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469) 눈물의 1 : 눈물의 결혼식

 

저희 두 사람의 결혼식은 말 그대로 눈물의 결혼식이었습니다
《안재구,안영민-아버지, 당신은 산입니다》(아름다운사람들,2003) 32쪽

 

  요즘은 한국말 ‘혼례식’이나 ‘혼인식’을 쓰는 사람은 거의 사라지고 ‘결혼식(結婚式)’을 말하는 사람만 남습니다. 예식을 치르는 곳을 ‘혼례마당’이나 ‘혼인식장’이라 하지 않고 ‘결혼식장’이라고만 하고, ‘웨딩홀’ 같은 영어가 널리 퍼지는 터라, 앞으로는 말이 더욱 무너지거나 흔들리겠다고 느껴요. 말밑이 한자로 이루어진 낱이라 하더라도 한겨레 삶과 이야기를 담은 낱말이 있고, 일제강점기에 억지로 들어와서 어쩔 수 없이 쓰이다가 자리잡고 만 얄궂은 낱말이 있어요. ‘결혼’과 ‘결혼식’은 바로 뒤엣것, 어쩔 수 없이 쓰이다가 잘못 자리잡은 얄궂은 낱말입니다.

 

 눈물의 결혼식
→ 눈물로 얼룩진 혼례잔치
→ 눈물로 범벅이 된 혼례잔치
→ 눈물이 가득한 혼례마당
→ 눈물바다가 된 혼례마당
→ 눈물 아니면 말할 수 없는 혼례마당
 …

 

  혼례를 치르는 자리가 어떠했다는 소리일까요. ‘눈물이 나는’ 혼례잔치였는지, ‘눈물 없는’ 혼례잔치였는지 뚜렷하게 말해야지요. 그냥 “눈물의 결혼식”이라고 뭉뚱그리고 나면 여러모로 멋없는 말, 뜻도 두루뭉술하고 어설픈 말이 됩니다. 눈물이 나는 혼례마당이라면, ‘슬픈’을 넣어도 좋고, ‘가슴 아픈’을 써도 어울립니다. ‘가슴이 찢어지는’이나 ‘눈물바다가 된’처럼 적어도 돼요.


  보기글을 다듬으며 생각해 보는데, 우리들은 우리 말을 한결 잘하려고 힘쓰거나, 올바르게 쓰거나 알맞게 쓰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다 아는 말이니 더 배울 구석이 없는 한국말이라고 느끼지는 않나 모르겠어요. 좋은 책을 새로 알아보고 찾아보면서 마음밭을 다스리듯이, 날마다 몸을 다스리는 좋은 밥 한 그릇 받아안고 고맙게 먹듯이, 날마다 쓰는 말과 글도 알뜰히 추스를 수 있도록 날마다 조금씩 마음을 기울여 주면 반가울 텐데요. (4339.1.22.해./4345.6.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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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두 사람 혼례잔치는 말 그대로 눈물바다였습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39) 눈물의 3 : 눈물의 바다

 

난 옆에 앉아 있는 덴코짱을 슬쩍 훔쳐보았다. 저 상냥한 눈 속에 눈물의 바다가 있었다니
《노다 미치코/김경인 옮김-덴코짱》(양철북,2011) 53쪽

 

  “앉아 있는”은 “앉은”으로 다듬어 줍니다. ‘있는’은 받쳐 주는 구실을 하는 움직씨가 아닙니다. “서 있는”도 “누워 있는”도 모두 잘못 쓰는 말투예요. “선”과 “누운”으로 다듬어야 알맞아요.

 

 눈물의 바다가 있었다니
→ 눈물바다가 있었다니
→ 눈물이 바다를 이루었다니
→ 눈물로 바다를 이루었다니
→ 눈물이 바다처럼 있었다니
→ 눈물이 바다만큼 있었다니
 …

 

  눈물이 많이 흘러 바다와 같다면 ‘눈물바다’예요. 눈물이 흐르고 흘러 냇물과 같다면 ‘눈물내’나 ‘눈물강’이나 ‘눈물냇물’이겠지요. 웃음이 넘치고 넘쳐 바다와 같을 때에는 ‘웃음바다’예요. 곧, 눈물바다·웃음바다·사랑바다·꿈바다예요. “눈물의 바다”처럼 사이에 ‘-의’를 넣지 않아요.


  아침에 맞이하는 하늘은 ‘아침하늘’이에요. “아침의 하늘”이 아니에요. 아침에 바라보는 바다는 ‘아침바다’예요. “아침의 바다”가 아닙니다.


