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에 나온 <덤빌 테면 덤벼>라는 작품을 2012년이 되어서야 읽는다. 1998년 만화책은 목록이 안 뜬다. 그 뒤 나온 다른 작품은 목록이 뜨지만, 하나같이 품절이다. 그러나 이처럼 갓 나온 만화책 하나 있으니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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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강을 건너서
야치 에미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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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초록 냄새 쪽빛문고 10
구도 나오코 지음, 고향옥 옮김, 초 신타 그림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푸른 숨결로 빛나는 내 동무
 [어린이책 읽는 삶 22] 구도 나오코, 《친구는 초록 냄새》(청어람미디어,2008)

 


- 책이름 : 친구는 초록 냄새
- 글 : 구도 나오코
- 그림 : 초 신타
- 옮긴이 : 고향옥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 (2008.12.15.)
- 책값 : 9800원

 


  깊은 밤입니다. 논배미 앞에 섭니다. 봄날 개구리는 사람이 앞에 서면 노랫소리를 똑 끊었는데, 여름날 개구리는 사람이 앞에 서니 노랫소리를 들려줍니다. 여름날 개구리는 겨울잠을 자고 깨어난 개구리가 낳은 알에서 태어난 새 목숨일까요. 온갖 개구리들이 저마다 다 다른 목소리로 노래를 들려줍니다. 이 개구리들은 그리 안 큰 몸뚱이일 텐데, 노랫소리가 참 우렁찹니다.


  논둑에 쪼그리고 앉습니다.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여기에 하나, 여기에 또 하나, 이쪽에 하나, 저쪽에 하나, 저기에 하나, 하면서 소리를 뽑는 개구리가 어디쯤 있나 헤아립니다. 수십이나 수백 마리가 터뜨리는 노래가 아니라, 예닐곱 마리쯤 터뜨리는 노래인데, 이렇게 예닐곱 마리가 서로 갈마들며 노래를 터뜨리니, 뒤쪽 다른 논에서도 하나둘 노래를 터뜨립니다.


  개구리 노랫소리는 그냥 개구리 노랫소리가 아닙니다. 나는 개구리들이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개구리 노랫소리’라 뭉뚱그려 말하지만, 개구리마다 목소리가 매우 다릅니다. 같은 목소리인 개구리는 하나도 없습니다. 괙괙 노래하는 개구리가 있고, 개굴개굴 노래하는 개구리가 있으며, 배배 노래하는 개구리가 있어요. 배구배구 노래하는 개구리가 있고, 왜구왜구 노래하는 개구리가 있어요. 으으미으으미 하고 낮고 길게 뽑는 개구리가 있습니다. 두꺼비일까? 다른 녀석일까? 맹꽁이는 아닌 듯한데?


.. ‘바람 냄새가 좋군.’ 사자는 심호흡을 하고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무와 바위 옆에 가면 머리를 문질러 보고 싶고, 보드라운 풀이 있으면 뒹굴어 보고 싶다 … ‘누군가와 함께 산책을 한다는 건, 참 좋은 거구나.’ 사자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달팽이를 이마에 태우니 혼자일 때보다 여기저기 볼 수 있어 더 즐겁다. “아, 여기에 꽃이 피어 있어.” 하고 사자가 꽃을 발견하면 달팽이가, “아, 여기에 연못이 있어.” 하고 연못을 발견해 준다 ..  (13, 20쪽)


  사람은 개구리를 바라보며 ‘개구리 노랫소리’라 말합니다. 거꾸로, 내가 개구리라 한다면, 개구리로서 사람을 바라볼 때에 ‘사람 노랫소리’ 또는 ‘사람 말소리’라 할 만할까요.


