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2.6.21.
 : 길죽음 참새 한 마리

 


- 한낮에 자전거를 몬다. 한낮에 아이들을 수레에 태우고 자전거마실을 할라치면, 마을 어르신들이 “저 예쁜 애들을 (햇볕에) 태우네.” 하고 말씀들 하신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햇볕에 좀 타면 어떤가. 아니, 아이들은 햇볕에 타면서 뛰놀아야 아이들이 아닐까. 해를 조금 쐰대서, 해를 조금 본대서, 아이들한테 나쁠 일이 있을까 헤아려 본다. 잘 모르겠다. 아이들이 해를 자꾸 쐬지 못하니, 아이들이 해를 자꾸 보지 못하니, 아이들이 참말 나빠지지 않느냐 싶다. 초등학교이고 중학교이고 고등학교이고 아이들한테 해를 보여주지 않는다. 유치원이고 어린이집이고 아이들이 해를 느끼도록 이끌지 않는다. 해가 좋으니 시골이고, 시골이기에 해가 좋다고 느낀다. 아이도 어른도 이 해를 마음껏 누려야지 싶다.

 

- 자전거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가에 쓰러진 참새 한 마리 보인다. 멀리에서도 참새 한 마리 자동차에 치여 죽었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 숨을 훅훅 몰아쉬면서 자전거를 세운다. 다리를 쉬면서 참새 주검 앞에 선다. 가벼운 주검을 살며시 든다. 집에서 나오는 길에는 못 보았으니, 자동차에 치여 죽은 지 얼마 안 되었으리라. 들판에서 먹이 될 무언가 찾다가 그만 자동차에 치였겠지. 자동차가 워낙 뜸한 시골이라 넋 놓다가는, 어쩌다 나타난 자동차에 깜짝 놀라 갑자기 날갯짓을 한다고 하다가 그만 자동차 앞으로 날아서 자동차 머리에 꽝 하고 받혔겠지. 참새 한 마리 치고 간 자동차는 몰랐을까. 느끼지 못했을까. 참새가 워낙 작으니 새 한 마리 친들 받는들 몰랐을까. 참새는 머리 한쪽이 찌부라진 채 죽었다. 아이들한테 참새 주검을 보여준다. 첫째 아이가 참새 주검을 쓰다듬어 주고 싶단다. 아이가 살살 쓰다듬는다. 나도 살살 쓰다듬는다. 마침 ‘열녀비’가 선 앞에서 죽었기에 열녀비 앞 풀섶에 살며니 놓는다. 네 몸은 슬프게 죽었어도 네 넋은 기쁘게 날갯짓하는 곳에 갔으리라 믿는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읽는나무 2012-07-03 07:25   좋아요 0 | URL
요즘 참새 멸종위기에 처해서 그런지 참새 구경 많이 못한다고들 하던데..
저런~~ㅠ
어찌 '열녀비'앞에서 죽었는지??

파란놀 2012-07-03 08:24   좋아요 0 | URL
시골에는 어디에나 아직 참새가 많지 싶어요. 그래도 농약 치는 마을에서는 참새도 몹시 힘들 테지요...

BRINY 2012-07-03 09:49   좋아요 0 | URL
저희 동네도 제비는 없어도 참새는 보이더라구요.
교회 옆에 참새가 모이는 나무가 있는데, 다 모이는 날은 아주 시끄러워요.

에고, 어쩌다 차에 치어서 죽었니, 참새야.

파란놀 2012-07-03 14:14   좋아요 0 | URL
고운 노랫소리로 생각해 주셔요~~~ :)
 

자전거쪽지 2012.7.1.
 : 자전거 타며 쓰는 시

 


- 저녁나절에 두 아이 태우고 면소재지를 다녀온다. 후덥지근한 여름에 아이들을 수레에 태우고 마실을 하면 땀이 철철 흐른다. 수레에 앉은 아이들은 어떠할까. 아버지가 싱싱 달리는 수레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구름 가득한 여름하늘 올려다보고는 눈과 마음을 쉴 만할까.