  슬픔이 가득해서 눈물이 콸콸 쏟아진다면 ‘눈물바다’입니다. 눈물로 바다를 이룹니다. 눈물이 바다처럼 있습니다. 눈물이 마치 바다만큼 있어요.


  슬픔은 바다처럼 깊거나 넓을 수 있습니다. 기쁨 또한 바다처럼 깊거나 넓을 수 있어요. 사랑도 꿈도 믿음도, 미움도 시샘도 헐뜯음도 모두 바다만큼 드넓을 수 있어요. 우리는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슴에 품을 때에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몸짓과 매무새로 살아갈 때에 곱게 빛날 수 있을까요. (4345.6.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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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옆에 앉은 덴코짱을 슬쩍 훔쳐보았다. 저 상냥한 눈 속에 눈물바다가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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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들

 


  “똥오줌도 못 가리네.”라 읊는 말을 어릴 적부터 들었다. 철이 없이 날뛰는 풋내기를 가리킬 때에 으레 읊는 말이라고 들었다. 어릴 적 동무들 사이에서 서로서로 놀리며 이 말마디를 읊기도 했다. 가만히 돌이키면, 어릴 적 나나 동무들 모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에다가 “아직 똥오줌 못 가릴 녀석”일 텐데, 우리들은 서로서로 이 말마디를 읊으며 스스로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닫지 못했다.


  아이 둘을 보살피는 하루하루 누리면서 생각한다. 첫째 아이가 밤오줌을 다 가려, 이제 기저귀 빨래에서 홀가분해지는구나 하고 느낄 무렵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어느덧 다섯 해째 날이면 날마다 기저귀 빨래에 아이들 옷가지 빨래에 쉴 겨를이 없다. 어디 마실을 다니더라도 아이들 옷가지로 가방 하나 두툼히 챙긴다. 마실을 마치고 돌아오면 이동안 쌓인 빨랫감을 빨래하느라 부산을 떤다. 첫째 아이는 낮오줌도 밤오줌도 잘 가리지만, 어느 하루 아주 신나게 뛰논 날은 자다가 그만 바지에 살짝 쉬를 하기도 한다. 둘째 아이는 이제 돌을 갓 지났으니 똥이고 오줌이고 가리지 못한다. 아무 데나 아무 때나 스스로 누고플 때에 눈다. 책상맡에서도 밥상자리에서도 똥이고 오줌이고 눈다. 돌을 지난 아이 똥오줌 가리기를 하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저귀를 푼 채 돌아다니도록 하니까, 온 집안은 그예 똥내와 오줌내 가득하다. 첫째 아이 적하고 똑같은 일을 되풀이한다.


  날마다 서너 차례씩 둘째 아이 똥바지 빨래를 하고, 날마다 스물∼서른 차례 오줌바지 빨래를 한다. 그야말로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하고 살아간다.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더러 이것 해 달라 저것 해 주라 하는 심부름을 시키지 못한다.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더러 똥 마려우면 얘기해, 하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곰곰이 살피면, 아이가 똥이 언제 마려운가 느낄 수 있다. 아이가 오줌을 누고 싶어 할 때를 깨달을 수 있다. 스물네 시간 아이하고 붙어 지내는 어버이라면 누구나 알아챌 수 있다.


  이리하여, 옛날 옛적부터 ‘아버지 구실 하는 사내’는 으레 잊거나 모르지만, ‘어머니 노릇 하는 가시내’는 으레 온몸과 온마음으로 헤아리면서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들하고 얘기꽃을 피우”곤 한다.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들을 타이르는 길,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들을 달래는 길,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들을 따숩게 사랑하며 아끼는 길 들을 여느 가시내는 어머니 자리에 들어서면서 슬기롭게 맡는다. 아버지 자리에 들어서는 여느 사내는 으레 아이들하고 하루 내내 지내지 않으며 바깥으로 떠돌기만 하니까, 막상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들과 어떻게 얘기를 나누어야 하는가”를 안 깨달을 뿐더러 알려고도 하지 못하기 일쑤이다.


  사람은 갓난쟁이일 적에 똥오줌을 못 가린다. 그러나, 어느 모로 본다면, 사람은 나이를 제법 먹어 어른이 되었다 하더라도 똥오줌을 못 가리기도 한다. 왜 그럴까. 왜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도 스스로 철이 들려 하지 않을까.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철없이 살아가는가.