  한국사람으로서 일본사람이 말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그저 뭉뚱그려 ‘일본사람 말소리’라 할는지 모릅니다.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느 외국사람 노랫소리’처럼 들을 수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삶을 다 다른 목소리로 다 다른 이야기를 엮어 들려주지만, 나로서는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말소리를 ‘다 똑같이 잘 못 알아듣는 노랫소리’처럼 여길 수 있어요.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개구리들은 나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저마다 다 다른 목소리와 결과 무늬로 이렇게 이야기꽃을 피우는가 하고 생각에 잠깁니다. 개구리가 들려주는 고운 이야기를 내 마음으로 받아들여 내 넋을 다시금 곱고 맑게 다스리자고 생각합니다.


.. 달팽이가 ‘으음, 으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러니까 수풀 속 이파리들 속에 파묻혀 있으면 온몸에 바람이 스며들어 와.” … “오늘은 유난히 목소리가 예뻐.” “틀림없이 좋은 노래가 될 거야.” 달팽이의 발성연습을 들으며 당나귀가 말했다 ..  (26, 65쪽)


  그야말로 사람이 물결을 이루는 곳에 있어도, 내 살붙이 모습은 놓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 왁자지껄한 한복판에 서도, 내 살붙이가 읊는 말마디를 한두 마디쯤 알아듣습니다.


  마음을 그러모으면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마음을 그러모을 때에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기에 바라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느끼지 못하리라 봅니다. 곧, 마음이 있고, 생각이 있으며, 사랑이 있을 때에 내 몸이 움직이는구나 싶어요.


  나 스스로 좋은 넋이 되어야 합니다. 나부터 좋은 얼로 빛나야 합니다. 내가 시나브로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나는 내 삶을 아끼는 하루를 누리면서 내 곁에서 나란히 맑게 웃거나 울 예쁜 동무를 사귀거든요.


  동무는 멀리 있지 않아요. 동무는 그저 나이가 같은 사람이 아니에요. 동무는 같은 학교를 다닌대서 사귀지 않아요. 동무는 서로서로 믿고 기대며 좋아할 수 있는 어여쁜 삶지기예요.


.. 사자가 종종종 뛰어간다. 저녁노을이 하도 예뻐 언덕에 올라가 해 지는 것을 보려는 것이다 … “오늘은 심심한 땅에 들렀다가 쓸쓸한 땅을 돌아보고, 그리고 기쁨의 땅에서 잠시 쉬어야지.” 달팽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  (67, 93쪽)


  구도 나오코 님 이야기책 《친구는 초록 냄새》(청어람미디어,2008)를 읽습니다.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참말, 내 좋은 동무는 누구라도 풀내음이 난다고 느낍니다. 그래요, 나는 말합니다. 내 동무는 풀내음, 이라고 말합니다. 나도 풀내음이요 내 동무도 풀내음입니다. 나부터 풀내음이고 내 살붙이도 풀내음입니다. 내가 즐겁게 풀내음이면서 우리 아이들도 풀내음이에요.


  풀내음, 풀빛, 풀꽃, 풀결, 풀삶, 풀맛이라 할 만합니다. 푸르고 푸릅니다. 푸르면서 푸릅니다.


.. 사자는 ‘기쁨에 찬 얼굴’ 그대로 당나귀와 놀기로 했다. 그리고, ‘근심에 찬 얼굴’은 혼자만 있을 때를 위해 아껴 두기로 했다 … “글쎄, 왠지 아주 먼 옛날부터 친구였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 ..  (115, 202쪽)


  얼굴이 푸르고, 마음이 푸릅니다. 눈빛이 푸르고, 생각이 푸릅니다. 손길이 푸르고, 사랑이 푸릅니다.


  손에 책을 쥘 때면, 책도 손도 모두 푸릅니다. 손에 수저를 들 때면, 수저도 밥그릇도 손도 모두 푸릅니다. 손에 호미를 잡으면, 호미도 손도 흙땅도 푸릅니다.


  푸른 하루입니다. 푸른 나날입니다. 푸른 목소리입니다. 푸른 누리입니다. 푸른 꿈결입니다. 푸른 목숨이요, 푸른 이야기이며, 푸른 살림입니다.


