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친구 구해요
마츠오카 다츠히데 지음, 허경실 옮김 / 달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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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을 버리면서 동무를 잃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80] 마츠오카 다츠히데, 《뱀이 친구 구해요》(달리,2008)

 


  자전거로 시골길을 달리다가 곧잘 뱀을 만납니다. 다만, 살아서 꿈틀거리는 뱀이 아니라, 자동차 바퀴에 밟혀 짜부라진 뱀입니다. 뱀은 제 몸을 따숩게 덥히려고 아스팔트길이나 시멘트길에 나와서 볕바라기를 하다가 그만 시잉 부웅 달리는 자동차 바퀴에 밟힙니다. 자동차는 길가에서 볕바라기를 하는 뱀이 뱀인 줄 알아보지 않습니다. 나뭇가지이겠거니 여기거나 나뭇가지로조차 바라보지 않습니다. 나뭇가지가 길가에 있건 말건 거의 모든 자동차는 그냥 밟고 지나갑니다.


  아주 드물게, 뱀을 알아보고는 바퀴를 옆으로 돌리려는 자동차가 있습니다. 그러나, 뱀인 줄 알아보더라도 자동차가 갑자기 바퀴를 틀면 자동차에 탄 사람이 다칠까 걱정하며 그냥 뱀을 밟고 지나가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어떤 이는 뱀을 잡아서 고아 먹든 삶아서 먹든 하려고 일부러 밟곤 합니다.


.. 난 뱀돌이야. 모두와 함께 놀고 싶은데, 다들 날 싫어하나 봐. 앙 앙 앙. 어떻게 하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  (3쪽)

 

 


  뱀은 좀 덩치가 있고 기니까 이럭저럭 알아본다지만, 개구리를 알아보는 자동차는 아예 없다 할 만합니다. 개구리가 자동차 바퀴에 밟혀 픽 하고 목숨을 잃을 때에 알아차리는 자동차 운전수는 몇쯤 될까요. 비가 한 차례 쏟아진 이듬날 시골길을 달리면 으레 수십 수백에 이르는 개구리가 자동차 바퀴에 밟혀 떼죽음을 맞이한 모습을 보곤 합니다. 너무 많이 죽고 말았기에, 벌써 납짝꿍이 된 개구리이기는 하지만, 자전거 바퀴를 요리조리 비켜 달리지 못합니다.


  그래도 개구리는 주검이라도 알아본다 할 텐데, 사마귀나 메뚜기나 공벌레나 지렁이는 주검조차 알아보기 힘듭니다. 제법 큰 지렁이는 주검을 알아보고, 제법 큰 사마귀나 메뚜기도 주검을 알아봅니다. 다만, 시골길을 자전거로 천천히 달리거나 천천히 걷는 사람만 이들 주검을 알아봐요.


  개미도 시골길을 걷다가 자동차 바퀴에 깔립니다. 무당벌레도 시골길을 날다가 자동차에 받힙니다. 잠자리도 나비도 나방도 모두 자동차에 치여 죽습니다. 시골길을 자전거로 지나가면서 길가에 팔랑거리는 나비 주검이나 잠자리 주검을 참 자주 만납니다.


  아무래도 오늘날에는 어찌할 길 없는 일인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오늘날에는 도시사람 누구라도 메뚜기하고 동무하지 않으니 어찌할 수 없는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오늘날에는 시골사람도 사마귀나 개구리랑 이웃하지 않으니 어찌할 수 없는지 몰라요. 도시라는 삶터는 어떤 새나 벌레나 짐승하고도 동무하지 않아요. 시골이라는 삶터도 도시사람한테 먹을거리를 대주는 곳 노릇만 하니까, 풀약이랑 비료랑 항생제를 잔뜩 쓰느라 여느 새나 벌레나 짐승하고 이웃하기 어려워요.


