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혼자 차지하는 마음

 


  면소재지에서 택시삯 고작 오천 원 들여 오 킬로미터 떨어진 발포 바닷가로 마실을 갈 수 있습니다. 걸어서 찾아간다든지 늘 집 앞에서 창문만 열면 바라볼 수 있다든지 하지는 않으나, 이렇게 가까운 곳에 다도해국립공원 바다를 만날 길이 있으니 좋습니다. 마땅한 일이기는 한데, 우리 식구는 이렇게 시골 터전을 신나게 즐기고 싶기에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이제껏 따로 꿈꾸지는 못했지만, 이제부터 우리 또다른 보금자리가 바닷가에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고 꿈꿉니다. 고즈넉한 멧자락 사이에 포근하게 안긴 호젓한 보금자리에서 살다가, 때때로 바다가 그리우면 바닷가에 건사한 좋은 보금자리로 옮겨 며칠이고 지낸다면 무척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바닷마을 한켠에 저희 보금자리를 따로 마련할 수 있어요. 이렇게 되면, 우리는 서로서로 오가면서 좋은 삶을 가없이 누릴 수 있겠지요.


  그리 이르지 않은 아침이지만, 발포 바닷가에 아무도 없습니다. 택시에서 내리니 오직 우리들만 있습니다. 사람도 없고 자동차도 없습니다. 물결이 일렁이며 내는 솨솨 촤르르 소리만 가득합니다. 바다를 우리 네 식구만 한껏 누리네, 하고 생각합니다. 이 둘레에서 바다를 누리는 사람은 우리뿐이네, 하고 생각합니다.


  바닷가 모래밭을 따라 빙 두룬 후박나무와 소나무도 언제나 이 바다를 누리겠지요. 논밭 가득한 마을 한복판에서는 바람이 거의 안 불지만, 바닷가에서는 바닷바람이 그치지 않습니다. 낮밥을 먹으며 후박나무를 올려다봅니다. 열매가 까맣게 잘 익었습니다. 바닷가 둘레에서 살아가는 멧새는 틈틈이 후박나무로 찾아들어 까만 열매를 맛나게 먹겠지요. 새들도 후박열매를 먹는 동안 기쁘게 바다를 누릴 테지요.


  신을 벗습니다. 맨발로 모래밭을 걷습니다. 바닷물 앞에 섭니다. 스스럼없이 발을 담급니다. 찌르르 시원한 바닷물 느낌이 발가락 끄트머리부터 머리카락 끄트머리까지 올라옵니다. 이 바닷물은 이곳부터 어디까지 이어졌을까요. 이 바닷물은 지구별을 어떠한 품으로 곱게 안아 줄까요. 이 바닷물에 깃들어 숨을 쉬는 목숨은 얼마나 많을까요.


  너른 바다는 사람들 누구나 너른 넋이 되고 너른 사랑이 되어 너른 꿈을 빚으라고 속삭입니다. 따순 바다는 사람들 모두 따순 얼이 되고 따순 마음이 되어 따순 이야기를 나누라고 노래합니다.


  내 좋은 이웃과 동무들이 좋은 바다를 가까이할 수 있기를 빕니다. 내 좋은 곁사람들이 텔레비전이나 셈틀이나 보고서나 자동차나 고속도로나 높은 건물이나 아파트만 들여다보지 말고, 상큼하고 해맑으며 파랗게 빛나 하늘과 하나되는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기를 빕니다. (4345.6.2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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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흘 만에 다시 바다로

 


  사흘 만에 다시 바다로 간다. 아이들 재채기는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사흘 앞서도 아이들이 갤갤거리기는 하나, 맑은 해님을 믿으며 마실을 갔다. 오늘도 맑은 해님을 믿으며 마실을 간다.


  군내버스 때에 맞추어 짐을 꾸려 나오는데, 버스 타는 데에 닿기 앞서 그만 버스가 훌쩍 떠난다. 사흘 앞서보다 3분이나 일찍 왔다. 우리가 더 일찍부터 짐을 꾸렸으면 안 놓쳤을 테지만, 어쩐지 서운하다. 그러나 대수로이 여기지 않는다. 면소재지까지 버스삯 2200원이지만, 택시를 불러서 타도 4000원. 네 식구 타는 택시이니까 비싸다는 생각을 안 한다.


  이제 한창 물놀이철이 될 테니 사람들이 제법 찾아올는지 모르겠구나 싶다. 칠월을 넘어서면 아마 발디딜 틈이 없을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마구 찾아와서 복닥거리기 앞서 우리 마을 바닷가를 실컷 즐기자고 생각한다.