  아이들은 모두 천천히 자라면서 푸름이로 멋진 나날을 맞이하고, 푸른 나날 예쁘게 보내는 고운 넋은 이 땅을 푸르게 보살피는 착한 사랑을 푸른 숨결로 북돋웁니다. (4345.7.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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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75) 수심

 

그러는 동안 그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그의 눈에는 슬픔과 수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홍재웅 옮김-그리운 순난앵》(열린어린이,2010) 108쪽

 

  “그의 얼굴은”과 “그의 눈에는”처럼 ‘그 + -의’ 꼴 말투가 잇달아 나옵니다. 어린이책 번역에 이 같은 말투가 나옵니다. 이 어린이책을 읽을 아이들은 저절로 ‘-의’를 손쉽게 쓰는 말투에 젖어들겠지요. ‘그의’뿐 아니라 ‘그녀의’ 같은 말투를 익숙하게 쓰겠지요.


  이 대목을 손질하자면 “그이 얼굴은”이나 “그 사람 눈에는”처럼 적어야 합니다. 그런데, 더 생각한다면, 한국 말투 빛깔을 살려 “그러는 동안 얼굴은”이나 “눈에는 슬픔과”처럼 적을 수 있어요. 굳이 이름씨를 드러내지 않는 한국 말투 빛깔이니까요. 한국 말투 빛깔을 생각하지 않고 ‘그’와 같은 이름씨(또는 대이름씨)를 자꾸 넣어 ‘문장 구조를 이루려’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의’ 같은 말씨가 들러붙는 얄궂은 모양새가 되고 말아요.


  ‘창백(蒼白)해졌고’는 ‘해쓱해졌고’나 ‘파리해졌고’나 ‘하얘졌고’나 ‘핏기가 가셨고’로 손질합니다.

 

手心 : 손의 한가운데
水心
 (1) 수면(水面)의 중심
 (2) 강이나 호수 따위의 한가운데
水深 : 강이나 바다, 호수 따위의 물의 깊이
水? = 물가
守心
 (1) 절조(節操)를 지키는 마음
 (2) 미리 막아서 지키려는 마음
垂心 : [수학] 삼각형의 각 꼭짓점에서 대변에 내린 3개의 수선이 서로 만나는 점
修心 : 마음을 닦음
殊甚 : 매우 심하다
愁心 : 매우 근심함
樹心 : 나무줄기의 가운데 단단한 부분

 

  국어사전에서 ‘수심’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한자말 열 가지가 나옵니다. 이 가운데 사람들이 으레 쓴다 싶은 한자말은 “물의 깊이”를 가리킨다는 ‘水深’ 한 가지이리라 느껴요. 그나마 이 한자말도 ‘물깊이’처럼 한국말로 예쁘게 빚으면 한결 나아요.


  다른 한자말 가운데 이럭저럭 쓰이는 낱말이 있다 할 만하지만, 그렇게까지 쓰이지는 않는구나 싶어요. 왜냐하면, “마음을 닦음”이나 “마음닦기”라 하면 넉넉하니까 ‘修心’라 할 까닭이 없어요. 이 한자말이든 저 한자말이든 사람들이 생각과 뜻을 서로 쉽고 알맞게 나타내거나 나눌 만한 낱말이 되지 못해요. 모두 겉치레 한자말이고, 몽땅 껍데기 한자말이에요.

 

 슬픔과 수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 슬픔과 근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 슬픔과 걱정으로 가득 찼습니다
 …

 

  한자말이니까 안 써야 한다는 법은 없어요. 쓸 만하지 않으니까 안 쓸 뿐이에요. 물가이면 물가예요. 손 한가운데라면 손 한가운데예요. 꾸밈없이 말하고 스스럼없이 글을 쓰면 넉넉해요. 생각을 빛내면서 말을 하면 되고, 마음을 기울여 글을 쓰면 돼요.


