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책읽기
순천에 있는 헌책방으로 책마실을 다녀오는 길, 시골마을로 들어가는 저녁버스는 벌써 끊겼기 때문에 택시를 불러서 탄다. 택시 일꾼이 튼 라디오에서는 요즈음 가뭄이 대단하다는 이야기가 흐른다. 보령과 홍성 언저리 어디메에서는 사천 억원이나 들여 농업용수 댈 시설을 짓는다 하더니 몇 해가 지나도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보령에 지은 화력발전소가 물을 얼마나 쓰고, 이 화력발전소가 보령뿐 아니라 둘레 충청남도를 얼마나 망가뜨리는가 하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벙긋하지 못한다. 충청도에 숱하게 많은 공장과 골프장이 이 가뭄에도 물을 얼마나 펑펑 쓰는가 하는 이야기는 조금도 읊지 않는다.
시골택시는 금세 우리 마을에 닿는다. 나는 내린다. 책으로 꽉 차 무거운 가방을 어기적어기적 메고 논 사잇길을 지나 대문을 연다. 고즈넉한 우리 마을에는 개구리 노랫소리만 가득하다. 논 사이사이 도랑을 흐르는 물줄기를 내려다본다. 지난가을부터 올여름까지 이 도랑 물줄기가 끊긴 일을 본 적 없다. 우리 마을도 이웃 마을도 이웃에 이웃한 마을도 논물이나 밭물이 모자라다고 한 적이 없다고 느낀다. 지난겨울에 비나 눈이 하도 안 와서 마늘이 걱정스러웠다는 말이 몇 차례 있기는 했으나, 이렇게 걱정할 무렵에는 으레 비가 내려 주었다. 외려 비가 너무 잦아 마늘이 걱정스럽다는 말까지 나왔다.
전남 고흥에는 크고작은 못이 매우 많다. 마을마다 못이 어김없이 있다. 이렇게 못이 많은 시골도 드물지 않을까 생각한다. 식구들 다 함께 고흥으로 들어오고 나서 헌책방에서 ‘고흥을 이야기하는 묵은 책’을 틈틈이 찾아서 살피는데, 고흥은 먼먼 옛날에는 물이 모자라고 드문 고장이라고들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제 고흥에서 물이 모자라다는 말은 아무도 안 한다.
깊은 밤을 지나고 하얗게 밝는 새벽녘, 어린 제비들 날갯짓 익히느라 마당에서 부산을 떨며 노래하는 소리를 듣는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1980년대까지 고흥은 20만 안팎 살았다. 모두 흙을 일구거나 고기를 잡았다. 1970년대에도 이만 한 숫자였고, 1950∼60년대에는 이보다 좀 적기는 하더라도 얼추 이럭저럭 되었다. 1990년대로 접어들고 2000년대로 접어들며 10만으로 줄더니, 2010년대에는 7만조차 안 된다. 앞으로는 훨씬 더 줄어들리라.
고흥처럼 외진 시골마을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기 무섭게 도시로 떠난다. 도시로 한 번 떠난 아이들은 좀처럼 시골로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대학교를 다닌다는 핑계와 일자리를 찾았다는 까닭을 들며 모두 도시에서 문명과 물질을 누리느라 바쁘다. 돈을 벌어 돈을 쓰느라 바지런을 떤다.
고흥에는 골프장이 없다. 고흥에는 변변한 공장 하나 없다. 포스코에서 포항제철과 광양제철 전기를 댈 발전소를 짓는다며 고흥을 들쑤시기는 하나, 고흥은 온통 흙과 바다에 기대는 시골인 터라 발전소하고도 동떨어지고, 어떤 개발이나 관광하고도 멀찍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고흥에서 먹는샘물 파겠다며 땅속에다가 구멍을 크게 뚫는 일도 없다.
도시사람은 제주섬에다 구멍을 큼직하게 뚫고는 ‘제주 삼다수’를 아주 싼값으로 사다 마신다. 도시사람은 제주섬 곳곳에 골프장을 만들고는 농약과 물을 아주 어마어마하게 쓴다. 도시사람은 제주섬으로 나들이를 다니며 호텔이나 여관에서 물을 아주 펑펑 쓴다. 제주섬은 예부터 물이 드물며 물을 몹시 아끼는 곳이라 했지만, 오늘날 제주섬에서 물을 아끼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오랜 붙박이 흙일꾼 말고 제주섬에서 물을 누가 아낄까.
깊은 밤이 되어도 깜깜하기만 한 시골 고흥에서는 전기 쓸 일이 매우 드물다.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는 ‘냉각기’를 써야 하기에 물을 엄청나게 써댄다. 물건을 만들어 도시로 보내는 공장은 물을 어마어마하게 써댄다. 도시사람이 운동 삼아 다닌다는 골프장은 물을 억수로 써댄다. 숲과 멧자락을 밀어 마련하는 고속도로와 고속철도와 아파트는 이 둘레를 메마른 벌판으로 바꾼다.
곧, 가뭄이 든다 하면, 온통 도시 때문이다. 도시사람이 쓸 물건을 만드느라, 도시사람이 쉰다는 골프장을 건사하느라, 도시사람이 ‘깨끗한 물을 값싸게 사다 마시’도록 시골 한복판에 구멍을 뚫어 물을 퍼내느라, 도시사람이 자가용과 버스와 전철을 타고 돌아다니느라, 여기에 시골로 관광 다니는 사람들이 호텔이나 여관에서 물을 펑펑 써대느라, 시골에 가뭄이 들밖에 없다. 또 하나, 도시사람은 시골사람이 흙에서 거둔 곡식이나 ‘시골에서 키우는 고기짐승’을 돈을 치러 사다 먹는다. 곡식이든 짐승이든 물을 먹어야 자란다. 도시사람이 여느 살림집에서 수도꼭지를 더 튼다 해서 물을 더 흘리지 않는다. 도시라는 얼거리가 온 나라를 가뭄이 들게 할 뿐 아니라, 어느 시골마을은 아주 끔찍하게 메마른 땅이 되도록 내몰고 만다.
가뭄이라 한다. 그러면, 도시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가뭄을 그으려면 도시사람은 어떤 일을 해야 하지? 신문에 글을 싣고 방송에서 말을 보태면 가뭄을 적실 수 있을까? 바보스러운 공무원을 탓하고,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면 가뭄이 사라질 수 있을까? (4345.6.13.물.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