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가게

 


  낮에 우체국에 다녀오며 면내 가게에서 과자 한 봉지를 산다. 집에서 노는 아이들은 아버지가 과자를 산 줄 모른다. 저녁을 차리고 한참 지나기까지 두 아이 모두 밥을 안 먹으며 놀기만 하려고 해서 과자를 꺼내지 않는다. 두 아이가 개구지게 놀다가 비로소 밥그릇 다 비웠구나 싶을 무렵 드디어 과자 한 봉지 꺼내어 넷이 함께 먹는다. 과자 한 봉지는 쉬 사라진다. 큰아이가 “과자 더 먹고 싶어.” 하고 말한다. 그러나 한 봉지만 샀으니 더 없는걸. 네가 노래를 한들 춤을 춘들, 이 두멧자락 시골마을 어디에 가게가 있니. 네가 먹고 싶으면 얼른 무럭무럭 자라서 네 손으로 이 시골집에서 손수 과자를 구워 먹어야지.


  우리 집이 도시였으면 편의점이든 가게이든 늦게까지 열 테고, 어렵잖이 다녀올 만하겠지. 아이들은 아버지더러 ‘얼른 가게 다녀와요.’ 하고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지겠지. 우리 집이 시골이니, 아이들이 이리 칭얼거리건 저리 졸라대건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면 끝. 돌이켜보면, 가게라는 데가 생기고 시골 읍내나 면내에까지 이들 가게가 들어서는 바람에, 집집마다 아이들이랑 알콩달콩 지어서 나누던 주전부리가 차츰 사라지고 말았지 싶다. 입이 심심하면 스스로 칼질을 하고 무언가 또닥거려서 샛밥을 마련할 노릇인데, 가게가 생기면서 모두들 돈 얼마로 과자부스러기 빵조각 사들이는 일로 주전부리를 갈음하고 만다. 그러게, 우리 집에도 날고구마 많이 있는걸. 나부터 날고구마 잘 씻어서 송송 썰고, 몇 녀석은 냄비에 작은불로 천천히 익혀 짠 하고 내놓으면 되는걸. 4345.1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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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달빛

 


  서울 하늘에는 달과 별이 가려지니, 어른들이 이를 안타까이 여기며, 그림책에 달빛이랑 별빛을 담아 아이들한테 보여주려고 해요. 그러나, 서울 하늘에 달과 별이 가려진들 아랑곳하지 않거나 느끼지 않는 어른이 많아, 조금도 이를 안타까이 여기지 않기에, 그림책에조차 달빛이랑 별빛을 안 담거나 못 담기 일쑤예요.


  어린 나날 시골 밤하늘에서 달빛이랑 별빛을 흐드러지게 누린 기쁨을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어, 그림책에 달빛이랑 별빛을 곱다시 담는 어른이 있어요. 그러나, 어린 나날 시골 밤하늘에서 으레 달빛이랑 별빛을 바라보기는 했지만, 막상 달빛이랑 별빛을 살뜰히 누리지 못한 나머지, 어른이 되어도 아이들한테 달빛이랑 별빛을 물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을 못하는 어른이 있지요.


  밤이 깊어도 좀처럼 잠들지 않으려는 작은아이를 안고 몇 차례나 마당으로 나와 달빛이랑 별빛을 올려다봅니다. 작은아이는 달놀이를 하니 재미날까요. 작은아이는 별놀이를 하니 신날까요. 어쩌면, 작은아이가 쉬 잠들지 않아 주기에, 나도 작은아이하고 마당으로 자꾸 나와서 자꾸 별바라기를 하고 거듭 달바라기를 할 수 있는지 몰라요. 작은아이를 재운다는 말은 핑계이고, 작은아이한테 들려주면서 나 스스로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도록 자장노래를 맑은 목소리 뽑아 부르는 셈인지 몰라요.


  두 아이 재우다가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까무룩 잠듭니다. 작은아이가 쉬 마렵다 보채며 새벽에 퍼뜩 잠을 깨니 오른팔이 뻑적지근 저립니다. 몇 시간이나 작은아이 팔베개를 했을까. 쉬를 더 누이고 무릎에 앉혀 새 바지를 입힌 다음 다시 잠자리에 눕힙니다. 4345.1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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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20] 작은집

 