  내 넋을 아름답게 북돋우면서 내 말마디를 아름답게 보살펴요. 내 얼을 슬기롭게 갈고닦으면서 내 글줄을 슬기롭게 갈고닦아요. (4345.7.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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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 얼굴은 해쓱해졌고 눈에는 슬픔과 근심이 가득 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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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책과 도서관 (도서관일기 2012.7.11.)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사진잡지 《월간 사진》에서 연락이 왔다. 다음달에 창간 마흔여섯 돌이라 하면서, 특집기사를 낸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사진을 즐기다’라는 꼭지가 있어, 나한테도 몇 가지를 여쭌다고 한다. 사진책을 읽는 즐거움, 가장 좋아하는 사진책 하나, 사진책을 읽는 버릇, 사진책을 잘 갖춘 책방, 사진책이란 무엇인가, 하고 다섯 가지를 여쭌다. 어느 하나 쉬 말하기 어려운 물음이다. 모두들 퍽 길게 적을 만한 물음이다. 그러나 짤막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니까 여러모로 간추려서 적어 본다. 새벽에 바지런히 글을 쓰서 누리편지를 띄운다. 아침에 아이들과 서재도서관으로 간다. 잡지 기사에 사진을 함께 싣는다 하기에, 가장 좋아하는 사진책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야 한다. 이렁저렁 도서관 청소를 하고 나서 책 사진을 찍는다. 책 사진을 찍는 김에 오랜만에 ‘사진책 자리’도 사진으로 찍는다. 이제 도서관 바닥에 자질구레한 것이 거의 없는 터라, 어디에서 어떻게 찍어도 퍽 그림이 된다고 느낀다. 책꽂이 벽에 붙인 사진도 좋은 그림이 된다. 사진이 그림이 된다.


  집으로 돌아와 누리편지를 다시 보낸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내 책으로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2007년부터 오늘 이때까지 달삯을 꼬박꼬박 치르면서 ‘사진책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벌이가 마땅하지 않으면서 달삯을 치르기란 벅찬 일이라 할 만하지만, 이곳 ‘사진책 서재도서관’이 씩씩하고 튼튼하게 이어가기를 바라는 사람들 따순 손길에 힘입어 오늘 하루도 즐겁게 지킬 수 있다. 나라에서나 지역정부에서나 내 서재도서관을 도운 적은 없다. 아마, 나라나 지역정부에서 생각이 있었으면, ‘국립 사진도서관’이나 ‘시립(또는 군립) 사진도서관’을 세우지 않았을까. 꼭 번듯한 건물로 세워야 할 ‘사진도서관’ 또는 ‘사진책도서관’은 아니다. 자그마한 골목집 하나를 알맞춤한 값으로 사들여서 예쁘게 꾸미면 된다. 나라에서도 지역정부에서도 이 같은 일을 안 하니까, 나는 내 힘으로 이 일을 한다. 사진과 사진책을 사랑하고 싶은 이라면, 전남 고흥이 퍽 먼 시골로 느낀다 하더라도 스스럼없이 찾아오리라. 책과 사진을 누리면서 좋은 숲과 시골과 자연을 나란히 누리리라.


  사람은 책만 볼 수 없다. 사람이 책을 보자면, 책이 태어나는 밑바탕이 되는 숲을 함께 보아야 한다. 숲을 느끼며 책을 볼 때에 비로소 삶도 사랑도 사람도 슬기롭게 깨달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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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기
[말사랑·글꽃·삶빛 16] ‘찬물’과 ‘더운물’

 


  차갑다고 느껴서 ‘찬물’입니다. 덥다고 느껴서 ‘더운물’입니다. 느끼는 그대로 쓰는 말입니다. 차갑게 해서 먹는 국수이기에 ‘찬국수’입니다. 따뜻하게 해서 먹는 국수이기에 ‘더운국수’예요. 먹는 결 그대로 붙이는 이름입니다. 차갑게 부는구나 싶어 ‘찬바람’입니다. 덥게 부는구나 싶어 ‘더운바람’이에요. 여름날 후덥지근하게 부는 바람은 더운바람이로구나 싶고, 겨울날 매섭게 부는 바람은 찬바람이로구나 싶어요.