  면소재지에서 5.1킬로미터 떨어진 바다까지 금세 닿는다. 바닷가에는 아무도 없다. 그야말로 아무도 없다. 아침 열한 시 반 즈음 바다로 와서 노는 사람은 없으려나. 꾸려 온 도시락이랑 면소재지에서 장만한 먹을거리를 내놓는다. 천천히 신나게 먹으며 바닷바람을 쐰다. 물결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바다로 뛰어든다. 모두를 따사로이 품는 바다라 하지만, 오늘만큼은 온통 우리들 품에 안긴다. (4345.6.2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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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미셸 투르니에 지음, 에두아르 부바 사진,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뒷모습>이라는 한국 번역책에는 아무 점수를 주고 싶지 않다. 이제 이만큼 팔렸으면 표지갈이를 해야 할 노릇 아닌가 생각한다. 벌써 표지갈이를 했는지 모르겠다만, 표지갈이를 했으면, 인터넷책방 표지 사진을 바꾸어 주길 바란다. 참말, 한국 출판사는 무슨 생각으로 사진책 표지를 함부로 바꾸어 붙이며 장삿속에 눈이 멀어야 하는가. 내가 붙인 '별 셋'은 한국 번역책에 붙이는 점수일 뿐, 프랑스 사진책 《Vues de dos》에는 아주 마땅히 '별 다섯'을 붙인다.

 

..

 

 

 

 


 사람들 사이를 떠도는 빛과 그림자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59] 에두아르 부바(Edouard Boubat), 《Vues de dos》(Gallimard,1981)

 


  《뒷모습》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이 2002년에 한국말로 나옵니다(현대문학북스 펴냄). 이 책은 1923년에 태어나 1999년에 숨을 거둔 프랑스 사진쟁이 에두아르 부바(Edouard Boubat) 님이 찍은 사진에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 님이 글을 붙여 1981년에 처음으로 태어납니다. 한국에는 미셸 투르니에 님 ‘글이름’이 매우 높습니다. 퍽 예전부터 미셸 투르니에 님 책이 옮겨지고 읽혔습니다. 이와 달리 에두아르 부바 님 ‘사진이름’은 무척 낮습니다. 먼 옛날이든 가까운 오늘날이든 에두아르 부바 님 사진책이나 사진밭이나 사진넋이나 사진삶을 다루는 글이나 책은 좀처럼 선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한국에서 바라보기에는 이와 같을 뿐, 프랑스에서는 에두아르 부바 님 사진책이나 사진밭이나 사진넋이나 사진삶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널리 북돋우리라 생각합니다.


  사진책 《Vues de dos》(Gallimard,1981)가 프랑스에서 처음 나올 적에는 ‘발레하는 가시내가 나비 같은 날개를 붙인 옷을 입고 춤추는 모습’이 책겉에 나옵니다. 《Vues de dos》가 《뒷모습》이라는 이름으로 2002년에 한국에 옮겨질 적에는 ‘웃몸 벗어 젖가슴 훤히 드러난 사람 뒷모습’이 책겉에 나옵니다. 사진을 찍은 에두아르 부바 님은 1999년에 벌써 숨을 거두었으니, 당신 사진책이 다른 나라에서 옮겨질 적에 어떤 모습으로 옮겨지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허락도 못 하고 반대도 못 합니다. 그저 나올 뿐입니다. 한국땅에서는 ‘웃몸 벗어 젖가슴 훤히 드러난’ 사진을 책겉에 내세워야 한결 돋보이면서 더욱 눈부시게 팔린다 할 만한지 모릅니다. 이렇게 도드라지도록 하지 않고서야 사람들이 이 사진책을 손에 쥘 일이 없을는지 모릅니다. 제아무리 아름답다 싶은 사진도, 제아무리 사랑스럽다 싶은 사진도, 제아무리 훌륭하다 싶은 사진도, ‘읽어 주는 사람’이 없다면 쓸쓸할는지 모르잖아요.

 

 

 

 

 


  나는 한국판 수필책 《뒷모습》은 장만하지 않습니다. 나는 프랑스판 사진책 《Vues de dos》를 장만합니다. 한국에서는 《뒷모습》을 ‘수필’ 갈래로 나눕니다. 아니, ‘수필’ 아닌 ‘에세이’ 갈래로 나누더군요. 아무래도 미셸 투르니에 님 글이름 때문에 수필, 아니 에세이 갈래로 나누었구나 싶어요.


  그러나 나는 《Vues de dos》를 수필책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나한테 《Vues de dos》는 사진책일 뿐입니다. 미셸 투르니에 님은 에두아르 부바 님이 찍은 사진을 보면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글을 붙였다고 합니다. 곧, 에두아르 부바 님이 찍은 사진이 없다면 미셸 투르니에 님은 《뒷모습》에 실리는 글을 쓸 수 없었어요. ‘글이 있어 이 글에 맞추어 찍는 사진’이 아니라, ‘사진이 있어 이 사진에 맞추어 쓰는 글’이에요. 곧, 어느 모로 보나 사진책입니다.


  사진책 《Vues de dos》를 장만하면서 생각합니다. 나는 프랑스말을 읽지 못하기에 사진책 《Vues de dos》를 장만하면, 미셸 투르니에 님이 붙인 글은 한 줄조차 못 읽습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하나도 아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로서는 에두아르 부바 님 사진을 읽고 싶을 뿐이요, 사진읽기를 하려고 《Vues de dos》를 장만했어요. 에두아르 부바 님이 찍은 사진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에두아르 부바 님이 바라본 삶을 하나하나 헤아립니다. 사진읽기를 즐기며 삶읽기를 누립니다. 삶읽기를 하면서 넋읽기를 하고 마음읽기를 합니다. 넋과 마음을 가만히 읽으면서 사랑과 꿈을 읽습니다.

