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말 손질 334 : 붉게 상기

 


자신들의 손으로 이름을 써 놓고 바라보던 세 사람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기까지 했다
《최수연-산동네 공부방》(책으로여는세상,2009) 165쪽

 

  “자신(自身)들의 손으로 이름을 써 놓고”는 “제 손으로 이름을 써 놓고”나 “저희 손으로 이름을 써 놓고”로 손보면 됩니다. 보기글에서는 글쓴이가 나이가 위인 어른들을 가리키기에, 이럴 때에는 “아주머니들이 손수 이름을 써 넣고”나 “아주머니들이 스스로 이름을 써 놓고”나 “아주머니들이 당신 손으로 이름을 써 넣고”처럼 손보면 한결 나아요. “세 사람의 얼굴”은 “세 사람 얼굴은”이나 “세 분 얼굴은”으로 손질합니다.


  그나저나 이 글월에서는 “붉게 상기되기까지”가 얄궂습니다. 왜냐하면, 한자말 ‘상기(上氣)’는 “흥분이나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짐”을 뜻하거든요. “얼굴이 붉어짐”을 뜻하는 한자말 ‘상기’인 만큼 “붉게 상기되기까지”로 적으면 “붉게 얼굴이 붉어지기까지”라 말하는 꼴이에요.

 

 얼굴은 붉게 상기되기까지
→ 얼굴은 붉어지기까지
→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기까지
→ 얼굴은 붉은 빛이 되기까지
 …

 

  그런데 국어사전에서 ‘상기’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그녀는 황급히 오느라고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하고 “목소리와는 달리 붉게 상기돼 있었다” 같은 보기글이 나란히 실려요. 국어사전 보기글조차 얄궂게 겹말로 적은 꼴이에요. 더욱이, “목소리와는 달리 붉게 상기돼 있었다”라는 보기글은 소설쓰는 황순원 님 작품에서 따서 실었다고 해요. 소설쓰는 분마저 ‘상기’라는 한자말 뜻과 쓰임을 제대로 모르던 셈이에요.


  앞으로 이 국어사전 보기글은 바로잡힐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앞으로 이 국어사전을 들출 한국사람은 이 국어사전 보기글 또한 얄궂게 뒤틀린 줄 깨달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한국사람 스스로 ‘상기’라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살피며 뜻과 쓰임을 헤아리려 할까 궁금합니다. 애써 이 낱말 뜻과 쓰임을 헤아리려고 국어사전을 뒤적이면서, 한국말을 옳고 바르게 가다듬으려는 넋을 북돋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얼굴은 붉어집니다. 얼굴은 달아오릅니다. 얼굴은 홍당무가 됩니다. 얼굴에 붉은 꽃이 핍니다. 얼굴에 발갛게 노을이 듭니다. 얼굴은 노을빛으로 젖습니다.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합니다. 마음을 쓰고 마음을 씁니다. 사랑스럽게 나눌 말을 생각합니다. 즐겁게 주고받을 말을 가만가만 돌아봅니다. 내 마음은 아름답게 여밀 수 있습니다. 내 넋은 해말갛게 빛낼 수 있습니다. 내 이야기 싣는 글 한 줄은 고운 노랫가락처럼 울려퍼질 수 있습니다. (4345.6.1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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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주머니는 당신 손으로 이름을 써 놓고 바라보다가 얼굴이 붉어지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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