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35) 손맛

 

“맛있어. 엄마가 절여 주던 게 생각나네.” “어머니 손맛이라. 우리 집은 훨씬 새콤했던 것 같은데.”
《오사무 우오토/최윤선 옮김-현미 선생의 도시락 (1)》(대원씨아이,2010) 41쪽

 

  “절여 주던 게”는 “절여 주던 일이”나 “절여 주던 먹을거리가”로 다듬습니다. “새콤했던 것 같은데”는 “새콤했던 듯한데”나 “새콤했구나 싶은데”로 손봅니다.

 

  골목마실이나 동네마실을 하다 보면 가끔 ‘엄마손 분식’이라는 이름을 단 밥집을 만납니다. 바깥에서 사먹을 때에도 ‘집에서 엄마가 손수 해 주는 맛’을 찾는 사람이 많기에 이와 같은 밥집 이름이 나오겠구나 싶은데, 이제까지 ‘아빠손 분식’이라는 이름은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들은 손맛이라 할 때에 으레 ‘엄마 손맛’이나 ‘할머니 손맛’이라고만 할 뿐, ‘아빠 손맛’이나 ‘할아버지 손맛’은 아예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같은 밥집 이름이란 ‘남녀차별’일 수 있고, 어느 한편으로는 ‘문화’라 여길 수 있습니다. 집일은 오로지 여자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우리 스스로 제대로 못 느끼는 말마디라 할 수 있으며, 집일을 누가 하느냐라는 테두리를 넘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밥을 하는 어버이 느낌’을 ‘엄마 손맛’이라는 말마디에 담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오늘날에도 ‘엄마 손맛’을 이야기할 만한 우리 삶터일까요. 먼먼 앞날에도 ‘엄마 손맛’을 남달리 떠올리거나 되새길 만한 이 나라 터전인가요.


  손을 놀려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일이 얼마나 되는가요. 손을 써서 흙을 일구는 사람은 얼마나 되지요. 찬거리를 마련할 때에 아이와 손을 잡고 오붓하게 걸어서 저잣거리를 다녀옵니까, 자가용을 타고 부릉부릉 달려서 짐칸에 가득 싣고 돌아옵니까. 집에서 먹을거리를 할 때에 온갖 전기제품을 써서 하는가요, 내 손을 써서 하는가요. 손을 잃고 몸을 잊은 오늘날인데, 말마디로만 ‘엄마 손맛’을 들먹이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내 삶을 내 온몸과 온마음을 바치며 꾸린다기보다 돈벌이와 도시 물질문명에 맞추는 판에, ‘손맛’이든 ‘엄마 손맛’이든 얼마나 찾아보거나 느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손맛 / 아버지 손맛
 누이 손맛 / 오빠 손맛

 

  국어사전에서 ‘손맛’을 찾아보면 모두 네 가지 뜻풀이가 달립니다. 첫째, “손으로 만져서 받는 느낌”입니다. 둘째, “낚시를 할 때에 고기가 미끼를 물어서 손으로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셋째, “먹을거리를 할 때에 느끼는 깊거나 더 좋은 맛”입니다. 먹을거리는 손으로 하기 때문에, 솜씨가 남다르거나 훌륭할 때에 쓴다 합니다. 넷째, “손으로 맞는 맛”이라 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다섯째 뜻풀이를 살짝 더하고 싶습니다. “손을 써서 일을 하며 몸으로 받는 느낌”이라고.


  지난날에는 없던 ‘손빨래’ 같은 낱말이 생기고 ‘손글씨’라는 낱말이 태어나며 ‘손품’을 가리키는 새말이 끝없이 나옵니다. 예전에는 모든 일이 ‘손일’이었지만, 이제는 ‘손일’이 거의 없습니다. 예전에는 마땅히 손일을 하며 ‘손맛(5)’을 느꼈으나, 이제는 손일이 거의 사라진 탓에 손맛을 따로 느끼고 맙니다. 아니, 따로 손맛을 찾아 기계나 전기제품을 멀리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자가용이든 대중교통이든 모두 멀리하며 자전거를 탄달지, 아예 두 다리로 걷기만 한다든지 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제주섬에 ‘올레’가 태어나듯, 지난날에는 따로 없던 ‘골목마실’이나 ‘동네마실’을 따로 즐기듯, 요즈음 우리 삶에서는 ‘손수’ 하는 일이 새삼스레 불거집니다. ‘몸소’ 땀을 쏟으며 부대끼는 일이 남다른 즐거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손맛 . 손질 . 손일 . 손품 . 손수 . 손길 . 손힘
  손자국 . 손빨래 . 손글씨
  손멋 . 손말 . 손글 . 손빛 . 손나눔 . 손내음 . 손사랑