  아이들한테 발 따순 신이 따로 없어 읍내로 가서 큰아이 신이랑 작은아이 신을 장만합니다. 어여쁜 신이 많습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저희 마음에 드는 신을 고릅니다. 신고 간 신은 봉지에 담아 가방에 넣고, 새로 산 신을 신고 돌아다닙니다. 작은아이 신은 작은아이 발이 크면 신장에 덩그러니 남을 테고, 큰아이 신은 큰아이가 잘 신고 작은아이한테 물려줄 수 있겠지요. 큰아이 겉바지하고 치마 한 벌, 작은아이 양말 한 켤레를 더 장만합니다. 두 아이 신과 옷을 한꺼번에 장만하니 신값이랑 옷값이 쏠쏠히 듭니다. 한 해를 갈무리하는 선물이려니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예쁘장한 옷을 입지 않더라도 예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마음과 눈빛과 몸짓으로 얼마든지 예쁩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은 가장 맛난 밥과 가장 즐거운 놀이와 가장 따스한 품과 가장 싱그러운 나들이와 가장 보람찬 일을 좋아해요. 가장 너른 사랑과 가장 푸른 꿈을 누리며 살아가요. 아이들은 대통령 이름을 모르고, 아이들은 공장이나 발전소를 모르며, 아이들은 자동차 이름이든 신문·방송 새이야기이든 모릅니다. 굳이 살피거나 알거나 찾아볼 까닭이 없어요. 작은 마음은 작은 몸에 깃들어, 작은 마을 작은 집에서, 작은 목소리로 작은 웃음을 꽃피웁니다. 오늘 아이들 신이랑 옷을 산 가게도 ‘작은 집(little house)’이었군요. 4345.12.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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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그림 읽기
2012.12.24. 큰아이―나 그렸어

 


  큰아이가 아침을 안 먹어서 오늘은 자전거 안 태우고 아버지 혼자 우체국 갔다오겠다고 하니 엉엉 운다. 밥을 안 먹었다 하더라도 그냥 데려갈까 싶으면서, 밥 안 먹을 때에도 그저 데려가면 아주 버릇이 들까 싶어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끌고 혼자 나간다. 우체국에 들러 편지를 띄우고 집으로 돌아오니, 큰아이가 그림을 그렸다며 조그마한 종이를 들어서 보여준다. “무슨 그림이야?” “나, 나 그렸어. 사름벼리.” 4345.12.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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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차리는 마음

 


  내가 먹을 밥을 차리려고 밥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옆지기와 아이들이 함께 먹을 밥을 차리고 보면, 바로 이 밥이란 내가 먹을 밥입니다. 옆지기와 아이들이 맛나게 먹기를 바라며 밥을 차리고 보면, 바로 이 밥이란 내가 맛나게 먹을 밥입니다.


  내가 스스로 맛나게 먹자고 생각하며 밥을 차리면, 이 밥은 새삼스레 옆지기와 아이들이 맛나게 먹을 밥입니다. 내 온 사랑과 꿈을 실어 스스로 즐거이 누릴 밥을 지으면, 바로 이 밥은 온식구 흐뭇하게 웃으며 누릴 밥이 됩니다.


  함께 밥을 먹는 삶이란 참 즐겁구나 하고 느낍니다. 한솥밥 먹는 살붙이란 참 어여쁜 사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서로 밥그릇을 나누기에 예부터 싸움이나 미움이란 낱말조차 모르면서, 다 함께 두레랑 품앗이랑 울력을 할 수 있었구나 싶습니다. 오늘날 도시에서는 서로 밥그릇을 안 나누거나 못 나누는 나머지, 자꾸 싸움이나 미움 같은 낱말이 쓰이고, 때로는 따돌림이나 괴롭힘이나 들볶음 같은 낱말마저 불거지는구나 싶습니다.


  사랑하려 할 때에 사랑이 깃들며 먹는 밥입니다. 아끼려 할 때에 아끼는 손길이 살포시 담기며 나누는 밥입니다. 우리 밥 같이 먹어요. 우리 땀 같이 흘려요. 우리 이 숲길 거닐며 즐겁게 웃도 놀아요. 4345.12.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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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12-24 14:14   좋아요 0 | URL
참 좋네요...
추운 겨울날, 마음이 따스해지는 글과 사진 감사드려요. ^^

편안한 연말되셔요.

파란놀 2012-12-24 16:25   좋아요 0 | URL
하루하루 즐거이 누리셔요~
모든 일은 잘 풀리리라 믿어요

북극곰 2012-12-24 15:43   좋아요 0 | URL
아아.. 밥 먹고 싶어요!

편안한 연말되세요~ ^^

파란놀 2012-12-24 16:26   좋아요 0 | URL
밥 드셔요~ ^^
모두 사랑스러운 하루 누리소서~