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87 : 낮은 목소리 책읽기

 


  한여름에는 집에서도 덥습니다. 더운 날씨에 파리들은 마음껏 날갯짓합니다. 밤잠을 자든 낮잠을 자든, 파리들은 몇 마리씩 내 발가락이나 허벅지나 콧잔등에 앉곤 합니다. 파리가 내려앉을 때면 간질간질하는 바람에 제대로 잠들지 못합니다. 아주 작은 벌레가 아주 살짝 내려앉을 뿐이지만, 나는 파리 움직임이 성가시다고 느낍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살랑거립니다. 나뭇잎이 살랑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바람을 쐽니다. 이야, 시원하구나, 하고 느끼면서 이야, 시원한 소리네, 하고 느낍니다. 바람은 살결과 귓결로 시원스레 찾아듭니다.


  바람은 드넓은 들판 푸른 볏포기를 가로지르곤 합니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무럭무럭 익는 벼는 사람들한테 좋은 밥으로 거듭납니다. 한겨레는 한여름 햇살 듬뿍 받은 벼에서 얻은 열매인 쌀을 먹으면서 여름을 헤아리고 봄을 살피며 가을을 노래합니다. 모든 곡식에는 철이 담기고 날씨가 담깁니다.


  루이제 린저 님 책 《낮은 목소리》(덕성문화사,1992)를 읽습니다. 2001년에 《내가 아닌 사람과 사는 지혜》(지식공작소)라는 이름으로 새로 나온 이 책은 짤막하게 적바림한 생각을 그러모읍니다. 이를테면, “사람이 완전히 겸허한 가운데 스스로 작고 충실하고 초라한 하느님의 심부름꾼 이외에는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때에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는지를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58쪽)?”라든지 “내가 그 돈을 그들에게 주기 전까지 금고는 텅 빈 채로였으나, 그들은 조바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그날의 일용할 양식만을 기원했고, 언제나 그것은 채워졌기 때문입니다(135쪽).” 같은 이야기가 잔잔하게 흐릅니다.


  차분하게 흐르는 생각은 아름답게 일구는 마음이 됩니다. 가만히 이어지는 사랑은 찬찬히 빛나는 믿음이 됩니다.


  진보를 바라는 이들이 슬기롭게 꿈꾸기를 바라는 손석춘 님이 쓴 작은 책 《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철수와영희,2012)를 훌쩍 읽습니다. 아버지가 책을 읽는 곁에서 다섯 살 어린이는 《도라에몽》 만화책을 읽습니다. 손석춘 님은 맺음말로 “정치를 바꾸는 길, 국민 대다수의 정치경제 생활, 곧 삶을 바꾸는 길이다. 모든 진보에게 고한다. 아니, 호소한다. ‘학습하라, 토론하라, 소통하라.’(134쪽)” 하는 외침을 꾹꾹 눌러 씁니다. 참말 누구라도 ‘배우고, 얘기하고, 나눌’ 줄 알아야 합니다. 진보를 바라는 이들이든, 보수나 수구를 꾀하는 이들이든, 사회주의나 공화주의나 자본주의나 민주주의나 무슨무슨 주의를 외치려는 이들이든, 모두 ‘배우고, 얘기하고, 나눌’ 줄 알 노릇입니다.


  참답게 살아갈 길을 배웁니다. 착하게 어우러질 길을 얘기합니다. 아리땁게 사랑할 길을 나눕니다. 높은 목소리도 없으나 낮은 목소리도 없습니다. 아리따운 목소리가 있고, 곧바른 목소리가 있습니다. 빛나는 목소리가 있으며, 슬기로운 목소리가 있습니다. 서로를 아끼는 목소리가 있고, 서로서로 보살피는 목소리가 있어요. 어깨동무할 벗님과 즐겁게 웃음을 나누는 책입니다. (4345.8.1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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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보기
― 마른 손과 젖은 손

 


  내가 쓰는 필름스캐너는 2004년부터 씁니다. 퍽 오랫동안 한 가지 기계로만 필름을 긁기에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즐겁게 쓸는 지 모르는데, 필름 한 통을 다 긁자면 얼추 한 시간 즈음 걸립니다. 그래서 필름 여섯 장을 스캐너에 앉히고서 다른 일을 합니다. 이를테면 방바닥을 비질하고 걸레질합니다. 빨래를 하기도 하고, 밥을 하기도 합니다. 필름 여섯 장이 다 긁힐 무렵 손에서 물기를 텁니다. 다 긁힌 파일을 셈틀에 갈무리합니다. 새로 필름 여섯 장을 앉히려고 아직 덜 마른 물기를 옷에 북북 비비며 닦습니다. 그러나 집일을 하면서 필름을 긁자면 손에서 물기 마를 새 없습니다. 밥을 하거나 빨래를 하며 필름을 앉힐 때면 필름에 물기 묻을까 조마조마합니다.