 

- 면소재지 가는 길에는 둘째가 꾸벅꾸벅 졸다가 누나 어깨에 기대어 잠든다. 다섯 살 누나는 두 살 동생이 바람 덜 쐬라며 옷을 잘 여미어 준다. 수레에서 동생이 잠들 적에 첫째 아이더러 옷을 목까지 올려 주라고 늘 말하곤 했는데, 곁에서 동생이 잠든 모습을 보고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동생을 잘 챙긴다. 그런데, 면소재지에 들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누나가 잠든다. 어째 조용한가 싶더니 첫째 아이가 고개를 까딱까딱 하다가는 동생 어깨에 기댄다. 동생은 누나 머리가 무거운가. 집에 거의 다 닿을 무렵 까악까악 하면서 운다. 마지막 비알에서 용을 쓰며 둘째 아이한테 얘기한다. “보라야, 네가 잠들 때면 누나가 언제나 어깨를 빌려 주거든. 너도 네 누나가 잠들었을 때에 어깨를 빌려 줘. 누나 몸이 무거워? 이제 집에 다 왔으니까 조금만 견디어 줘.”

 

- 이마를 타고, 등을 타고, 가슴을 타고, 팔뚝을 타고, 줄줄 흐르는 땀을 느끼면서 마음속으로 시를 읊는다. 바람아, 바람아, 네 가장 고운 목소리를 뽑아서, 이 자전거에 함께 타고 달리는 우리 예쁜 아이들한테, 네 가장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렴, 하고 시를 읊는다. 여러 차례 혼잣말로 되읊는다. 집에 가서 싯말을 가다듬자고 생각한다. 숨이 턱에 닿는다. 하늘을 보고 들판을 본다. 구름이 얼마나 넓고 두껍게 깔렸는가 올려다본다. 몸은 고단하지만, 아이들 데리고 자전거마실을 나와 이렇게 달리니까, 저 멧자락 꼭대기마다 가득가득 걸친 구름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차츰 푸른 빛이 짙어지는 들판을 느끼고, 푸른 들판 내음을 곱게 담아 부는 바람을 느낀다. 자동차 없는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리니 좋다. 이 길에 아이들과 함께 있으니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서울물 글쓰기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도 텃밭을 일굴 수 있습니다. 수많은 자동차가 끝없이 오가는 한켠에서도, 사람들 또한 끝없이 오가면서 담배를 태우고 침을 뱉으며 쓰레기를 버리는 한켠에서도, 얼마든지 텃밭을 일굴 수 있습니다. 비료도 농약도 안 쓰면서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도 텃밭을 일굴 수 있습니다.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광장 아닌 텃밭을 일구어 푸성귀를 거둘 수 있어요.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서울 한복판 텃밭에서 ‘무농약 유기농 친환경’으로 무나 배추나 상추나 오이나 토마토나 가지나 수박이나 고구마나 감자를 얻는다 할 때에, 이 ‘서울 한복판 텃밭’에서 거둔 푸성귀를 어떤 사람들이 즐겁게 마주하면서 맛나게 먹을까요.


  누구나 밥을 먹습니다. 누구나 상추를 먹고, 누구나 돼지고기를 먹으며, 누구나 쌀을 먹습니다. 그런데, 밥을 먹는 사람들 누구도 상추이든 돼지고기이든 쌀이든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일구는가를 제대로 헤아리지 않습니다. 상추밭 곁에 골프장이 있으면 상추는 싱싱하게 자랄 수 있을까요. 배추밭 곁에 원자력발전소뿐 아니라 화력발전소가 있으면 배추는 푸르게 자랄 수 있을까요. 당근밭 곁에 공항이나 우주기지가 있으면 당근은 알차게 여물 수 있을까요. 수박밭 곁에 송전탑이 서며 전깃줄 길게 드리우며 지나간다면 수박은 통통하게 여물 수 있을까요. 벼논이나 밀밭 옆으로 고속도로가 지나간다면 벼나 밀은 알곡이 튼튼히 맺을 수 있을까요. 배나무밭이나 포도나무밭 곁에 제철소이든 식품공장이든 화학공장이든 이런저런 공장이 있다면 배나 포도는 열매가 튼튼히 맺을 수 있을까요.


