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다큐영화가 있는 줄 이제서야 깨닫는다.

하기는, 모르는 다큐영화가 얼마나 많겠는가.

 

파란여우 님이 쓴 <독과 도>에서,

내가 마치 '케빈 카터'라는 사진작가가

'도덕성이 나쁜 사람'인 듯 말했다고 적어 놓았는데,

이와 같은 글은 내 명예훼손이다.

 

나는 케빈 카터 이야기를 아직 '사진평론'으로

쓴 적이 없을 뿐더러,

내가 케빈 카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나 스스로 밝힌 적 아직 없는데,

함부로 속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과 도>라는 책에는

'최종규라는 사람은 케빈 카터 도덕성을 비난한다'는 투로 글을 썼고,

이렇게 찍힌 책이 팔린다.

 

부디, 파란여우 님을 비롯해,

케빈 카터 사진작가를 제대로 모르고 올바로 읽지 않은 이들은

이 영화 <뱅뱅클럽>을 보기 바란다.

부디 스스로 공부를 하고 나서 '말을 하기'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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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뱅클럽
스티븐 실버 감독, 라이언 필립 외 출연 / 에스와이코마드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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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9-12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를 보면, 산리즈카 마을에 총과 몽둥이와 방패를 들고 쳐들어오는 전투경찰과 사복경찰 들은 농사꾼을 아주 가볍게 두들겨패다가는 거의 죽이기까지 하는 이야기가 흐른다. 남을 때리는 사람은 맞는 사람이 어떠한가를 살피지 않는다. 명예훼손이란 다 그렇다.

"명예훼손 글쓰기"라는 글을 [글쓰기 삶쓰기] 게시판에 올렸으니, 읽어 보시기 바란다.
 

묶음표 한자말 169 : 도촬(盜撮)


핸드폰 사진의 좋은 점은 문자를 보내는 척하면서 도촬盜撮이 가능하다는 것
《안수연-케이타이 도쿄》(대숲바람,2007) 15쪽

 


  “핸드폰(hand phone) 사진의 좋은 점(點)”은 “휴대전화 사진이 좋은 대목”으로 손볼 수 있는데, ‘휴대전화(携帶電話)’라는 낱말도 ‘손전화’로 손볼 수 있어요. ‘문자(文字)’는 ‘쪽글’로 손질할 수 있어요. 그러나, ‘핸드폰’이나 ‘문자’ 같은 낱말은 아주 널리 쓰입니다. 이 낱말을 애써 손질하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분은 아주 적어요. “가능(可能)하다는 것”은 “할 수 있다는 것”이나 “할 수 있다는 대목”으로 다듬어 줍니다.


  ‘도촬(盜撮)’이라는 한자말은 국어사전에 안 실립니다. 그러나 이 낱말은 제법 쓰입니다. ‘도둑 촬영’을 줄인 한자말일 텐데, 도둑처럼 사진을 찍는다는 소리요, 도둑처럼 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는, 찍히는 사람이 모르게 찍는다는 뜻이에요. 한 마디로 간추리면, 몰래 찍는다는 얘기입니다.

 

 도촬盜撮이 가능하다
→ 도둑찍기를 할 수 있다
→ 몰래찍기를 할 수 있다
→ 몰래 찍을 수 있다
→ 슬며시 찍을 수 있다
 …

 

  한자를 쓰는 나라에서는 ‘盜撮’ 같은 낱말을 빚습니다. 한글을 쓰는 나라에서는 어떤 낱말을 빚으면 좋을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몰래 찍는 일을 가리키는 ‘도촬’인 만큼 ‘몰래찍기’라는 새 낱말을 빚을 수 있습니다.


  ‘몰래찍기’라는 낱말을 생각한다면, ‘몰래-’를 앞가지로 삼아, ‘몰래놀기·몰래사랑·몰래하기·몰래선물·몰래편지’ 같은 여러 가지 낱말을 빚을 수 있어요. 삶에 따라 새 낱말이 태어나고, 삶을 누리는 모습에 따라 새 낱말을 빚습니다.


