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지키는 쓰레기 전사 - 2002년 뉴질랜드 어린이 도서상 수상작 독깨비 (책콩 어린이) 8
샌디 매케이 지음, 전경화 옮김, 한지선 그림 / 책과콩나무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구별을 지키지 않아도 돼요
 [푸른 책과 함께살기 70] 샌디 매케이, 《지구를 지키는 쓰레기 전사》(책과콩나무,2010)



- 책이름 : 지구를 지키는 쓰레기 전사
- 글 : 샌디 매케이
- 옮긴이 : 전경화
- 그림 : 한지선
- 펴낸곳 : 책과콩나무 (2010.6.10.)
- 책값 : 9800원


 (1) 도시와 쓰레기


 쓰레기가 말썽거리가 된 지 얼마나 되었나 더듬으면,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백 해는 안 되었을 테며, 아직 쉰 해조차 안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쉰 해 앞서면 1960년대인데, 이무렵에도 우리 나라에서 쓰레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을까요. 1970년대에는 어떠했을까요. 1980년대에는 또 어떠한가요.

 모든 쓰레기는 도시에서 태어납니다. 모든 쓰레기는 시골에 버립니다. 도시에서 생긴 쓰레기를 도시에서 다루는 일이란 없습니다. 서울 강남에서 만든 쓰레기를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치우는 일이란 없습니다. 서울 신촌에서 생기는 쓰레기를 서울 신촌바닥에서 태우는 일이란 없어요.

 서울사람이 마시는 물 또한 서울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서울사람이 버리는 물 또한 서울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서울사람이 누는 똥오줌 또한 서울에서 치우지 않습니다. 서울사람이 쓰는 물건은 서울에서 만들지 않습니다. 서울 종로나 혜화동에 자동차공장이 서는 일은 없습니다. 서울 명동이나 충무로에 정유공장이 서지 않습니다. 서울 송파나 목동에 발전소가 서지 않습니다. 서울 봉천동이나 노량진에 제철소가 들어설 일이란 없습니다.

 서울은, 또 부산은, 또 대구는, 그리고 대전은, 도시 한복판에 공장을 두거나 발전소를 두거나 쓰레기를 다루는 곳을 두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한국땅 큰도시 가운데 인천만 공장이며 쓰레기 다루는 곳이며 발전소이며 제철소이며 비료공장이나 밀가루공장이나 유리공장이나 화학공장을 한복판에 버젓이 둡니다. 울산은 처음부터 공장동네였고요. 그런데 인천도 새로 만든다는 도심지에는 공장이 없습니다. 오로지 높은 건물과 아파트와 가겟집뿐입니다. 높은 산이나 건물에서 내려다보면 불빛이 번들번들할 뿐입니다.


.. “우리 나라(뉴질랜드)에서 매년 가정용 쓰레기가 얼마나 많이 버려지고 있는지 알고 있나? 자그마치 3500만 톤이다. 가정마다 1톤짜리 트럭에 해당하는 분량의 쓰레기를 버리는 셈이지.” “아이고머니나.” 바이런이 빈정대듯 조그마한 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럼 이 쓰레기가 전부 어디로 가느냐. 누구 아는 사람?” “쓰레기장으로 보내요, 선생님.” 착한 척하기 대장인 라이언이 손을 번쩍 들고 대답했다. “그럼 그 다음엔 어떻게 하지?” “태워요. 아님 땅에 묻던가.” ..  (10쪽)


 쓰레기 걱정은 도시사람이 해야 합니다. 쓰레기를 만드는 도시사람 스스로 쓰레기를 걱정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도시사람은 쓰레기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끝없이 쓰레기를 쏟아내는 도시사람이면서, 막상 이 쓰레기를 걱정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척척 길에 내놓으면 된다 여기거나, 아무 봉투에나 대충 담아 버리면 된다 여기거나, 그냥 아무렇게나 내던지거나 어지르면 청소부가 알아서 치우겠거니 여기거나, 아예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시골에는 청소부가 없습니다. 시골에는 쓰레기차가 다니지 않습니다. 시골사람은 쓰레기를 딱히 만들지 않으나 굳이 만들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비료와 농약을 써서 더 빛깔 좋게 더 크게 더 많이 곡식을 뽑아내야 하지 않다면 비료봉투이든 농약병이든 나오지 않아요. 요즈음에야 막걸리병이며 소주병이 나오지만, 지난날에는 주전자에 막걸리를 받아서 마셨습니다. 술병이 시골자락에 나뒹굴 까닭이 없어요. 그런데 소주병은 깨끗이 씻어 간장을 담는다든지 참기름을 담는다든지 하는 데에 씁니다. 큼직한 맥주병은 한둘쯤 남겨 반죽을 밀 때에 씁니다. 도시사람들 먹여살리느라 하는 수 없이 비닐농사를 지어야 하니까, 이 비닐쓰레기가 해마다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런 ‘도시사람 때문에 나와야 하는 쓰레기’ 말고는 시골사람 쓰레기가 있을 턱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돈을 버느라 바쁘고 돈을 쓰느라 다시금 바쁜 사람들이 쓰레기를 빚습니다. 도시에서 더 큰 돈을 벌어들이려고 애쓰며 더 돈을 실컷 쓰고픈 꿈을 꾸는 사람들 때문에 쓰레기가 끊이지 않고 자꾸 태어납니다.