 

 

 

 


  뒷모습은 뒷모습입니다. 뒷모습은 앞모습이 아닙니다. 앞모습도 뒷모습도 옆모습도 사람들 모습입니다. 일하는 모습과 놀이하는 모습과 밥먹는 모습과 잠자는 모습 모두 사람들 모습입니다. 어느 한 가지 모습만 ‘그이 모습’이라고 못박을 수 없습니다. 모든 모습이 알뜰살뜰 모여 ‘그이 모습’을 이룹니다. 앞모습을 바라보며 이러한 삶을 살핀다면, 뒷모습을 들여다보며 저러한 삶을 돌아봅니다. 춤추는 모습이나 노래하는 모습을 마주하며 새삼스럽구나 싶은 삶을 느낍니다. 사진마다 다 다른 이야기가 담기고, 다 다른 이야기는 다 다른 우리들한테 다 다른 빛을 베풉니다.


  사람들 사이를 떠도는 빛을 읽습니다. 사람들 둘레를 맴도는 그림자를 읽습니다. 해가 비치면서 그림자가 집니다. 사람도 그림자를 빚고, 벼포기도 그림자를 빚습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도 땅바닥에 조그맣게 그림자를 빚습니다. 나무도 자동차도 풀도 아파트도 그림자를 빚습니다. 어느 그림자는 서로를 따스히 보듬고, 어느 그림자는 으스스하게 추운 바람을 일으킵니다. 어느 그림자는 고개를 땅바닥에 붙여야 겨우 알아볼 만하고, 어느 그림자는 멀디먼 데까지 꼬리를 잇습니다.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어 아름다운 꿈을 꿉니다. 사랑스럽게 살아가고 싶어 사랑스러운 꿈을 꿉니다. 스스로 바라는 대로 꿈을 꿉니다. 스스로 누리고픈 삶을 좇아 하루하루 살림을 일굽니다. 누군가는 사진쟁이로 이름을 날리고 싶어 미국 뉴욕으로 달려갑니다. 누군가는 ‘사진쟁이로 이름을 날리’는 뜻이 아니라, ‘내 가슴부터 촉촉히 적실 사진을 누리’고 싶어 내 삶을 촉촉히 적시는 길을 걷습니다. 세계사진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겨야 ‘사진쟁이로 이름을 날리’는 일이 되지는 않는다고 느낍니다. 사진쟁이로 이름을 날린들 하나도 대수롭지 않다고 느낍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부터 스스로 좋아할 만하고, 내 둘레 고운 벗님 한 사람한테 웃음과 눈물을 나눌 수 있다면 넉넉할 만한 사진이 되리라 느낍니다.

 

 

 

 

 


  이름난 비평가나 교수한테서 추천글을 받아야 멋진 사진책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비평이나 저런 평론에 다루어져야 훌륭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따순 햇살은 어떤 비평이나 평론이 없어도 언제나 따숩게 모두한테 찾아옵니다. 새와 개구리와 벌레가 들려주는 고운 노래는 이런 비평이나 저런 평론이 없어도 늘 맑게 모두한테 찾아옵니다.


  사진도 그림도 글도 모두 같다고 느껴요. 사진도 밥도 사랑도 모두 같다고 느껴요. 삶에서 우러나와 즐겁게 찍습니다. 삶에서 우러나와 기쁘게 누립니다. 사랑 담은 밥 한 그릇처럼 사랑 담은 사진 한 장이 어여쁩니다. 사랑 담은 손길처럼 사랑 담은 사진 한 장이 따사롭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빛과 그림자가 예쁘게 섞입니다. 저기 씩씩하게 걸어오는 아이 발 밑으로 고운 그림자가 씩씩한 빛무늬처럼 나란히 움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난하지도 않고 가멸차지도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슬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착하고 참다우며 예쁩니다. (4345.6.29.쇠.ㅎㄲㅅㄱ)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최종규 / 2012)

 

덤 하나. 아마존에서 48달러에 살 수 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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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35) 손맛

 

“맛있어. 엄마가 절여 주던 게 생각나네.” “어머니 손맛이라. 우리 집은 훨씬 새콤했던 것 같은데.”
《오사무 우오토/최윤선 옮김-현미 선생의 도시락 (1)》(대원씨아이,2010) 41쪽

 

  “절여 주던 게”는 “절여 주던 일이”나 “절여 주던 먹을거리가”로 다듬습니다. “새콤했던 것 같은데”는 “새콤했던 듯한데”나 “새콤했구나 싶은데”로 손봅니다.

 

  골목마실이나 동네마실을 하다 보면 가끔 ‘엄마손 분식’이라는 이름을 단 밥집을 만납니다. 바깥에서 사먹을 때에도 ‘집에서 엄마가 손수 해 주는 맛’을 찾는 사람이 많기에 이와 같은 밥집 이름이 나오겠구나 싶은데, 이제까지 ‘아빠손 분식’이라는 이름은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들은 손맛이라 할 때에 으레 ‘엄마 손맛’이나 ‘할머니 손맛’이라고만 할 뿐, ‘아빠 손맛’이나 ‘할아버지 손맛’은 아예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같은 밥집 이름이란 ‘남녀차별’일 수 있고, 어느 한편으로는 ‘문화’라 여길 수 있습니다. 집일은 오로지 여자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우리 스스로 제대로 못 느끼는 말마디라 할 수 있으며, 집일을 누가 하느냐라는 테두리를 넘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밥을 하는 어버이 느낌’을 ‘엄마 손맛’이라는 말마디에 담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오늘날에도 ‘엄마 손맛’을 이야기할 만한 우리 삶터일까요. 먼먼 앞날에도 ‘엄마 손맛’을 남달리 떠올리거나 되새길 만한 이 나라 터전인가요.


