 쓰레기를 어떻게 바라보면서 살아가는가요. 나라돈을 거두어들여 나라살림을 꾸린다는 사람들은 어떤 쓰레기를 새로 만들고 어떤 쓰레기를 어디에 치우는 정책을 마련하는지요.


.. 아빠는 구운 콩 요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아빠는 내가 빤히 보는 앞에서 캔을 재활용이 아닌 쓰레기봉투 안으로 홱 던지는 게 아닌가. 하지만 난 아무 소리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  (147쪽)


 ‘착한도시’를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쩌면 도시 가운데에는 착한살림 착한사람 착한꿈 착한일 착한놀이를 어우르면서 아름다운 살림터가 되려는 곳이 있는지 모릅니다.

 착한도시라고 못 태어나란 법이 없습니다. 다만, 착한도시는 돈으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착한도시는 손바닥으로 태어나고 발바닥으로 태어납니다. 손바닥으로 쟁기와 호미를 쥐는 사람들 힘으로 착한도시가 태어납니다. 발바닥으로 골목을 걷고 길을 오가는 사람들 기운으로 착한도시가 태어납니다.

 언제까지나 돈으로 먹을거리를 장만하기만 한다면 착한도시가 될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나 내 살림집 평수 넓히기에만 얽매인 채 내 보금자리에 텃밭 하나 일구려 힘쓰지 않는다면 착한도시란 나타나지 않습니다. 버스가 시원시원 다닐 수 있도록 한대서 착한도시가 되지 않습니다. 땅밑을 달리는 전철길이 촘촘히 생긴대서 착한도시라 하지 않습니다. 전기로 수도물을 길어올려 흐르도록 하는 물줄기가 도시 한복판에 있대서 착한도시하고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착하게 살아가려고 해야 착한집이요, 착한집이 모여 착한마을이며, 착한마을이 하나둘 어우러질 때에 비로소 착한도시입니다.

 착하게 꾸리는 삶이란 돈을 버는 삶이 아닙니다. 돈은 돈대로 벌 수 있으나 돈만 버는 삶이 착한 삶이 될 수 없습니다. 내 삶이 더없이 참다우면서 아름다울 삶일 때에 착한 삶입니다. 내 손으로 흘리는 땀이 내가 발을 디딘 흙을 기름지게 북돋울 때에 착한 삶입니다. 똥오줌이 좋은 흙거름이 되듯이, 내 삶이 내 삶터에서 좋은 밑거름이 될 때에 바야흐로 착한 삶이에요.


 (2) 《지구를 지키는 쓰레기 전사》라는 책


 어린이와 푸름이가 읽을 만한 환경책 《지구를 지키는 쓰레기 전사》를 읽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살아가는 어른 한 사람이 ‘이대로 지구를 두면 나도 이웃도 모두 슬픈 구덩으로 굴러떨어지겠다’고 느끼면서 쓴 환경책을 읽습니다.

 이제 지구별 어느 곳에서든 쓰레기가 골칫덩어리가 된 만큼, 이와 같은 환경책이 안 나올 수 없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만큼은 ‘한국 삶터를 곰곰이 돌아보면서 슬기롭게 거듭나려는 움직임’을 살뜰히 담은 환경책이 거의 안 태어납니다.


.. 공을 잡으러 가려고 막 길을 건너려던 참이었다. 자가용 한 대가 모퉁이를 돌아 달려왔다. 엄청난 속도였다. 처음에 나는 그 차가 다가오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차가 속도를 늦추더니 머리를 빡빡 민 어떤 멍텅구리가 자동차 문을 열고는 쓰레기를 밖으로 던졌다.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을 싼 종이와 콜라 캔 두 개, 담뱃갑 하나, 그리고 밀크셰이크 용기처럼 보이는 쓰레기가 공원 안으로 휙 날아왔다 … 기업은 왜 사람들이 굶어죽는 것보다 자기 기업의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까?  ..  (14, 114쪽)


 환경책은 ‘지구가 아파해요!’ 하고 외치는 책이 아닙니다. 환경책은 ‘한 사람이 버리는 쓰레기는 한 해에 이만큼이나 돼요!’ 하고 떠벌이는 책이 아닙니다.

 환경책은 내 삶을 돌아보는 책입니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꿈꾸며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되짚을 때에 환경책입니다. 내가 오늘 어떻게 먹을거리를 얻어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며 집안을 쓸고닦는가를 헤아리도록 할 때에 환경책입니다.

