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친구 구해요
마츠오카 다츠히데 지음, 허경실 옮김 / 달리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숲을 버리면서 동무를 잃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80] 마츠오카 다츠히데, 《뱀이 친구 구해요》(달리,2008)

 


  자전거로 시골길을 달리다가 곧잘 뱀을 만납니다. 다만, 살아서 꿈틀거리는 뱀이 아니라, 자동차 바퀴에 밟혀 짜부라진 뱀입니다. 뱀은 제 몸을 따숩게 덥히려고 아스팔트길이나 시멘트길에 나와서 볕바라기를 하다가 그만 시잉 부웅 달리는 자동차 바퀴에 밟힙니다. 자동차는 길가에서 볕바라기를 하는 뱀이 뱀인 줄 알아보지 않습니다. 나뭇가지이겠거니 여기거나 나뭇가지로조차 바라보지 않습니다. 나뭇가지가 길가에 있건 말건 거의 모든 자동차는 그냥 밟고 지나갑니다.


  아주 드물게, 뱀을 알아보고는 바퀴를 옆으로 돌리려는 자동차가 있습니다. 그러나, 뱀인 줄 알아보더라도 자동차가 갑자기 바퀴를 틀면 자동차에 탄 사람이 다칠까 걱정하며 그냥 뱀을 밟고 지나가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어떤 이는 뱀을 잡아서 고아 먹든 삶아서 먹든 하려고 일부러 밟곤 합니다.


.. 난 뱀돌이야. 모두와 함께 놀고 싶은데, 다들 날 싫어하나 봐. 앙 앙 앙. 어떻게 하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  (3쪽)

 

 


  뱀은 좀 덩치가 있고 기니까 이럭저럭 알아본다지만, 개구리를 알아보는 자동차는 아예 없다 할 만합니다. 개구리가 자동차 바퀴에 밟혀 픽 하고 목숨을 잃을 때에 알아차리는 자동차 운전수는 몇쯤 될까요. 비가 한 차례 쏟아진 이듬날 시골길을 달리면 으레 수십 수백에 이르는 개구리가 자동차 바퀴에 밟혀 떼죽음을 맞이한 모습을 보곤 합니다. 너무 많이 죽고 말았기에, 벌써 납짝꿍이 된 개구리이기는 하지만, 자전거 바퀴를 요리조리 비켜 달리지 못합니다.


  그래도 개구리는 주검이라도 알아본다 할 텐데, 사마귀나 메뚜기나 공벌레나 지렁이는 주검조차 알아보기 힘듭니다. 제법 큰 지렁이는 주검을 알아보고, 제법 큰 사마귀나 메뚜기도 주검을 알아봅니다. 다만, 시골길을 자전거로 천천히 달리거나 천천히 걷는 사람만 이들 주검을 알아봐요.


  개미도 시골길을 걷다가 자동차 바퀴에 깔립니다. 무당벌레도 시골길을 날다가 자동차에 받힙니다. 잠자리도 나비도 나방도 모두 자동차에 치여 죽습니다. 시골길을 자전거로 지나가면서 길가에 팔랑거리는 나비 주검이나 잠자리 주검을 참 자주 만납니다.


  아무래도 오늘날에는 어찌할 길 없는 일인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오늘날에는 도시사람 누구라도 메뚜기하고 동무하지 않으니 어찌할 수 없는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오늘날에는 시골사람도 사마귀나 개구리랑 이웃하지 않으니 어찌할 수 없는지 몰라요. 도시라는 삶터는 어떤 새나 벌레나 짐승하고도 동무하지 않아요. 시골이라는 삶터도 도시사람한테 먹을거리를 대주는 곳 노릇만 하니까, 풀약이랑 비료랑 항생제를 잔뜩 쓰느라 여느 새나 벌레나 짐승하고 이웃하기 어려워요.


  어디를 가나 사람입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만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사람만 살아간다는 이 지구별에서 사람들끼리 살가이 이웃하며 살아가는지 알쏭달쏭해요. 새도 벌레도 짐승도 모두 밀어낸 사람들은 서로서로 오붓하게 어깨동무하는 동무로 지내는지 아리송해요.