  그리고, “슬며시 찍다”라 풀거나 “슬그머니 찍다”라 풀어도 돼요. “살며시 찍다”나 “살그머니 찍다”라 풀어도 좋아요. “살짝 찍다”라든지 “슬쩍 찍다”라 해도 되고요. (4345.9.1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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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전화 사진이 좋은 대목은 쪽글을 보내는 척하면서 몰래 찍을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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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9-11 21:53   좋아요 0 | URL
손전화라고 쓰시는 분은 본적 있는데 '쪽글'은 지금 처음 봅니다. 좋으네요. 기억했다가 저도 그렇게 써야겠어요.
지금 막 보내주신 책 받았답니다. 고맙습니다. 잘 읽고 볼께요. 남편에게 사진 보여주며 얘가 사름벼리고 얘가 산들보라고...하면서 알려주었더니 다 공부하는 사진이라고 하네요? ㅋㅋ 그러고보니 이번 책에는 그렇더라고요.
색이름을 빛이름으로 아주 예쁘게 바꿔놓으셨더군요. 귤빛, 감빛...

파란놀 2012-09-12 01:35   좋아요 0 | URL
'쪽지'라는 낱말은... 알고 보면 말이 안 되거든요 ^^;;;
'쪽종이'가 맞는 말인데,
'문자' 보내는 일을 '쪽지' 보낸다고 하면... 참 거시기해요...

아마 '메시지'를 '쪽지'로 어설피 번역한 꼴일 텐데,
옳게 말하면 '짧은 글'인 '쪽글'로 적어야 맞구나 싶어요...
 

묶음표 한자말 172 : 상불원천上不怨天 하불우인下不尤人


군자君者는 상불원천上不怨天이요 하불우인下不尤人이라, 위로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아래로 사람(남)을 탓하지 않는다 했거늘
《이현주-사랑 아닌 것이 없다》(샨티,2012) 14쪽

 

 

  한자말 ‘원망(怨望)’은 “못마땅하게 여기어 탓하거나 불평을 품고 미워함”을 뜻합니다. 곧, 한국말로 하자면 “원망하지 않고”는 “못마땅하게 여기지 않고”나 “미워하지 않고”인 셈이에요. 어떤 분들은 한자말 ‘원망’과 한국말 ‘미움’이 뜻이나 느낌이 다르다 이야기하지만, 두 낱말은 서로 다르지 않아요. 뜻이 같고 쓰임이 같아요. “원망의 눈초리”란 “미워하는 눈초리”요, “원망에 찬 얼굴”이란 “미움 가득한 얼굴”이며, “원망을 사다”는 “미움을 사다”예요.


  보기글에 나오는 ‘군자君子’는 “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을 뜻한다고 합니다. 곧 ‘어진이’로 옮길 만해요. ‘어진’ 사람이 모두 점잖거나 덕이나 학식이 높다 할 수 없다 말할 수 있을 텐데, 한국말 ‘어진이’ 뜻을 붙이면서, 어진 사람 또는 점잖고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을 가리킨다고 하면 돼요. 한국말 쓰임새와 너비를 한국사람 스스로 넓힐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상불원천上不怨天이요 하불우인下不尤人이라 (x)
 위로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아래로 사람(남)을 탓하지 않는다 (o)

 

  보기글을 살펴봅니다. 보기글을 쓴 분은 먼저 중국글을 씁니다. 중국글을 쓰되, 중국글 앞에 한글로 소리값을 붙입니다. 이를테면, “생큐 베리 머치thank you very much”처럼 글을 쓴 셈이에요.


  누군가는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겠지요. 그런데, “참 고맙습니다”라 말하지 않고 “생큐 베리 머치thank you very much”처럼 쓸 때에는 무엇이 더 좋거나 낫거나 빛날까요. “생큐 베리 머치”라고 한글로 적는다 해서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더 잘 알 수 있지는 않아요. 이 영어가 흔한 영어라 중학생뿐 아니라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만하다 하지만, “데어 워즈 시그니피컨트 리지스턴스 투 더 아이디어 오브 컬러 포토그래피there was significant resistance to the idea of color photography”처럼 글을 쓰거나 말을 한다면 얼마나 잘 알아들을 만할까요. 아니, 이렇게 글을 쓰거나 말을 할 까닭이 있을까요. 한국말로 말하지 않고 영어로 말하면서 소리값으로 한글을 덧다는 일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글쓰기가 될까요.


