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책읽기

 


  한여름을 맞이하면서 이른새벽부터 이른아침까지 퍽 서늘하다 싶도록 시원하다. 이 시원한 한여름 새벽나절은 들일을 하기에 아주 좋다. 새벽 세 시 반 무렵부터 네 시 사이에 하루를 열어 아침 일곱 시 반이나 여덟 시 무렵 집으로 돌아와 밥술을 뜨면, 얼추 하루 동안 할 몫은 거의 마무리짓는다 할 만하다. 한여름은 들판 풀을 베거나 뜯으며 보내면 된다.


  가장 시원할 때에 가장 좋은 땀을 흘린다. 가장 따스하게 날이 새며 환할 때에 밥술을 뜬다. 차츰 더위가 찾아들 무렵 상큼하게 씻는다. 조금씩 더워질 무렵 느긋하게 두 다리 뻗고 한숨 돌린다.


  한 사람이 숲에서 삶자리 이루어 사랑을 짓는다 할 때에 한여름은 시원함과 더위와 상큼함과 따스함과 밝음과 뜨거움에 이어 촉촉함과 환함이 골고루 찾아드는 철이로구나 싶다. 뭉게구름을 올려다본다. 눈부시게 파란 빛깔이 춤추는 하늘 사이사이 하얗게 피어나는 꽃구름을 올려다본다. 하얀 꽃구름 옆으로 잿빛 꽃구름이 겹친다. 저녁이 되어 해가 기울기 앞서 빨래를 걷는다. 한여름에는 해가 꼴깍 넘어가기 앞서 옷가지에 후끈후끈한 기운이 배었을 때에 걷어야 한다. 한여름에는 해가 넘어간 뒤에 빨래를 걷으면 어쩐지 ‘잘 마른 빨래가 다시 축축해진’ 느낌이다.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운다. 들길을 달린다. 잘 자란 벼포기로 가득한 들판 사이를 달린다. 잠자리가 얼굴에 와서 닿는다. 바람결을 느끼며 팔을 팔랑팔랑 젓는다. 아이들은 자전거수레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하루가 천천히 저문다. 물을 덥혀 아이들을 씻기고, 빨래를 하며, 나도 씻는다. 노을빛이 짙붉게 타오르면서 풀벌레 노랫소리가 펼쳐지고, 이제 한여름 개구리 노랫소리는 가물가물하다. 고즈넉한 소리가 내 몸과 옆지기 몸과 아이들 몸을 감돈다. (4345.7.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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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7-23 23:24   좋아요 0 | URL
아, 된장 님은 자연과 함께, 자연 속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사시는군요.
개구리 노랫소리가 듣고 싶네요. 개굴개굴... ㅋ

파란놀 2012-07-24 01:17   좋아요 0 | URL
개구리는 봄에 많이 울고
여름에는 잘 안 울어요.

아무튼 저희는 아주 깊은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니까요~ ^^
 
숲 속에서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8
김재홍 그림 / 길벗어린이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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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 무지개 풀숲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84] 김재홍, 《숲 속에서》(길벗어린이,2000)

 


  나무 우거진 멧자락을 멀리에서 바라보면 울긋불긋한 푸른 빛깔이 출렁입니다. 똑같은 풀빛이 아닌 다 다른 풀빛입니다. 나무마다 푸른 잎사귀 빛깔이 다르고, 한 갈래 나무라 하더라도 가지마다 푸른 잎사귀 빛깔이 다르며, 한 가지라 하더라도 나뭇잎마다 빛깔이 살며시 달라요.


  들이나 밭에서 풀을 뜯으며 풀빛을 바라봅니다. 풀마다 빛깔이 다릅니다. 같은 갈래라 하더라도 뿌리내린 흙과 볕이 드는 자리에 따라 빛깔이 다릅니다. 한 뿌리 풀 포기라 하더라도 웃잎과 아랫잎 빛깔이 다르고, 왼잎과 오른잎 빛깔이 달라요.


  숲으로 들어서면 저마다 다른 풀빛이 예쁘게 얼크러집니다. 맑은 풀빛이 있고, 밝은 풀빛이 있으며, 환한 풀빛이랑 고운 풀빛이 있어요. 짙은 풀빛과 옅은 풀빛이 있는 한편, 얇은 풀빛이랑 예쁜 풀빛이 있어요.