  어디를 가나 사람입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만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사람만 살아간다는 이 지구별에서 사람들끼리 살가이 이웃하며 살아가는지 알쏭달쏭해요. 새도 벌레도 짐승도 모두 밀어낸 사람들은 서로서로 오붓하게 어깨동무하는 동무로 지내는지 아리송해요.


.. 왜 다들 날 무서워 할까? 내가 다리가 없어서 징그러운 걸까 ..  (15쪽)

 

 


  곰곰이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새하고 이웃하던 삶하고 등지면서 사람끼리도 서로 이웃하지 않으며 살아가는구나 싶어요. 사람들은 벌레하고 동무하던 삶이랑 멀어지면서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를 동무로 아끼던 넋을 내버리며 지내는구나 싶어요. 사람들은 짐승하고 오순도순 얼크러지던 삶을 짓밟으면서 옆사람을 밟고 올라서는 슬픈 길을 자꾸 걷는구나 싶어요.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도시에서 숲을 밀어냈습니다. 사람들 삶터에는 풀포기 하나 홀가분하게 자라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한테 돈을 주면서 풀포기를 남김없이 뽑도록 시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한테 돈을 주면서 ‘비싼 나무’를 사다가 멋들어진 모양새로 심습니다.


  도시에는 숲이 없습니다. 도시에는 나무도 풀도 꽃도 마음껏 자라지 못합니다.


  시골에는 숲이 있었으나, 시골 숲은 도시와 도시를 잇는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를 끝없이 새로 놓으면서 자꾸자꾸 사라지고 줄어듭니다. 시골 숲은 날마다 시름시름 앓습니다. 게다가 도시에서 쓸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를 시골 숲을 밀며 지어요. 시골 숲을 밀어 발전소를 지은 다음, 송전탑을 무시무시하게 크게 세우며 끝없이 늘어뜨려 도시로 잇습니다.


  시골에는 숲이 있으나, 시골 숲은 어디에서나 끙끙 앓습니다. 시골에는 숲이 살았지만, 시골 숲은 언제나 몸앓이를 합니다.


.. 내가 미끄럼틀이 되어 주었더니, 개구리들이 진짜 좋아했어. 하지만 난 몸이 아팠어 ..  (21쪽)

 

 


  사람들은 누구하고 이웃을 삼나요. 사람들은 누구하고 동무를 삼나요. 사람들은 누구하고 어깨동무를 하나요. 사람들은 누구하고 두레를 하거나 품앗이를 하나요.


  마츠오카 다츠히데 님 그림책 《뱀이 친구 구해요》(달리,2008)를 읽습니다. 뱀은 같은 뱀이랑 동무를 하거나 이웃을 해도 좋을 텐데, ‘뱀 아닌 동무’를 찾고 ‘뱀 아닌 이웃’을 생각합니다. 모두들 뱀을 무섭게 여기지만, 뱀은 씩씩하게 스스로를 가다듬으면서 다가섭니다. 뱀이랑 동무를 삼거나 이웃을 할 이들이 어느 때에 좋아하거나 반길까 하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삶을 바꿉니다.


.. 이젠 안 되겠어. 난 너무 지쳐 버렸어. 하지만 다들 상냥하게 대해 줬어. “헉헉, 저기, 다들 내 친구가 되어 줄래?” ..  (29쪽)


  동무를 사귀고 싶으면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동무를 괴롭힌다거나 동무를 등친다거나 동무를 깔보면서 동무를 사귈 수 없습니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이란, 나부터 나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내 하루를 아끼면서 내 동무 하루를 아끼고, 내 넋을 살가이 보듬으면서 내 동무 넋을 살가이 보듬을 때에, 비로소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그러니까, 전쟁무기를 잔뜩 어깨에 짊어진 채 ‘우리 동무 할까?’ 하면서 손을 내민다면 거짓말이에요. 전쟁무기를 땅바닥에 내려놓는다고 해서 거짓말은 달라지지 않아요. 전쟁무기를 모두 녹여 낫이랑 쟁기랑 호미로 바꾸어야 비로소 ‘우리 동무 하자!’ 하는 말을 나눌 수 있어요.