.. 사람들은 왜 자진해서 굶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고작 작은 사이즈의 옷을 입기 위해서 말이다 … 누나는 종이 1톤을 만드는 데 열일곱 그루의 나무가 들어간들 자기와 무슨 상관이냐며, 안 그럼 모델 수업료를 무슨 수로 버느냐고 말했다. 게다가 그 일은 운동도 된단다. 새로 산 다이어트 책에 따르면, 빨리 걸으면 한 시간에 560칼로리를 태울 수 있어서 좋다는 거다 ..  (23, 85쪽)


 도시에서 짓는 아파트는 그야말로 쓰레기덩어리입니다. 도시에서 짓는 아파트를 적어도 쉰 해나 예순 해쯤이라도 버티는 일은 없습니다. 으리으리하게 짓는 아파트인데 서른 해가 지나지 않아 허뭅니다. 그러고는 다시금 으리으리하게 짓습니다. 허문 아파트에서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쓰레기는 모두 어디로 보내야 하지요? 이 쓰레기는 어떡하지요?

 도시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은 도시에만 아파트를 지어서는 돈이 모자라니까, 시골구석까지 아파트를 지어댑니다. 이제 시골자락마저 도시내기 돈놀이에 휘말립니다. 시골자락 어디에도 쓰레기덩어리가 잔뜩 올라섭니다.

 쓰레기 아닌 삶을 생각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쓰레기 낳는 도시물질문명이 아니라, 쓰레기 없이 삶을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하기란 몹시 힘듭니다.

 초등학교에 간들 쓰레기 걱정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쯤 된다 해서 쓰레기가 왜 말썽인지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학교에 가면 무언가 달라질까요. ㅅ이나 ㅎ처럼 커다란 회사에 들어가면 쓰레기를 어떻게 맺고 풀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려나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는, 아니 9급 공무원이든 8급 공무원이든, 공무원 자리를 꿰차는 사람이나 학교에서 교사 일을 맡는 사람은 쓰레기를 어떻게 바라보면서 살아가는가요. 나라돈을 거두어들여 나라살림을 꾸린다는 사람들은 어떤 쓰레기를 새로 만들고 어떤 쓰레기를 어디에 치우는 정책을 마련하는지요.


.. 아빠는 구운 콩 요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아빠는 내가 빤히 보는 앞에서 캔을 재활용이 아닌 쓰레기봉투 안으로 홱 던지는 게 아닌가. 하지만 난 아무 소리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  (147쪽)


 ‘착한도시’를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쩌면 도시 가운데에는 착한살림 착한사람 착한꿈 착한일 착한놀이를 어우르면서 아름다운 살림터가 되려는 곳이 있는지 모릅니다.

 착한도시라고 못 태어나란 법이 없습니다. 다만, 착한도시는 돈으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착한도시는 손바닥으로 태어나고 발바닥으로 태어납니다. 손바닥으로 쟁기와 호미를 쥐는 사람들 힘으로 착한도시가 태어납니다. 발바닥으로 골목을 걷고 길을 오가는 사람들 기운으로 착한도시가 태어납니다.

 언제까지나 돈으로 먹을거리를 장만하기만 한다면 착한도시가 될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나 내 살림집 평수 넓히기에만 얽매인 채 내 보금자리에 텃밭 하나 일구려 힘쓰지 않는다면 착한도시란 나타나지 않습니다. 버스가 시원시원 다닐 수 있도록 한대서 착한도시가 되지 않습니다. 땅밑을 달리는 전철길이 촘촘히 생긴대서 착한도시라 하지 않습니다. 전기로 수도물을 길어올려 흐르도록 하는 물줄기가 도시 한복판에 있대서 착한도시하고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착하게 살아가려고 해야 착한집이요, 착한집이 모여 착한마을이며, 착한마을이 하나둘 어우러질 때에 비로소 착한도시입니다.