  국어사전을 뒤적입니다. ‘찬-’ 것과 ‘더운-’ 것을 가리키는 낱말이 모두 실리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찬바람’은 실리나 ‘더운바람’은 안 실려요. ‘찬국수’와 ‘더운국수’라는 낱말은 실리기는 하지만, 두 낱말은 북녘말이라고 토를 붙입니다. 남녘에서는 ‘찬국수’나 ‘더운국수’라고는 안 쓰고 ‘냉면(冷麵)’이랑 ‘온면(溫麵)’으로 쓴다고 해요. 꼭 국어사전을 뒤적이지 않더라도 알 만합니다. 길거리에 가득한 밥집마다 ‘냉면’이라고 적지, ‘찬국수’라 적지 않아요. 북녘에서는 ‘찬국수’라는 말을 쓴다 하지만 ‘랭면’이라고 곧잘 써요. 남녘이나 북녘이나 ‘국수를 먹으’면서 국수를 먹는 줄 못 느낀다 할까요, 생각을 못 한다고 할까요.


  가만히 살피면, ‘찬물’과 ‘더운물’이라 해야 옳으나, ‘냉수(冷水)’와 ‘온수(溫水)’로 적는 사람이 많습니다. 쉽게 쓰지 못하고, 꾸밈없이 쓰지 못합니다. 찬찬히 살펴 쓰지 못하고, 가만히 사랑하며 쓰지 못해요.


  시인 이선관 님이 1983년에 펴낸 퍽 묵은 시집 《보통市民》(청운사)에 실린 〈거지論〉이라는 시를 읽다가 “일그러진 얼굴에 냉소를 띄우면서”라 적힌 글월을 봅니다. 좋은 시를 좋은 마음으로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1983년 아닌 2013년에도, 또는 서른 해가 더 지나는 2043년에도 한국사람은 ‘냉소(冷笑)’와 같은 한자말을 쓸는지, 앞으로는 이 낱말을 살가이 걸러낼 만한지 궁금합니다. 국어사전에서 말풀이를 살피면, “쌀쌀한 태도로 비웃음”이라 나옵니다. 곧, 한자말로는 ‘냉소’요, 한국말로는 ‘비웃음’인 셈입니다. 국어사전 말풀이에는 “≒ 찬웃음”이라고도 나옵니다. 그래서 ‘찬웃음’이라는 낱말을 다시 찾으면, “= 냉소”라고 나와요. 그러니까, ‘찬웃음’과 ‘냉소’는 같은 낱말이라는 뜻이요, 한국사람이 쓸 한국말은 ‘찬웃음’이라는 얘기입니다.


  한국말은 있습니다. 한국말은 틀림없이 있습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이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니까 모르거나 못 찾을 뿐입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가꾸거나 아끼거나 사랑하지 않기에 한국말이 제자리를 못 잡을 뿐입니다.


  참말 ‘찬웃음’이라 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습니다. ‘더운웃음’이라 말하는 사람도 만날 수 없습니다. 마땅한 얘기인데, ‘더운웃음’이라는 낱말은 없어요. 이런 낱말로 생각을 나타내는 사람도 없어요. 다만, 조금 더 생각을 기울인다면, ‘더운웃음’이라는 낱말을 쓸 일은 없을 수 있으나, ‘따순웃음’처럼 적을 때에는 여러모로 쓸 일이 많습니다. “따순 웃음”이나 “따순 이웃”처럼 띄어서 적어야 옳다 하지만, ‘따순-’을 앞에 붙이면서 여러모로 생각을 넓힐 수 있어요. ‘따순마음’이라든지 ‘따순말’이라든지 ‘따순생각’이라든지 ‘따순글’이라든지 ‘따순밥’처럼 쓸 만해요. 이와 맞서는 낱말로 ‘찬마음’과 ‘찬말’과 ‘찬생각’과 ‘찬글’와 ‘찬밥’처럼 쓸 수 있겠지요.


  생각하기에 한국말이 있습니다. 생각하지 않기에 한국말이 없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한국말을 예쁘게 빚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한국말을 얼결에 망가뜨립니다.