  나라와 나라 사이가 되든, 기업과 노동자 사이가 되든, 교사와 학생 사이가 되든, 서로 무기를 한손에 든 채 동무가 되지 않아요. 서로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서로 돌보는 사랑이 있어야 시나브로 동무로 지내요. 그런데, 전쟁무기를 버리더라도 숲을 다시 살리거나 살찌우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누구하고도 동무로 지내지 못해요. 숲을 먼저 아름다이 살리면서 전쟁무기를 없애야 나 스스로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요. 숲을 언제나 예쁘게 보살피면서 삶을 일구어야 나부터 좋은 나날을 누려요. (4345.7.12.나무.ㅎㄲㅅㄱ)

 


― 뱀이 친구 구해요 (마츠오카 다츠히데 글·그림,허경실 옮김,달리 펴냄,2008.10.30./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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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박풀 책읽기

 


  수박은 열매이기 앞서 풀이다. 참외도 오이도 당근도 모두 참외풀, 오이풀, 당근풀이다. 작은 씨앗 하나에서 비롯하기에, 참외씨 없이는 참외가 없고, 당근씨 없이는 당근이 없으며, 오이씨 없이는 오이가 없다. 큼지막해서 십 킬로그램이 넘어가기도 하는 수박 또한 아주 작아 한 그램조차 안 되는 씨앗이 있어야 태어날 수 있다.


  마당 텃밭 한켠에서 수박풀이 돋는다. 수박씨를 심은 적은 없지만, 수박씨를 몇 차례 뿌린 적 있는데, 이 가운데 하나가 싹을 틔운다. 수박풀은 씩씩하게 잘 자라다가 그만 시들시들하고 만다. 왜 그러한가 하고 들여다보니 줄기가 비틀렸다. 왜 비틀렸지? 아이들이 놀다가 그만 수박풀을 잡아당겨서 끊어질랑 말랑 되었을까. 어머니와 아버지가 풀을 뽑듯 아이들이 수박풀도 뽑으려고 하다가 잘 안 뽑히니까 비틀다가 줄기가 그만 달랑달랑 되었을까.


  수박풀이 씩씩하게 자라나 수박꽃을 피우고 수박꽃이 찬찬히 여물어 수박열매 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는데, 이 수박풀은 그만 시들어 죽을 듯하다. 가느다란 줄기가 다시 힘을 내어 살아날 수 있을까. 수박풀은 끈질기면서 힘찬 기운을 뽐내어 새롭게 잎사귀를 뻗고 줄기를 이을 수 있을까. (4345.7.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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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2-07-12 18:50   좋아요 0 | URL
그렇죠, 풀이죠^^ 전혀 생각도 못했네요~~

파란놀 2012-07-13 09:19   좋아요 0 | URL
모두 좋은 풀이에요
 
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 평화 발자국 7
임소희 글.그림 / 보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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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은 남북을 가르지 않는다
 [만화책 즐겨읽기 164] 리정애·임소희, 《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

 


  남과 북으로 갈린 한겨레는 남과 북으로만 갈리지 않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로도 흩어져야 했고, 일본으로도 찢겨야 했습니다. 곧, 한겨레는 남녘 한겨레와 북녘 한겨레와 중국 한겨레와 러시아 한겨레와 중앙아시아 한겨레와 일본 한겨레가 있다 할 만합니다.


  남녘에서 살아가는 한겨레는 남녘땅 사람 아니면 만나기 힘듭니다. 남녘땅에서 북녘땅 여느 사람을 이웃이나 동무로 사귀지 못합니다. 글월 하나 주고받지 못하고, 전화 한 통 나누지 못합니다. 중국이나 일본이나 러시아로는 글월도 띄울 수 있고 소포도 띄울 수 있건만, 정작 가장 가까운 북녘으로는 아무것도 띄울 수 없습니다.