  곧, 보기글을 쓴 분은 ‘중국글을 쓰면서 한글 소리값을 덧다는 일’을 할 노릇이 아닙니다. ‘중국글을 한국글로 알맞게 옮겨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애쓸 노릇이에요. “상불원천이요 하불우인이라”처럼 적어도 뜻을 헤아리기 어려워요. “上不怨天 下不尤人”처럼 적어도 뜻을 헤아리기 어렵겠지요. 굳이 이런 중국글을 쓰지 말고 “위로 하늘을 미워하지 않고 아래로 사람(남)을 탓하지 않는다”라고만 적으면 돼요. 생각을 나누는 길을 슬기롭게 찾기를 빌어요. (4345.9.11.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어진이는 위로 하늘을 못마땅히 여기지 않고 아래로 사람(남)을 탓하지 않는다 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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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의 생일 - 치히로 아트북 5, 0세부터 100세까지 함께 읽는 그림책
이와사키 치히로 글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흰눈 기다리는 어린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94] 이와사키 치히로, 《눈 오는 날의 생일》(프로메테우스출판사,2003)

 


  국민학교라는 이름이 그대로 있던 퍽 어릴 적, 나는 내가 태어난 날을 참 좋아했습니다. 내가 태어난 날은 ‘대설’이란 절기로, 한 해 스물네 절기 가운데 스물셋째입니다. 옛날 옛적 사람들은 한겨레 글 아닌 중국사람 글로 적었으니까 ‘大雪’이라는 한자를 빌어 적었을 텐데, 한국말로 쉽게 고치면 ‘큰눈’이에요. ‘큰눈’에 태어났다니 얼마나 사랑받은 삶인가 하고 생각했어요.


  다만, 나 태어난 날에 눈이 소담스레 내린 일은 아주 드물어요. 날씨가 차츰 따뜻해지기 때문일 수 있는데, 도시에서는 눈을 구경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들은 성탄절에 눈을 바랐다면, 나는 내가 태어난 날에 눈을 바랐어요. 그래야 비로소 내 생일답다고 여겼달까요.


  눈이 없는 나 태어난 날 으레 생각합니다. ‘쳇, 눈도 없으면서 큰눈 절기란 다 뭐람.’ 그러나, 스물네 절기란 도시사람을 헤아리는 때가 아니에요. 스물네 절기는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을 헤아리는 때예요. 동지도 하지도, 경칩도 우수도, 모두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 삶을 돌아보는 때입니다.


  더 생각하면, 설날이나 한가위도 도시사람이 쇠라는 때는 아니에요. 시골사람이 시골에서 흙과 마주하며 누리는 때예요.


.. 하룻밤만 더 자면 내 생일. 엄마 내가 태어난 날 눈이 왔다는 게 정말이야? 난 이제부터 다섯 살 촛불 다섯 개 한 번 만에 끌 테야 ..  (2쪽)


  개구리가 운다는 절기가 찾아오면 ‘어디에서 개구리가 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 내가 살아가는 도시 어디에서 개구리가 깨어날는지, 아니 개구리가 겨울잠을 잘 만한 데가 있는지 알쏭달쏭합니다. 흙땅을 파헤치거나 까뒤집어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바꾸는 마당에, 도시에서 개구리가 깃들 만한 데가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될 적에도, 달력에서 절기 이름을 보면, 오늘은 어떤 날일까 하고 헤아립니다. 그러나, 집에서든 동네에서든 또 학교에서든 다른 어디에서든, 절기를 따지거나 살피는 어른이나 동무는 없습니다. 참말 도시에서는 절기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살아가요. 날씨를 알리는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흔히 절기를 말하지만, 말만 할 뿐 삶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요.


