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우리말 바르게 손보기 ㉢ 잘못 쓰는 말 : 온갖 영어
바람이 몹시 부는 한낮, 하늘을 올려다보니 파란 빛깔 하늘에 하얀 빛깔 구름이 퍽 빠르게 흐릅니다. 시골집에서 살아가기에 날마다 멀고 가까운 멧자락이랑, 이 멧자락을 감싸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에 구름 하나 없이 파랑이 물들기만 한 날이 있고, 파란하늘에 알록달록 무늬를 놓듯 하얀 솜털이 곳곳에 무리짓는 날이 있습니다.
요즈음은 시골이라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파랗디파란 눈부신 하늘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마, 오늘날 큰도시에서 살아가는 말사랑벗들은 눈부신 파란하늘이란 어떤 하늘인지 잘 모르리라 생각합니다. 나라밖으로, 그러니까 티벳이라든지 뉴질랜드라든지 서사모아라든지 쿠바라든지 핀란드쯤으로 가 본다면, 비로소 눈부신 파란하늘을 볼 수 있겠지요. 티가 없어야 파랗고, 해맑아야 하얗습니다. 공장은 공장대로 많으면서 자동차는 자동차대로 아주 많은 우리 나라니까 파랑을 파랑대로 느끼기 어렵고, 하양을 하양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여름에는 집이나 일터를 춥다 싶게 식히고, 겨울에는 집이나 일터를 덥다 싶게 덥히니 하늘은 하늘빛을 잃고 구름은 구름빛을 잃습니다.
하늘빛을 잃은 나라에서는 밤에 미리내를 보지 못합니다. 구름빛이 없는 땅에서는 낮에 무지개를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미리내를 잃거나 무지개를 잊은 만큼, 더 많은 돈과 더 큰 아파트랑 자가용을 얻습니다. 미리내를 떠나 보내거나 무지개를 잠재우는 만큼, 더욱더 세계화에 기울어지고 영어바다가 되도록 뒤덮습니다.
말사랑벗뿐 아니라 말사랑벗을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들이 몹시 바쁩니다. 몹시 바쁜 나머지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합니다. 땅을 내려다보지 못합니다. 바람이 불 때에 겨울에는 찬 기운을, 여름에는 더운 느낌을, 봄과 가을에는 시원하거나 서늘한 느낌을 맞아들이지 못합니다. 땅을 밟으며 가만히 쪼그려앉아 흙을 만진다든지, 흙길을 줄줄이 오가는 개미나 뭇 벌레를 내려다본다든지 할 겨를이 없습니다. 바다나 냇가나 골짜기는 한여름 방학이나 휴가 때에만 찾아가는 곳으로 잘못 알고 맙니다. 조개 잔뜩 넣은 칼국수를 값싸게 사먹기는 해도, 막상 갯벌에 들어가 조개를 캐는 삶이 어떠한지를 헤아리지 못해요. 이에 앞서, 밥을 먹건 빵을 먹건 쌀이나 밀이 어떠한 곳에서 어떠한 사람이 어떠한 땀을 흘리며 일구어 거두고 털어 갈무리하는가를 깨닫지 않습니다.
오늘 수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글을 쓸 때에 온갖 영어를 참 아무렇지 않게 쉬 섞곤 합니다. 사진을 찍으니 사진기이지만 으레 ‘카메라’라 이야기합니다. 서로 모여 공부를 하면서 ‘스터디’를 한다 말합니다. 뜻이 맞는 동무들이 모여서 한 가지 놀이나 일을 즐기는데 동아리 아닌 ‘서클’이나 ‘클럽’을 한다고 합니다. 어른들은 우리 말사랑벗한테 책을 읽히려 하면서 ‘북쇼’를 한다고 떠들썩합니다. 초·중·고등학교 가운데에는 ‘English zone’을 만든 곳이 꽤 됩니다.
학교를 다니며 역사 수업에서 배운 적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날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주의 총칼에 짓눌리던 때 ‘조선말을 섣불리 쓰다’가는 흠씬 얻어맞거나 벌을 받았습니다. 학교에서 조선말을 쓰든 집이나 마을에서 조선말을 쓰든 빨갱이라든지 나쁜 놈이라며 손가락질을 받고 푸대접을 받으며 뭇매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영어를 버젓이 쓸 뿐 아니라, 학교에서는 ‘영어만 써야 하는 교실이나 골마루’를 마련할 뿐 아니라, 공문서에 영어를 함께 쓰기까지 하고, 대학교나 회사에 들어가자면 영어를 아주 잘 해야 할 뿐더러, 토익이나 토플 점수를 내야 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또 관공서에서든 동네에서든 집에서든, 우리말을 옳고 바르며 알맞고 손쉽게 쓰도록 이끌거나 살피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말이야 엉터리로 하든 멍텅구리처럼 하든 아랑곳하지 않아요.
영어를 배워야 하면 배워야 합니다. 영어를 배우려면 잘 배워야 합니다. 허투루 배운다든지 겉치레로 배울 영어가 아닙니다. 한문을 배울 때에도 옳게 잘 배워야 합니다. 엉터리로 배울 한문이 아닙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옳고 알맞으며 슬기롭게 배울 우리말이요 영어이며 한문입니다. 세 갈래 말이 모두 다른 줄 제대로 깨달으면서, 우리말은 우리말답게 배우고 영어는 영어다이 배우며 한문은 한문으로 배워야 합니다. 우리말은 우리말 결과 느낌을 살리면서 우리 이웃하고 나누고, 영어는 영어 무늬와 말투를 북돋우면서 나라 안팎에서 외국사람을 마주할 때에 쓰며, 한문은 한문 깊이와 너비를 헤아리면서 옛책을 찾아 읽을 때에 잘 써야 합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바르게 짚어야 합니다. 아무 데에서나 어리숙하게 써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찬찬히 생각을 기울이고, 가만히 사랑을 쏟으며 주고받을 말입니다. 말사랑벗들이 영어를 영어다이 슬기롭게 배우면서, 영어를 써야 하는 자리에 제대로 쓸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