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의 생일 - 치히로 아트북 5, 0세부터 100세까지 함께 읽는 그림책
이와사키 치히로 글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흰눈 기다리는 어린이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94] 이와사키 치히로, 《눈 오는 날의 생일》(프로메테우스출판사,2003)

 


  국민학교라는 이름이 그대로 있던 퍽 어릴 적, 나는 내가 태어난 날을 참 좋아했습니다. 내가 태어난 날은 ‘대설’이란 절기로, 한 해 스물네 절기 가운데 스물셋째입니다. 옛날 옛적 사람들은 한겨레 글 아닌 중국사람 글로 적었으니까 ‘大雪’이라는 한자를 빌어 적었을 텐데, 한국말로 쉽게 고치면 ‘큰눈’이에요. ‘큰눈’에 태어났다니 얼마나 사랑받은 삶인가 하고 생각했어요.


  다만, 나 태어난 날에 눈이 소담스레 내린 일은 아주 드물어요. 날씨가 차츰 따뜻해지기 때문일 수 있는데, 도시에서는 눈을 구경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들은 성탄절에 눈을 바랐다면, 나는 내가 태어난 날에 눈을 바랐어요. 그래야 비로소 내 생일답다고 여겼달까요.


  눈이 없는 나 태어난 날 으레 생각합니다. ‘쳇, 눈도 없으면서 큰눈 절기란 다 뭐람.’ 그러나, 스물네 절기란 도시사람을 헤아리는 때가 아니에요. 스물네 절기는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을 헤아리는 때예요. 동지도 하지도, 경칩도 우수도, 모두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 삶을 돌아보는 때입니다.


  더 생각하면, 설날이나 한가위도 도시사람이 쇠라는 때는 아니에요. 시골사람이 시골에서 흙과 마주하며 누리는 때예요.


.. 하룻밤만 더 자면 내 생일. 엄마 내가 태어난 날 눈이 왔다는 게 정말이야? 난 이제부터 다섯 살 촛불 다섯 개 한 번 만에 끌 테야 ..  (2쪽)


  개구리가 운다는 절기가 찾아오면 ‘어디에서 개구리가 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 내가 살아가는 도시 어디에서 개구리가 깨어날는지, 아니 개구리가 겨울잠을 잘 만한 데가 있는지 알쏭달쏭합니다. 흙땅을 파헤치거나 까뒤집어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바꾸는 마당에, 도시에서 개구리가 깃들 만한 데가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될 적에도, 달력에서 절기 이름을 보면, 오늘은 어떤 날일까 하고 헤아립니다. 그러나, 집에서든 동네에서든 또 학교에서든 다른 어디에서든, 절기를 따지거나 살피는 어른이나 동무는 없습니다. 참말 도시에서는 절기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살아가요. 날씨를 알리는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흔히 절기를 말하지만, 말만 할 뿐 삶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요.


  곰곰이 살피면, 겨울잠 잘 흙땅도 사라졌지만, 풀숲도 못물도 사라졌어요. 논도 밭도 없는 도시이니, 개구리뿐 아니라 풀벌레도 살아갈 터가 없어요. 사람 말고는 다른 이웃 짐승이나 동무 벌레가 없어요. 사람 스스로 이웃을 없애고 동무를 버려요. 이와 같은 흐름에서는 절기라든지 날씨라든지 굳이 따지지 않아요. 사람들은 ‘매출’을 따져요. ‘돈을 얼마나 버느냐’를 따져요.


  봄이든 여름이든 가을이든 겨울이든 ‘돈벌이’가 어느 만큼인가를 헤아릴 뿐인 도시예요. 삶이 어떠하고 사람이 어떠하며 사랑이 어떠한가 하는 대목은 헤아리지 않는 도시예요.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면서도 늘 이 대목이 꺼림칙합니다. 국민학교에서 월말고사를 치르고, 중·고등학교에서 중간고사·기말고사를 치를 적에 늘 절기를 떠올립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구름을 살피며, 해를 생각합니다. 집에서 학교로 오는 길에 본 나무들은 어떻게 밥을 얻어 무럭무럭 자랄 수 있을까 따집니다.


  시험을 치르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젖으니, 아마 다른 동무보다 시험점수는 덜 나왔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생각에 젖을밖에 없습니다. 바깥바람을 생각하고 싶어요. 내 살결은 바깥바람이 조금씩 달라지는 줄 느끼거든요. 햇살을 떠올리고 싶어요. 내 살결은 햇살이 조금씩 바뀌는 흐름을 느끼거든요.