  손을 놀려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일이 얼마나 되는가요. 손을 써서 흙을 일구는 사람은 얼마나 되지요. 찬거리를 마련할 때에 아이와 손을 잡고 오붓하게 걸어서 저잣거리를 다녀옵니까, 자가용을 타고 부릉부릉 달려서 짐칸에 가득 싣고 돌아옵니까. 집에서 먹을거리를 할 때에 온갖 전기제품을 써서 하는가요, 내 손을 써서 하는가요. 손을 잃고 몸을 잊은 오늘날인데, 말마디로만 ‘엄마 손맛’을 들먹이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내 삶을 내 온몸과 온마음을 바치며 꾸린다기보다 돈벌이와 도시 물질문명에 맞추는 판에, ‘손맛’이든 ‘엄마 손맛’이든 얼마나 찾아보거나 느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손맛 / 아버지 손맛
 누이 손맛 / 오빠 손맛

 

  국어사전에서 ‘손맛’을 찾아보면 모두 네 가지 뜻풀이가 달립니다. 첫째, “손으로 만져서 받는 느낌”입니다. 둘째, “낚시를 할 때에 고기가 미끼를 물어서 손으로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셋째, “먹을거리를 할 때에 느끼는 깊거나 더 좋은 맛”입니다. 먹을거리는 손으로 하기 때문에, 솜씨가 남다르거나 훌륭할 때에 쓴다 합니다. 넷째, “손으로 맞는 맛”이라 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다섯째 뜻풀이를 살짝 더하고 싶습니다. “손을 써서 일을 하며 몸으로 받는 느낌”이라고.


  지난날에는 없던 ‘손빨래’ 같은 낱말이 생기고 ‘손글씨’라는 낱말이 태어나며 ‘손품’을 가리키는 새말이 끝없이 나옵니다. 예전에는 모든 일이 ‘손일’이었지만, 이제는 ‘손일’이 거의 없습니다. 예전에는 마땅히 손일을 하며 ‘손맛(5)’을 느꼈으나, 이제는 손일이 거의 사라진 탓에 손맛을 따로 느끼고 맙니다. 아니, 따로 손맛을 찾아 기계나 전기제품을 멀리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자가용이든 대중교통이든 모두 멀리하며 자전거를 탄달지, 아예 두 다리로 걷기만 한다든지 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제주섬에 ‘올레’가 태어나듯, 지난날에는 따로 없던 ‘골목마실’이나 ‘동네마실’을 따로 즐기듯, 요즈음 우리 삶에서는 ‘손수’ 하는 일이 새삼스레 불거집니다. ‘몸소’ 땀을 쏟으며 부대끼는 일이 남다른 즐거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손맛 . 손질 . 손일 . 손품 . 손수 . 손길 . 손힘
  손자국 . 손빨래 . 손글씨
  손멋 . 손말 . 손글 . 손빛 . 손나눔 . 손내음 . 손사랑

 

  손으로 내는 맛이 손맛이기에, 손으로 내는 멋이라면 ‘손멋’입니다. 다른 사람 손을 빌지 않고 나 스스로 힘쓰면서 일구는 새로운 멋이라 할 때에 ‘손멋’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국어사전에는 이러한 낱말은 안 실립니다만.


  손으로 하니 손빨래요, 손으로 적어 손글씨인 만큼, 소리내어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손짓으로 나누는 말은 ‘손말’입니다. 사람들이 손을 놀려 글을 쓴다면 ‘손글’입니다. 글쟁이들은 누구나 ‘육필(肉筆) 원고(原稿)’라 읊으며 글멋을 뽐내는데, 육필 원고란 한 마디로 ‘손글’입니다. 손수 쓴 글이니까요.


  손놀림이 아름답거나 손맵시가 고운 사람을 보노라면, 이네들 손매무새에서 맑고 밝은 빛깔을 느낍니다. 마치 무지개라도 드리운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손빛’입니다. 손에서 빛이 나듯 아리땁거든요.


  까마득한 일손이지만 서로서로 손을 맞잡으며 나눌 수 있습니다. 더디 가든 오래 걸리든 차근차근 나누면서 즐겁게 일동무가 되곤 합니다. 이리하여 우리들은 ‘손나눔’을 합니다. 내 손품을 팔며 손나눔을 하고, 내 주머니를 털어 돈을 나누면서 손나눔을 합니다.


  좋은 사람하고 손을 잡고 거닐면 손에서 손으로 짜르르 하게 기쁘고 반가운 느낌이 옮아 옵니다. 어여쁜 사랑이 손과 손으로 옮겨 가고 옮겨 옵니다. 서로서로 손 하나로 사랑을 나누고, 나란히 손내음을 따스하게 받아들입니다.