 

  손으로 내는 맛이 손맛이기에, 손으로 내는 멋이라면 ‘손멋’입니다. 다른 사람 손을 빌지 않고 나 스스로 힘쓰면서 일구는 새로운 멋이라 할 때에 ‘손멋’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국어사전에는 이러한 낱말은 안 실립니다만.


  손으로 하니 손빨래요, 손으로 적어 손글씨인 만큼, 소리내어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손짓으로 나누는 말은 ‘손말’입니다. 사람들이 손을 놀려 글을 쓴다면 ‘손글’입니다. 글쟁이들은 누구나 ‘육필(肉筆) 원고(原稿)’라 읊으며 글멋을 뽐내는데, 육필 원고란 한 마디로 ‘손글’입니다. 손수 쓴 글이니까요.


  손놀림이 아름답거나 손맵시가 고운 사람을 보노라면, 이네들 손매무새에서 맑고 밝은 빛깔을 느낍니다. 마치 무지개라도 드리운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손빛’입니다. 손에서 빛이 나듯 아리땁거든요.


  까마득한 일손이지만 서로서로 손을 맞잡으며 나눌 수 있습니다. 더디 가든 오래 걸리든 차근차근 나누면서 즐겁게 일동무가 되곤 합니다. 이리하여 우리들은 ‘손나눔’을 합니다. 내 손품을 팔며 손나눔을 하고, 내 주머니를 털어 돈을 나누면서 손나눔을 합니다.


  좋은 사람하고 손을 잡고 거닐면 손에서 손으로 짜르르 하게 기쁘고 반가운 느낌이 옮아 옵니다. 어여쁜 사랑이 손과 손으로 옮겨 가고 옮겨 옵니다. 서로서로 손 하나로 사랑을 나누고, 나란히 손내음을 따스하게 받아들입니다.

 

 손 + (무엇)
 (무엇) + 손

 

  손을 덜 쓰는 새 누리라 할 만한 오늘날입니다. 손을 놀리지 않아도 돈벌이를 하고 밥을 얻어먹으며 집을 마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거들먹거리기까지 하는 오늘날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리품을 안 팔거나 몸뚱이를 놀리지 않아도 잘 사는 사람이 많은 오늘날입니다. 그러나, 이런 오늘날이기 때문에 더더욱 손품과 다리품과 몸품이 알뜰하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이 생겨납니다. 손아귀에 꾸덕살이 배도록 힘쓰는 사람이 나타나고 손마디에 갖은 생채기가 나도록 애쓰는 사람이 곳곳에 보입니다.


  땅을 사랑하라는 내 손이요, 내 이웃과 동무와 식구 모두를 따숩게 껴안으라는 내 손입니다. 이 손은 총칼이 아닌 호미와 낫을 쥘 때에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이 손은 자판보다 옆지기 손을 맞잡을 때에 그지없이 곱습니다. 이 손은 돈뭉치보다 눈물과 웃음을 쓰다듬을 때에 참으로 어여쁩니다. 이 손은 가방끈보다 내 이웃 손을 붙잡을 때에 둘도 없이 아리땁습니다.


  손을 잊을 때에는 내 삶을 잊고, 내 삶을 잊을 때에는 내 넋과 말을 나란히 잊습니다. 손을 잃을 때에는 내 길을 잃고, 내 길을 잃을 때에는 내 꿈과 뜻을 다 함께 잃습니다. 손과 손을 마주 잡으면서 찬손인 이웃이 따신손이 될 때까지 아끼고 보듬을 수 있기를 꿈꿉니다. (4342.12.27.해./4345.6.2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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