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책읽기

 


  순천에 있는 헌책방으로 책마실을 다녀오는 길, 시골마을로 들어가는 저녁버스는 벌써 끊겼기 때문에 택시를 불러서 탄다. 택시 일꾼이 튼 라디오에서는 요즈음 가뭄이 대단하다는 이야기가 흐른다. 보령과 홍성 언저리 어디메에서는 사천 억원이나 들여 농업용수 댈 시설을 짓는다 하더니 몇 해가 지나도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보령에 지은 화력발전소가 물을 얼마나 쓰고, 이 화력발전소가 보령뿐 아니라 둘레 충청남도를 얼마나 망가뜨리는가 하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벙긋하지 못한다. 충청도에 숱하게 많은 공장과 골프장이 이 가뭄에도 물을 얼마나 펑펑 쓰는가 하는 이야기는 조금도 읊지 않는다.


  시골택시는 금세 우리 마을에 닿는다. 나는 내린다. 책으로 꽉 차 무거운 가방을 어기적어기적 메고 논 사잇길을 지나 대문을 연다. 고즈넉한 우리 마을에는 개구리 노랫소리만 가득하다. 논 사이사이 도랑을 흐르는 물줄기를 내려다본다. 지난가을부터 올여름까지 이 도랑 물줄기가 끊긴 일을 본 적 없다. 우리 마을도 이웃 마을도 이웃에 이웃한 마을도 논물이나 밭물이 모자라다고 한 적이 없다고 느낀다. 지난겨울에 비나 눈이 하도 안 와서 마늘이 걱정스러웠다는 말이 몇 차례 있기는 했으나, 이렇게 걱정할 무렵에는 으레 비가 내려 주었다. 외려 비가 너무 잦아 마늘이 걱정스럽다는 말까지 나왔다.


  전남 고흥에는 크고작은 못이 매우 많다. 마을마다 못이 어김없이 있다. 이렇게 못이 많은 시골도 드물지 않을까 생각한다. 식구들 다 함께 고흥으로 들어오고 나서 헌책방에서 ‘고흥을 이야기하는 묵은 책’을 틈틈이 찾아서 살피는데, 고흥은 먼먼 옛날에는 물이 모자라고 드문 고장이라고들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제 고흥에서 물이 모자라다는 말은 아무도 안 한다.


  깊은 밤을 지나고 하얗게 밝는 새벽녘, 어린 제비들 날갯짓 익히느라 마당에서 부산을 떨며 노래하는 소리를 듣는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1980년대까지 고흥은 20만 안팎 살았다. 모두 흙을 일구거나 고기를 잡았다. 1970년대에도 이만 한 숫자였고, 1950∼60년대에는 이보다 좀 적기는 하더라도 얼추 이럭저럭 되었다. 1990년대로 접어들고 2000년대로 접어들며 10만으로 줄더니, 2010년대에는 7만조차 안 된다. 앞으로는 훨씬 더 줄어들리라.


  고흥처럼 외진 시골마을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기 무섭게 도시로 떠난다. 도시로 한 번 떠난 아이들은 좀처럼 시골로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대학교를 다닌다는 핑계와 일자리를 찾았다는 까닭을 들며 모두 도시에서 문명과 물질을 누리느라 바쁘다. 돈을 벌어 돈을 쓰느라 바지런을 떤다.


  고흥에는 골프장이 없다. 고흥에는 변변한 공장 하나 없다. 포스코에서 포항제철과 광양제철 전기를 댈 발전소를 짓는다며 고흥을 들쑤시기는 하나, 고흥은 온통 흙과 바다에 기대는 시골인 터라 발전소하고도 동떨어지고, 어떤 개발이나 관광하고도 멀찍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고흥에서 먹는샘물 파겠다며 땅속에다가 구멍을 크게 뚫는 일도 없다.