 

 손 + (무엇)
 (무엇) + 손

 

  손을 덜 쓰는 새 누리라 할 만한 오늘날입니다. 손을 놀리지 않아도 돈벌이를 하고 밥을 얻어먹으며 집을 마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거들먹거리기까지 하는 오늘날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리품을 안 팔거나 몸뚱이를 놀리지 않아도 잘 사는 사람이 많은 오늘날입니다. 그러나, 이런 오늘날이기 때문에 더더욱 손품과 다리품과 몸품이 알뜰하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이 생겨납니다. 손아귀에 꾸덕살이 배도록 힘쓰는 사람이 나타나고 손마디에 갖은 생채기가 나도록 애쓰는 사람이 곳곳에 보입니다.


  땅을 사랑하라는 내 손이요, 내 이웃과 동무와 식구 모두를 따숩게 껴안으라는 내 손입니다. 이 손은 총칼이 아닌 호미와 낫을 쥘 때에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이 손은 자판보다 옆지기 손을 맞잡을 때에 그지없이 곱습니다. 이 손은 돈뭉치보다 눈물과 웃음을 쓰다듬을 때에 참으로 어여쁩니다. 이 손은 가방끈보다 내 이웃 손을 붙잡을 때에 둘도 없이 아리땁습니다.


  손을 잊을 때에는 내 삶을 잊고, 내 삶을 잊을 때에는 내 넋과 말을 나란히 잊습니다. 손을 잃을 때에는 내 길을 잃고, 내 길을 잃을 때에는 내 꿈과 뜻을 다 함께 잃습니다. 손과 손을 마주 잡으면서 찬손인 이웃이 따신손이 될 때까지 아끼고 보듬을 수 있기를 꿈꿉니다. (4342.12.27.해./4345.6.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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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 잡지 함께살기’ 3호로 《잃어버린 이야기 찾아 헌책방으로》를 만들었습니다. 이 책은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지킴이인 분한테만 보낼 부수만큼 만들었기에, 도서관 지킴이한테는 오늘과 내일 사이에 우체국에서 일반우편으로 부칩니다. 그래도 이 책을 궁금해 하는 분이 있을까 싶어, ‘서재도서관 지킴이’가 아닌 분들 가운데 받고 싶은 분이 있다면 딱 열다섯(15) 분만 주문을 받습니다. 더 팔고 싶어도 책이 없어서 더 팔 수 없습니다 ^^;;;;;

 


  《잃어버린 이야기 찾아 헌책방으로》는 오직 헌책방에서(때로는 도서관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책을 이야기합니다. 사이사이 헌책방 사진을 곁들입니다. 헌책방 사진은 쉰두 장쯤 넣었습니다. 책은 빡빡한 편집으로 256쪽이고, 원고지로 치면 1200장이 조금 넘습니다. 책값은 2만 원입니다. 일반우편으로 받으실 분한테는 제가 우표값을 내지만, 안전하게 택배로 받고 싶은 분은 택배 값이 2500원인 만큼, 1300원을 더 보태어 21300원을 계좌이체로 넣어 주시면 됩니다. 또는, ‘서재도서관 지킴이’가 새롭게 되어 주시면, 이 책부터 앞으로 펴낼 ‘1인 잡지 함께살기’를 한 해 동안 보내줍니다. ‘도서관 지킴이’ 이야기는 다음 글 (http://blog.aladin.co.kr/hbooks/5574927)에서 읽어 보셔요.

[우체국 계좌 : 012625-02-025891 최종규]

 


  《잃어버린 이야기 찾아 헌책방으로》 차례는 이렇습니다.

 


머리말 : 잃어버린 이야기 찾아 헌책방으로

 