  곰곰이 살피면, 겨울잠 잘 흙땅도 사라졌지만, 풀숲도 못물도 사라졌어요. 논도 밭도 없는 도시이니, 개구리뿐 아니라 풀벌레도 살아갈 터가 없어요. 사람 말고는 다른 이웃 짐승이나 동무 벌레가 없어요. 사람 스스로 이웃을 없애고 동무를 버려요. 이와 같은 흐름에서는 절기라든지 날씨라든지 굳이 따지지 않아요. 사람들은 ‘매출’을 따져요. ‘돈을 얼마나 버느냐’를 따져요.


  봄이든 여름이든 가을이든 겨울이든 ‘돈벌이’가 어느 만큼인가를 헤아릴 뿐인 도시예요. 삶이 어떠하고 사람이 어떠하며 사랑이 어떠한가 하는 대목은 헤아리지 않는 도시예요.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면서도 늘 이 대목이 꺼림칙합니다. 국민학교에서 월말고사를 치르고, 중·고등학교에서 중간고사·기말고사를 치를 적에 늘 절기를 떠올립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구름을 살피며, 해를 생각합니다. 집에서 학교로 오는 길에 본 나무들은 어떻게 밥을 얻어 무럭무럭 자랄 수 있을까 따집니다.


  시험을 치르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젖으니, 아마 다른 동무보다 시험점수는 덜 나왔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생각에 젖을밖에 없습니다. 바깥바람을 생각하고 싶어요. 내 살결은 바깥바람이 조금씩 달라지는 줄 느끼거든요. 햇살을 떠올리고 싶어요. 내 살결은 햇살이 조금씩 바뀌는 흐름을 느끼거든요.


.. 안녕, 여기 선물 편지도 들어 있어 ..  (6쪽)

 

 


  가을을 맞이한 시골마을 햇살이 다릅니다. 여름하고 사뭇 다릅니다. 곰곰이 더 따지면 이른여름과 한여름과 늦여름에도 햇살은 저마다 달랐어요. 찬찬히 더 헤아리면 늦여름에도 첫째 주와 둘째 주와 셋째 주와 넷째 주 햇살이 서로서로 달랐어요. 첫째 주에도 첫째 날·둘재 날·셋째 날…… 햇살은 언제나 달랐어요.


  어느 사람한테든 같은 날이란 없어요. 어느 날 문득 ‘참 그렇네.’ 하고 깨닫고서는 학교에서 시험을 치른다며 점수를 따지는 일이 얼마나 안 대수로운가를 느낍니다. 교사들은 시험문제를 머리 낑낑대며 만듭니다. 교사들이 만든 시험문제를 우리들이 풉니다. 교사들은 우리를 ‘한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고 ‘시험문제를 치러 얻은 점수’로 바라봅니다. 여느 때에는 ‘출석부 번호’로 우리를 바라보지만, 시험만 치르면 이내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집니다. 시험점수가 높을 때에는 ‘높은 점수’로 바라봅니다. 시험점수가 낮을 때에는 ‘낮은 점수’로 바라봅니다.


  아무래도 학교에서 교사 일을 맡는 어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지 몰라요. 교사라는 자리는 오늘날 이 나라에서 ‘다 다른 아이들을 다 다른 눈썰미로 사랑하며 다 다른 꿈이 자라도록 다 다른 사랑을 따사롭게 나누는’ 자리답게 좋은 구실을 하지 못하거든요. 초·중·고등학교 모두 입시시험하고 얽힌 이야기만 나눠요. 한국말(국어)을 가르치는 자리에서든, 셈(수학)을 따지는 자리에서든, 삶(역사)을 돌아보는 자리에서든, 이웃나라(영어나 제2외국어)를 헤아리는 자리에서든, 착한 꿈(도덕)을 살피는 자리에서든, 학교에서는 그저 ‘시험에 나오는가 아닌가’와 ‘시험에 나왔을 때에 점수를 딸 만한가 아닌가’라는 쳇바퀴에서 맴돕니다.