  도시사람은 제주섬에다 구멍을 큼직하게 뚫고는 ‘제주 삼다수’를 아주 싼값으로 사다 마신다. 도시사람은 제주섬 곳곳에 골프장을 만들고는 농약과 물을 아주 어마어마하게 쓴다. 도시사람은 제주섬으로 나들이를 다니며 호텔이나 여관에서 물을 아주 펑펑 쓴다. 제주섬은 예부터 물이 드물며 물을 몹시 아끼는 곳이라 했지만, 오늘날 제주섬에서 물을 아끼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오랜 붙박이 흙일꾼 말고 제주섬에서 물을 누가 아낄까.


  깊은 밤이 되어도 깜깜하기만 한 시골 고흥에서는 전기 쓸 일이 매우 드물다.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는 ‘냉각기’를 써야 하기에 물을 엄청나게 써댄다. 물건을 만들어 도시로 보내는 공장은 물을 어마어마하게 써댄다. 도시사람이 운동 삼아 다닌다는 골프장은 물을 억수로 써댄다. 숲과 멧자락을 밀어 마련하는 고속도로와 고속철도와 아파트는 이 둘레를 메마른 벌판으로 바꾼다.


  곧, 가뭄이 든다 하면, 온통 도시 때문이다. 도시사람이 쓸 물건을 만드느라, 도시사람이 쉰다는 골프장을 건사하느라, 도시사람이 ‘깨끗한 물을 값싸게 사다 마시’도록 시골 한복판에 구멍을 뚫어 물을 퍼내느라, 도시사람이 자가용과 버스와 전철을 타고 돌아다니느라, 여기에 시골로 관광 다니는 사람들이 호텔이나 여관에서 물을 펑펑 써대느라, 시골에 가뭄이 들밖에 없다. 또 하나, 도시사람은 시골사람이 흙에서 거둔 곡식이나 ‘시골에서 키우는 고기짐승’을 돈을 치러 사다 먹는다. 곡식이든 짐승이든 물을 먹어야 자란다. 도시사람이 여느 살림집에서 수도꼭지를 더 튼다 해서 물을 더 흘리지 않는다. 도시라는 얼거리가 온 나라를 가뭄이 들게 할 뿐 아니라, 어느 시골마을은 아주 끔찍하게 메마른 땅이 되도록 내몰고 만다.


  가뭄이라 한다. 그러면, 도시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가뭄을 그으려면 도시사람은 어떤 일을 해야 하지? 신문에 글을 싣고 방송에서 말을 보태면 가뭄을 적실 수 있을까? 바보스러운 공무원을 탓하고,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면 가뭄이 사라질 수 있을까? (4345.6.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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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urquoi28 2012-06-13 19:21   좋아요 0 | URL
도시사람으로
무지해서 저지른 악행들을 뉘우칩니다.
생각없고 어리석고 부끄럽고 뻔뻔했음을...

파란놀 2012-06-13 19:49   좋아요 0 | URL
에구... '나쁜 짓'을 뉘우칠 까닭은 아무한테도 없어요.
무엇이냐 하면요,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즐거운가'를 생각해야 해요.
내가 참말 즐겁게 살아가면서
내 이웃도 즐거이 어깨동무하며 웃는 삶인가를
찬찬히 돌아볼 수 있으면 돼요.

이런 삶은 '뉘우침'도 '자아비판'도 아니에요.
좋은 꿈과 사랑을 나눌 길을
스스로 내 삶에서 빛내자는 소리예요 ....

pourquoi28 2012-06-13 20:21   좋아요 0 | URL
그래도 저는 먼저 뉘우쳐야 해요.
된장 님의 글과 사진을 읽거나 보고 있으면
저의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가짜를 벗겨내고
진짜만을 내 안에 담아내는 모습에서 느낌이 많아요
 


 시외버스

 


