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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른 손과 젖은 손

 


  내가 쓰는 필름스캐너는 2004년부터 씁니다. 퍽 오랫동안 한 가지 기계로만 필름을 긁기에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즐겁게 쓸는 지 모르는데, 필름 한 통을 다 긁자면 얼추 한 시간 즈음 걸립니다. 그래서 필름 여섯 장을 스캐너에 앉히고서 다른 일을 합니다. 이를테면 방바닥을 비질하고 걸레질합니다. 빨래를 하기도 하고, 밥을 하기도 합니다. 필름 여섯 장이 다 긁힐 무렵 손에서 물기를 텁니다. 다 긁힌 파일을 셈틀에 갈무리합니다. 새로 필름 여섯 장을 앉히려고 아직 덜 마른 물기를 옷에 북북 비비며 닦습니다. 그러나 집일을 하면서 필름을 긁자면 손에서 물기 마를 새 없습니다. 밥을 하거나 빨래를 하며 필름을 앉힐 때면 필름에 물기 묻을까 조마조마합니다.


  필름이 긁히도록 앉히고서 집일을 해야 한다면, 차라리 사진관에 필름을 파일로 만들어 달라 맡길 만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진관에서 긁어 주는 파일 크기는 내가 집에서 긁는 크기보다 작습니다. 필름 한 통 긁는 데에 드는 돈도 돈이라 할 테지만, 집일을 하는 틈틈이 필름을 긁는 일을 헤아린다면, ‘필름을 디지털 파일로 만드는 데에 쓰는 돈’은 얼마 안 돼요. 고마운 품값입니다.


  밥을 다 해서 차립니다. 아이들과 옆지기를 불러서 함께 먹습니다. 필름 다 긁힌 소리가 들리면 셈틀 앞으로 달려가 파일을 갈무리하고 새로 필름을 앉힙니다. 이제 스캐너가 드르륵 움직이면 다시 밥상 앞에 앉습니다. 이러기를 여러 차례 되풀이하면 비로소 필름 한 통을 다 긁습니다. 밥을 먹는 동안에는 손에 물기가 안 묻으니 걱정 없이 필름을 만집니다. 집에서 어린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필름을 만지자면 퍽 바쁘며 힘들다 할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참말, 사진을 하건 글을 하건 그림을 하건 무엇을 하건, 집안 어른 한 사람이 어느 전문 일을 할 때에는 그야말로 누군가 곁에서 크게 도와주지 않을 때에는 몹시 벅차겠구나 싶습니다. 그래도 나는 집일을 도맡으며 사진도 찍고, 밥을 차리면서 필름을 긁습니다. 이런 아버지를 바라보던 다섯 살 큰아이가 아버지 곁에 붙어서 부채질을 해 줍니다. (4345.8.1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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