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집에서 어린 아이들과 만화영화 〈미래소년 코난〉을 함께 봅니다. 디브이디에 담긴 만화영화 사이사이 주제노래가 흐릅니다. 주제노래를 아이하고 함께 부르는데, 노래 끝자락에 “헤엄쳐라 거친 파도 헤치고”라 나옵니다. 서른 해쯤 앞서를 돌이킵니다. 내가 열 살 즈음이던 때에는 이 노랫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텔레비전에 흐르니 그저 그대로 따라서 부를 뿐이었습니다. 나는 고등학생쯤 되고서야 비로소 국어사전을 들출 줄 알았고, 고등학생 적에 국어사전에서 ‘파도(波濤)’라는 낱말을 찾아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흔하게 쓰는 이 낱말이 한자말이었다니! 게다가 더 놀랄 만한 대목은 낱말풀이입니다. “파도 : 바다에 이는 물결”이라고 적힙니다. 어이없구나 하고 느끼며 국어사전에서 ‘물결’을 찾아봅니다. ‘물결’ 뜻풀이 두 번째에 “파도처럼 움직이는 어떤 모양이나 현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달립니다. 하나는 한자말이고 하나는 겨레말로 다를 뿐이지만 뜻이 같은 ‘파도’와 ‘물결’인데, ‘물결’을 풀이하면서 “파도처럼 움직이는 무엇을 빗대는 말”이라 가리킨다면 어떻게 헤아려야 좋을까요.


  아이하고 둘이 노래를 부를 때에 슬쩍 노랫말을 바꿉니다. “헤엄쳐라 거친 물결 헤치고”로. 그런데 이 다음에 나오는 노랫말에서 다시 걸립니다. 이 다음에는 “달려라 땅을 힘껏 박차고”라 나오는데, 곧장 “아름다운 대지는 우리의 고향”이라 나와요. ‘땅’을 박차다가 ‘대지(大地)’가 아름답다고 말해요. “넓고 큰 땅”을 가리킨대서 ‘대지’라 한다지만, ‘땅’이 가리키는 지구별 겉자리는 ‘작은 곳’을 가리키지 않아요. ‘땅’도 ‘대지’도 모두 “지구별 겉자리 너른 곳”을 가리켜요. ‘바다’도 ‘하늘’도 모두 너른 곳을 가리키지 좁은 어느 구석을 가리키지 않아요. 한겨레가 예부터 즐겨쓰던 낱말은 크기를 줄이거나 넓히지 않아요. 꾸밈없이 얼싸안거나 어루만지는 낱말이에요. 오늘날에 이르러 새롭게 가리키려 한다면 새로운 낱말을 빚겠다는 생각으로 ‘큰바다’나 ‘큰땅’이나 ‘큰하늘’처럼 적을 수 있겠지요. ‘너른바다’나 ‘너른땅’이나 ‘너른하늘’처럼 적을 수 있어요. 스스로 생각하면서 살찌울 때에 아름답게 살아나는 말이요 글이거든요. 나부터 곱게 생각하며 참답게 사랑할 때에 비로소 싱그러이 숨쉬는 말이면서 글이에요. 이리하여 나는 아이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다시금 노랫말을 살짝 바꿉니다. “달려라 땅을 힘껏 박차고. 아름다운 이 땅은 우리들 고향.”


  함께 살아가기에 함께 누릴 말을 생각합니다. 함께 살아가기에 함께 사랑할 말을 생각합니다. 내 모든 좋은 생각을 말 한 마디에 담고 싶습니다. 내 모든 좋은 사랑을 글 한 줄에 싣고 싶습니다. 내가 즐겁게 생각할 때에 즐거우면서 좋은 꿈이 말마디에 담긴다고 느낍니다. 내가 예쁘게 사랑할 적에 예쁘면서 좋은 넋이 글줄에 실린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내 하루를 즐겁게 일구면 내 마음에서 피어나는 말은 곱게 꽃을 피워 말꽃이 된다고 느껴요. 내 하루를 살갑게 보듬으면 내 생각에서 자라나는 글은 맑게 열매와 씨앗을 맺어 글씨(글씨앗)가 된다고 느껴요.


  함께 살아가며 어깨동무할 말을 생각합니다. 함께 살아가며 서로 사랑할 말을 생각합니다. 옳은 말과 바른 말도 좋으나, 언제나 즐겁게 누릴 말을 생각합니다. 착한 말을 생각하고 참다운 말을 생각합니다. 내 좋은 보금자리와 내 좋은 마을과 내 좋은 지구별을 아름답게 보살필 가장 아름다운 말을 생각합니다.
2012.7.2.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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