 과자를 사먹지 말아야 한다고 외쳐야 환경책이 되지 않습니다. 소시지나 햄이 얼마나 나쁘다고 외친들 환경책이 되지 않습니다. 과자이든 소시지이든 햄이든 먹고 싶다면 먹을 수 있어요. 내 손으로 과자를 구울 수 있고, 내 손으로 소나 돼지나 닭을 잡아 고기를 얻어 소시지이든 햄이든 만들 수 있습니다.


.. 사람들이 버린 물건들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다. 아빠와 난 약간 손만 보면 되는 근사한 접의자 두 개, 조각이 약간 떨어져 나간 수제 체스 세트 하나, 아빠가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한 라디오 한 대를 건졌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서 말이다 ..  (51쪽)


 모든 먹을거리는 목숨입니다. 우리는 다른 목숨을 먹으면서 내 목숨을 잇지, 목숨 아닌 기계나 화학약품을 먹으면서 내 목숨을 잇지 않습니다.

 물에 온갖 화학약품이나 조미료를 타서 음료수를 만든다지만, 이 음료수는 물이 없으면 만들 수 없습니다. 밑바탕은 물입니다. 물이 있고서야 음료수이든 술이든 태어납니다.

 염화나트륨이든 무슨무슨 조합식으로 짜거나 달거나 시거나 매운 맛을 낼지라도, 감자를 심고 거두어 손질하거나 고구마를 심고 거두어 손질하지 않고서야 과자 한 봉지 태어나지 않습니다.

 남이 소나 돼지를 잡아 주니까, 남이 흙을 일구어 곡식과 푸성귀를 얻어 주니까, 게다가 남이 우리 입맛에 맞게 요모조모 꾸미고 볶으며 지져 주니까, 그저 우리는 돈만 치르면 되니까, 자꾸자꾸 쓰레기가 태어납니다.

 나 스스로 내 몸을 움직이지 않는 삶일 때에 쓰레기가 태어납니다. 나 스스로 내 몸을 움직이는 삶이라면 쓰레기가 태어날 수 없습니다.


.. 나는 엄마에게 나이가 들수록 말이 너무 거칠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것도 아주 냉소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집 파는 일을 하게 된 다음부터는 그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요리에도. 엄마는 오로지 집을 팔고 수수료를 받는 일만 걱정했다. 열대 우림의 반이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엄마의 관심은 무엇이란 말인가? … 그들은 지구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걱정하는 거라곤 자기들 재산과 고급 가구뿐이다. 장담하건대 그들은 재활용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  (104, 177쪽)


 《지구를 지키는 쓰레기 전사》라는 책에는 아주 깊거나 몹시 대단하다 할 만한 이야기가 담기지 않습니다. ‘흔한’ 선진국 ‘흔한’ 도시 ‘흔한’ 도시내기 아이와 어른이 쓰레기 하나를 놓고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는가를 재미난 이야기 살점을 붙여서 보여줍니다.

 한국땅에서는 멀디먼 뉴질랜드 이야기까지 찾아서 읽지 않고 우리 둘레만 돌아보더라도, 열대 숲이 사라지건 말건 돈 돈 돈 노래만 부르는 사람을 어디에서나 쉽게 만납니다. 옆집에서도 만나지만 우리 집에서도 만납니다. 옆 동네에서도 만나겠지만 우리 동네에서도 만납니다. 텔레비전이든 인터넷이든 책이든 무엇이든, 한결같이 돈 돈 돈 노래만 부릅니다. 돈굴리기 잘하도록 한다는 책이나 신문은 불티나게 팔립니다. 돈이 된다 안 된다 하는 이야기만 여기저기에 가득합니다.