 착하게 꾸리는 삶이란 돈을 버는 삶이 아닙니다. 돈은 돈대로 벌 수 있으나 돈만 버는 삶이 착한 삶이 될 수 없습니다. 내 삶이 더없이 참다우면서 아름다울 삶일 때에 착한 삶입니다. 내 손으로 흘리는 땀이 내가 발을 디딘 흙을 기름지게 북돋울 때에 착한 삶입니다. 똥오줌이 좋은 흙거름이 되듯이, 내 삶이 내 삶터에서 좋은 밑거름이 될 때에 바야흐로 착한 삶이에요.


 (2) 《지구를 지키는 쓰레기 전사》라는 책


 어린이와 푸름이가 읽을 만한 환경책 《지구를 지키는 쓰레기 전사》를 읽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살아가는 어른 한 사람이 ‘이대로 지구를 두면 나도 이웃도 모두 슬픈 구덩으로 굴러떨어지겠다’고 느끼면서 쓴 환경책을 읽습니다.

 이제 지구별 어느 곳에서든 쓰레기가 골칫덩어리가 된 만큼, 이와 같은 환경책이 안 나올 수 없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만큼은 ‘한국 삶터를 곰곰이 돌아보면서 슬기롭게 거듭나려는 움직임’을 살뜰히 담은 환경책이 거의 안 태어납니다.


.. 공을 잡으러 가려고 막 길을 건너려던 참이었다. 자가용 한 대가 모퉁이를 돌아 달려왔다. 엄청난 속도였다. 처음에 나는 그 차가 다가오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차가 속도를 늦추더니 머리를 빡빡 민 어떤 멍텅구리가 자동차 문을 열고는 쓰레기를 밖으로 던졌다.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을 싼 종이와 콜라 캔 두 개, 담뱃갑 하나, 그리고 밀크셰이크 용기처럼 보이는 쓰레기가 공원 안으로 휙 날아왔다 … 기업은 왜 사람들이 굶어죽는 것보다 자기 기업의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까?  ..  (14, 114쪽)


 환경책은 ‘지구가 아파해요!’ 하고 외치는 책이 아닙니다. 환경책은 ‘한 사람이 버리는 쓰레기는 한 해에 이만큼이나 돼요!’ 하고 떠벌이는 책이 아닙니다.

 환경책은 내 삶을 돌아보는 책입니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꿈꾸며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되짚을 때에 환경책입니다. 내가 오늘 어떻게 먹을거리를 얻어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며 집안을 쓸고닦는가를 헤아리도록 할 때에 환경책입니다.

 과자를 사먹지 말아야 한다고 외쳐야 환경책이 되지 않습니다. 소시지나 햄이 얼마나 나쁘다고 외친들 환경책이 되지 않습니다. 과자이든 소시지이든 햄이든 먹고 싶다면 먹을 수 있어요. 내 손으로 과자를 구울 수 있고, 내 손으로 소나 돼지나 닭을 잡아 고기를 얻어 소시지이든 햄이든 만들 수 있습니다.


.. 사람들이 버린 물건들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다. 아빠와 난 약간 손만 보면 되는 근사한 접의자 두 개, 조각이 약간 떨어져 나간 수제 체스 세트 하나, 아빠가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한 라디오 한 대를 건졌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서 말이다 ..  (51쪽)


 모든 먹을거리는 목숨입니다. 우리는 다른 목숨을 먹으면서 내 목숨을 잇지, 목숨 아닌 기계나 화학약품을 먹으면서 내 목숨을 잇지 않습니다.

 물에 온갖 화학약품이나 조미료를 타서 음료수를 만든다지만, 이 음료수는 물이 없으면 만들 수 없습니다. 밑바탕은 물입니다. 물이 있고서야 음료수이든 술이든 태어납니다.

 염화나트륨이든 무슨무슨 조합식으로 짜거나 달거나 시거나 매운 맛을 낼지라도, 감자를 심고 거두어 손질하거나 고구마를 심고 거두어 손질하지 않고서야 과자 한 봉지 태어나지 않습니다.

 남이 소나 돼지를 잡아 주니까, 남이 흙을 일구어 곡식과 푸성귀를 얻어 주니까, 게다가 남이 우리 입맛에 맞게 요모조모 꾸미고 볶으며 지져 주니까, 그저 우리는 돈만 치르면 되니까, 자꾸자꾸 쓰레기가 태어납니다.