  이리저리 흔들리던 시외버스인데, 갑자기 흔들림이 줄어든다. 순천에서 고흥으로 들어가는 저녁 일곱 시 반 시외버스에는 모두 다섯 사람이 탔는데, 저녁 여덟 시 즈음 되어도 아직 훤한 햇살이 버스 창가로 스며드는 이즈음, 시외버스 모는 일꾼이 등불을 켠다. 시외버스 안이 더 환하게 밝아진다. 아, 시외버스 일꾼인 아저씨는 당신 아들(또는 막내동생)과 같은 아저씨인 내가 시외버스 창가에 앉아 저녁빛에 기대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습을 뒷거울로 보고는 내 눈이 다칠까 근심하셨는가 보다(나는 마흔에 가까운 아저씨이고, 시외버스 일꾼은 예순에 가까운 아저씨이다). 고마운 손길, 고마운 마음, 고마운 생각이 천천히 감돈다. 나는 그만 볼펜을 내려놓고 책은 무릎에 올려놓은 채 머리를 걸상에 폭 기댄다. 살작 눈을 감고 쉬기로 한다. 그러나 이윽고 눈을 뜨고 다시 책을 읽는다. 조용히 알맞게 달리는 시외버스 밝은 불빛에 기대어 시집 한 권을 즐겁게 읽는다. (4345.6.1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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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손질 334 : 붉게 상기

 


자신들의 손으로 이름을 써 놓고 바라보던 세 사람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기까지 했다
《최수연-산동네 공부방》(책으로여는세상,2009) 165쪽

 

  “자신(自身)들의 손으로 이름을 써 놓고”는 “제 손으로 이름을 써 놓고”나 “저희 손으로 이름을 써 놓고”로 손보면 됩니다. 보기글에서는 글쓴이가 나이가 위인 어른들을 가리키기에, 이럴 때에는 “아주머니들이 손수 이름을 써 넣고”나 “아주머니들이 스스로 이름을 써 놓고”나 “아주머니들이 당신 손으로 이름을 써 넣고”처럼 손보면 한결 나아요. “세 사람의 얼굴”은 “세 사람 얼굴은”이나 “세 분 얼굴은”으로 손질합니다.


  그나저나 이 글월에서는 “붉게 상기되기까지”가 얄궂습니다. 왜냐하면, 한자말 ‘상기(上氣)’는 “흥분이나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짐”을 뜻하거든요. “얼굴이 붉어짐”을 뜻하는 한자말 ‘상기’인 만큼 “붉게 상기되기까지”로 적으면 “붉게 얼굴이 붉어지기까지”라 말하는 꼴이에요.

 

 얼굴은 붉게 상기되기까지
→ 얼굴은 붉어지기까지
→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기까지
→ 얼굴은 붉은 빛이 되기까지
 …

 

  그런데 국어사전에서 ‘상기’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그녀는 황급히 오느라고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하고 “목소리와는 달리 붉게 상기돼 있었다” 같은 보기글이 나란히 실려요. 국어사전 보기글조차 얄궂게 겹말로 적은 꼴이에요. 더욱이, “목소리와는 달리 붉게 상기돼 있었다”라는 보기글은 소설쓰는 황순원 님 작품에서 따서 실었다고 해요. 소설쓰는 분마저 ‘상기’라는 한자말 뜻과 쓰임을 제대로 모르던 셈이에요.