  남녘땅 사람들 말삶을 돌아봅니다. 서울사람 말씨랑 대구사람 말씨가 다릅니다. 원주사람 말씨랑 익산사람 말씨가 다릅니다. 강진사람 말씨랑 밀양사람 말씨가 다릅니다. 같은 남녘이라 하더라도 고장마다 말씨가 다릅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스스로 태어나 자란 고장 삶자락이 내 몸에 배어듭니다. 의성에서 나고 자라며 살아가는 사람은 뼛속 깊이 의성 말씨로 이야기를 합니다. 고성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지만 서울에서 살아간다면 차츰 서울 말씨로 달라집니다. 그러나, 아주 서울 말씨가 되지는 않고, 고성 말씨가 남은 서울 말씨입니다.


  그러니까, 중국 한겨레 말씨는 남녘 한겨레 말씨와 다릅니다. 일본 한겨레 말씨는 남녘 한겨레 말씨와 같을 수 없습니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 말씨를 들으면서 ‘당신 말씨를 고쳐야겠네요’ 하고 말할 수 없어요. 서울사람이 제주사람더러 제주 말씨를 버리거나 고치라 말할 수 없어요. 부산사람이 광주사람더러 광주 말씨를 버리거나 고치라 말할 수 없어요.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고장 다 다른 말씨는 서로 아끼며 사랑할 삶자국입니다. 예쁘게 바라보고 곱게 얼싸안을 우리 넋입니다.

 

 


- “정애 씨는 ‘북한’ 억양부터 고쳐야겠네. 발음이 너무 세잖아요.” …… “선생님! 저는 일본사람도 중국사람도 아닙니다. 선생님과 같은 민족이고, 제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니다. 저는 어느 쪽에서 발음해야 합니까?” (12∼13쪽)
- “남한이 ‘북한’보다 월등히 발전, ‘북한’은 낙후되어……” ‘외국사람들 앞에서 같은 민족을 비방하는 수업을 하다니! 무엇을 위한 ‘한국의 역사’인가!’ (25쪽)


  내가 지난 열두 해 동안 초·중·고등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나 하고 돌아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도시에서 회사원이 되어 돈을 더 잘 버는 길’ 하나였구나 싶습니다. 내가 도시에서 태어났기에 ‘도시에서 회사원이 되어 돈을 더 잘 버는 길’을 배웠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옆지기랑 두 아이하고 시골로 삶터를 옮겨 살아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돌아보더라도, 이곳 시골마을뿐 아니라 이웃 시골마을에서도 초·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한테 가르치는 이야기는 오직 하나입니다. 도시 아이한테도 시골 아이한테도 몽땅 ‘도시에서 회사원이 되어 돈을 더 잘 버는 길’ 하나만 가르쳐요. 도시 아이는 더 커다란 도시로 가도록 가르치고, 시골 아이는 도시로 가도록 가르칩니다. 아마 서울 아이한테는 서울보다는 일본이든 미국이든 중국이든 나라밖으로 나가도록 가르칠는지 몰라요. ‘세계화’라든지 ‘글로벌’이라든지 하는 이름이란, 한국땅에서 한국사람답게 예쁘게 살아가라는 길이 아니에요. 그예 돈을 더 벌라 하는 이야기예요. 서로 사랑하고 아끼라는 길이 아니에요. 옆사람을 밟고 올라서서 나 홀로 1등이 되라는 길이에요.


  이리하여, 예나 이제나, 이 나라 남녘땅 초·중·고등학교는 열두 해 동안 이웃과 동무가 누구인가를 가르치거나 보여주거나 알려주지 않습니다. 남녘 한겨레가 다니는 학교는 북녘 한겨레 이야기를 가르치지 않아요. 남녘 한겨레가 다니는 학교는 일본 한겨레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아요. 남녘 한겨레가 다니는 학교는 중국 한겨레 이야기를 알려주지 않아요. 게다가, 같은 남녘땅 이웃과 동무가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밝히지 않아요. 서로 아끼는 길을 찾지 않고, 서로 사랑하는 길을 살피지 않아요. 온통 대학입시로 맞추는 초·중·고등학교 교육 얼거리는 아이들 스스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빠져 쇠밥그릇 챙기는 쪽으로 머리를 쓰도록 내몹니다.