  아, 그렇구나. ‘철’이란 여러 뜻이지. 사람이 철이 들자면, 날씨인 철부터 느끼며 살아야 한다. 봄에는 봄철을 느끼고 여름에는 여름철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온마음으로 아로새길 때에 철을 찬찬히 익힌다. 가을철을 모르거나 겨울철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은 ‘사람값’을 한다는 철 또한 익히지 못한다. 꽃철 모내기철 가을걷이철 나물철 김장철 들을 두루 살피며 사랑할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사람철을 헤아리면서 사랑철과 믿음철을 하나하나 짚을 만하구나 싶다. 전남 고흥 시골마을은 요 한두 달 사이 제비철로 흐드러진다. (4345.6.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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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글쓰기

 


  자는 아이들 얼굴에 파리가 자꾸 달라붙는다. 일찍 일어나 하루를 여는 내 얼굴과 등짝에도 자꾸 달라붙는다. 손으로 휘휘 쫓으면 살짝 날아 다시 내려앉는다. 파리는 마치 저만큼 날갯짓 잘 하는 목숨이 없기라도 하는 듯 날아다닌다. 파리는 파리대로 제 목숨을 누리는 셈이라 할 텐데, 이들은 아무리 길게 살아도 스무 날을 넘기기 힘들다. 제아무리 용을 쓴들 고작 ‘스무 날 권력’이라 할 테지만, 파리 날갯짓은 권력조차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파리채를 한손에 집어들고 파리를 잡으려 한다. 이래저래 용을 쓰며 이 방 저 방 재주 부려 날아다니던 파리는 이윽고 팍 소리를 내며 숨을 거둔다. 짜부라지며 죽는다. 스스로 뽐내던 잘난 날갯짓은 어디에도 없고 만다.


  파리는 처음 알에서 깨어 날갯짓을 즐길 수 있던 날부터 숨을 거두는 날까지, 파리 스스로 얼마나 좁은 울타리에서 좁은 눈으로 좁은 생각에 갇히는가를 깨닫지 못한다. 이제 막 깨닫는다 싶은 때에 그만 목숨을 잃는다. 사람들 살림집에서는 사람 손에 잡혀 죽는다. 바깥 들판에서는 제비나 박쥐한테 잡아먹혀 죽는다. 파리죽음이란 몹시 바보스러운 죽음, 또는 매우 어리석은 죽음, 아니면 아주 값없는 죽음을 가리킬밖에 없겠다고 느낀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서도 파리가 날갯짓 자랑하듯 재주 부리는 모습을 보곤 한다. 왜 스스로 제 목숨을 깎아먹으며 바보짓을 할까. 왜 스스로 어설픈 겉치레 잔재주에 얽매일까.


  파리로 태어나든 사람으로 태어나든 치자꽃으로 태어나든 물봉선으로 태어나든 모두 같은 목숨이다. 모두 사랑스러운 목숨이요, 모두 값있는 목숨이다. 그러나, 사람도 파리도 스스로 값없는 목숨이 되도록 스스로 바보짓을 일삼곤 한다. 좋은 삶을 좋은 사랑으로 누리면 참으로 좋을 텐데. 좋은 꿈을 좋은 믿음으로 일구면 가없이 좋은 빛일 텐데. 글쓰기는 ‘파리 날갯짓’이 아니다. (4345.6.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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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료 장수 아이들의 멋진 크리스마스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73
바버러 쿠니 그림, 루스 소여 글, 이진영 옮김 / 시공주니어 / 199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나한테 주는 선물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72] 바버러 쿠니·루스 소여, 《신기료 장수 아이들의 멋진 크리스마스》(시공주니어,1997)

 


  내가 누군가한테 선물을 주고, 누군가는 나한테 선물을 줍니다.


  내가 누군가한테 선물을 준다고 내밀 적에, 나한테서 선물을 받을 이녁보다 이녁한테 선물을 주는 내 마음이 한결 뛰며 벅차고 기쁘지 않나 싶어요. 누군가한테서 선물을 받을 때, 이녁은 내가 좋아할 만한 무언가를 찾아서 살피기 마련이라 하는데, 이 선물은 다른 무엇보다 내 삶과 목숨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가를 느끼도록 해서 기쁜 일이로구나 싶어요.


  모든 선물은 내가 나를 기쁘게 한다고 느껴요. 남한테 주든, 살붙이한테 주든, 동무한테 주든, 풀과 나무한테 주든, 모든 선물은 나 스스로 내 삶을 아름답게 빛내는 손길이 된다고 느껴요.


  꽃밭에 물을 주든 뒷밭 고랑에 오줌 거름을 주든 좋은 선물입니다. 봄비가 내리든 봄바람이 불든 기쁜 선물입니다. 밥상을 차리든 밥상을 받든 고마운 선물입니다. 삶은 언제나 선물이에요. 어제 하루도 오늘 하루도 온통 선물이구나 싶어요.