  앞으로 이 국어사전 보기글은 바로잡힐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앞으로 이 국어사전을 들출 한국사람은 이 국어사전 보기글 또한 얄궂게 뒤틀린 줄 깨달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한국사람 스스로 ‘상기’라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살피며 뜻과 쓰임을 헤아리려 할까 궁금합니다. 애써 이 낱말 뜻과 쓰임을 헤아리려고 국어사전을 뒤적이면서, 한국말을 옳고 바르게 가다듬으려는 넋을 북돋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얼굴은 붉어집니다. 얼굴은 달아오릅니다. 얼굴은 홍당무가 됩니다. 얼굴에 붉은 꽃이 핍니다. 얼굴에 발갛게 노을이 듭니다. 얼굴은 노을빛으로 젖습니다.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합니다. 마음을 쓰고 마음을 씁니다. 사랑스럽게 나눌 말을 생각합니다. 즐겁게 주고받을 말을 가만가만 돌아봅니다. 내 마음은 아름답게 여밀 수 있습니다. 내 넋은 해말갛게 빛낼 수 있습니다. 내 이야기 싣는 글 한 줄은 고운 노랫가락처럼 울려퍼질 수 있습니다. (4345.6.12.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세 아주머니는 당신 손으로 이름을 써 놓고 바라보다가 얼굴이 붉어지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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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자, 시골 선생님 되다 - 조경선 교육산문집 살림터 참교육문예 4
조경선 지음 / 살림터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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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학교에서 어떻게 사나요
 [사랑하는 배움책 5] 조경선, 《서울 여자, 시골 선생님 되다》(살림터,2012)

 


- 책이름 : 서울 여자, 시골 선생님 되다
- 글 : 조경선
- 펴낸곳 : 살림터 (2012.6.10.)
- 책값 : 12000원

 


  학교에서는 ‘내가 어른이 되어 좋은 짝꿍을 보았’을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집에서는 ‘내가 만난 좋은 짝꿍과 사랑을 나누는 즐거움’이 어떠한가를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짝꿍하고 아이를 어떻게 낳느냐’를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집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짝꿍하고 낳은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길’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 큰딸이어서 더 많이 기대했다는 엄마는 끝까지 눈물을 많이 보이셨고, 고흥이라는 낯설고 먼 곳으로 가서 산다는 일방적인 결정에 섭섭함을 감추지 않으셨다. 부지런하고 깔끔한 엄마의 살림솜씨와 지원 덕분에 고생 한 번 없이 공부만 했었던 큰딸이었는데 농촌으로 시집가서 농사를 지으며 살겠다고 한 것이 큰 상실감을 주었다고 한다 … 우리 지역(전남 고흥)에서는 일 년에 몇 억 원씩 주고, 서울의 한 사교육업체 강사를 주말에 초빙해 성적이 우수한 200여 명의 중·고생을 대상으로 국·영·수 논술강의를 해 주고 있다 … 대학 진학을 위해 성적이 우수한 소수의 학생들에게는 막대한 예산을 붓고 있지만, 현재 대다수를 차지하는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한 배려는 왜 없는지 몹시 안타깝다 ..  (19, 64쪽)


  학교에서 푸름이한테 ‘성교육’을 시키곤 합니다. 학교 성교육 수업에서는 아이들한테 콘돔을 보여주거나 아예 주기도 한다지만, 막상 ‘사랑’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아이를 낳기 앞서 몸속에 열 달 돌보는 동안 아이 어머니와 아이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아이를 빚기 앞서 아이 어머니와 아이 아버지가 될 사람이 어떤 삶을 일구며 몸과 마음을 건사해야 좋은가를 이야기하지 않아요.


  이렇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 두 어버이가 아이를 낳고서 이 아이를 알뜰히 아끼고 따스히 사랑하며 예쁘게 보살피는 길을 들려주지 못합니다.


  고작 한다는 이야기라면 ‘육아휴직’쯤 될까요. 그런데, 육아휴직은 며칠쯤 얻어야 할까요. 육아휴직은 누가 받아야 할까요. 육아휴직이란 무엇이고, 보육시설은 무엇일까요. 아이를 튼튼하고 씩씩하며 아름답게 보살피는 몫은 육아휴직과 보육시설로 다 풀거나 맺을 만할까요.


  그렇지만 나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던 때에 이런 대목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무렵에는 나 또한 입시문제와 입시공부에 갇혔습니다. 고단한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올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슬픈 짐과 무게를 어떻게 건사해야 할까 알지 못했습니다.