- ‘지하철을 타면 이런 내 처지를 더욱 실감하게 된다. ‘우리 나라’에 태어나 우리 나라 국민으로 사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 마치 나만 빼고는 모두가 행복한 사람들인 것 같아 너무나 부럽다. 물론 내 나라 내 땅에서 태어나 자란다고 해서 모두가 다 행복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재일동포들은 어려서부터 꿈을 포기하는 것을 배워 왔다.’ (38∼39쪽)
- ‘함께 간 일본 관광객을 보면서도 확실히 알게 됐지만 내가 30여 년 동안 일본에 살며 깨달은 건 일본사람에게 식민지나 전쟁은 ‘남의 나라 얘기’라는 것이다. 역사적인 증거를 눈앞에 보면서도 전혀 이해를 못하니 말이다.’ (54쪽)

 

 


  장마비가 쏟아지는 동안 논개구리가 신나게 웁니다. 그러나, 빗소리에 개구리 노랫소리가 잠깁니다. 장마비가 그치면 논내구리 노랫소리가 온 마을을 휘감습니다. 논둑에 사람이 서든 말든 개구리 노랫소리는 우렁찹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벽부터 밤까지, 언제나 듣는 소리는 언제나 몸으로 스며듭니다. 풀밭과 논에서 살아가는 개구리는 풀내음과 논내음을 저희 목소리에 담아 고운 노래로 들려줍니다. 개구리 노랫소리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은 아주 어린 나날부터 개구리가 들려주는 넋과 꿈과 빛을 가슴에 담습니다. 어느 아이라 하더라도 개구리가 우렁차게 노래하는 곁에서는 새근새근 잘 잡니다.


  도시에서도 장마비 빗방울이 세차게 떨어지면, 제아무리 시끌복닥 왁자지껄 어수선한 한복판이라 하더라도 자동차 소리가 잠깁니다. 텔레비전 소리도, 손전화 소리도, 가게마다 틀은 기계 노랫소리도 빗소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모든 도시 소리들도 빗소리에 잠깁니다. 장마비가 그치면 이제껏 잠겼던 온갖 소리가 깨어납니다. 자동차 빵빵 소리, 손전화 소리, 텔레비전 소리, 기계 움직이는 소리, 승강기 오르내리는 소리, 딸랑딸랑 소리 ……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언제나 이런 소리 저런 소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좋아하건 싫어하건 달갑건 달갑잖건 아이들 몸과 마음은 갖은 소리가 쩌렁쩌렁 울립니다. 도시에서는 한갓지거나 느긋하게 잠들기 어렵습니다.


  내 어린 날을 되새깁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 온갖 도시 소리에 길들거나 익숙했기에, 도시 소리가 시끄러운 줄 잘 몰랐습니다. 아이들 낳아 함께 살아가며 아이들이 도시에서 시끄러운 소리에 골을 부리며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모습을 늘 바라보다가 시골로 삶자리 옮겨 살아가다 보니, 참말 사람한테 좋은 소리란 무엇인가를 새삼스레 깨닫고 비로소 알아차립니다. 아이한테 좋은 소리는 어른한테도 좋은 소리입니다. 어른한테 좋은 소리란 아이한테도 좋은 소리입니다.


  물결치는 바다 소리는 그윽합니다. 나뭇잎과 풀잎을 흔드는 바람 소리는 사랑스럽습니다. 새와 벌레와 개구리가 함께 빚는 노랫소리는 아름답습니다. 이들 소리를 듣고 살아갈 수 있을 때에 착하고 맑으며 신나는 웃음을 꽃피웁니다. 이들 소리하고 동떨어진 채 돈벌이만 해야 한다면, 사람 스스로 자꾸 시들거나 파리해집니다.