  나는 내 어버이한테 선물이었을 테고, 나한테 우리 아이들이 선물과 같겠지요. 그런데 나는 나대로 나한테 선물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대로 저희 스스로 선물이에요.

 


.. 신기료 장수가 어쩌다가, 농부가 교회에 갈 때에 신는 구두를 고쳐 주는 날은, 맛있는 염소젖이 생겼습니다. 또 어쩌다가, 빵집 주인이 명절에 신는 구두를 고쳐 주는 날은, 바삭하고 커다랗고 맛있는 빵이 생겼습니다. 또 어쩌다가, 푸줏간 주인의 구두를 고쳐 주는 날은, 솥에 고기를 넣고 맛있는 스튜를 끓일 일이 생겼고, 국수와 야채도 생겼습니다 ..  (7쪽)


  나는 언제나 나한테 선물을 줍니다. 이 선물은 더없이 사랑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 선물은 가없이 끔찍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나한테 좋은 선물도 주지만, 나는 나한테 나쁜 선물도 줍니다. 나는 나한테 가장 빛나는 사랑을 줄 수 있지만, 나는 나 스스로 나한테 가장 지저분한 시샘과 미움과 해코지를 줄 수 있어요.


  내가 하는 말은 모두 나한테 하는 말입니다. 내가 남을 헐뜯거나 비아냥거리는 말을 하더라도, 이 말은 남을 헐뜯거나 비아냥거리지 못해요. 오직 나 스스로를 헐뜯거나 비아냥거릴 뿐입니다. 내가 남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말을 하더라도, 이 말은 남을 아끼거나 사랑해 주지 못해요. 언제나 나 스스로를 아끼거나 사랑해 줄 뿐이에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하는 옛말대로예요.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고울 때에 나한테 돌아오는 말이 곱습니다. 왜냐하면,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바로 나한테 하는 말이거든요.


  사랑받고 싶다면 나 스스로 사랑하면 돼요. 남이 나를 사랑하기를 바라거나 기다릴 수 없어요.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어요. 내가 나를 사랑할 때에, 내 곁 내 좋은 이웃과 동무는 즐거이 어깨동무하면서 맑은 사랑을 한껏 북돋웁니다. 서로서로 맑은 사랑을 한껏 북돋울 때에 비로소 내 사랑이 네 사랑으로 옮아 가기도 하고, 네 사랑이 내 사랑으로 스며들기도 해요.

 

 


.. 한 달 한 달이 점점 더 힘겹게 전진해 갔습니다. 이건 모두 다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전쟁 때문에 젊은 남자들은 총을 들고 어머니와 아이들 곁을 떠났습니다. 이 골짜기를 지키기 위해서요. 이제 가난한 신기료 장수에게 구두를 고쳐 달라고 할 일도 없어졌습니다. 모두들 교회에 가는 날에도, 밑창은 덜그럭거리고 뒷굽은 닮아지고 구멍과 단추와 끈은 아주 떨어져 나간 신발을 질질 끌고 갔습니다 ..  (10쪽)


  꿈을 꾸는 사람은 언제나 꿈을 누립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사랑을 나눕니다. 돈을 버는 사람은 언제나 돈을 법니다. 주먹다짐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주먹다짐 쳇바퀴에서 맴돕니다.


  어떤 일 때문에 골을 부리거나 짜증을 내면, 골부림이나 짜증내기는 그예 내 곁에서 춤춥니다. 골부림이 차츰 소용돌이가 됩니다. 짜증내기가 천천히 큰 물결이 됩니다.


  어떤 일을 겪으며 살짝 웃으면, 웃음은 시나브로 내 삶에서 노래합니다. 웃음은 싱그러우면서 빛나는 몸짓으로 노래하며 내 넋과 말을 어루만져요. 말을 하는 입, 일을 하는 손, 움직이는 몸, 생각하는 마음, 나누는 사랑 모두 하나되어 아름다울 때에 내 하루는 늘 아름다운 빛깔로 반짝일 수 있어요.


  좋은 생각이 밑거름이 되어 아이들이 태어납니다. 좋은 생각이 밥 한 그릇 되어 아이들이 자랍니다. 좋은 생각이 물 한 모금 되어 아이들이 우뚝 섭니다. 좋은 생각을 품으라 하는 삶입니다. 좋은 생각으로 아끼라 하는 삶입니다. 좋은 생각으로 살붙이를 보살피라 하는 삶입니다. 좋은 생각이 아닐 때에는 어느 누구보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합니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할 때에는 가까운 살붙이부터 이웃과 동무 모두를 괴롭히거나 들볶는 슬픈 수렁에 빠지고 맙니다.