  어른들은 그저 똑같이 말할 뿐이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여섯 해를 내 삶에서 지우라고, 여섯 해를 지우고 나면 앞으로는 ‘밝은 앞날’이 있으리라고. 여섯 해 동안 시키는 대로 하고, 오로지 시험문제만 풀면, 비로소 그 다음부터는 ‘너희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 전문계 학생들은 인문계 고등학생과는 다른 소질과 특징이 있는데,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너무 획일적이고 단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를 못한다는 것은 공부 말고 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인데 말이다 … 전자과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삼성에 취업하고, 그러면 학교 정문 앞에 현수막을 단다. ‘축 삼성 취업’이라며 학교 홍보에 열을 올린다. 하얀 가운과 마스크 등으로 온몸을 무장하고, 담임교사나 학부모라도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했던 그곳에서 아이들은 발암물질에 심각하게 노출되고 있었다 … 한글날의 위기는 나의 내부로부터 나온다. ‘영어 식민주의’를 비난하면서도 자녀의 영어교육을 걱정하는 이중적인 대한민국 엄마인 나를 고백하며 반성하고자 한다 ..  (22, 43, 78쪽)


  나는 어른들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른들 말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내 삶에서 여섯 해를 지울 수 있을까요. 내가 백 살을 살는지 이백 살을 살는지 모르나, 나는 고작 열 해를 살거나 스무 해만 살는지 몰라요. 어쩌면 열여섯이 끝일 수 있어요. 한 해이고 두 해이고 나한테는 더없이 아름다운 날입니다. 하루이고 이틀이고 나한테는 가없이 고마운 날입니다. 한 해는커녕 하루도 지울 수 없는데, 어떻게 여섯 해 내 삶을 지우면서 시험공부만 해야 하나요.


  더구나, 여섯 해를 지우고 살더라도, 나중에 나한테 ‘밝은 앞날’이 반드시 찾아오리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손꼽는 대학교에는 위에서 몇 퍼센트만 들어갈 수 있는데다가, 모든 푸름이가 대학생이 될 수 있지 않아요. 대학생이 될 수 있는 푸름이는 40퍼센트입니다. 요새는 숫자가 늘어 60퍼센트까지 될는지 모르지만, 고등학교를 마친 두 아이 가운데 하나는 곧바로 ‘사회’에 뛰어들어 ‘일자리’를 찾아야 해요. 그런데 중·고등학교 여섯 해를 지우라니요.


  대학교에 안 들어갈 아이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어떻게 보내라고요. 고등학교만 마치고 살아갈 아이들한테 머나먼 앞날은 어떻게 꿈꾸거나 꾀하라고요. 한 사람으로 우뚝 서서 슬기로우며 사랑스레 살아갈 길은 어떻게 찾거나 일구라고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답답합니다. 한국땅에서 ‘고등학교 마친 모든 푸름이가 대학교에 갈 수 있다’면 모르되, 하나는 가도 하나는 못 간다 하는데, 서로 피가 튀기도록 시험공부만 시키면서 하나는 대학교에 보내고 하나는 대학교에 안 보낸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대학교에 간 아이들은 어떤 삶을 누리면서 이 나라 이웃과 동무를 생각하고, 대학교에 안 가거나 못 간 아이들은 어떤 삶을 즐기면서 이 나라 이웃과 동무를 헤아려야 할까요.


..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는 가정방문도 언제나 인상적이다. 잠시나마 학교를 벗어나 수평선 따라 소풍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섬에 학교가 사라지고, 육지와 연결되는 다리 공사를 한다는 소식에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왜 동생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집에 가야 하는 일이 생기는지, 어떻게 유치원 교사의 꿈을 꾸었는지 가만히 엿보게 된다. 매화 꽃망울이 터진 등암의 골목길을 지나 들어간 마당 한쪽에 아직도 깨끗한 우물이 있다. 그 물로 손빨래를 하는 집 마루에 앉아 이 두 형제들이 어떻게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는지,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떤 마음을 가진 분들인지 바라보게 한다 … 업무가 산더미 같았다. 그렇게 여유가 없이 아이들을 만나니, 아이들도 내 말에 상처를 받았다 ..  (90, 244쪽)