 돈이란 곧 쓰레기입니다. 돈이 된다는 이야기란 곧 쓰레기를 많이 만든다는 이야기입니다. 돈을 번다면 쓰레기를 번다는 뜻이고, 돈을 쓴다면 쓰레기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집살림을 하는 사람은 돈을 벌지 않는다지만, 가만히 보면 쓰레기를 만들지도 않습니다. 아이를 낳아 키울 때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자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지만, 아이를 집에서 돌보면서 아이랑 함께 놀고 노래하며 책을 읽히거나 그림을 함께 그리면 돈을 쓰지 않습니다. 돈을 벌지도 못하지만 돈을 쓰지도 않습니다. 아이를 대학교에 보내자며 학원에 넣는다든지, 아이 대학교 배움값을 대야 한다든지 하자면, 어버이는 늘 돈벌이에 허리가 굽습니다. 아이는 대학교에 들어갈 시험공부로 머리를 가득 채울 뿐, 집에서 제 어버이와 삶을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아이를 대학교까지 보내지 않는다든지, 애써 아이가 더 높은 학교에서 더 많은 지식이나 졸업증이나 자격증을 따도록 밀어붙이지 않는다면, 어버이 자리에 선 사람은 아이하고 날마다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함께 살림을 꾸리고 함께 일을 하며 함께 보금자리를 일굽니다.

 돈벌이는 삶이 아닙니다. 돈벌이는 사랑이 아닙니다. 돈벌이는 살림이 아닙니다. 돈벌이는 믿음이 아닙니다. 돈이 있어야 예배당도 짓는다지만, 돈이 없으면 너른 들판이나 방 한켠에서 믿음어린 비손을 올리면 됩니다. 돈이 있어야 맛난 밥을 사먹는다든지 자가용을 굴린다지만, 돈이 없으면 텃밭과 논을 일구어 내 밥상을 차리거나 두 다리나 자전거로 다니면 됩니다.

 그러니까, ‘쓰레기 전사’ 노릇을 하는 아이는 지구를 지키지 못합니다. 그냥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 뿐입니다. 쓰레기 전사는 쓰레기를 줄이지, 쓰레기가 태어나지 않도록 하는 밑뿌리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쓰레기를 줄이자고 외치는 운동이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환경운동도 훌륭합니다. 다만, 환경운동은 쓰레기 줄이기가 아니요, 내 삶을 사랑하며 아끼자는 운동입니다. 내 밥, 내 집, 내 이웃, 내 터, 내 바람, 내 햇살, 내 숲을 사랑하며 아끼자는 운동일 때에 시나브로 환경운동이라는 이름이 걸맞습니다.

 지구를 지키지 않아도 되니까, 내 밥상과 내 동무와 내 삶을 아름다이 보듬을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4344.3.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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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어사전 빌려주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3.2.


 이오덕학교에서 중국말을 가르치는 분이 있다. 중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시집을 온 분이다. 중국에서 살았기에 중국말을 할 줄 알며, 조선족이니까 조선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살며 쓰던 조선말은 남녘나라 말하고는 적잖이 다르다. 맞춤법이며 띄어쓰기이며 꽤 많이 다르다.

 중국 연변땅이나 북녘에서는 띄어쓰기가 퍽 홀가분하다. 남녘에서는 웬만하면 거의 모두 띄도록 하지만, 북녘에서는 남녘처럼 낱낱이 띄어서 쓰도록 하지 않는다.

 된소리를 적는 말값이라든지, ㄹ을 낱말 앞쪽에 둘 때에 적는 법이라든지, 이모저모 파고들면 꽤나 다른 말이라 할 만하다. 가만히 생각한다면, 남녘말과 북녘말은 독일말과 네덜란드말처럼 서로 이웃하면서 다른 말로 여겨야 하지 않느냐 싶고, 북녘말하고 중국 연변말은 스웨덴말과 노르웨이말처럼 가까이 잇닿은 말로 여기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큰 테두리로 보자면 모두 ‘한겨레 말’이지만, 저마다 홀로서는 말로 삼아야 한다고 느낀다.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겨레가 쓰는 말을 바라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남녘과 북녘과 중국 학자는 ‘한겨레 말을 하나로 모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생각은 잘못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서로 한 가지 틀에 따라 말을 하거나 글을 써도 좋으리라 본다. 그렇지만 서로 나뉘어 지낸 지 쉰 해 예순 해가 지났고, 일흔 해가 가까운데, 갑작스레 한 갈래 말로 모두기란 만만하지 않다. 또, 애써 모두어야 할까 궁금하다.

 남녘땅 말마디를 헤아릴 때에, 강원말과 전라말을 똑같이 맞추어야 할 까닭이 없다. 제주말과 부산말을 하나로 뭉뚱그려야 하지 않다. 평안말과 해주말을 하나로 갈무리해야 할까. 함경말과 연변말을 똑같이 쓰도록 맞추어야 할까.