- ‘끝내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간 이유는 우리 민족의 경사스러운 날에 우리 땅에서 치마저고리를 당당히 입고 싶었고, 차별과 폭행 때문에 교복인 치마저고리를 마음 놓고 입고 다니지 못하는 우리 학교 학생들 몫까지 대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64쪽)
- ‘이내 눈물이 핑 돌아 (금강산) 안내원 언니와 얼싸안고 펑펑 울었다. 이밖에도 북쪽에서 만난 분들은 모두 내가 총련동포인 것을 알면 동포들이 탄압받고 있는 상황을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화내며 함께 울어 주었다. 재일동포의 삶을 몰라서 그랬겠지만 재일동포임을 밝혔을 때 ‘일본사람이나 마찬가지’라며 무심하게 일본말로 말을 걸어 온 남쪽 사람에게서 상처받은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날더러 자꾸 왜 북쪽을 조국으로 생각하냐고 묻지만 바로 이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한다.’ (94쪽)

 

 


  사람들은 돈을 찾아 도시로 갑니다. 돈 때문에 도시로 갑니다. 돈 때문이 아니라면 굳이 도시에 갈 까닭이 없습니다. 더 나은 교육이나 더 좋은 문화나 더 깊은 예술을 생각해서 도시로 간다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교육 저런 문화 그런 예술은 모두 돈하고 얽힙니다. 삶하고 얽히는 도시는 아니에요. 사랑하고 어깨동무하는 도시는 아니에요. 꿈하고 얼크러지는 도시는 아니에요.


  자격증을 따거나 교수가 되거나 이름값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대학교에 가지 않습니다. 대학교에 가야 한다면, 내 넋을 한껏 북돋우면서 내 슬기를 아름답게 일구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땅 대학교는 더 높은 이름값을 거머쥐어 더 좋은 돈벌이를 하도록 이끄는 징검돌 구실만 합니다. 배움다움 삶다움 사랑다움하고는 아주 멀리 떨어졌어요. 곧, 배움다움을 잃은 대학교에 보내려 하는 ‘도시 고등학교’나 ‘시골 고등학교’는 얼마나 배움다움 배움을 나눈다 할까요. 도시사람이 보고 즐기는 연속극이나 영화는 얼마나 문화답다 할 만한가요. 도시사람이 만들고 읽는 책은 얼마나 책답다 할 만하고, 도시사람이 빚고 나누는 사진이나 연극이나 그림이나 노래나 춤은 얼마나 문화나 예술답다 할 만한가요.


  예술쟁이가 된 도시사람은 시골로 찾아와 두런두런 나들이를 하다가 예뻐 보이는 나무를 보고는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립니다. 예뻐 보이는 꽃을 보고는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립니다. 예뻐 보이는 꽃나무를 꽃집에서 사다가는 아파트 툇마루에 놓고 키웁니다. 스스로 씨앗을 얻어 씨앗을 심을 줄 모르고, 씨앗을 심어 천천히 자라다가는 오래도록 우람히 뿌리내리는 나무를 껴안을 줄 모르며, 작품으로 아로새기는 모습이 아닌 가슴으로 아로새기는 사랑을 헤아릴 줄 모릅니다.