ㄱ. 헌책방에서 만난 책으로 배우다
 어버이 성을 둘 다 쓴다고 평등이 아니지만
  : 오숙희, 《내가 만난 여자 그리고 남자》
 아이들을 사랑할 어른들 삶을 생각해
  : 이오덕, 《이 땅에 살아갈 아이들 위해》
 사랑하니까 알아야 할 사람과 삶
  : 황석영, 《사람이 살고 있었네》
 참외·바나나·아쮸끄림
  : 이외수, 《내 잠속에 비 내리는데》
 아픈 사람과 사랑하며 꾸리는 삶
  : 미우라 아야코, 《부부 이야기, 결혼을 앞둔 여성에게》
 내 하루를 빛내는 좋은 길
  : 박경리,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헌책방에서 자그마한 책 하나 찾아 읽기
  : 천상병, 《한낮의 별빛을 너는 보느냐》
 마음을 여는 이야기로 빚는 사랑
  : 쇼지 사부로, 《새와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
 영화를 삶으로 껴안으면 한결 따스하겠지
  : 이효인, 《영화여 침을 뱉어라》
 꿈을 찾아 먼길 떠나는 발걸음
  : 김찬삼, 《끝없는 여로, 세계일주무전여행기》
 고마운 삶을 고마운 말에 실어 고마운 책으로
  : 민영, 《내 젊은 날의 사랑은》
 시계 아닌 날씨를 보며 산다
  : 데오도라 크로버,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
 요리책과 밥책과 이야기책
  : 김옥희·김연희·김선희·김미원·김연미, 《수박 껍질과 하얀 절편》
 달과 얘기하고 장미와 말을 섞는
  : 이원수, 《시가 있는 산책길》
 ‘시’는 문학이지 ‘입시 문제’가 아닙니다
  : 김수영,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한 사람이 아끼거나 보듬을 책
  : 김남선, 《아이들 앞에 바로 서려는 어른의 이야기》
 딸내미 아빠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 송언, 《좋은 사람이 더 많은 세상》
 글을 쓰는 마음
  : 조성선, 《과학의 나무를 심는 마음》
 교사가 되고픈 사람이라면
  : 쯔보이 사까에(壺井榮), 《스물네 개의 눈동자》
 어린이한테 아름다운 삶을 보여줄 수 없을까
  : 오사다 아라타(長田 新), 《페스탈로찌》
 문학하는 삶과 공부하는 아이
  : 현진건, 《B舍監과 러브레터》
 집일을 하면서 무슨 책을 읽을 수 있나
  : 편집부 엮음, 《껍데기를 벗고서》
 학교는 너무 끔찍한 죽음터입니다
  : 파울로 프레이리 외, 《민중교육론, 제3세계의 시각》
 ‘역사를 움직인 책들’은 헌책방에서
  : 로버트 B.다운즈, 《역사를 움직인 책들》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이 읽게 도와준 책  주요섭, 《미완성》
 숨막히는 서울과 숨막는 도시
  : 막심 고리끼, 《나의 문학수첩》
 아이랑 옆지기랑 지내는 나날
  : 아이다 프루잍·닝 라오 타이타이, 《중국의 딸》
 다시 태어나는 책과 삶과 사람
  : 조반니 꽈레스끼, 《명랑한 돈 까밀로》
 지식이 아닌 삶으로 읽을 책과 말
  : 정재도, 《국어의 갈 길》
 학교를 박차고 나오며 읽던 시
  : 교육출판기획실 엮음, 《내 무거운 책가방》

 

ㄴ. 헌책방에서 만난 책으로 살다
 푸르지 않은 나라에 푸른 빛깔 책이란
  : 폴 T.아나스타스·존 C.워너, 《녹색화학》
 삶은 아름다운 사랑인가 쓰레기더미인가
  : 백민, 《문답으로 풀어 본 문학 이야기》
 헌책방 일꾼을 빨갱이로 모는 나라
  : 리영희, 《스핑크스의 코》
 헌책방과 혁명을 꿈꾸기
  : 김남주, 《시와 혁명》
 한국에서 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 임응식, 《현대한국사진가선 · 임응식》
 한국을 이야기하는 사진을 찍는다
  : 구와바라 시세이, 《촬영금지》
 한국사람이 안 쓴 한국 역사책
  : 가지무라 히데키, 《한국사입문》
 내 동무들 살림터는 어떤 곳일까
  : 윤정모, 《황새울 편지》
 역사는 뭐고, 문화는 뭐지?
  : 야나기 무네요시, 《다도와 일본의 美》
 일본에서 내는 책이랑 한국에서 내는 책이랑
  : 아리요시 사와코, 《複合汚染 (上·下)》
 아이들한테는 어른들 삶 그대로 물려줍니다
  : 알랭, 《교육에 관한 51장》
 사람이 뭔데  존 웨인스테인·하워드 알브레휘, 《닭 조나단》
 어린이마음이 되고 싶지 않은 어른들
  : 미국 수피즘 협회, 《꼬마 성자》
 사람이 사람답게 걷는 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길》
 책을 만드는 뜻과 얼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사외보, 《배움나무》
 책을 말하는 책이 없는 나라
  : 해적판, 《두뇌의 회전을 도우는 독서술》
 ‘4대강 반대’가 환경사랑은 아니지만
  : 나카이 타케시, 《녹색당》
 대통령이나 구청장을 뽑는 까닭
  : 표문태, 《버림받은 사람들》
 말을 섬기지 않으니 삶을 섬기지 못한다
  : 한국교열기자회, 《국어 순화의 이론과 실제》
 나비 없는 곳이란 사람이 살 수 없는 터
  : 栗田貞多男, 《ゼフィルスの林》
 아이한테 싣는 꿈 한자락  이승기, 《겨레의 꿈 과학에 실어》
 검은 땅에서 시커멓게 살아가는 사람들
  : 김재영·김종성, 《검은 산 검은 하늘》
 나는 무엇을 하면서 왜 살아가는가
  : 버나드 벤슨, 《평화》
 우리 나라에 우리 문화가 있을까
  : 조동일·김흥규, 《판소리의 이해》
 아이를 낳을 권리, 사람답게 살 권리
  : 버지니아 코이니, 《마가렛 생거, 이유있는 반항》
 책에 담긴 속마음을 읽기
  : 서갑숙,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시인 정희수, 장애인 정희수, 사람 정희수
  : 정희수, 《서울의 양심》
 내가 읽는 그림과 사람
  : 김호연, 《한국민화》
 사랑하는 사람들 삶이란
  : 정옥순 엮음, 《애정론, 젊은 날들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 내 하루일까
  : 박병태, 《벗이여, 흙바람 부는 이곳에