.. 안녕, 여기 선물 편지도 들어 있어 ..  (6쪽)

 

 


  가을을 맞이한 시골마을 햇살이 다릅니다. 여름하고 사뭇 다릅니다. 곰곰이 더 따지면 이른여름과 한여름과 늦여름에도 햇살은 저마다 달랐어요. 찬찬히 더 헤아리면 늦여름에도 첫째 주와 둘째 주와 셋째 주와 넷째 주 햇살이 서로서로 달랐어요. 첫째 주에도 첫째 날·둘재 날·셋째 날…… 햇살은 언제나 달랐어요.


  어느 사람한테든 같은 날이란 없어요. 어느 날 문득 ‘참 그렇네.’ 하고 깨닫고서는 학교에서 시험을 치른다며 점수를 따지는 일이 얼마나 안 대수로운가를 느낍니다. 교사들은 시험문제를 머리 낑낑대며 만듭니다. 교사들이 만든 시험문제를 우리들이 풉니다. 교사들은 우리를 ‘한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고 ‘시험문제를 치러 얻은 점수’로 바라봅니다. 여느 때에는 ‘출석부 번호’로 우리를 바라보지만, 시험만 치르면 이내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집니다. 시험점수가 높을 때에는 ‘높은 점수’로 바라봅니다. 시험점수가 낮을 때에는 ‘낮은 점수’로 바라봅니다.


  아무래도 학교에서 교사 일을 맡는 어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지 몰라요. 교사라는 자리는 오늘날 이 나라에서 ‘다 다른 아이들을 다 다른 눈썰미로 사랑하며 다 다른 꿈이 자라도록 다 다른 사랑을 따사롭게 나누는’ 자리답게 좋은 구실을 하지 못하거든요. 초·중·고등학교 모두 입시시험하고 얽힌 이야기만 나눠요. 한국말(국어)을 가르치는 자리에서든, 셈(수학)을 따지는 자리에서든, 삶(역사)을 돌아보는 자리에서든, 이웃나라(영어나 제2외국어)를 헤아리는 자리에서든, 착한 꿈(도덕)을 살피는 자리에서든, 학교에서는 그저 ‘시험에 나오는가 아닌가’와 ‘시험에 나왔을 때에 점수를 딸 만한가 아닌가’라는 쳇바퀴에서 맴돕니다.


.. 별님 별님 엄마한테는 내일 아무것도 필요없다고 말했지만 정말은 딱 한 가지 소원이 있어요. 내일 생일날에 새하얀 눈을 꼬옥 내려주세요 내가 태어난 날처럼요 ..  (21쪽)


  글을 쓰는 까닭이라면 내 삶을 사랑하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무한테 글월을 띄우는 까닭이라면 내 삶을 아끼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가 태어난 겨울날 큰눈 절기를 좋아하던 까닭이라면,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온마음으로 흐뭇하게 웃으며 즐겁기 때문입니다. 이 눈과 함께 지구별 목숨으로 태어나 풀과 꽃과 나무를 누리고,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랑 하루하루 예쁘게 살림을 빚는다는 이야기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 눈 오는 생일 아침, 빨간 모자랑 빨간 장갑을 엄마한테서 받았지요 ..  (24쪽)


  이와사키 치히로 님 그림책 《눈 오는 날의 생일》(프로메테우스출판사,2003)을 읽습니다. 다섯 살을 꽉 채운 아이는 싱그럽게 웃으며 놉니다. 동무 생일에 놀러가고, 내 생일에 동무를 부릅니다. 그런데 그만, 넋을 놓다가는 잘못을 저지릅니다.


  가만가만 보면 아이들이니 흔히 저지를 만한 잘못이에요. 아이들로서는 잘못인 줄 모르는 채 잘못을 저질러요. 그냥 살아가는 나날이에요. 그저 마음껏 뛰고 걷고 날고 달리고 구르면서 씩씩하게 자라요.


  언제나 좋은 마음이 되어 이마에 땀을 송송 맺습니다. 늘 밝은 넋이 되어 등판에 땀이 줄줄 흐릅니다. 아이들은 뜀뛰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달리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구르기를 끝내지 않습니다. 배가 한참 고플 때까지 놉니다. 잠에 곯아떨어질 때까지 놉니다. 기운껏 놀아요. 힘껏 살아요. 흰눈 기다리는 어린이는 하얀 마음입니다. 맑은 빗물 기다리는 어린이는 맑은 마음입니다. 고운 햇살 기다리는 어린이는 고운 마음입니다. 그리고, 어른도 언제나 어린이와 같은 마음입니다. 산들바람이 불며 가을날 풀벌레 노랫소리를 이곳저곳 곱다시 실어 나릅니다. 너른 들판을 따라, 시원스런 냇물을 따라, 푸른 멧자락 숲을 따라, 가을노래는 이 땅 곳곳으로 천천히 울려퍼집니다. (4345.9.11.불.ㅎㄲㅅㄱ)

 


― 눈 오는 날의 생일 (이와사키 치히로 글·그림,임은정 옮김,프로메테우스출판사 펴냄,2003.12.15./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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