 고장에 따라 다른 말이요, 나라에 따라 다른 말이다. 한겨레이니까 한 가지 말을 써야 한다 외칠 수 있지만, 굳이 한 가지로 뭉뚱그리지 않더라도, 남녘사람이 북녘책이나 일본책이나 중국책을 읽을 때에 ‘아예 못 알아듣지’ 않는다. 북녘사람이나 중국사람 또한 남녘책을 읽을 때에 ‘영 못 알아채지’ 않는다.

 우리들은 슬프며 아픈 역사 때문에 이렇게 찢기거나 갈린 채 살아가지만, 어떻게 보면 이러한 역사 그대로 차분히 받아들이면서, 우리 겨레가 나아갈 새로운 말밭과 말삶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느냐 생각한다.

 이오덕학교에서 중국말을 가르치는 분이 ‘맞춤법과 띄어쓰기 공부를 할 만한 책’을 빌려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1970∼80년대에 미승우 님이 쓴 책은 있으나 1989년부터 맞춤법하고 띄어쓰기가 바뀌었다. 1989년에 바뀐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풀이하거나 일러 주는 마땅한 책은 떠오르지 않는다. 계몽사 편집부에서 ‘책 만들 때에 도움이 되도록 엮은 맞춤법·띄어쓰기 책’이 하나 있다. 아마 1995년 무렵에 나왔지 싶은데, 이 책을 빌려주면 될까 생각하다가 그만두기로 한다. 2002년에 찍은 《푸르넷 초등 국어사전》과 《뉴에이스 국어사전》을 빌려주기로 한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다루는 책치고 쉬우며 알뜰히 풀어서 이야기하는 책은 아직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으리라 본다. 너무도 딱딱하며, 지나치게 골이 아프다. 사람들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옳고 바르게 익히면서 즐겁고 신나게 말하거나 글쓰도록 북돋우지 못한다.

 이런 지식책을 읽으며 억지스레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외우도록 하기보다는, 차라리 그때그때 ‘내가 아는 낱말’이든 ‘내가 잘 모르는 낱말’이든 국어사전을 뒤적이며 말풀이하고 보기글을 읽을 때가 낫다고 느낀다. 그렇다고 국어사전이 말풀이라도 제대로 한다고 여길 수는 없으나, 맞춤법책이나 띄어쓰기책보다는 낫겠지. 게다가, 맞춤법책이나 띄어쓰기책은 이들 국어사전을 바탕으로 쓴다. 그러니까, 아예 처음부터 국어사전을 읽으면 된다.

 국어사전을 어떻게 읽느냐 생각할 사람이 있겠지. 그런데 국어사전 읽기는 그리 힘들지 않다. 초등 국어사전은 고작 1000쪽조차 안 되고, 어른 국어사전도 3000쪽이 안 된다. 웬만한 문학책이 300쪽 안팎이고, 초등 국어사전은 글씨가 크니까, 문학책 한 권쯤 읽는 품이면 다 읽을 수 있다. 어른 국어사전은 《태백산맥》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어렵잖이 읽는다.

 터무니없는 꿈일는지 모르나, 한국사람이라면 마땅히 국어사전을 한 번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 싶다. 비록, 국어사전이 제대로 국어사전답게 엮이지 못했달지라도, 우리가 쓰는 말마디를 국어사전에서 어떻게 다루며, 우리가 알거나 모르는 낱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깨달아야 한다고 느낀다. 한국사람이면서 한국말을 살피거나 배우는 데에 우리들은 너무 모자라거나 사랑이 없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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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즈키 시게루


 한국에 ‘미즈키 시게루’라는 이름이 제대로 알려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 들어온 일본만화치고 제대로 만화쟁이 이름이 알려진 작품이 몇이나 되었던가. 웬만한 일본만화는 ‘한국 삶에 맞추어야 한다’면서 땅이름·사람이름·물건이름·가게이름을 모조리 바꾸어 내놓았으니까. 더구나, 마치 한국사람이 그린 만화라도 되는 듯 일본 만화쟁이 이름을 가리거나 숨겼으며, 어느 때에는 아예 한국 만화쟁이 이름을 집어넣기까지 했다.

 한국에서 만화책을 낸 출판사는 일본만화를 몰래 펴내면서 얼마나 많은 돈을 ‘아꼈’을까. 아니, 얼마나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을까.