  필름이 긁히도록 앉히고서 집일을 해야 한다면, 차라리 사진관에 필름을 파일로 만들어 달라 맡길 만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진관에서 긁어 주는 파일 크기는 내가 집에서 긁는 크기보다 작습니다. 필름 한 통 긁는 데에 드는 돈도 돈이라 할 테지만, 집일을 하는 틈틈이 필름을 긁는 일을 헤아린다면, ‘필름을 디지털 파일로 만드는 데에 쓰는 돈’은 얼마 안 돼요. 고마운 품값입니다.


  밥을 다 해서 차립니다. 아이들과 옆지기를 불러서 함께 먹습니다. 필름 다 긁힌 소리가 들리면 셈틀 앞으로 달려가 파일을 갈무리하고 새로 필름을 앉힙니다. 이제 스캐너가 드르륵 움직이면 다시 밥상 앞에 앉습니다. 이러기를 여러 차례 되풀이하면 비로소 필름 한 통을 다 긁습니다. 밥을 먹는 동안에는 손에 물기가 안 묻으니 걱정 없이 필름을 만집니다. 집에서 어린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필름을 만지자면 퍽 바쁘며 힘들다 할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참말, 사진을 하건 글을 하건 그림을 하건 무엇을 하건, 집안 어른 한 사람이 어느 전문 일을 할 때에는 그야말로 누군가 곁에서 크게 도와주지 않을 때에는 몹시 벅차겠구나 싶습니다. 그래도 나는 집일을 도맡으며 사진도 찍고, 밥을 차리면서 필름을 긁습니다. 이런 아버지를 바라보던 다섯 살 큰아이가 아버지 곁에 붙어서 부채질을 해 줍니다. (4345.8.1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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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을 바라보면

 


  옆을 바라보면 들판입니다. 앞을 바라보아도 들판입니다. 오늘날 들판에는 온갖 풀약이 뿌려지지만, 푸른 빛깔 싱그러이 나부끼는 모습을 바라보며 좋네, 하고 생각합니다. 옆지기도 아이들도 나도 푸른 들판을 바라봅니다. 굳이 이곳을 바라보거나 저쪽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우리 삶터는 들판이기에 들판을 바라봅니다.


  들판을 바라보며 들바람을 쐽니다. 들마음을 생각하며 들마실을 합니다. 식구들 다 함께 멧길을 오르내리며 멧바람을 쐽니다. 멧마음을 생각하며 멧마실을 합니다.


  봄에는 봄바람이고 여름에는 여름바람입니다. 마을에는 마을바람이고, 나무 밑에서는 나무바람입니다. 참깨밭 앞에 서면 참깨바람이 붑니다. 잠자리가 떼를 지어 날아가면서 잠자리바람을 일으킵니다. 제비는 제비바람을 일으키고, 나비는 나비바람을 일으킵니다.


  스스로 보고 싶은 곳을 보겠지요. 스스로 살고 싶은 대로 살겠지요. 볏포기는 천천히 푸른 빛깔을 벗으면서 노란 빛깔을 입습니다. (4345.8.1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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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이 책 읽는 마음

 


  집식구 저녁밥을 차려서 함께 먹고 또 먹이고 나서 설거지를 합니다. 이 다음으로 아이들을 씻겨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잠자리에 들기 앞서 마지막 빨래를 합니다. 아침과 낮에 한 빨래가 얼마나 말랐는가 살펴 하나하나 갭니다. 후유, 한숨을 돌리며 기지개를 켤 즈음 두 눈은 천천히 감깁니다. 눈꺼풀이 이리 무거웠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하는데, 아이들은 아직 잠들 낌새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데, 이러할 때에 옆지기가 그림책을 펼쳐 두 아이한테 찬찬히 읽어 줍니다. 어쩜 이리 예쁠까. 아이들도 옆지기도 참 예쁘구나 하고 느낍니다. 내가 한 번 더 기운을 내어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 그림책까지 읽히고서 드러누우면 더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서로서로 한결 예쁜 하루를 누리고, 저마다 고운 이야기를 나누면 활짝 웃으며 빛나는 저녁이 되겠구나 싶습니다. 이 땅 아버지들은 즐겁게 할 일이 참 많아요. (4345.8.1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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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숭아 책읽기