 


.. 프리츨은 우린 돼지가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말이에요. 하지만 프리츨은 그 작은 남자한테, 얼음처럼 싸늘한 그 파란 눈과 으르렁대는 그 입을 보고 겁에 질려 버렸습니다 ..  (20쪽)


  바버러 쿠니 님 그림과 루스 소여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신기료 장수 아이들의 멋진 크리스마스》(시공주니어,1997)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스위스 멧골마을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던 신기료 장수는 언제나 꿈을 꾸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거나 이름을 드날리거나 무시무시한 주먹힘을 거머쥐려는 바보스러운 꿈이 아니라, 아이들과 사랑스레 하루를 누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늘 고맙게 맞이하는 새 하루를 빛내는 꿈을 꾸었습니다. 파란 하늘과 푸른 들판을 사랑하는 꿈을 꾸었어요.


  그런데, 아늑하며 즐겁던 멧골마을에도 전쟁이 기어들어요. 멧골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아요. 이 멧골마을을 비롯해 지구별 곳곳에서 권력을 거머쥐려 하는 바보들이 전쟁을 일으켜요. 바보들은 이 멧골마을뿐 아니라 지구별 곳곳을 어지럽혀요. 덧없는 전쟁무기와 군대를 키우고, 젊은 사내들한테 번쩍거리는 군인옷과 무기를 선물하면서, 젊은 사내 스스로 바보가 되도록 내몰아요.

 

 


.. 신기료 장수는 “우리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들이구나. 나는 그 이야기가 할아버지들이 손자에게 들려주는 옛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티롤 요정) 로린 왕이 해마다 크리스마스에 딱 오두막 하나만, 딱 한 식구만 골라 찾아와 마법을 부려 자기가 가진 보물을 나누어 준다는 옛이야기가 있단다.” ..  (31쪽)


  선물은 노상 내가 나한테 할 뿐이에요. 아이들은 노상 아이들 스스로 서로서로 선물하며 살았어요. 가난한 신기료 장수네 세 아이는 형이 동생을 아끼고 동생이 형을 사랑하며 살았어요. 여러 날 굶더라도 혼자 배를 채우려 하지 않아요. 여러 날 굶으면서도 서로를 더욱 따스히 보살펴요. 아버지도 아이들도 웃음을 예쁘게 가꾸어요. 끼니를 건너뛰는 날이 이어지더라도 활짝 웃으며 신나게 이야기꽃을 피워요.


  이리하여, 스위스 멧골마을 가난한 신기료 장수 네 식구한테 스위스 멧골 요정이 사뿐사뿐 찾아들고, 스위스 멧골 요정은 가난한 신기료 장수 네 식구한테 가장 걸맞다 싶은 선물을 스스로 누리도록 따순 손길을 내밀어요.


  선물은 스스로 빚어 스스로 누린다니까요. 사랑은 스스로 빚어 스스로 나눈다니까요. 미움도 전쟁도 슬픈 생채기도 스스로 빚어 스스로 망가뜨린다니까요. (4345.6.10.해.ㅎㄲㅅㄱ)

 


― 신기료 장수 아이들의 멋진 크리스마스 (바버러 쿠니 글,루스 소여 그림,이진영 옮김,시공주니어 펴냄,1996.11.18./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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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자꽃 책읽기

 


  지난 2011년 가을, 전남 고흥 시골마을로 보금자리를 얻어 들어오면서, 이웃 할아버지가 일구던 밭에서 자라던 치자나무를 처음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치자나무가 어느 나무인 줄 제대로 알아보지는 못했어요. 뒤꼍에 치자나무를 스무 그루쯤 심었다고 하셔서 그런가 보다 하고 여겼지, 스무 그루쯤 되는 치자나무가 어느 녀석을 가리키는지 몰랐습니다.


  한 해를 지나 여름을 맞이하니, 이웃 할아버지가 일구는 밭에서 자라는 나무에 하얗게 꽃망울 맺힙니다. 참으로 하얀 조각과 같다고 느끼며 바라보다가, 문득 이 꽃망울 맺히는 나무가 그 치자나무였다고 깨닫습니다. 소담스레 큼지막합니다. 눈부시게 하얗습니다. 늦봄에 피어 이른여름에 지는 찔레꽃은 올망졸망 앙증맞은 하양이라면, 이른여름에 피는 치자꽃은 한 떨기 햇살 같은 하양이로구나 싶어요.


  여름바람이 치자꽃 하얀 꽃망울을 가볍게 스치며 온 들판을 두루 감돌아 갓 심은 볏모마다 사름빛을 반짝이며 시원스레 붑니다. (4345.6.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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