.. 왜 다들 날 무서워 할까? 내가 다리가 없어서 징그러운 걸까 ..  (15쪽)

 

 


  곰곰이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새하고 이웃하던 삶하고 등지면서 사람끼리도 서로 이웃하지 않으며 살아가는구나 싶어요. 사람들은 벌레하고 동무하던 삶이랑 멀어지면서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를 동무로 아끼던 넋을 내버리며 지내는구나 싶어요. 사람들은 짐승하고 오순도순 얼크러지던 삶을 짓밟으면서 옆사람을 밟고 올라서는 슬픈 길을 자꾸 걷는구나 싶어요.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도시에서 숲을 밀어냈습니다. 사람들 삶터에는 풀포기 하나 홀가분하게 자라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한테 돈을 주면서 풀포기를 남김없이 뽑도록 시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한테 돈을 주면서 ‘비싼 나무’를 사다가 멋들어진 모양새로 심습니다.


  도시에는 숲이 없습니다. 도시에는 나무도 풀도 꽃도 마음껏 자라지 못합니다.


  시골에는 숲이 있었으나, 시골 숲은 도시와 도시를 잇는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를 끝없이 새로 놓으면서 자꾸자꾸 사라지고 줄어듭니다. 시골 숲은 날마다 시름시름 앓습니다. 게다가 도시에서 쓸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를 시골 숲을 밀며 지어요. 시골 숲을 밀어 발전소를 지은 다음, 송전탑을 무시무시하게 크게 세우며 끝없이 늘어뜨려 도시로 잇습니다.


  시골에는 숲이 있으나, 시골 숲은 어디에서나 끙끙 앓습니다. 시골에는 숲이 살았지만, 시골 숲은 언제나 몸앓이를 합니다.


.. 내가 미끄럼틀이 되어 주었더니, 개구리들이 진짜 좋아했어. 하지만 난 몸이 아팠어 ..  (21쪽)

 

 


  사람들은 누구하고 이웃을 삼나요. 사람들은 누구하고 동무를 삼나요. 사람들은 누구하고 어깨동무를 하나요. 사람들은 누구하고 두레를 하거나 품앗이를 하나요.


  마츠오카 다츠히데 님 그림책 《뱀이 친구 구해요》(달리,2008)를 읽습니다. 뱀은 같은 뱀이랑 동무를 하거나 이웃을 해도 좋을 텐데, ‘뱀 아닌 동무’를 찾고 ‘뱀 아닌 이웃’을 생각합니다. 모두들 뱀을 무섭게 여기지만, 뱀은 씩씩하게 스스로를 가다듬으면서 다가섭니다. 뱀이랑 동무를 삼거나 이웃을 할 이들이 어느 때에 좋아하거나 반길까 하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삶을 바꿉니다.


.. 이젠 안 되겠어. 난 너무 지쳐 버렸어. 하지만 다들 상냥하게 대해 줬어. “헉헉, 저기, 다들 내 친구가 되어 줄래?” ..  (29쪽)


  동무를 사귀고 싶으면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동무를 괴롭힌다거나 동무를 등친다거나 동무를 깔보면서 동무를 사귈 수 없습니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이란, 나부터 나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내 하루를 아끼면서 내 동무 하루를 아끼고, 내 넋을 살가이 보듬으면서 내 동무 넋을 살가이 보듬을 때에, 비로소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그러니까, 전쟁무기를 잔뜩 어깨에 짊어진 채 ‘우리 동무 할까?’ 하면서 손을 내민다면 거짓말이에요. 전쟁무기를 땅바닥에 내려놓는다고 해서 거짓말은 달라지지 않아요. 전쟁무기를 모두 녹여 낫이랑 쟁기랑 호미로 바꾸어야 비로소 ‘우리 동무 하자!’ 하는 말을 나눌 수 있어요.


  나라와 나라 사이가 되든, 기업과 노동자 사이가 되든, 교사와 학생 사이가 되든, 서로 무기를 한손에 든 채 동무가 되지 않아요. 서로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서로 돌보는 사랑이 있어야 시나브로 동무로 지내요. 그런데, 전쟁무기를 버리더라도 숲을 다시 살리거나 살찌우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누구하고도 동무로 지내지 못해요. 숲을 먼저 아름다이 살리면서 전쟁무기를 없애야 나 스스로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요. 숲을 언제나 예쁘게 보살피면서 삶을 일구어야 나부터 좋은 나날을 누려요. (4345.7.12.나무.ㅎㄲㅅㄱ)

 


― 뱀이 친구 구해요 (마츠오카 다츠히데 글·그림,허경실 옮김,달리 펴냄,2008.10.30./9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