  논이나 밭 곁에는 골프장도, 발전소도, 송전탑도, 고속도로도, 공항도, 우주기지도, 공장도, 무엇무엇도, 여기에 쓰레기매립장이나 고속철도도, 주차장도 놓여서는 안 됩니다. 논이나 밭 곁에는 누구나 손으로 떠서 마실 만한 냇물이 흘러야 합니다. 논이나 밭 곁에는 숲이 있어 나무가 우거져야 합니다. 논이나 밭 곁에는 파랗디파랗게 넘실거리는 바다가 춤추어야 합니다. 논이나 밭 곁에는 군부대도 아파트도 국회의사당도 들어서면 안 됩니다. 논이나 밭 곁에 아스팔트 쫙 깔린 길이 나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논이나 밭에서는 어떤 사람이든 목숨을 살리는 밥이 태어나 자라기 때문입니다.


  시골에는 어떤 위해시설이나 위험시설도 놓여서는 안 됩니다. 시골에는 어떤 공장이나 시멘트집도 세워서는 안 됩니다. 시골에는 어떤 골프장이나 체육시설도 지어서는 안 됩니다. 시골에는 어떤 공항이든 항구이든 찻길이든 함부로 내서는 안 됩니다. 시골은 가장 깨끗한 보금자리여야 합니다. 시골은 가장 맑은 삶터여야 합니다. 시골은 가장 좋으면서 가장 사랑스러운 살림자리여야 합니다.


  누가 찾아와도 몸을 쉬고 마음을 다스릴 만한 데가 시골입니다. 왼쪽 사람이든 오른쪽 사람이든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넋을 북돋울 만한 데가 시골입니다. 어린이도 늙은이도 다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예쁜 이야기를 꽃피울 만한 데가 시골입니다.


  서울사람은 제주섬 맑은 물을 땅속 깊은 데에서 뽑아올려 마십니다. 서울사람은 동해 깊은 바다 맑은 물을 퍼올려 마십니다. 서울사람은 온 나라 가장 맑고 좋다 하는 샘물을 파헤쳐서 마십니다. 서울사람은 종로 밑바닥이나 압구정동 밑바닥에 구멍을 뚫어 물을 길어올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서울사람은 맑고 깨끗하며 좋은 물이 나는 시골마을마다 골프장·발전소·송전탑·고속도로·공항·우주기지·공장·쓰레기매립장·고속철도·군부대·놀이 시설·엑스포 시설·호텔 들을 끝없이 지으려 합니다. 시골마을을 망가뜨려서 서울사람한테 좋을 일이 한 가지라도 있을까 알쏭달쏭합니다. (4345.7.2.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함께 살아가는 말

 


  집에서 어린 아이들과 만화영화 〈미래소년 코난〉을 함께 봅니다. 디브이디에 담긴 만화영화 사이사이 주제노래가 흐릅니다. 주제노래를 아이하고 함께 부르는데, 노래 끝자락에 “헤엄쳐라 거친 파도 헤치고”라 나옵니다. 서른 해쯤 앞서를 돌이킵니다. 내가 열 살 즈음이던 때에는 이 노랫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텔레비전에 흐르니 그저 그대로 따라서 부를 뿐이었습니다. 나는 고등학생쯤 되고서야 비로소 국어사전을 들출 줄 알았고, 고등학생 적에 국어사전에서 ‘파도(波濤)’라는 낱말을 찾아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흔하게 쓰는 이 낱말이 한자말이었다니! 게다가 더 놀랄 만한 대목은 낱말풀이입니다. “파도 : 바다에 이는 물결”이라고 적힙니다. 어이없구나 하고 느끼며 국어사전에서 ‘물결’을 찾아봅니다. ‘물결’ 뜻풀이 두 번째에 “파도처럼 움직이는 어떤 모양이나 현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달립니다. 하나는 한자말이고 하나는 겨레말로 다를 뿐이지만 뜻이 같은 ‘파도’와 ‘물결’인데, ‘물결’을 풀이하면서 “파도처럼 움직이는 무엇을 빗대는 말”이라 가리킨다면 어떻게 헤아려야 좋을까요.