 


  옆지기가 복숭아를 먹고 싶다는 말을 듣고는 그날 바로 아이들을 자전거수레에 태워 면소재지 가게로 찾아가 복숭아 한 상자를 장만해서 싣고 돌아왔다. 열아홉 알 든 복숭아 한 상자는 이틀만에 사라진다. 옆지기도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잘 먹는다. 문득 내 몫은 안 돌아오겠다 싶어 나도 한두 알 먹다 보니 어느덧 동이 난다. 이번에는 읍내에 마실할 적에 다시 한 상자를 장만한다. 읍내로는 군내버스를 타고 나가서 군내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두 아이 데리고 읍내로 나들이를 하고는 가방 가득 먹을거리를 장만해서 돌아오는 버스길은 퍽 고단하다 할 만하다. 이러니까 요즈음 젊은 가시버시는 모두 자가용을 장만해서 다니겠구나 싶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 졸립다며 힘들다며 달라붙어 업어 달라느니 안아 달라느니 꾸벅꾸벅 존다느니 하면 손을 쓸 수 없다고 여겨 자가용에 태워 재우면 한결 수월하리라 여기겠다 싶다.


  큰아이가 다섯 살을 곽 채운 새벽녘에 곰곰이 생각해 본다. 옆지기와 만나 여섯 해째 살아오며(2007년부터 2012년) 우리한테 자가용이 있으면 좋겠구나 하고 생각한 적은 아직 없다. 이래저래 힘들면 택시를 타면 된다고 여겼다. 인천에서 살 적에 서울로 볼일 보러 가서 여러모로 힘들면 택시를 타고 4만 원 찻삯을 치르곤 했다. 인천에서 일산으로 옆지기 어버이를 뵈러 다녀오는 길에도 4만 5천 원 찻삯을 들여 택시를 타곤 했다. 택시삯이 비쌀까? 자가용을 장만해서 굴리는 값이 비쌀까? 찬찬히 따지면 어느 쪽도 비싼값이 아니리라. 어느 쪽이든 스스로 살아가려는 길이 되리라. 옆지기와 나는 자가용이든 다른 탈거리이든 되도록 안 타려고 했을 뿐이요, 타야 할 때에는 타되, 우리 두 다리와 마음을 믿기로 했다. 아이들이 퍽 어린 이즈음은 여러모로 어버이로서 몸을 많이 써야 할 텐데, 어버이는 아이들 어리광이나 칭얼거림을 너끈히 받아 줄 만큼 기운이 새로 샘솟는다고 느낀다. 등에 짐 잔뜩 짊어지고 어깨에는 장바구니를 끼었어도 앞으로 아이 하나 안고 다닐 기운이 어느 어버이한테나 있다고 느낀다.


  새벽 일찍 일어난 아이가 복숭아를 찾는다. 한손에 복숭아를 쥔다. 다른 한손에 ‘도라에몽’ 만화책을 쥔다. 일본 만화쟁이 한 사람은 ‘도라에몽’을 참 잘 빚었다고 느낀다. 아마 그이는 온 사랑과 꿈과 믿음을 만화 하나에 살뜰히 실었으리라. 고운 사랑과 좋은 꿈과 맑은 믿음이 담긴 만화인 만큼 수없이 보고 다시 보며 되풀이해서 보면서도 새삼스레 웃고 즐길 수 있을 테지. 복숭아 한 알을 키운 흙일꾼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예쁘장한 복숭아 씨앗 한 알은 집 둘레 한켠에 심자. 다음해에는 어린나무 하나를 장만해서 심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 (4345.8.1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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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8-16 20:29   좋아요 0 | URL
복숭아와 도라에몽이라 잘 어울리는데요^^

파란놀 2012-08-18 00:01   좋아요 0 | URL
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