.. 별님 별님 엄마한테는 내일 아무것도 필요없다고 말했지만 정말은 딱 한 가지 소원이 있어요. 내일 생일날에 새하얀 눈을 꼬옥 내려주세요 내가 태어난 날처럼요 ..  (21쪽)


  글을 쓰는 까닭이라면 내 삶을 사랑하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무한테 글월을 띄우는 까닭이라면 내 삶을 아끼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가 태어난 겨울날 큰눈 절기를 좋아하던 까닭이라면,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온마음으로 흐뭇하게 웃으며 즐겁기 때문입니다. 이 눈과 함께 지구별 목숨으로 태어나 풀과 꽃과 나무를 누리고,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랑 하루하루 예쁘게 살림을 빚는다는 이야기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 눈 오는 생일 아침, 빨간 모자랑 빨간 장갑을 엄마한테서 받았지요 ..  (24쪽)


  이와사키 치히로 님 그림책 《눈 오는 날의 생일》(프로메테우스출판사,2003)을 읽습니다. 다섯 살을 꽉 채운 아이는 싱그럽게 웃으며 놉니다. 동무 생일에 놀러가고, 내 생일에 동무를 부릅니다. 그런데 그만, 넋을 놓다가는 잘못을 저지릅니다.


  가만가만 보면 아이들이니 흔히 저지를 만한 잘못이에요. 아이들로서는 잘못인 줄 모르는 채 잘못을 저질러요. 그냥 살아가는 나날이에요. 그저 마음껏 뛰고 걷고 날고 달리고 구르면서 씩씩하게 자라요.


  언제나 좋은 마음이 되어 이마에 땀을 송송 맺습니다. 늘 밝은 넋이 되어 등판에 땀이 줄줄 흐릅니다. 아이들은 뜀뛰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달리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구르기를 끝내지 않습니다. 배가 한참 고플 때까지 놉니다. 잠에 곯아떨어질 때까지 놉니다. 기운껏 놀아요. 힘껏 살아요. 흰눈 기다리는 어린이는 하얀 마음입니다. 맑은 빗물 기다리는 어린이는 맑은 마음입니다. 고운 햇살 기다리는 어린이는 고운 마음입니다. 그리고, 어른도 언제나 어린이와 같은 마음입니다. 산들바람이 불며 가을날 풀벌레 노랫소리를 이곳저곳 곱다시 실어 나릅니다. 너른 들판을 따라, 시원스런 냇물을 따라, 푸른 멧자락 숲을 따라, 가을노래는 이 땅 곳곳으로 천천히 울려퍼집니다. (4345.9.11.불.ㅎㄲㅅㄱ)

 


― 눈 오는 날의 생일 (이와사키 치히로 글·그림,임은정 옮김,프로메테우스출판사 펴냄,2003.12.15./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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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풀빛,1984)을 다시 읽는다. 이 알쏭달쏭한 시집을 단숨에 다시 읽는다. 나는 《노동의 새벽》이라는 묵은 시집을 헌책방에서 마주할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곤 한다. 오윤 님 판화가 ‘질 다른 종이’로 붙을 뿐더러, 책날개에 찍히는 ‘풀빛 판화시선’ 알림글이 다르고, 책을 찍은 종이가 달라 두께가 달라지는데에도 웬만한 책은 모두 ‘초판’이기 일쑤이다. 《노동의 새벽》 2쇄나 3쇄나 중쇄를 만나기란 아주 힘들기에 알쏭달쏭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노동의 새벽》을 어떻게 알았을까. 글쎄. 1991년에 《머리띠를 묶으며》(미래사)라는 시집이 나온 적 있다. 이무렵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인천 중구 인현동에 있는 〈대한서림〉에서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을 보면서 한 권씩 사서 읽곤 했는데, 100인선집이라 하고서는 101번과 102번이 있었고, 102번으로 박노해 님 시집이 있어 퍽 재미있다고 여겼다. 백 사람을 골랐다면서 백둘째 사람이 있으니 아리송했지만, 어쨌든 나는 102번째 《머리띠를 묶으며》를 맨 처음으로 장만했고, 학교로 걸어가는 길에 이 시집을 다 읽었다.