  아이하고 둘이 노래를 부를 때에 슬쩍 노랫말을 바꿉니다. “헤엄쳐라 거친 물결 헤치고”로. 그런데 이 다음에 나오는 노랫말에서 다시 걸립니다. 이 다음에는 “달려라 땅을 힘껏 박차고”라 나오는데, 곧장 “아름다운 대지는 우리의 고향”이라 나와요. ‘땅’을 박차다가 ‘대지(大地)’가 아름답다고 말해요. “넓고 큰 땅”을 가리킨대서 ‘대지’라 한다지만, ‘땅’이 가리키는 지구별 겉자리는 ‘작은 곳’을 가리키지 않아요. ‘땅’도 ‘대지’도 모두 “지구별 겉자리 너른 곳”을 가리켜요. ‘바다’도 ‘하늘’도 모두 너른 곳을 가리키지 좁은 어느 구석을 가리키지 않아요. 한겨레가 예부터 즐겨쓰던 낱말은 크기를 줄이거나 넓히지 않아요. 꾸밈없이 얼싸안거나 어루만지는 낱말이에요. 오늘날에 이르러 새롭게 가리키려 한다면 새로운 낱말을 빚겠다는 생각으로 ‘큰바다’나 ‘큰땅’이나 ‘큰하늘’처럼 적을 수 있겠지요. ‘너른바다’나 ‘너른땅’이나 ‘너른하늘’처럼 적을 수 있어요. 스스로 생각하면서 살찌울 때에 아름답게 살아나는 말이요 글이거든요. 나부터 곱게 생각하며 참답게 사랑할 때에 비로소 싱그러이 숨쉬는 말이면서 글이에요. 이리하여 나는 아이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다시금 노랫말을 살짝 바꿉니다. “달려라 땅을 힘껏 박차고. 아름다운 이 땅은 우리들 고향.”


  함께 살아가기에 함께 누릴 말을 생각합니다. 함께 살아가기에 함께 사랑할 말을 생각합니다. 내 모든 좋은 생각을 말 한 마디에 담고 싶습니다. 내 모든 좋은 사랑을 글 한 줄에 싣고 싶습니다. 내가 즐겁게 생각할 때에 즐거우면서 좋은 꿈이 말마디에 담긴다고 느낍니다. 내가 예쁘게 사랑할 적에 예쁘면서 좋은 넋이 글줄에 실린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내 하루를 즐겁게 일구면 내 마음에서 피어나는 말은 곱게 꽃을 피워 말꽃이 된다고 느껴요. 내 하루를 살갑게 보듬으면 내 생각에서 자라나는 글은 맑게 열매와 씨앗을 맺어 글씨(글씨앗)가 된다고 느껴요.


  함께 살아가며 어깨동무할 말을 생각합니다. 함께 살아가며 서로 사랑할 말을 생각합니다. 옳은 말과 바른 말도 좋으나, 언제나 즐겁게 누릴 말을 생각합니다. 착한 말을 생각하고 참다운 말을 생각합니다. 내 좋은 보금자리와 내 좋은 마을과 내 좋은 지구별을 아름답게 보살필 가장 아름다운 말을 생각합니다.
2012.7.2.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피아노 앞에 누운 책읽기

 


  끝방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려 사진 한 장 찍을까 생각하며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들어선다. 사진기를 들어 첫 장을 찍으려는데 피아노 걸상에 누워서 한손으로 피아노를 치던 첫째 아이가 아버지를 본다. 헤헤헤 웃으면서 일어나 반듯하게 앉는다. 그러고는 이제껏 반듯하게 앉아서 피아노를 치던 양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둘째 아이도 방 한쪽 끝에 드러누워 누나처럼 놀았지 싶다. 누워서 놀면 어떻고, 앉아서 놀면 어떠한가. 재미있게만 놀면 되지. 아이들아, 온 하루는 우리가 마음껏 누리는 가장 좋은 삶이란다. (4345.7.2.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