  참 좋네, 하고 생각하며 숨을 크게 들이마십니다. 참 좋아, 하고 말하며 두 팔을 쭉 뻗습니다. 온갖 풀은 저마다 다른 푸른숨을 내뱉아 사람한테 다 다르게 좋으며 반가운 푸른빛을 나누어 줍니다. 무화과나무 잎사귀는 무화과나무 내음을 나누어 줍니다. 굴참나무 잎사귀는 굴참나무 내음을 나누어 줍니다. 질경이도 쑥도 환삼덩쿨도 저마다 고운 내음을 나누어 줍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갖가지 풀내음을 맡으며 기쁘게 웃습니다. 이 풀들이 있어 내가 살고, 내가 살며 이 풀들이 이곳에서 살아갑니다.


.. “서울서 이사 온 애다!” “야, 이리 와! 우리랑 같이 놀자!” ..  (4쪽)

 

 

 


  긴 장마가 지난 하늘은 파랗습니다. 구름이 몽실몽실 피어오릅니다. 뭉게구름을 바라봅니다. 온 멧자락마다 뭉게구름이 좋은 그늘을 드리웁니다. 한여름 폭폭 찌는 더위는 살살 흐르는 뭉게구름이 때때로 그늘을 드리우며 시원하게 식혀 줍니다. 한여름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은 들나무와 멧나무 잎사귀를 한결 푸르게 다스리면서 온누리에 좋은 기운을 북돋웁니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지나갑니다. 푸른 들판에 사람들이 두 다리를 버티고 섭니다. 하얀 구름은 파란 하늘을 지나면서 하얗고 파란 바람을 실어 나릅니다. 푸른 들판은 푸른 내음 가득한 바람을 실어 나릅니다. 사람들은 파란 바람과 하얀 바람과 푸른 바람을 마십니다. 여름날 좋은 기운을 한껏 받아들이면서 눈이 트이고 마음이 열리며 생각이 자랍니다. 여름날 좋은 햇살과 냄새와 숨결을 맞아들이면서 귀가 트이고 입이 열리며 사랑이 자랍니다.


.. 마당으로 들어선 샘이는 한숨을 폭, 내쉬었어요. “아, 심심해!” 샘이는 막대기를 하나 주워 들고 마당 가득 그림을 그렸어요 ..  (8쪽)

 

 

 

 


  시골은 숲이기에 좋습니다. 숲을 아끼는 시골이기에 좋습니다. 시골은 숲과 함께 이루어지기에 좋습니다. 숲을 보살피는 시골이기에 좋습니다. 시골은 숲에서 밥과 옷과 집을 얻기에 좋습니다. 숲을 사랑하며 어깨동무하는 시골이기에 좋습니다.


  모든 목숨은 생각에서 태어나고, 생각에서 태어난 모든 목숨은 숲에서 사랑합니다. 모든 목숨은 생각으로 빛나고, 생각으로 빛나는 모든 목숨은 숲에서 꿈을 키웁니다.


  사람은 숲을 벱니다. 숲을 베어 도시를 세웁니다. 사람은 숲을 밟습니다. 숲을 밟아 공장을 짓습니다. 사람은 숲을 없앱니다. 숲을 없애고 관광지를 만듭니다. 사람은 숲을 멀리합니다. 숲을 멀리하면서 학교와 회사와 아파트에서 온 하루 온 삶을 보내고야 맙니다. 사람은 숲을 무너뜨립니다. 숲을 무너뜨리면서 고속도로와 공항을 늘립니다. 사람은 숲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숲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사람다이 살아가는 길과 넋과 뜻을 모두 잃고 떠돕니다.


  어른부터 숲하고 등지면서 아이도 숲하고 등집니다. 숲하고 멀찍하게 떨어진 데에서 돈을 버는 일만 하는 어른은 숲을 처음부터 겪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아이가 오직 시험점수 따는 기계로 자라는 모습을 살갗으로 느끼거나 깨닫지 못합니다.