  고등학교에서는 곧잘 ‘소지품 검사’를 했기에, 이 시집을 가방에 챙겨 학교에 간 날은 몹시 조마조마했다. 가방에 챙겨 학교에 갔어도 교실에서는 섣불리 꺼내어 읽지 못했다. 학교로 가는 길, 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때에 비로소 책을 꺼내어 읽었다. 고등학생 때 ‘걸어서 학교를 오가는 겨를’조차 아깝다 여겨 책을 읽으며 살았다. 이때 이 시집을 몇 차례쯤 읽었을까. 스무 차례? 쉰 차례? 백 차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헌책방을 다닌다. 언제였는지 잘 모르겠는데, 아마 고등학교 2학년 겨울이나 고등학교 3학년 봄 무렵에 《노동의 새벽》을 헌책방에서 만났지 싶다. “머리띠를 묶으며”라는 책이름만으로도 학교에 책을 들고 가기 두렵다고 여겼기에, “노동의 새벽” 같은 책이름으로는 자칫 소지품검사에 걸리면 크게 말썽이 생겨 학교에서 쫓겨날 수 있겠다고 느꼈다. 이 시집은 집에서도 꽁꽁 숨기며 읽었다. 다른 책 뒤에 몰래 숨겼다. 헌책방에서 이 시집을 장만하던 날 가슴이 얼마나 벌렁벌렁 뛰었는지 모른다.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지켜보며 “학생, 가방 좀 봅시다.” 하고는 나를 붙잡을는지 모를 노릇이기 때문이다. 늦은 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며 이 시집을 읽는데, 책등이 안 보이게 하며 읽으려고 몹시 애를 썼다.


  이제 2012년. 헌책방 어느 곳을 가더라도 《노동의 새벽》은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다. 요즈음 이 시집을 애써 들추거나 살펴서 읽으려고 하는 손길은 거의 없지 싶다. 알쏭달쏭한 간기(판권)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노동의 새벽》은 헌책방에서 ‘고서’ 대접조차 못 받는다. 헌책방에 많이 들어오더라도 사는 손길이 드물다며 애물단지라 일컫기까지 한다.


  큰 문방구를 찾아가야 하기에 고흥 읍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간다. 큰 문방구를 들른 다음 순천 저전동 헌책방 〈형설서점〉에 들른다. 두 가지 판본 《노동의 새벽》이 보인다. 판본은 두 가지인데 간기는 ‘찍은 날’이 같다. 나는 소장품으로 살 마음이 아니라 읽을 책으로 살 마음이기에 조금 더 깨끗한 책으로 고른다.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거리낌없이 시집을 펼친다.


  문득 생각한다. 고흥에서 자라다가 학교는 중학교도 미처 끝마치지 못한 채 열다섯 나이로 서울 어느 공장에 공돌이로 떠나야 하던 넋이 있는데, 이 넋이 빚은 빛글 한 자락이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으로 돌아간다. 순천을 떠난 시외버스는 벌교를 지나고 동강과 남양을 지나 과역에 선다. 과역을 다시 떠나 점암을 스치며 고흥읍에 닿는다. 나는 고흥읍에서 택시를 불러 포두를 지나고 도화로 들어선다. 내 사랑스러운 살붙이들이 기다리는 동백마을로 돌아온다.


  집에서 아이들은 늦게까지 잠들려 하지 않는다. 밤 열 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두 아이가 하나씩 곯아떨어진다. 너희들은 참말 대단하구나. 아니, 너희들은 참말 놀려고 이 땅에 태어났구나. 아니, 너희들은 이 좋은 어린 날 끝없이 놀고 뛰고 달리고 날아야 비로소 가장 빛나는 목숨이로구나.