  예나 이제나 나는 한결같이 생각합니다. 대학입시는 ‘입시학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정규수업만 해야 올바르고, 정규수업은 중학교나 고등학교만 마친 아이들이 어디에서라도 스스로 씩씩하고 슬기로우며 착하고 참다우며 어여쁘고 즐겁게 삶을 일구는 길을 보여주거나 이끌거나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교과서가 부질없다고 생각합니다. 교과서를 쓸 까닭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사와 학생 모두 온몸으로 삶을 배우고 온마음으로 삶을 생각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교사 자리에 선 사람은 아이들에 앞서 사회와 삶을 조금 더 누린 만큼, 이렇게 몸과 마음으로 겪은 삶을 아이들이 앞으로 맞아들일 때에 어떠한 빛과 눈길과 넋으로 따사로이 껴안도록 하면 좋을까 하고 어깨동무할 노릇이라고 봅니다.


  아이들이 더 높다 하는 대학교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어버이라면, 아이들을 학교에 넣으면 안 된다고 느낍니다. 더 높다 하는 대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싶다면, 아이들을 어릴 적부터 입시학원에 넣으면 됩니다. 아이들한테 시험문제만 가르치고 생각하도록 이끌어, 열두어 살부터 대입시험을 치르도록 하면 됩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어야 하면 검정고시를 치르면 되지요. 굳이 여섯 해나 학교에서 아이들 푸른 삶을 썩혀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을 학교에 넣는다 하면, 학교가 어떤 배움터가 되도록 어버이 또한 슬기와 힘을 갈무리해야 좋을까 하고 생각해야지 싶어요. 학교가 학교다울 수 있도록 어버이는 몸과 마음으로 사랑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농촌의 아이들은 서울이라는 도시로 가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곳은 오히려 경쟁에서 낙오되면 절망이 가득한 소비적인 곳이다. 다시 고흥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안함이 느껴졌다 … 우리는 아이들이 조금만 크면 도시의 학교로, 학교 기숙사로 멀리 떠나보낸다. 진로와 공부에 대한 요구로 갈등을 일으키고, 노동에 대한 체험과 가족에 대한 이해 없이 점점 멀어져 가게 한다 … 짧은 시간 안에 빨리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정성껏 시를 음미하지 못한 채 작품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작품의 특징을 알려고 한다 ..  (107, 136, 193쪽)


  아이들은 좋은 밥을 먹어야 합니다. 비싼 밥이 아닌 좋은 밥을 먹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밥을 차려서 내놓는 어버이나 어른’들 따사로운 사랑이 깃든 좋은 밥을 먹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좋은 옷을 입어야 합니다. 비싼 옷이 아닌 좋은 옷을 입어야 합니다. 가게에서 비싼값 치르며 장만한 옷이 아니라, 어버이나 어른이 사랑을 들여 빚은 좋은 옷을 좋은 마음으로 받아서 입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좋은 넋과 얼을 배워야 합니다. 높은 지식이나 빠른 정보가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삶을 짓고 사랑을 지으며 꿈을 짓도록 돕는 좋은 넋과 얼을 배워야 합니다. 손재주를 가르칠 학교가 아니에요. 자격증을 가르칠 학교 또한 아니에요. 학교는 교사와 학생 모두 사랑을 누리면서 사랑을 빛내는 배움터예요.