  어른 스스로 숲에 깃들 때에 아이 또한 숲에 깃들 수 있습니다. 어른 스스로 숲으로 나아가 마음을 다스리고 생각을 일으킬 때에 아이 또한 숲에서 누리는 꿈과 사랑을 빛낼 수 있습니다.


  숲에서는 즐겁게 밥·옷·집을 얻고 나눕니다. 숲에서는 홀가분하게 놀이와 재미와 기쁨을 찾고 나눕니다. 숲에서는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전화기도 전기도 부질없습니다. 숲에서는 햇살과 바람과 물과 흙이 있으면 넉넉합니다.


.. 조용하던 숲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 왔어요. 피리 소리처럼 고운 새소리였어요 ..  (19쪽)

 

 

 


  개미가 숲에서 집을 짓습니다. 새가 숲에서 둥지를 틉니다. 사슴이 숲에서 밥을 먹습니다. 토끼가 숲에서 밥을 찾습니다. 벌레가 숲에서 노래합니다. 지렁이가 숲에서 춤을 춥니다.


  숲에서는 누구나 아름답게 살림을 꾸립니다. 숲에서는 빼앗거나 빼앗기는 생채기가 없습니다. 숲에서는 누구나 너그러이 아이와 살아갑니다. 숲에서는 일등도 없고 꼴등도 없습니다.


  샘물은, 맑고 파란 하늘에서 하얀 구름이 뿌린 빗물이 푸르게 숲을 이룬 풀과 나무 사이로 떨어져 흙을 타고 땅속으로 스미면서 가장 맑고 가장 좋으며 가장 훌륭한 ‘목숨물’이 됩니다. 석유를 쓰는 기계로 땅을 파헤쳐 끌어올린 다음 공장에서 플라스틱병에 담는 먹는샘물은 얼마나 ‘목숨물’이 될 만할까요.


  밥은, 맑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푸르게 기름진 흙땅에 뿌리를 내린 들판에서 자라나는 곡식일 때에 가장 밝고 가장 맛있으며 가장 사랑스러운 밥이 됩니다. 석유를 쓰는 기계로 숲을 밀고는 세운 공장에서 전기를 움직여 만든 가공식품은 얼마나 ‘밥’이 될 만할까요.


  아이는 누구나 숲에서 두렵다고 안 느낍니다. 어른도 누구나 숲에서 무섭다고 안 느낍니다. 왜냐하면, 숲은 사랑이고 숲은 슬기이며 숲은 삶이니까요. 숲은 밥을 주고 옷을 주며 집을 줍니다. 숲에 깃들어 논이나 밭을 몇 뙈기 일굽니다. 숲에 머물며 멧길을 오르내리고 멧나물을 누립니다. 숲에 뿌리내려 나 스스로 ‘숲을 이루는 또 다른 목숨’이 되어 살아갑니다.


.. “그냥……. 무서워서…….” 샘이는 쑥스러워서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어요. “무섭긴 뭐가 무서워. 우리는 날마다 여기서 노는데.” 깜장콩이 콧물을 훌쩍 들이마시며 말했어요 ..  (31쪽)

 

 

 


  김재홍 님이 빚은 그림책 《숲 속에서》(길벗어린이,2000)를 읽습니다. 한여름 소나기가 내리는 숲은 그야말로 온갖 풀빛이 무지개처럼 노래합니다. 무지개는 일곱 빛깔 곱다 하는데, 여름날 풀숲은 일곱 가지뿐 아니라 일흔 가지 칠백 가지 넘는 수많은 풀빛이 곱게 얼크러집니다.


  아이들은 숲에서 심심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숲에서 고단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숲에서 신나게 놉니다. 어른들은 숲에서 흐뭇하게 일합니다.


