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키 시게루
한국에 ‘미즈키 시게루’라는 이름이 제대로 알려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 들어온 일본만화치고 제대로 만화쟁이 이름이 알려진 작품이 몇이나 되었던가. 웬만한 일본만화는 ‘한국 삶에 맞추어야 한다’면서 땅이름·사람이름·물건이름·가게이름을 모조리 바꾸어 내놓았으니까. 더구나, 마치 한국사람이 그린 만화라도 되는 듯 일본 만화쟁이 이름을 가리거나 숨겼으며, 어느 때에는 아예 한국 만화쟁이 이름을 집어넣기까지 했다.
한국에서 만화책을 낸 출판사는 일본만화를 몰래 펴내면서 얼마나 많은 돈을 ‘아꼈’을까. 아니, 얼마나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을까.
요사이 ‘미즈키 시게루’ 님 만화책과 만화영화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1980년대에 그토록 자주 보며 좋아하던 요괴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 님 만화였는 줄 안 지는 이태쯤 되었다. 예전에는 누구 만화인지 몰랐고, 그저 어느 한국 만화쟁이가 그렸겠거니 여겼다. 《드래곤볼》이라든지 《슬램덩크》 같은 만화는 해적판이 나돌았을지라도 만화쟁이 이름을 밝혔고, 1960년대부터 번안만화로 들어온 아톰 만화 또한 만화쟁이 이름을 밝혔지만, 미즈키 시게루 님 요괴 만화만큼은 한국 출판사에서 이름을 밝힌 적이 없다.
지난 2009년 《게게게의 기타로》 일곱 권이 우리 말로 처음 나오면서 ‘미즈키 시게루’ 님 이름이 제대로 붙는다. 2010년에는 《농농 할멈과 나》라는 만화책이 나온다. 그렇지만 이 만화책들은 그다지 널리 읽히거나 팔리지는 못하는 듯하다. 문득 궁금해서 일본 만화영화가 있나 살펴보았더니, 자그마치 100편이나 되는 동영상이 뜬다. 네 살 아이랑 집에서 하나씩 보는데, 아이는 하나도 안 무서운지 눈알 한 번 꿈쩍꿈쩍 하지 않으면서 빠져든다. 100편째 만화영화를 보면 “게게게 기타로 40돌”을 기리는 글월이 큼직하게 뜬다. 마흔 돌? 만화책 《게게게의 기타로》를 펼친다. 미즈키 시게루 님은 당신 요괴 만화를 1965년부터 그렸다고 한다. 아, 어느새 마흔여섯 돌이구나. 네 해만 있으면 벌써 쉰 돌이 되네.
《농농 할멈과 나》는 미즈키 시게루 님 어린 나날을 들려주면서, 당신이 요괴 만화를 그릴 수 있는 밑거름이 된 ‘농농 할멈’과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러니까, 미즈키 시게루 님은 농농 할멈한테서 요괴 이야기를 들었고, 농농 할멈은 또 어린 날 당신 어머니와 할머니한테서 요괴 이야기를 들었겠지.
미즈키 시게루 님은 농농 할멈 마음에 아로새기진 책을 하나하나 받아먹으면서 자랐고, 나중에 만화쟁이가 되어 만화책을 낳았으며, 농농 할멈은 글을 쓰거나 책을 낸 적은 없으나 이야기와 삶과 웃음과 눈물로 책삶을 일군 셈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둘레에 농농 할멈 같은 분이 매우 많다. 어쩌면, 이 나라 이 땅 모든 할머니는 농농 할멈과 같은 분이 아닐까. 모두들 가슴속에 깊디깊은 이야기를 꼬옥 품으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그러나, 할머니한테서 당신 살아온 이야기하고 옛이야기를 즐겁거나 기쁘게 들으며 받아먹는 아이는 없거나 드물지 않나.
미즈키 시게루 님이 일본뿐 아니라 나라밖으로도 손꼽히면서 이름을 날릴 만큼 사랑받은 만화쟁이가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당신이 어린 날부터 아끼고 좋아하며 모시고 섬긴 농농 할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알고 보면, 미즈키 시게루 님 게게게 이야기는 농농 이야기이고, 농농 이야기는 모조리 게게게 이야기이다. (4344.3.1.불.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