- ‘우리 부모님도 모두 조선학교 출신이지만 지금은 우리 말을 거의 잊으셨고, 조대를 막 졸업한 막내를 빼고는 동생들도 우리 말을 많이 잊어버렸다. 일상생활에서 쓸 일이 없는 언어를 지킨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120쪽)

 


  남녘땅 한겨레는 북녘땅 한겨레보다 돈을 잘 법니다. 남녘땅 한겨레는 일본땅 한겨레보다 홀가분하게 돈을 법니다. 학력이나 계급이나 신분이나 몸매(와 얼굴)를 놓고 푸대접을 하거나 따돌림을 하는 일이 곧잘 있다지만, 남녘땅 한겨레는 일본땅 한겨레처럼 ‘처음부터 아예 넘볼 수 없는 울타리’가 있지는 않습니다. 일본땅 한겨레는 한겨레 말을 익히더라도 일본에서 한겨레 말을 쓸 자리가 없는데, 한국땅 한겨레는 이러한 대목을 읽지 못합니다. 중국땅 한겨레가 한겨레 말을 무척 잘 할 수 있는 까닭이란, 중국땅에서는 한겨레가 자치주를 이루어 한겨레 말을 언제라도 쓸 자리가 꽤 있기 때문인 줄 읽지 못합니다.


  그런데, 중국땅 한겨레나 일본땅 한겨레는 ‘한겨레’일까요. 모두 같은 한겨레라서, 서로를 아끼고 믿으며 사랑하는 좋은 꿈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일까요. 예쁘게 손을 잡고 즐겁게 어깨를 겯으며 살갑게 눈빛을 나눌 만한 동무일까요.


- “그러면 더 국적을 한국으로 바꿔야지요! 왜 안 바꿉니까? 언제 바꿀 거예요?” “쪽바리들은 비자 없이 맘대로 왔다갔다 하는데 같은 민족이고 남쪽이 고향인 우리 동포들은 왜 못 가게 하는 거예요?” “그건, 일본인은 외국인이라 되는 거죠.” “그게 말이 돼요? 그럼 차라리 우리를 외국인 취급해 줘요! 말만 동포라고 하지 말고!” (136쪽)

 


  일본에서 나고 자란 리정애 님 이야기를 임소희 님이 만화로 담은 《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보리,2010)를 읽습니다. 리정애 님으로서는 남이나 북으로 가르는 한겨레가 아닌 ‘그냥 한겨레’를 생각하면서 만나고 싶지만, 이 같은 일은 선뜻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두 발을 디디는 땅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만 같습니다. 참말 꿈속에서만 서로 만나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찌할 길이 없는 노릇입니다. 남녘땅에서는 초등학교이건 중학교이건 고등학교이건, 일본이라는 나라가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겨레’한테 어떤 짓을 하는지 한 줄로조차 교과서로 가르치지 않아요. 꼭 교과서로 가르쳐야 ‘알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남녘 정부는 일본땅 한겨레이든 중국땅 한겨레이든 러시아땅 한겨레이든 조금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남녘 정부는 하나되는 삶(통일)을 헤아리지 않아요. 남녘 정부는 오직 하나, 돈벌이(경제발전)만 헤아립니다. 남녘 정부는 돈을 더 버는 길을 대수롭게 여기고, 흩어지거나 갈라진 한겨레가 아픔과 생채기와 눈물을 털고 웃음과 기쁨과 이야기꽃을 흐드러지도록 피우는 일은 하찮게 여깁니다. 더욱이, 도시에서 살아가며 먹고사는 길을 걱정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남녘 정부가 하듯, 갈라진 생채기와 흩어진 아픔을 씻는 데에는 눈길을 두지 못합니다. 살림이 빠듯하고 삶이 팍팍하거든요. 느긋하거나 너그러운 삶이 아니거든요. 따사롭거나 어여쁜 사랑이 아니거든요.