  따숩게 생각하면서 따숩게 사랑을 나누는 말이 태어납니다. 차갑게 생각하기에 차갑게 미움을 키우는 말이 생겨납니다. 따숩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따숩게 북돋우는 넋입니다. 차갑게 톡톡 쏠 적에 차갑게 깎아내리는 얼입니다. (4345.7.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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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7-12 22:12   좋아요 0 | URL
찬웃음이라고 하면 비웃음의 뜻이 연상되는데 만약 시원한 웃음이라고 하면 반대의 뜻으로 전달되네요. 찬것과 시원한 것의 차이는 뭘까. 차다고 하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고 시원하다고 하는 것엔 차다고 느끼는 사람의 기분과 감정이 들어가있는 것인가...낱말 하나 가지고도 생각거리가 됩니다. 위의 글을 읽다가 문득 '글월'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어요. 이 말은 우리 말일까 한자일까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우리 말이네요. 글월이란 말의 '월'은 여기서 무슨 역할을 할까요? 궁금한게 생기면 재미있습니다 ^^

파란놀 2012-07-13 09:21   좋아요 0 | URL
차다, 시원하다,
는 객관과 주관으로 나누지 않아요.

곰곰이 따지면,
한국말뿐 아니라 세계 어느 말도
객관이나 주관이란 없어요.

어느 말이든 생각과 느낌을 담을 뿐이고,
어떤 생각과 느낌이든
주관이나 객관이라는 '이중 잣대' 또는 '이분법'으로
가를 수 없답니다.

차다와 시원하다는,
둘 모두 '같은 온도'일 수 있지만,
한쪽은 그저 온도만 느끼는 낱말이고,
다른 한쪽은 '같은 온도'라 하더라도 내 몸을 좋게 해 준다는 느낌이
더한 낱말이에요.

hnine 2012-07-13 09:41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대로 '느낌을 더한 낱말', 이게 곧 주관적이라는 것과 같은 뜻 아닐까요? 느낌이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요.

파란놀 2012-07-13 10:02   좋아요 0 | URL
에구구... ㅠ.ㅜ
hnine 님,
객관이든 주관이든
'사람이 따지거나 재거나 살피는' 일이에요.
그래서, 어떠한 '객관'도 있을 수 없어요.
곧, 어떠한 '주관'도 없다는 소리예요.

모두,
사람들 스스로 느끼는 마음과
사람들 스스로 빚는 생각이에요.

이런 마음과 생각을
주관이나 객관이라는 틀에 가둘 수 없어요.

마음과 생각은 '좁은 울타리'가 아니라,
저마다 사랑하며 살아가는 나날을 담는 빛이니까요...


책읽는나무 2012-07-14 21:23   좋아요 0 | URL
갑자기 찬물이라고 하니깐 생각나는데요.
예전에 젊은시절 서울 올라갔을때 커피숖을 갔었는데요.
제가 "찬물 주세요"라고 하니까 종업원이 말을 못알아듣더라구요.
곁에 있던 선배가 핀잔 주면서 촌말을 쓰니 못알아듣는다고 정정하던데
"시원한물 주세요"라고 하니까 정말 바로 알아듣더라구요.ㅡ.ㅡ;;
그때부터 찬물과 시원한물의 차이는 뭘까? 혼자서 심각하게 고민했었어요.
왜 차다라는 표현보다 시원하다라는 표현을 세련되게 느끼는 것일까? 뭐 그런~~
그러고보니 예전엔 이곳에선 찬물이란 말을 더 많이 쓰고 있었는데,
요즘은 이곳에도 주로 냉수,냉국수,냉칼국수란 단어를 더 많이 쓰고 있네요.
시대가 변함에 따라 사람들의 말도 자꾸 바뀌어 가네요.

파란놀 2012-07-16 09:43   좋아요 0 | URL
시대가 바뀌어서 말이 바뀌지는 않으리라 느껴요.
사람들 생각이 '사라져' 버리면서 말도 '사라져' 버리는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