.. 그 이후로 백일장의 입상 결과보다는 글을 쓰는 과정이 한 아이에게 더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우리 아이들에게 저마다의 삶은 모두 문학 재료가 된다 … 교사도 학부모들도 적극적으로 대학 평준화를 위한 활동을 함께 해 나갔으면 좋겠다 … 무한경쟁보다는 함께 배우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학급이 되면 좋겠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무려 9시간을 한 교실에서 보낸다. 그래서, 따뜻하고 즐거운 학급이 되었으면 한다 … 오늘은 전국학력평가를 보는 날이다. 낮은 등급이 나오는 학생들에게는 벌을 줘야 한다는 선생님들의 의견이 있었다 ..  (23, 36, 83, 101, 125쪽)


  나는 학교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대목을 배웠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학교 밖에서 내 삶을 이끌 이야기를 배우려고 애쓸 수 있었구나 싶어요. 책을 찾아 읽으며 내가 배우고픈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좋은 이웃과 동무를 사귀며 내가 알고픈 이야기가 무엇이었나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옆지기를 만나고 아이들을 낳으면서, 내가 그동안 못 배운 대목이 무엇이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내가 못 배운 만큼 우리 아이들한테 가르치거나 느끼도록 이끌 만한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삶을 배우자면 어버이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부터 스스로 삶을 짓고 사랑을 지으며 꿈을 짓자면, 어버이인 나는 하루하루 어떤 넋과 얼로 누려야 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피아노학원에 다녀야 피아노를 칠 수 있지 않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사진강좌를 들어야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글쓰기학원을 다녀야 글을 쓸 수 있지 않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집일’과 ‘아이키우기’를 학원으로나 학교에서나 따로 배울 수 없습니다.


  오직 삶이 있습니다. 오직 싱그러운 삶이 있어요. 오직 사랑스럽고 싱그러워 빛나는 삶이 있어요.
  삶을 생각합니다. 삶을 사랑할 길을 생각합니다. 삶을 사랑하며 나와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 모두 즐겁게 어깨동무할 길을 생각합니다.


.. 하지만 다른 반 담임선생님들 중에는 독서를 하지 못하게 하고, 영어와 수학 문제 풀이만이 공부라고 말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다 … 객관식 문제 푸는 공부 기계가 되어 1등급이 된다고 한들, 앞으로 이 아이들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는 걸까 … 교사와 학생들은 왜 이렇게 뼈빠지게 학교에 남아 서로를 통제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늦게까지 학교에 불이 켜져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  (128, 146, 149쪽)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교까지 마친 다음, 전라남도 고흥으로 시집을 오며 고흥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지내는 조경선 님이 쓴 교사일기를 그러모은 《서울 여자, 시골 선생님 되다》(살림터,2012)를 읽습니다. 조경선 님 교사일기에 드러나는 고흥 시골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고는 거의 모두 고향인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간다고 합니다. 대학교에 가든 일자리를 찾아 공장으로 가든, 으레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간대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고등학교까지 다닌 시골마을 고흥에는 열아홉 스물 스물하나 스물둘 같은 젊고 푸른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할 테지요. 왜냐하면, 오늘날 고등학교 가운데 시골 아이들한테 농사짓기나 고기잡이를 가르치는 데는 아주 적어요. 논밭과 바다가 있는 시골마을 고흥에서조차 아이들이 ‘슬기로운 흙일꾼’이 되거나 ‘아름다운 고기잡이’가 되는 길을 이야기하지 않아요.


  풀약과 비료와 항생제 없이 흙과 사람과 지구별을 골고루 살리는 흙일꾼 참길을 들려주는 학교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어린 새끼는 바다로 돌려보내고,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뿐 아니라, 바다 둘레에 발전소 따위 안 지으며 깨끗하게 건사하는 넋을 북돋우는 고기잡이 사랑길을 보여주는 학교는 어디에서 만나야 할까요.


  조경선 님은 국어교사가 되어 고등학교 아이들이랑 문학을 노래하는 사랑을 아주 조그맣게 나눕니다. 조경선 님 둘레에 있는 다른 분들은 어떤 교사가 되어 고등학교 아이들이랑, 또 중학교 아이들이랑, 또 초등학교 아이들이랑, 어떤 꿈과 사랑을 날마다 어떤 빛깔과 무늬로 예쁘게 지으며 하루를 빛낼까요. 시골마을 시골학교에서 시골아이 사랑하는 시골교사는 어떤 웃음과 어떤 삶으로 어떤 시골얘기를 엮을 수 있을까요. (4345.6.1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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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2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2-06-12 12:17   좋아요 0 | URL
앗, 그렇군요.
헐레벌떡 바로잡았습니다.
고마워요~ ㅠ.ㅜ
 


