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 빌려주기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도서관일기 2011.3.2.


 이오덕학교에서 중국말을 가르치는 분이 있다. 중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시집을 온 분이다. 중국에서 살았기에 중국말을 할 줄 알며, 조선족이니까 조선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살며 쓰던 조선말은 남녘나라 말하고는 적잖이 다르다. 맞춤법이며 띄어쓰기이며 꽤 많이 다르다.

 중국 연변땅이나 북녘에서는 띄어쓰기가 퍽 홀가분하다. 남녘에서는 웬만하면 거의 모두 띄도록 하지만, 북녘에서는 남녘처럼 낱낱이 띄어서 쓰도록 하지 않는다.

 된소리를 적는 말값이라든지, ㄹ을 낱말 앞쪽에 둘 때에 적는 법이라든지, 이모저모 파고들면 꽤나 다른 말이라 할 만하다. 가만히 생각한다면, 남녘말과 북녘말은 독일말과 네덜란드말처럼 서로 이웃하면서 다른 말로 여겨야 하지 않느냐 싶고, 북녘말하고 중국 연변말은 스웨덴말과 노르웨이말처럼 가까이 잇닿은 말로 여기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큰 테두리로 보자면 모두 ‘한겨레 말’이지만, 저마다 홀로서는 말로 삼아야 한다고 느낀다.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겨레가 쓰는 말을 바라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남녘과 북녘과 중국 학자는 ‘한겨레 말을 하나로 모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생각은 잘못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서로 한 가지 틀에 따라 말을 하거나 글을 써도 좋으리라 본다. 그렇지만 서로 나뉘어 지낸 지 쉰 해 예순 해가 지났고, 일흔 해가 가까운데, 갑작스레 한 갈래 말로 모두기란 만만하지 않다. 또, 애써 모두어야 할까 궁금하다.

 남녘땅 말마디를 헤아릴 때에, 강원말과 전라말을 똑같이 맞추어야 할 까닭이 없다. 제주말과 부산말을 하나로 뭉뚱그려야 하지 않다. 평안말과 해주말을 하나로 갈무리해야 할까. 함경말과 연변말을 똑같이 쓰도록 맞추어야 할까.

 고장에 따라 다른 말이요, 나라에 따라 다른 말이다. 한겨레이니까 한 가지 말을 써야 한다 외칠 수 있지만, 굳이 한 가지로 뭉뚱그리지 않더라도, 남녘사람이 북녘책이나 일본책이나 중국책을 읽을 때에 ‘아예 못 알아듣지’ 않는다. 북녘사람이나 중국사람 또한 남녘책을 읽을 때에 ‘영 못 알아채지’ 않는다.

 우리들은 슬프며 아픈 역사 때문에 이렇게 찢기거나 갈린 채 살아가지만, 어떻게 보면 이러한 역사 그대로 차분히 받아들이면서, 우리 겨레가 나아갈 새로운 말밭과 말삶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느냐 생각한다.

 이오덕학교에서 중국말을 가르치는 분이 ‘맞춤법과 띄어쓰기 공부를 할 만한 책’을 빌려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1970∼80년대에 미승우 님이 쓴 책은 있으나 1989년부터 맞춤법하고 띄어쓰기가 바뀌었다. 1989년에 바뀐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풀이하거나 일러 주는 마땅한 책은 떠오르지 않는다. 계몽사 편집부에서 ‘책 만들 때에 도움이 되도록 엮은 맞춤법·띄어쓰기 책’이 하나 있다. 아마 1995년 무렵에 나왔지 싶은데, 이 책을 빌려주면 될까 생각하다가 그만두기로 한다. 2002년에 찍은 《푸르넷 초등 국어사전》과 《뉴에이스 국어사전》을 빌려주기로 한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다루는 책치고 쉬우며 알뜰히 풀어서 이야기하는 책은 아직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으리라 본다. 너무도 딱딱하며, 지나치게 골이 아프다. 사람들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옳고 바르게 익히면서 즐겁고 신나게 말하거나 글쓰도록 북돋우지 못한다.

 이런 지식책을 읽으며 억지스레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외우도록 하기보다는, 차라리 그때그때 ‘내가 아는 낱말’이든 ‘내가 잘 모르는 낱말’이든 국어사전을 뒤적이며 말풀이하고 보기글을 읽을 때가 낫다고 느낀다. 그렇다고 국어사전이 말풀이라도 제대로 한다고 여길 수는 없으나, 맞춤법책이나 띄어쓰기책보다는 낫겠지. 게다가, 맞춤법책이나 띄어쓰기책은 이들 국어사전을 바탕으로 쓴다. 그러니까, 아예 처음부터 국어사전을 읽으면 된다.

 국어사전을 어떻게 읽느냐 생각할 사람이 있겠지. 그런데 국어사전 읽기는 그리 힘들지 않다. 초등 국어사전은 고작 1000쪽조차 안 되고, 어른 국어사전도 3000쪽이 안 된다. 웬만한 문학책이 300쪽 안팎이고, 초등 국어사전은 글씨가 크니까, 문학책 한 권쯤 읽는 품이면 다 읽을 수 있다. 어른 국어사전은 《태백산맥》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어렵잖이 읽는다.

 터무니없는 꿈일는지 모르나, 한국사람이라면 마땅히 국어사전을 한 번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 싶다. 비록, 국어사전이 제대로 국어사전답게 엮이지 못했달지라도, 우리가 쓰는 말마디를 국어사전에서 어떻게 다루며, 우리가 알거나 모르는 낱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깨달아야 한다고 느낀다. 한국사람이면서 한국말을 살피거나 배우는 데에 우리들은 너무 모자라거나 사랑이 없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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