 

ㄷ. 헌책방에서 만난 책으로 사랑하다
 태어나는 책, 살아가는 책, 죽는 책
  : 다이쿠바라 야타로, 《티베트 의학의 지혜》
 삶을 보도록 하는 배움터는 어디에
  :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엮음, 《광부 아저씨와 꽃게》
 내가 걸어온 길을 조용히 돌아본다
  : 강수지, 《어두운 마음에 불을 켠 이름 하나》
 스무 살 색시 양희은과 마흔 살 아줌마 양희은
  : 양희은,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
 살림은 가난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노래벗
  : 폴 란돌미, 《슈베르트》
 싸움판에서 길어올린 평화꽃
  : 사이토 지로, 《아톰의 철학》
 헌책방에서 애 엄마가 알아본 시집
  : 문두근, 《아, 우리 비행기는 무사하다》
 ‘가난’이라는 고마운 축복을 내버린 우리들
  : 김영교, 《가난한 마음》
 몸이 아플 때에 이웃을 사랑한다
  : 미우라 아야꼬, 《기도해 보시지 않을래요?》
 고운 꽃, 고운 사람, 고운 책
  : 사기사와 메구무,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

 

맺음말 : 참말 작은 목소리

 

..

 


머리말
 잃어버린 이야기 찾아 헌책방으로


  잃어버린 이야기를 찾아서 헌책방을 찾아다니며 살아갑니다. 잃어버린 이야기란 잊혀진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바로 내가 오늘을 살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내가 오늘 살아가는 이야기는 내가 글로 적지 않으면 잃어버린 이야기가 됩니다. 내가 오늘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적더라도 누군가 책으로 내 주지 않는다면 잃어버린 이야기가 됩니다. 내가 오늘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적은 다음 누군가 책으로 내 주었으나, 두루 팔리거나 읽히지 못하면 이내 잃어버린 이야기가 됩니다.


  잃어버린 이야기이기에 뜻이 없거나, 잃어버린 이야기이기 때문에 외려 뜻이 있지 않습니다. 우리 역사나 문화나 예술로 보았을 때에는 틀림없이 잃어버린 이야기가 될 테지만, 한 사람 삶으로 돌아볼 때에는 다른 사람이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늘 살아숨쉬는 하루하루입니다. 그러니까, 밤이며 새벽이며 잠을 깨어 아이 오줌기저귀를 가느라 늘 잠이 모자란 채로 살아가는 내 하루하루를 누가 알아주건 말건 나로서는 살아숨쉬는 하루하루이지 잃어버린 하루하루가 아닙니다.


  헌책방을 찾아다니면서 헌책을 사서 읽습니다. 헌책방에서 만나는 헌책들 가운데에는 널리 사랑받은 책이 있고, 예나 이제나 두루 사랑받는 책이 있습니다. 그러나 꽤나 많은 책은 처음 나올 때이든 오늘날이든 그닥 사랑받지 못하는 책입니다.


  생각해 보면, 예나 이제나 그리 사랑받지 못한 책이 많은 헌책방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헌책방들이 헌책을 사고팔면서 책방살림을 꾸리는 한편 당신들 집살림을 꾸렸으니까, 몹시 놀랄 만합니다. 제법 사랑받는 책도 꾸준하게 들고 나니까 이런 책들을 사고팔아 돈을 번다 할 텐데, 하나도 사랑받지 못한 책들을 매우 많이 사고팔면서 꾸리는 책방살림이요 집살림을 이어온 헌책방 일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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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누리에는 온갖 헌책방 온갖 헌책이 있고, 온갖 헌책마다 온갖 이야기가 담깁니다. 이 헌책들을 찬찬히 돌아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 다른 곳에서 저마다 다 다른 사랑과 꿈을 생각하겠지요.


  헌책방이니 마땅히 헌책이 있고, 새책방에는 으레 새책이 있습니다. 새로 나왔으니 새책이고, 한 번 읽히거나 때때로 버려지고 만 책이니 헌책입니다. 새로 나왔기 때문에 더 돋보인다거나 값있는 책이 아닙니다. 한 번 읽히고 지나간 책이거나 때때로 버려진 책이라 값없는 책이 아니에요.


  책이란, 책을 마주하여 읽는 사람 몫입니다. 책을 마주하여 읽는 사람이 사랑을 담아 얼싸안을 수 있으면 새책이건 헌책이건 내 삶을 고이 밝힙니다. 책을 맞아들여 즐기는 사람이 믿음을 실어 어깨동무할 때에는 좋다 하는 책이건 나쁘다 하는 책이건, 나로서는 알알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책은 한 줄을 읽으면서도 알찬 열매를 얻습니다. 책은 첫 줄부터 끝 줄까지 속속들이 읽어치웠으나 막상 아무런 열매를 못 얻기도 합니다. 몇 쪽만 읽은 책이라 제대로 못 읽은 책이 아닙니다. 몇 차례 되풀이해서 읽었기에 잘 읽은 책이 아니에요. 다문 한두 줄을 읽은 책일지라도 이 한두 줄을 내 가슴에 아로새기면서 내 삶을 어여삐 일구는 사람은 책을 잘 읽은 사람입니다. 책은 백만 권을 읽었다 하지만 이 백만 권에 이르는 책이 들려주는 삶과 보람과 땀과 사랑을 내 삶으로 곰삭이지 못하는 사람은 책을 잘못 읽은 사람이에요.