 송림공부방 소식지와 둘째 아이 (도서관일기 2012.6.10.)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서재도서관 넷째 교실을 갈무리하면서 내 오래된 물건과 예전 신문글과 여러 가지 물건을 들여다본다. 다른 세 교실은 내 책들로 꾸미고, 넷째 교실은 내 물건과 묵은 신문과 온갖 자질구레하다 싶은 물건으로 꾸민다. 어찌 보면 참 자질구레하달 수 있는데, 이 자질구레한 짐을 이제껏 끌어안고 용케 살았다. 짧으면 서너 해짜리 자질구레한 물건이요, 길면 스무 해가 넘는 자질구레한 물건이다. 어느 물건은 내 국민학생 때 것이니까 서른 해를 묵었고, 어느 물건은 내 아버지 것이니까 마흔 해를 묵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스무 살 즈음 된다면, 이즈막에 건사한 자질구레한 물건조차 그무렵에는 스무 해나 묵은 어떤 이야기가 되겠지. 스무 해 뒤에는 내 아버지 물건은 우리 아이들한테 예순 해 묵은 할아버지 이야기가 될 테고.


  그런데 이런저런 자질구레하다는 물건은 쓰레기통에 넣으면 그냥 쓰레기이다. 따로 건사해서 상자에 담아, 살림집 옮길 때마다 낑낑대며 지고 날랐으니 쓰레기 아닌 어떤 삶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된다.


  오늘은 어느 해묵은 상자에서 인천 송림동에 있던(또는 아직 있는) ‘송림공부방’ 소식지 하나 나온다. 〈솔밭아이들〉이라 이름붙은 이 소식지를 낸 공부방은 2012년에도 그대로 살았을까. 1988년이나 1989년에 공부방 교사가 등사판으로 만들어 나누던 소식지였을 텐데, 어떻게 이 소식지가 내 자질구레한 물건 사이에 깃들 수 있었을까. 일손을 멈추고 한참 들여다본다. ‘4332.4.18.해.창영동 아벨서점’이라 적은 글월이 있다. 곧, 내가 이 소식지를 4332년, 이른바 1999년에 인천 배다리 헌책방 〈아벨서점〉에서 장만했다는 소리인데, 아마 이 공부방에 아이를 보낸 어느 집에서 이런저런 책과 함께 이 소식지를 묶어 밖에 내놓아 헌 물건으로 버렸다가 이래저래 흐르고 흘러 헌책방까지 들어왔겠지. 신문이나 잡지와 함께 묶여 폐휴지로 버려졌을 작은 소식지인데, 이런 작은 소식지 하나 알뜰히 건사해 헌책방 책시렁 한쪽에 얌전히 꽂아 주었기에, 나는 이 작은 소식지를 고마우면서 즐겁게 돈 몇 푼 치러 장만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식지는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어지면서 인천과 인천 송림동과 인천 송림동 송림공부방을 떠올릴 누군가한테 좋으면서 애틋하고 그리우면서 반가운 이야기 한 자락으로 스밀 수 있겠지.


  한참 소식지를 들여다보다가 아이들 웃음소리가 나기에 골마루를 바라본다. 둘째 아이가 뚜벅뚜벅 어설피 걸음을 옮긴다. “아버지, 보라가 걸어요.” 하고 첫째 아이가 말한다. 돌날에는 그토록 걸어 보라 해더 안 걷더니, 돌을 지나고부터 제법 씩씩하게 여러 걸음 뗀다. 그래, 신나게 걸으렴. 씩씩하게 걸으렴. 머잖아 뛰고 달리면서 네 누나하고 훨훨 하늘도 날아다니면서 온누리를 사랑으로 보살펴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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