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물 글쓰기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도 텃밭을 일굴 수 있습니다. 수많은 자동차가 끝없이 오가는 한켠에서도, 사람들 또한 끝없이 오가면서 담배를 태우고 침을 뱉으며 쓰레기를 버리는 한켠에서도, 얼마든지 텃밭을 일굴 수 있습니다. 비료도 농약도 안 쓰면서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도 텃밭을 일굴 수 있습니다.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광장 아닌 텃밭을 일구어 푸성귀를 거둘 수 있어요.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서울 한복판 텃밭에서 ‘무농약 유기농 친환경’으로 무나 배추나 상추나 오이나 토마토나 가지나 수박이나 고구마나 감자를 얻는다 할 때에, 이 ‘서울 한복판 텃밭’에서 거둔 푸성귀를 어떤 사람들이 즐겁게 마주하면서 맛나게 먹을까요.


  누구나 밥을 먹습니다. 누구나 상추를 먹고, 누구나 돼지고기를 먹으며, 누구나 쌀을 먹습니다. 그런데, 밥을 먹는 사람들 누구도 상추이든 돼지고기이든 쌀이든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일구는가를 제대로 헤아리지 않습니다. 상추밭 곁에 골프장이 있으면 상추는 싱싱하게 자랄 수 있을까요. 배추밭 곁에 원자력발전소뿐 아니라 화력발전소가 있으면 배추는 푸르게 자랄 수 있을까요. 당근밭 곁에 공항이나 우주기지가 있으면 당근은 알차게 여물 수 있을까요. 수박밭 곁에 송전탑이 서며 전깃줄 길게 드리우며 지나간다면 수박은 통통하게 여물 수 있을까요. 벼논이나 밀밭 옆으로 고속도로가 지나간다면 벼나 밀은 알곡이 튼튼히 맺을 수 있을까요. 배나무밭이나 포도나무밭 곁에 제철소이든 식품공장이든 화학공장이든 이런저런 공장이 있다면 배나 포도는 열매가 튼튼히 맺을 수 있을까요.


  논이나 밭 곁에는 골프장도, 발전소도, 송전탑도, 고속도로도, 공항도, 우주기지도, 공장도, 무엇무엇도, 여기에 쓰레기매립장이나 고속철도도, 주차장도 놓여서는 안 됩니다. 논이나 밭 곁에는 누구나 손으로 떠서 마실 만한 냇물이 흘러야 합니다. 논이나 밭 곁에는 숲이 있어 나무가 우거져야 합니다. 논이나 밭 곁에는 파랗디파랗게 넘실거리는 바다가 춤추어야 합니다. 논이나 밭 곁에는 군부대도 아파트도 국회의사당도 들어서면 안 됩니다. 논이나 밭 곁에 아스팔트 쫙 깔린 길이 나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논이나 밭에서는 어떤 사람이든 목숨을 살리는 밥이 태어나 자라기 때문입니다.


  시골에는 어떤 위해시설이나 위험시설도 놓여서는 안 됩니다. 시골에는 어떤 공장이나 시멘트집도 세워서는 안 됩니다. 시골에는 어떤 골프장이나 체육시설도 지어서는 안 됩니다. 시골에는 어떤 공항이든 항구이든 찻길이든 함부로 내서는 안 됩니다. 시골은 가장 깨끗한 보금자리여야 합니다. 시골은 가장 맑은 삶터여야 합니다. 시골은 가장 좋으면서 가장 사랑스러운 살림자리여야 합니다.


  누가 찾아와도 몸을 쉬고 마음을 다스릴 만한 데가 시골입니다. 왼쪽 사람이든 오른쪽 사람이든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넋을 북돋울 만한 데가 시골입니다. 어린이도 늙은이도 다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예쁜 이야기를 꽃피울 만한 데가 시골입니다.


  서울사람은 제주섬 맑은 물을 땅속 깊은 데에서 뽑아올려 마십니다. 서울사람은 동해 깊은 바다 맑은 물을 퍼올려 마십니다. 서울사람은 온 나라 가장 맑고 좋다 하는 샘물을 파헤쳐서 마십니다. 서울사람은 종로 밑바닥이나 압구정동 밑바닥에 구멍을 뚫어 물을 길어올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서울사람은 맑고 깨끗하며 좋은 물이 나는 시골마을마다 골프장·발전소·송전탑·고속도로·공항·우주기지·공장·쓰레기매립장·고속철도·군부대·놀이 시설·엑스포 시설·호텔 들을 끝없이 지으려 합니다. 시골마을을 망가뜨려서 서울사람한테 좋을 일이 한 가지라도 있을까 알쏭달쏭합니다. (4345.7.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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