  숲에서는 길이 따로 없습니다. 꼭 이리로 가야 하지 않고, 굳이 저리로 가야 하지 않습니다. 숲에서는 이렇게 해야 하거나 저렇게 해야 하는 틀이 없습니다. 무지개처럼 환하게 빛나는 풀빛을 느끼면서 내 몸과 마음에 좋은 풀빛이 무지개처럼 흐드러지도록 할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한여름 뭉게구름을 누립니다. 한여름 풀숲을 누립니다. 한여름 파란 하늘을 누립니다. 한여름 푸른 멧등성이와 들판을 누립니다. 도시사람은 여름을 맞이하여 며칠 얻는 말미(휴가)에 시골마을 숲자락을 찾아가고 나서야 비로소 어떤 삶이 삶답고 어떤 길이 길다운가를 살짝 맛보지만, 아직까지 마음 깊이 따사롭게 푸른마음을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학교에 ‘영어 교실’ 아닌 ‘작은 숲’을 마련해 주셔요. 아이들이 어른이 될 날을 생각한다면, 도시 곳곳에 두 다리와 몸을 느긋하게 쉴 ‘숲터(숲 공원)’를 마련해 주셔요. 어른 스스로 즐겁게 누릴 삶을 생각한다면, 삶자리를 숲으로 옮기거나 삶자리에 숲을 일구어 주셔요. (4345.7.23.달.ㅎㄲㅅㄱ)

 


― 숲 속에서 (김재홍 글·그림,길벗어린이 펴냄,2000.11.30./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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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7-23 18:09   좋아요 0 | URL
자극적인 양념으로 조리된 음식에 길들여진 사람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담백한 음식에서 특별한 맛을 못느낀는 것에 비유가 될까요? 도시에서 자란 아이가 시골의 숲에서 재미를 찾는다는 것이요. 안타까운 일이지요.
아주 사실적인 그림을 보고 언뜻 김동성 화가를 떠올렸다가 검색해보고 이분에 대해 새로이 알고 가요.

그나저나 오늘 무척 더운 날인데 아가들이랑 이 더위에 어찌 지내시는지......

파란놀 2012-07-23 20:41   좋아요 0 | URL
.. 그런데 어느 모로 보면 '사실적'이라기보다 '사진 같은' 그림이에요. 꼼꼼하게 담아내는 그림에서 '그림이 사진 아닌 깊이와 멋'을 보여주는 틀을 우리 화가들이 더 살피고 사랑을 기울이면서 헤아리면 좋으리라 느껴요 ..

그런데, '양념'은 '자극이 있'지 않아도, '양념인 것으로도 재료 맛을 없애'곤 하니까요...

페크pek0501 2012-07-23 23:21   좋아요 0 | URL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학교에 ‘영어 교실’ 아닌 ‘작은 숲’을 마련해 주셔요"
- 저도 숲이 많았으면 하고 생각했어요. 햇볕이 뜨거운 여름엔 더욱 간절하죠.
제가 살았던 아파트의 공원에 농구대가 있었는데, 그곳에 흙먼지가 일어난다고 흙바닥을 시멘트 바닥으로 바꾸는 공사를 하더라고요. 흙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어요.

비 오는 숲 속, 생각만 해도 멋져요. 흙냄새가 확 풍겨 올 것 같은...

파란놀 2012-07-24 01:13   좋아요 0 | URL
이제, 시골학교 운동장조차 흙땅을 없애고 트랙으로 바뀌던걸요... 참... 어른이라 하는 사람들 생각이 얼마나 얕아지려 하는지 슬프곤 해요...
 

[함께 살아가는 말 104] 네 여 아

 

