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기
[말사랑·글꽃·삶빛 16] ‘찬물’과 ‘더운물’

 


  차갑다고 느껴서 ‘찬물’입니다. 덥다고 느껴서 ‘더운물’입니다. 느끼는 그대로 쓰는 말입니다. 차갑게 해서 먹는 국수이기에 ‘찬국수’입니다. 따뜻하게 해서 먹는 국수이기에 ‘더운국수’예요. 먹는 결 그대로 붙이는 이름입니다. 차갑게 부는구나 싶어 ‘찬바람’입니다. 덥게 부는구나 싶어 ‘더운바람’이에요. 여름날 후덥지근하게 부는 바람은 더운바람이로구나 싶고, 겨울날 매섭게 부는 바람은 찬바람이로구나 싶어요.


  국어사전을 뒤적입니다. ‘찬-’ 것과 ‘더운-’ 것을 가리키는 낱말이 모두 실리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찬바람’은 실리나 ‘더운바람’은 안 실려요. ‘찬국수’와 ‘더운국수’라는 낱말은 실리기는 하지만, 두 낱말은 북녘말이라고 토를 붙입니다. 남녘에서는 ‘찬국수’나 ‘더운국수’라고는 안 쓰고 ‘냉면(冷麵)’이랑 ‘온면(溫麵)’으로 쓴다고 해요. 꼭 국어사전을 뒤적이지 않더라도 알 만합니다. 길거리에 가득한 밥집마다 ‘냉면’이라고 적지, ‘찬국수’라 적지 않아요. 북녘에서는 ‘찬국수’라는 말을 쓴다 하지만 ‘랭면’이라고 곧잘 써요. 남녘이나 북녘이나 ‘국수를 먹으’면서 국수를 먹는 줄 못 느낀다 할까요, 생각을 못 한다고 할까요.


  가만히 살피면, ‘찬물’과 ‘더운물’이라 해야 옳으나, ‘냉수(冷水)’와 ‘온수(溫水)’로 적는 사람이 많습니다. 쉽게 쓰지 못하고, 꾸밈없이 쓰지 못합니다. 찬찬히 살펴 쓰지 못하고, 가만히 사랑하며 쓰지 못해요.


  시인 이선관 님이 1983년에 펴낸 퍽 묵은 시집 《보통市民》(청운사)에 실린 〈거지論〉이라는 시를 읽다가 “일그러진 얼굴에 냉소를 띄우면서”라 적힌 글월을 봅니다. 좋은 시를 좋은 마음으로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1983년 아닌 2013년에도, 또는 서른 해가 더 지나는 2043년에도 한국사람은 ‘냉소(冷笑)’와 같은 한자말을 쓸는지, 앞으로는 이 낱말을 살가이 걸러낼 만한지 궁금합니다. 국어사전에서 말풀이를 살피면, “쌀쌀한 태도로 비웃음”이라 나옵니다. 곧, 한자말로는 ‘냉소’요, 한국말로는 ‘비웃음’인 셈입니다. 국어사전 말풀이에는 “≒ 찬웃음”이라고도 나옵니다. 그래서 ‘찬웃음’이라는 낱말을 다시 찾으면, “= 냉소”라고 나와요. 그러니까, ‘찬웃음’과 ‘냉소’는 같은 낱말이라는 뜻이요, 한국사람이 쓸 한국말은 ‘찬웃음’이라는 얘기입니다.


  한국말은 있습니다. 한국말은 틀림없이 있습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이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니까 모르거나 못 찾을 뿐입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가꾸거나 아끼거나 사랑하지 않기에 한국말이 제자리를 못 잡을 뿐입니다.


  참말 ‘찬웃음’이라 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습니다. ‘더운웃음’이라 말하는 사람도 만날 수 없습니다. 마땅한 얘기인데, ‘더운웃음’이라는 낱말은 없어요. 이런 낱말로 생각을 나타내는 사람도 없어요. 다만, 조금 더 생각을 기울인다면, ‘더운웃음’이라는 낱말을 쓸 일은 없을 수 있으나, ‘따순웃음’처럼 적을 때에는 여러모로 쓸 일이 많습니다. “따순 웃음”이나 “따순 이웃”처럼 띄어서 적어야 옳다 하지만, ‘따순-’을 앞에 붙이면서 여러모로 생각을 넓힐 수 있어요. ‘따순마음’이라든지 ‘따순말’이라든지 ‘따순생각’이라든지 ‘따순글’이라든지 ‘따순밥’처럼 쓸 만해요. 이와 맞서는 낱말로 ‘찬마음’과 ‘찬말’과 ‘찬생각’과 ‘찬글’와 ‘찬밥’처럼 쓸 수 있겠지요.