 나 스스로 내 몸을 움직이지 않는 삶일 때에 쓰레기가 태어납니다. 나 스스로 내 몸을 움직이는 삶이라면 쓰레기가 태어날 수 없습니다.


.. 나는 엄마에게 나이가 들수록 말이 너무 거칠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것도 아주 냉소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집 파는 일을 하게 된 다음부터는 그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요리에도. 엄마는 오로지 집을 팔고 수수료를 받는 일만 걱정했다. 열대 우림의 반이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엄마의 관심은 무엇이란 말인가? … 그들은 지구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걱정하는 거라곤 자기들 재산과 고급 가구뿐이다. 장담하건대 그들은 재활용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  (104, 177쪽)


 《지구를 지키는 쓰레기 전사》라는 책에는 아주 깊거나 몹시 대단하다 할 만한 이야기가 담기지 않습니다. ‘흔한’ 선진국 ‘흔한’ 도시 ‘흔한’ 도시내기 아이와 어른이 쓰레기 하나를 놓고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는가를 재미난 이야기 살점을 붙여서 보여줍니다.

 한국땅에서는 멀디먼 뉴질랜드 이야기까지 찾아서 읽지 않고 우리 둘레만 돌아보더라도, 열대 숲이 사라지건 말건 돈 돈 돈 노래만 부르는 사람을 어디에서나 쉽게 만납니다. 옆집에서도 만나지만 우리 집에서도 만납니다. 옆 동네에서도 만나겠지만 우리 동네에서도 만납니다. 텔레비전이든 인터넷이든 책이든 무엇이든, 한결같이 돈 돈 돈 노래만 부릅니다. 돈굴리기 잘하도록 한다는 책이나 신문은 불티나게 팔립니다. 돈이 된다 안 된다 하는 이야기만 여기저기에 가득합니다.

 돈이란 곧 쓰레기입니다. 돈이 된다는 이야기란 곧 쓰레기를 많이 만든다는 이야기입니다. 돈을 번다면 쓰레기를 번다는 뜻이고, 돈을 쓴다면 쓰레기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집살림을 하는 사람은 돈을 벌지 않는다지만, 가만히 보면 쓰레기를 만들지도 않습니다. 아이를 낳아 키울 때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자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지만, 아이를 집에서 돌보면서 아이랑 함께 놀고 노래하며 책을 읽히거나 그림을 함께 그리면 돈을 쓰지 않습니다. 돈을 벌지도 못하지만 돈을 쓰지도 않습니다. 아이를 대학교에 보내자며 학원에 넣는다든지, 아이 대학교 배움값을 대야 한다든지 하자면, 어버이는 늘 돈벌이에 허리가 굽습니다. 아이는 대학교에 들어갈 시험공부로 머리를 가득 채울 뿐, 집에서 제 어버이와 삶을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아이를 대학교까지 보내지 않는다든지, 애써 아이가 더 높은 학교에서 더 많은 지식이나 졸업증이나 자격증을 따도록 밀어붙이지 않는다면, 어버이 자리에 선 사람은 아이하고 날마다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함께 살림을 꾸리고 함께 일을 하며 함께 보금자리를 일굽니다.

 돈벌이는 삶이 아닙니다. 돈벌이는 사랑이 아닙니다. 돈벌이는 살림이 아닙니다. 돈벌이는 믿음이 아닙니다. 돈이 있어야 예배당도 짓는다지만, 돈이 없으면 너른 들판이나 방 한켠에서 믿음어린 비손을 올리면 됩니다. 돈이 있어야 맛난 밥을 사먹는다든지 자가용을 굴린다지만, 돈이 없으면 텃밭과 논을 일구어 내 밥상을 차리거나 두 다리나 자전거로 다니면 됩니다.

 그러니까, ‘쓰레기 전사’ 노릇을 하는 아이는 지구를 지키지 못합니다. 그냥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 뿐입니다. 쓰레기 전사는 쓰레기를 줄이지, 쓰레기가 태어나지 않도록 하는 밑뿌리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쓰레기를 줄이자고 외치는 운동이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환경운동도 훌륭합니다. 다만, 환경운동은 쓰레기 줄이기가 아니요, 내 삶을 사랑하며 아끼자는 운동입니다. 내 밥, 내 집, 내 이웃, 내 터, 내 바람, 내 햇살, 내 숲을 사랑하며 아끼자는 운동일 때에 시나브로 환경운동이라는 이름이 걸맞습니다.

 지구를 지키지 않아도 되니까, 내 밥상과 내 동무와 내 삶을 아름다이 보듬을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4344.3.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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