  만화책 《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를 덮습니다.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리정애 님이 ‘서울’ 말고 홍성이나 보성이나 횡성 같은 시골에서 머물었다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장흥이나 고흥, 진도나 완도, 통영이나 주문진 같은 시골마을에서 지냈다면, 이러한 시골마을에서 흙빛 사내를 만났다면, 이때에는 어떠한 삶꽃을 피울 수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남녘도 북녘도 돈을 더 벌어들이는 길이 아니라, 전투기와 구축함을 더 만드는 길이 아니라, 서로 오붓하며 따사롭게 어깨동무하도록 논밭을 아끼고 들과 숲을 사랑하는 길을 걸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서울과 평양으로는 하나될 수 없어요. 서울로는, 평양으로는, 사람다운 터를 이루지 못해요. 60층 넘는 건물이든 100층 넘는 건물이든 부질없어요. 더 높은 건물과 더 많은 건물로는 사랑을 이루지 못해요. 냇물이 맑게 흐르고, 숲이 푸르게 우거지며, 새와 벌레와 짐승이 마음껏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좋은 자연으로 만나야 비로소 하나될 수 있어요.


  하나되는 길은 울타리를 걷는 길이에요. 돈 울타리가 되든 정치 울타리가 되든 아파트 울타리가 되든, 울타리를 걷어야 하나될 수 있어요.


  냇물에는 울타리가 없고, 들에도 울타리가 없어요. 숲에도 울타리가 깃들 수 없어요. 지구별은 처음부터 하나였고 언제나 하나이지만, 정부가 생기고 대통령이 생기며 군대가 생기면서 여럿으로 갈기갈기 쪼개지거나 찢어져요.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르는 금이란 얼마나 덧없는가요. 부산과 김해를 가르는 금은 얼마나 덧없는가요. 서울과 인천을 가르는 금이란 얼마나 덧없는가요. 동해와 남해를 가르는 금은 얼마나 덧없는가요. 언제나 하나였던 삶을 오늘도 하나라고 느낀다면, 우리가 예쁘게 살아갈 길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으면 좋을까 하는 실마리도 쉽게 찾으리라 생각해요. (4345.7.12.나무.ㅎㄲㅅㄱ)

 


― 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 (리정애 이야기,임소희 만화,보리 펴냄,2010.10.10./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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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줄과 제비

 


  어미 제비가 빨래줄에 앉는다. 새끼들을 한참 먹여 키울 적에도 빨래줄에 앉아 둥지를 바라보고, 새끼들을 모두 키워 스스로 날갯짓하며 날아다니도록 이끈 뒤에도 곧잘 옛 둥지 있는 집으로 찾아와 빨래줄에 앉는다. 새끼 제비는 저희가 태어난 둥지로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어미 제비만큼은 저희 새끼를 낳아 키운 둥지 있는 곳으로 날마다 한두 차례쯤 찾아와 빨래줄이나 전기줄에 앉아 한동안 옛 둥지를 바라본다.


  둘째 아이 기저귀를 넌 빨래줄 한복판에 어미 제비가 앉는다. 마침 기저귀 위에 앉는다. 제비로서는 기저귀인지 무언지 알 턱이 없을 수 있고, 굳이 알 까닭이 없겠지. 처음에는 나한테 등을 보이며 앉더니, 이내 머리를 보이며 앉는다. 이러다가 다시 등을 보이며 돌려 앉는다.


  맑은 햇살과 맑은 날갯짓과 맑은 빨래가 얼크러진다. 내 눈을 맑게 틔우고 내 마음을 맑게 다스린다. 나한테는 제비와 같은 날개가 없어 제비와 같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없으나, 제비를 바라보면서 제비가 날아다니며 바라보았을 이 땅 모습을 가만히 머리로 그린다. (4345.7.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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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릎에 얹은 책

 


  작은 아이가 다리에 그림책을 얹고 읽는다. 작은 아이한테 그림책은 무척 큰 책이다. 다리를 곧게 펴고 앉아 그림책을 얹으면 허벅지부터 무릎까지 책으로 덮인다. 나무로 빚은 종이책이 아이 살결에 닿는다. 나무내음과 나무빛이 서린 책이 아이 살갗에 닿는다. 나무로 둘러싸인 시골마을에서 푸른 숨을 마시는 아이는, 나무한테서 목숨을 얻어 빚은 종이책을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이야기를 읽는다. (4345.7.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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