  이름난 대학교에 들어가야 ‘성공한 고등학교 삶’이 아닙니다. 중간시험이나 기말시험 성적이 많이 뒤처진다고 ‘실패한 고등학교 삶’이 아니에요. 저마다 내 하루하루를 어떻게 사랑하며 얼마나 따스히 어루만지느냐에 따라 ‘좋은 내 고등학생 나날’이나 ‘기쁜 내 열다섯 살 한때’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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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92년부터 동네 헌책방을 찾아다녔습니다.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이 없어지기를 바랐으나 제 작은 힘으로는 없앨 수 없었고, 어줍잖으나마 한 주에 두 차례씩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땡땡이를 치면서 동네 헌책방을 찾아가서 너덧 시간씩 배곯으며 책을 읽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동네 헌책방 할아버지는 고등학생인 저한테 술 한 잔을 따라 주면서 마시라 했습니다. 마침 동네 헌책방 할아버지는 ‘없는 손님’을 기다리면서 하루 일을 마감하다가 술을 자시던 때였는데, ‘어차피 고등학교 마치면 맨날 술 마실 텐데 조금 일찍 마시면 어때?’ 하면서 자꾸 술잔을 내미셨습니다. 그렇지만 할배 술잔을 물리쳤고,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는 할배가 내미는 술잔을 마음껏 받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날마다 술을 즐기던 헌책방 할배는 책을 읽지 않았다 할 만합니다. 책이 무언지 모른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헌책방 할배는 오늘도 그곳에서 헌책방 살림을 꾸립니다. 벌써 예순 해 넘는 나날을 헌책방 책먼지를 먹으면서 일합니다. ‘책을 모른다 할 만한’ 할배가 당신 밥벌이 하고 가게삯 내며 헌책방을 이끌었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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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집에서 옆지기와 아이들하고 살아가는 동안 늘 생각합니다. 어린 아이들도 ‘사람책’이고 옆지기도 ‘사람책’이며 술 좋아하는 헌책방 할배도 ‘사람책’입니다. 당신들 삶이나 이야기를 어느 누구 하나 글로 써 주지 않으며, 글로 써 준들 책으로 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과 옆지기와 헌책방 할배는 모두 더없이 고운 사람책이라고 느낍니다.


  오늘날 도시에서, 게다가 큰도시에서, 이 가운데 서울에서 살아가는 분들은 책을 읽기는 읽지만, 종이책을 읽을 뿐입니다. 머잖아 종이책은 무너지고 전자책이 뜬다 하는데, 전자책이 뜨더라도 예나 이제나 도시사람들은 ‘사람책’을 잊는다고 느낍니다. 사람책은 안 읽거나 못 읽으면서, 그예 지식으로 가득한 책만, 지식책만 읽는구나 싶어요.


  저로서는 종이책이 무너지든 전자책이 뜨든 그리 마음쓰지 않습니다. 전자책이 나오더라도 저로서는 어김없이 종이책을 사서 읽을 테니까요. 무엇보다, 종이로 된 책인 종이책이기보다, 사람들 삶이야기를 담은 ‘책’, 이른바 ‘참책’을 사서 읽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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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다운 책일 때에는 종이책이건 전자책이건, 또 사람책이건 하나같이 아름다운 책이라고 느낍니다. 투박하게 흙을 일구면서 살아가는 마을 이웃들 입에서 솔솔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구성진 책이라고 느낍니다. 아이들이 재잘재잘 떠들며 노는 하루하루가 고운 책이라고 느낍니다. 옆지기가 뜨개질을 하며 말없이 앉은 모습이 착한 책이라고 느낍니다.

인쇄소에서 표지 사고를 내는 바람에, 책씌우개 종이를 새로 만들어서 하나하나 씌우느라

아주 죽어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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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2-07-02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내주신 책은 아껴가며 잘 읽고 있습니다~
마늘은 다 까서 장아찌 담그려고 식초물에 담궈 놓았고요~~
맛있게 되면 조금 보내드릴까요?? ㅎㅎㅎ

파란놀 2012-07-02 19:33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즐겁게 맛나게 드셔요~ ^^

장아찌 좋겠네요 @.@
마늘은 주고받을 수 있다지만
장아찌는 택배로 주고받기가... @.@

아무튼, 먼 나들이가 될 테지만
고흥으로 나들이 한 번 오셔요~~ ^^

책읽는나무 2012-07-03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 잘 받았어요.
귀한 책
매번 받으면서 좀 죄송하단 생각이 들기도 하고
좀 그래요.^^;;

잘 읽겠습니다.

파란놀 2012-07-03 08:25   좋아요 0 | URL
아... 미안하다는 마음까지야 ... ^^;;;

나중에 '지킴이 평수'를 늘리시거나
'지킴이가 될 다른 이웃'을 널리널리 소개해 주셔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