  누리집에 사진을 올리면서 사진파일 숫자를 하나하나 욉니다. 넷째 사진, 여섯째 사진, 아홉째 사진, ……. 사진파일은 스물이나 마흔을 넘어가기도 합니다. 이 가운데 몇몇을 골라서 올리자고 생각하다가, 숫자가 꽤 길어 이러면 다 못 외우겠네 싶습니다. 파일 숫자를 잊지 않으려고 뒷자리를 ‘사(四) 륙(六) 구(九)’라고 욉니다. 문득 ‘넷 여섯 아홉’이라고 외면 어떨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러다가, 앞소리만 따서 ‘네 여 아’라고 외어도 되겠구나 싶습니다. 나 스스로 가장 외기 좋도록 외면 돼요. 그러고 보면, 어린 날 동무들이랑 놀며 숫자를 셀 때에 더 빨리 세겠다며 ‘하 둘 셋 넷 다 여’처럼 왼 적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숫자를 ‘하 둘’이나 ‘다 여’처럼 외는 소리를 곁에서 어른들이 들으면, 예끼 이놈들 숫자를 그처럼 엉터리로 외면 안 돼, 하고 나무랐습니다. 하나하나 똑똑히 읊어야 한다는 말씀이에요. 그래서 나는 숫자를 앞 글만 따서 외어 버릇하지 않았어요. 빨리 말하느라 꼬이거나 늦어도 ‘다섯 여섯’처럼 말하려고 애썼어요. 귀엽게 일컫는다면서 다 함께 줄여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면, 어느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가리킬 적에도 이름 한두 글자를 일부러 빼거나 덜어 부르는 일은 사랑스럽지 않아요. 곱고 예쁘며 알맞고 바르게 읊어야지요. 그런데, 어느 한편으로 보면, 아이일 적부터 숫자를 빨리 말하느라 ‘외 글자’인 한자말 ‘사 륙 구’만 쓰다 보면, 시나브로 ‘넷 여섯 아홉’하고는 멀어지겠구나 싶어요. 숫자를 세며 하나하나 똑똑히 말하되, 때때로 스스로 ‘네 여 아’처럼 말할 줄 알 때에 슬기롭겠지요. (4345.7.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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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받는 옷

 


  선물받는 옷은 우리한테 찾아온 새 옷이다. 우리한테 선물해 주는 옷은 선물하는 분들이 깨끗하게 빨아서 건넨다. 새로 받는 옷에서는 ‘새로 받는 옷 냄새’가 있다. 가게에서 옷을 새로 살 때에도 ‘새로 사는 옷 냄새’가 있다. 우리 식구는 ‘새 옷’을 받거나 장만하면 그대로 입히지 않는다. 먼저 한두 차례 빨래를 해서 ‘새 옷 냄새’를 빼낸다. 그런데, 한두 차례 빨래를 하고 햇볕에 말린대서 ‘새 옷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입히고 빨고를 여러 달 되풀이하면 ‘새 옷 냄새’는 비로소 차츰 줄어든다.


  오늘날은 거의 모두라 할 만한 옷가지를 공장에서 화학섬유를 짜서 만든다. 화학섬유를 짜서 만드는 옷에 화학약품으로 빛깔을 입힌다. 오늘날 여느 도시사람은 화학세제로 옷을 빨래한다. 오늘날 여느 도시사람은 화학성분으로 만든 비누로 몸을 씻는다. 옷을 가게에서 새로 산다 한들 달갑지 못하지만, 옷을 누군가한테서 얻을 때조차 그리 반갑지 못하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오늘을 살아가면서 이 얼거리를 스스로 풀려 하는 이웃이 드물거나 없다면, 이 얼거리에서 ‘새 옷 냄새’를 줄이며 아이들 옷을 입히는 길을 찾아야겠지.


  들판에 서거나 들길을 걸으면 들내음이 몸에 스며든다. 멧길을 걷거나 멧자락에 안기면 멧내음이 몸에 감돈다. 바다에 서거나 바닷물에 뛰어들면 바다내음이 몸에 어린다. 살아가는 길이 살아가는 내음이 된다. 생각하는 삶이 곱게 풍기는 내 삶내음이 된다. (4345.7.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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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에 서다

 


  이제 더는 아무도 다니지 않아 저절로 문을 닫은 조그마한 학교가 있는 자그마한 섬에서 옛 학교문이랑 옛 우물자리를 바라본다.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기 앞서 어디이든 숲이었고, 사람들이 학교를 세우기 앞서 어느 곳이나 숲이었다. 메와 들로 이루어진 지구별 땅이었다. 메와 들에는 산들산들 멧바람과 들바람이 불었다. 둘째 아이한테 붙인 이름은 ‘산들보라’인데, 사람들은 숲을 얼마나 ‘볼’ 수 있을까. 숲에 깃들어 푸른 빛을 뽐내던 사람들 가슴마다 깃든 하느님을 얼마나 잘 ‘볼’ 수 있을까. 푸른 빛깔 우거진 숲을 바라본다. 푸른 잎과 푸른 나무는 목숨을 살리고 지구별을 살리며 하늘과 바다와 땅을 모두 살린다. (4345.7.2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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