  고등학생 때 박노해 님 시를 읽으며 한 가지만 생각했다. 나는 이 나이에 고등학교를 다니며 이 시집을 손에 쥐었다는 까닭 하나로 학교에서 쫓겨날까 벌벌 떠는데, 그러면서 마음 한켠으로는 학교에서 쫓겨나 이 숨막히는 제도권 울타리에서 홀가분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학교 교칙으로는 ‘불온도서’로 손꼽히는 박노해 시집을 일부러 가방에 자주 챙겨서 갖고 다니며 읽는데, 이런 내 나이에 공장에서 공돌이로 일하던 마음은 어떠했을까, 참으로 궁금했다. 내가 열일곱 나이에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아닌 공돌이 ‘3년차’라 한다면 어떤 나날을 살아갈 수 있을까, 더없이 궁금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살면서, 신문사지국 한쪽에 드러누워 《노동의 새벽》을 숱하게 다시 읽는다. 바야흐로 나도 신문배달 ‘일꾼(노동자)’ 마음으로 시를 마주한다. 신문배달을 하는 마음을 시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 하고 헤아려 본다. 이러던 1998년, 무기징역수로 감옥에서 옴쭉달싹 못하던 박노해 님이 풀려난다. 이른바 ‘사상전향서’를 쓰고 감옥에서 풀려났으니 변절을 했다느니 몹쓸 사람이 되었다느니 하는 손가락질이 곳곳에서 솟구쳤다. 학생운동을 하는 동무나 후배들이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는 소리를 곁에서 듣는다. 나는 내 동무와 후배한테 시집을 한 권씩 사서 선물해 주었다. 대학교 둘레 헌책방 책시렁에 아무렇게나 꽂힌 채 찾아 주는 손길 없던 《노동의 새벽》을 삭삭 훑듯 모조리 사들여 선물한다. “얘들아, 우리 이 시집을 읽어 보고 나서 이야기하자, 응?”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 《머리띠를 묶으며》나 《노동의 새벽》을 나한테서 빌려 읽으려 하던 동무는 딱 하나 있었다. 다른 동무들은 ‘무서워’ 하며 아예 못 본 척하거나 고개를 홱 돌리곤 했다. 대학교에서는 학생운동을 하건 문학을 하건 뭐를 하건 시집을 읽으려는 벗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나를 잘 따르던 후배 몇은 내가 내미는 시집을 받아들고는 머리를 낑낑거리기는 하되, 이 시들이 무얼 말하는지를 하나도 못 느끼겠다고 했다. 삶이 달라 시를 못 읽을까. 생각이 없어 시를 받아들이지 못할까.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박노해’ 이름을 넣어 살핀다. “《머리띠를 묶으며》에 이르기까지 초기 시 세계는 현실의 사회 제도와 이념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투쟁적이고 선동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에 비해 수필집 《사람만이 희망이다》 이후에는 생명과 포용과 화해의 길을 찾으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예술성과 정치성을 겸비한 대표적 노동자 시인으로 일컬어져 왔으나, 《사람만이 희망이다》 이후 그의 세계관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같은 대목을 읽는다. 그런데, 인터넷 백과사전을 엮은 이는 박노해 님 시를 읽기는 읽었을까. 시집 《노동의 새벽》이나 《머리띠를 묶으며》가 ‘선동’하는 시이거나 ‘저항’하는 시이거나 ‘투쟁’하는 시일까.


  곰곰이 돌이키니, 내 둘레에서 오직 한 사람만 박노해 님 시집을 읽고는 ‘사랑’을 노래한다고 말했다. 그래, 맞아, 박노해 님 시는 ‘사랑’을 말해. 투쟁도 혁명도 파업도 분노도 저항도 아니야. 사랑이야.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 새벽 쓰린 가슴 위로 /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 아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하는 노래는, 그래 노래는, 그예 사랑이야. “네가 손꼽아 기다리며 동그라미 쳐논 / 빨간 휴일날 아빠는 특근을 간다.” 하는 노래는, 온통 사랑이야. “푸른 제복에 갇힌 3년 세월 어느 하루도 / 헛되어 버릴 수 없는 고귀한 삶이다.” 하는 노래는, 그야말로 사랑이야.


  삶을 사랑하고 고향을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했기에 시를 쓸 수 있겠지. 감옥에서 풀려난 뒤 오래도록 입을 꾹 닫고 슬프게 살다가, 레바논도 아체도 이라크도 찾아다니면서 눈물바람이 되었기에 비로소 다시 시를 쓸 기운을 찾았겠지. 일하는 사람들한테 새벽은 쓰린 찬소주와 같이 고달프지만, 사랑을 생각하며 다시금 기운을 내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새 햇살이야. (4345.9.1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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