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글쓰기

 


  자는 아이들 얼굴에 파리가 자꾸 달라붙는다. 일찍 일어나 하루를 여는 내 얼굴과 등짝에도 자꾸 달라붙는다. 손으로 휘휘 쫓으면 살짝 날아 다시 내려앉는다. 파리는 마치 저만큼 날갯짓 잘 하는 목숨이 없기라도 하는 듯 날아다닌다. 파리는 파리대로 제 목숨을 누리는 셈이라 할 텐데, 이들은 아무리 길게 살아도 스무 날을 넘기기 힘들다. 제아무리 용을 쓴들 고작 ‘스무 날 권력’이라 할 테지만, 파리 날갯짓은 권력조차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파리채를 한손에 집어들고 파리를 잡으려 한다. 이래저래 용을 쓰며 이 방 저 방 재주 부려 날아다니던 파리는 이윽고 팍 소리를 내며 숨을 거둔다. 짜부라지며 죽는다. 스스로 뽐내던 잘난 날갯짓은 어디에도 없고 만다.


  파리는 처음 알에서 깨어 날갯짓을 즐길 수 있던 날부터 숨을 거두는 날까지, 파리 스스로 얼마나 좁은 울타리에서 좁은 눈으로 좁은 생각에 갇히는가를 깨닫지 못한다. 이제 막 깨닫는다 싶은 때에 그만 목숨을 잃는다. 사람들 살림집에서는 사람 손에 잡혀 죽는다. 바깥 들판에서는 제비나 박쥐한테 잡아먹혀 죽는다. 파리죽음이란 몹시 바보스러운 죽음, 또는 매우 어리석은 죽음, 아니면 아주 값없는 죽음을 가리킬밖에 없겠다고 느낀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서도 파리가 날갯짓 자랑하듯 재주 부리는 모습을 보곤 한다. 왜 스스로 제 목숨을 깎아먹으며 바보짓을 할까. 왜 스스로 어설픈 겉치레 잔재주에 얽매일까.


  파리로 태어나든 사람으로 태어나든 치자꽃으로 태어나든 물봉선으로 태어나든 모두 같은 목숨이다. 모두 사랑스러운 목숨이요, 모두 값있는 목숨이다. 그러나, 사람도 파리도 스스로 값없는 목숨이 되도록 스스로 바보짓을 일삼곤 한다. 좋은 삶을 좋은 사랑으로 누리면 참으로 좋을 텐데. 좋은 꿈을 좋은 믿음으로 일구면 가없이 좋은 빛일 텐데. 글쓰기는 ‘파리 날갯짓’이 아니다. (4345.6.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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