  생각하기에 한국말이 있습니다. 생각하지 않기에 한국말이 없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한국말을 예쁘게 빚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한국말을 얼결에 망가뜨립니다.


  따숩게 생각하면서 따숩게 사랑을 나누는 말이 태어납니다. 차갑게 생각하기에 차갑게 미움을 키우는 말이 생겨납니다. 따숩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따숩게 북돋우는 넋입니다. 차갑게 톡톡 쏠 적에 차갑게 깎아내리는 얼입니다. (4345.7.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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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7-12 22:12   좋아요 0 | URL
찬웃음이라고 하면 비웃음의 뜻이 연상되는데 만약 시원한 웃음이라고 하면 반대의 뜻으로 전달되네요. 찬것과 시원한 것의 차이는 뭘까. 차다고 하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고 시원하다고 하는 것엔 차다고 느끼는 사람의 기분과 감정이 들어가있는 것인가...낱말 하나 가지고도 생각거리가 됩니다. 위의 글을 읽다가 문득 '글월'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어요. 이 말은 우리 말일까 한자일까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우리 말이네요. 글월이란 말의 '월'은 여기서 무슨 역할을 할까요? 궁금한게 생기면 재미있습니다 ^^

숲노래 2012-07-13 09:21   좋아요 0 | URL
차다, 시원하다,
는 객관과 주관으로 나누지 않아요.

곰곰이 따지면,
한국말뿐 아니라 세계 어느 말도
객관이나 주관이란 없어요.

어느 말이든 생각과 느낌을 담을 뿐이고,
어떤 생각과 느낌이든
주관이나 객관이라는 '이중 잣대' 또는 '이분법'으로
가를 수 없답니다.

차다와 시원하다는,
둘 모두 '같은 온도'일 수 있지만,
한쪽은 그저 온도만 느끼는 낱말이고,
다른 한쪽은 '같은 온도'라 하더라도 내 몸을 좋게 해 준다는 느낌이
더한 낱말이에요.

hnine 2012-07-13 09:41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대로 '느낌을 더한 낱말', 이게 곧 주관적이라는 것과 같은 뜻 아닐까요? 느낌이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요.

숲노래 2012-07-13 10:02   좋아요 0 | URL
에구구... ㅠ.ㅜ
hnine 님,
객관이든 주관이든
'사람이 따지거나 재거나 살피는' 일이에요.
그래서, 어떠한 '객관'도 있을 수 없어요.
곧, 어떠한 '주관'도 없다는 소리예요.

모두,
사람들 스스로 느끼는 마음과
사람들 스스로 빚는 생각이에요.

이런 마음과 생각을
주관이나 객관이라는 틀에 가둘 수 없어요.

마음과 생각은 '좁은 울타리'가 아니라,
저마다 사랑하며 살아가는 나날을 담는 빛이니까요...


책읽는나무 2012-07-14 21:23   좋아요 0 | URL
갑자기 찬물이라고 하니깐 생각나는데요.
예전에 젊은시절 서울 올라갔을때 커피숖을 갔었는데요.
제가 "찬물 주세요"라고 하니까 종업원이 말을 못알아듣더라구요.
곁에 있던 선배가 핀잔 주면서 촌말을 쓰니 못알아듣는다고 정정하던데
"시원한물 주세요"라고 하니까 정말 바로 알아듣더라구요.ㅡ.ㅡ;;
그때부터 찬물과 시원한물의 차이는 뭘까? 혼자서 심각하게 고민했었어요.
왜 차다라는 표현보다 시원하다라는 표현을 세련되게 느끼는 것일까? 뭐 그런~~
그러고보니 예전엔 이곳에선 찬물이란 말을 더 많이 쓰고 있었는데,
요즘은 이곳에도 주로 냉수,냉국수,냉칼국수란 단어를 더 많이 쓰고 있네요.
시대가 변함에 따라 사람들의 말도 자꾸 바뀌어 가네요.

숲노래 2012-07-16 09:43   좋아요 0 | URL
시대가 바뀌어서 말이 바뀌지는 않으리라 느껴요.
사람들 생각이 '사라져' 버리면서 말도 '사라져' 버리는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