 요사이 ‘미즈키 시게루’ 님 만화책과 만화영화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1980년대에 그토록 자주 보며 좋아하던 요괴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 님 만화였는 줄 안 지는 이태쯤 되었다. 예전에는 누구 만화인지 몰랐고, 그저 어느 한국 만화쟁이가 그렸겠거니 여겼다. 《드래곤볼》이라든지 《슬램덩크》 같은 만화는 해적판이 나돌았을지라도 만화쟁이 이름을 밝혔고, 1960년대부터 번안만화로 들어온 아톰 만화 또한 만화쟁이 이름을 밝혔지만, 미즈키 시게루 님 요괴 만화만큼은 한국 출판사에서 이름을 밝힌 적이 없다.

 지난 2009년 《게게게의 기타로》 일곱 권이 우리 말로 처음 나오면서 ‘미즈키 시게루’ 님 이름이 제대로 붙는다. 2010년에는 《농농 할멈과 나》라는 만화책이 나온다. 그렇지만 이 만화책들은 그다지 널리 읽히거나 팔리지는 못하는 듯하다. 문득 궁금해서 일본 만화영화가 있나 살펴보았더니, 자그마치 100편이나 되는 동영상이 뜬다. 네 살 아이랑 집에서 하나씩 보는데, 아이는 하나도 안 무서운지 눈알 한 번 꿈쩍꿈쩍 하지 않으면서 빠져든다. 100편째 만화영화를 보면 “게게게 기타로 40돌”을 기리는 글월이 큼직하게 뜬다. 마흔 돌? 만화책 《게게게의 기타로》를 펼친다. 미즈키 시게루 님은 당신 요괴 만화를 1965년부터 그렸다고 한다. 아, 어느새 마흔여섯 돌이구나. 네 해만 있으면 벌써 쉰 돌이 되네.

 《농농 할멈과 나》는 미즈키 시게루 님 어린 나날을 들려주면서, 당신이 요괴 만화를 그릴 수 있는 밑거름이 된 ‘농농 할멈’과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러니까, 미즈키 시게루 님은 농농 할멈한테서 요괴 이야기를 들었고, 농농 할멈은 또 어린 날 당신 어머니와 할머니한테서 요괴 이야기를 들었겠지.

 미즈키 시게루 님은 농농 할멈 마음에 아로새기진 책을 하나하나 받아먹으면서 자랐고, 나중에 만화쟁이가 되어 만화책을 낳았으며, 농농 할멈은 글을 쓰거나 책을 낸 적은 없으나 이야기와 삶과 웃음과 눈물로 책삶을 일군 셈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둘레에 농농 할멈 같은 분이 매우 많다. 어쩌면, 이 나라 이 땅 모든 할머니는 농농 할멈과 같은 분이 아닐까. 모두들 가슴속에 깊디깊은 이야기를 꼬옥 품으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그러나, 할머니한테서 당신 살아온 이야기하고 옛이야기를 즐겁거나 기쁘게 들으며 받아먹는 아이는 없거나 드물지 않나.

 미즈키 시게루 님이 일본뿐 아니라 나라밖으로도 손꼽히면서 이름을 날릴 만큼 사랑받은 만화쟁이가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당신이 어린 날부터 아끼고 좋아하며 모시고 섬긴 농농 할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알고 보면, 미즈키 시게루 님 게게게 이야기는 농농 이야기이고, 농농 이야기는 모조리 게게게 이야기이다. (4344.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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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1-03-02 00:42   좋아요 0 | URL
재미있겠어요. 전 미즈키 시게루도 미즈키 시게루의 만화도 기억에 없는데, 저 그림체만은 기억이 나네요. 오랜만에 보관함에 담아봅니다.

파란놀 2011-03-02 07:03   좋아요 0 | URL
요괴 만화는 으레 이분 만화를 몰래 훔쳐서 쓴 우리 나라 예전 만화잡지와 학생잡지였기에, 이분 이름이 낯익은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러나 어른들도 이분 만화를 보여 드리면 '어디에선가 본 듯하다'는 말을 으레 하더군요.

한번 읽어 보시면 1960년대부터 이런 만화를 그린 만화가가 참 놀라우며, 이분을 키운 농농 할멈이라는 사람은 또 얼마나 대단했던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